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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치매대응반-21화 (21/122)

〈 21화 〉 무림치매대응반 21

* * *

­ 쩡!

검후의 검이 다시 한 번 세차게 몰아친다. 그 안에 담긴 기운이 실로 강맹해서 바닥의 석판이 마구 뒤틀리고 깨져나간다. 그런데, 저러고 있는걸 봐도 나와 종리연은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나는, 검후다! 검후란 말이다!”

“진정해요 린.”

왜냐하면 어린아이 달래듯 시종일관 나직한 목소리로 검후를 상대하고 있는 초화란의 세보(?)정도 앞에서 부터 그 뒤로는 전혀,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로 대고 그은듯, 영역 밖에서 검후는 미친듯이 날뛰고 있지만 초화란은 슬쩍 슬쩍 손을 뻗어 초식의 결에 따라 검을 푹 푹 찔러 넣는 것 만으로 휘몰아치는 기운의 대부분을 상쇄시키고 있었다. 표정하나 안바뀌고.

“화란아, 도와줘?”

“아뇨 언니. 잠시만요.”

혹시나, 검후와의 친분때문에 때려잡지 못하거나, 모종의 이유로 검후를 못 이기는걸까 싶어서 종리연이 물어본 것 같다. 그러나 손을 저어 거부한 화란은 검후와 공방을 주고 받으면서도 계속 뭔가를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필요하면 이야기 해!”

“네 언니, 그럴게요.”

그리고 다시 공방. 흠. 아무리 봐도 화란이가 압도적으로 보이는데 저걸 꼭 저러고 있을 필요가 있나 싶었다. 왠지 점점 긴장감이 바닥을 향해 가는 느낌으로

[오라버니, 가만히 둬. 앙큼한게 검후한테 심득을 다 뽑아먹으려나 봐.]

[심득을?]

[화란이 쟤는 밖으로 돌기도 했고, 일부 믿을 수 있는 인원들 말고는 자기가 검각 출신인거 이야기 안했거든. 남해파랑검도 제대로 대성 못했지.]

[그럼 지금 화란이는 왜 저렇게 강한건데?]

[오라버니 때문에. 내가 치료한 탓도 좀 있고. 여튼 쟤는 나처럼 스스로 그 경지를 뚫어낸게 아니다 보니까….]

정석따라 터진게 아니다 보니까 약하다 이거겠지 뭐.

[조거조거 아주 그냥….]

[왜?]

[생각해 보니까, 검후가 걱정된다 어쩐다 이거 말짱 거짓말이었던거 아냐?]

[에이 설마 그렇기야 했을라고.]

[그러고도 남아. 검후가 멀쩡했어도 아마 붙었을걸?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랬으려나?

“오라버니가 하나 착각하는게 있는데, 쟨 원래 저런 고수가 아니었어. 고만고만했지.”

“저게 고만고만이면….”

“지금은 상전벽해 수준이야. 쟤가 그렇게 강했으면 지가 외당주 하지 내가 했겠어?”

“언니 다 들려요.”

“들리거나 말거나. 자신있으면 덤벼.”

종리연은 계속 전음으로 우리만 떠들기 뭐 했는지 육성으로 전환했다. 우리 둘이 전음으로만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금오사태와 려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서 그랬던 모양이다.

“하앗!”

오늘 검후와 붙으면서 처음으로 화란이의 기합소리가 터져나왔다. 검후는 손도 못쓰고 그대로 날아가 검각의 건물 하나를 부수며 처박혔다. 어우야. 상당히 아파보이는데. 그래도 검후쯤 되는 사람이 이 정도에 크게 다치진 않겠지.

"괜찮니 화란아?"

"괜찮아요 삼랑. 염려할 만큼 뭘 하질 않아서."

"그렇다면 다행인데."

검후의 본거지에 와서 검후를 작살내 놨으니. 아, 그런데 검후가 처박히고 무너졌던 건물 잔해가 폭발하듯이 비산했다. 거, 할망구 힘도 좋네.

"네 이년! 좁쌀만한 연이 있다하여 손속에 사정을 두었으나! 컯!"

아, 저건 내가 아는 현상이다. 무림맹 대응지침 1단계에 속하는 무인들을 최대한 빠르게 산공독에 중독시켜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연아. 검후 혈맥이 꼬였을테니까 가서 좀 봐 줘."

"응 오라버니."

연이는 내 말에 일말의 의심도 가지지 않는 눈치다. 한 번쯤은 토를 달아볼만도 한데.종리연이 내 옆에서 꺼지듯이 사라져 입으로 울컥 피를 토해내고 있는 검후의 목덜미를 쳤다. 이제는 뭐 익숙한 시츄에이션이다.

평생토록 연공을 해 온 내공이라 할 지라도, 젊을 때 운용하던 것과 늙어서 운용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 다 그렇다는건 아니지만. 돌리는 혈도야 배운대로 돌린다지만, 뭐든지 이게 하다 보면 자기류라는게 생긴다. 어제와 오늘이 똑같은 것 같지만 하나 하나 쌓이다 보면 차이가 난다. 그걸 기억이 온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뭔가 어긋난 상태로신나게 돌렸다가는 처음에는 무리해서 돌아가더라도 결국 기경팔맥이 씹창이난다. 그래서 비교적 정신머리가 있을 때 내공을 흩어놔야 한다. 치매 이전에 주화입마로 가시거든.

"화란이 넌, 목표한건 다 챙겼어?"

"앗. 어떻게 아셨어요 삼랑?"

"연이가 말해줬지."

"언니는 참. 그냥 모른척 하지."

내가 알면 민망한 일이었나보다. 하긴. 내공이 막 흘러넘치는 고수가 되긴 했는데 심득이 부족해서 완벽하지 못하다니.

"총호법! 성취를 경하드립니다!"

"아, 려. 미안해. 멋대로 검을 빌렸어."

"괜찮습니다. 총호법."

보통 그걸 '빌렸다'라고 표현하냐.

"그보다, 지금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듣고 싶어요."

"예. 내원으로 모시겠습니다. 아, 혹시 손님께서는...."

"아, 저는 괜찮습니다."

검각의 내원이 좀 궁금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거길 졸래졸래 따라 들어갈 필요도 없으니까 손을 저어서 사양했다. 여기서 연이하고 바다라도 보고 있지 뭐.

"어차피, 제가 알게되는 내용은 모두 삼랑께 전달해드릴거에요."

"그래도 각의 치부나 마찬가지라..."

"그럼 저도 듣지 않겠습니다."

화란이 네가 거기서 그렇게 짝다리를 짚으면 '려'는 뭐가 되는거니.

"...알겠습니다. 그리하시지요."

멀뚱거리고 있다가 결국엔 초화란을 따라서 종리연과 함께 검각의 내원으로 안내되었다. 혈맥이 맛이간 검후는 일단 기절시킨 다음에 종리연이 곁에서 봐 주기로 했다. 근데 명색이 검후인데 외부인 손에 막 갖다 맡겨도 되는건가.

"...해서, 그렇습니다."

검각 내원. 상석을 비워 둔 상태로 다실에 모여 앉았다. 다실인지 회의실인지 하여간. 대충 세 번째니까 이제 뭐 요약만 들어도 알겠다. 얼마 전 부터 광증이 도져서, 이게 노망인지 아닌지 아리까리 했단다. 초기 증상이 그렇듯이 티가 거의 안났으니까.

종리연이 일단 독기는 머리에 있는게 확실하다고 확인 해 주었으니까 나나 화란이의 입장에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피해자다. 경과는 일단 대충 알겠고.

[화란, 혹시나 머리에 독기가 있는 사람이 있는지를 봐야 하니까 다 한번 모아줄 수 있어?]

[한 번에 모아서 보면되겠네요.]

종리연은 아까 옆 방에 따로 들어갔는데, 쟤 그냥 혈맥 꼬인거나 좀 다스려주라니까 또 치료하는거 아냐? 일행을 더 늘리는건 좀 에바다.

"오라버니이!"

­ 쾅!

거봐 이렇다니까.

옆방이 펑 하고 터졌다.

연이는 아마 괜찮을테고, 검후가 걱정인데. 아무리 지금 여기 분들이 검후를 신경 안쓰더라도 화란이 때 처럼 허공에 떠서 뒤틀리고 막 항문까지 포함해서 마구 토혈을 하면...하면...상관이... 없네? 대충 봐도 사방팔방에서 느껴지는 기운들 다 합쳐봐야 초화란 하나 한테 못 덤비는 수준이니까.

[무슨 일이야? 또 도와줘야해?]

[어.]

[나, 참.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니까.]

[신소리 하지 말고 빨리 좀 부탁해요 오라버니.]

부서진 벽 너머로 연이가 보였다. 도와줘야 하냐고 전음을 날렸더니 입술을 삐쭉거리면서도 순순히 도와달라고 칭얼거린다. 하. 나란남자. 보조배터리같은 남자. 이미 뭔가 진행 중이었는지 검후의 쭈글쭈글한 몸은 허공에 떠 올랐고, 우득거리는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사방팔방으로 풍검 같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나무바닥에 칼자국 나듯이 팍 팍 패인다.

"화란이 너는 다른 사람들 좀 막아줘."

"네, 삼랑."

제법 크게 터진 소음때문인지 검각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몰려오는게 느껴졌다. 여기는 초화란의 홈그라운드니까 나머지는 떠넘겼다.

“뭘 어떻게 했길래 이 모양이 된거야?”

“난 별 거 안했어. 애초에 화란이가 혈라마 느낌 난다고 살펴본다고 했잖아. 혈맥만 풀어 놓으려고 했단말야.”

아 씨. 자긴 잘못한 거 하나 없다는 식으로 눈꼬리를 떨구고 입술을 오리처럼 내미는데 나이 칠십먹어서 이러면…. 귀여워서 못살겠네.

“아, 그럼 차라리 화란이를 부를까?”

“그게 낫겠다 오라버니. 잠깐만 내가 화란이 불러올게.”

아니, 야! 니가 없으면 내가 돌발사태에 대처를 할 수가…. 벌써 튀어나갔네. 어차피 바로 건물 밖이니까 얼마 걸리진 않겠지만 없는 동안에 돌발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심혈을…기울여 본들. 내가 뭘 할 수가 있나.

“끄흐으으으…. 남해의…파랑이…천년의…절벽을…허문다….”

저거, 남해파랑검 구결인가? 되나? 뭐지? 화란이랑 칼질 하다가 심득이라도 얻은건가? 마누라도 아니고 애인도 아닌 애매모호한 관계 컬렉션에 검후까지 추가하는 코스인가? 참 잠깐 사이에 별 생각이 다 머리를 스친다. 이거 너무 원패턴아뇨?

“삼랑, 무슨 일인가요?”

“아, 연이가 잠깐 진맥만 보려고 했는데 갑자기 뻥 터져나왔다네.”

“끄으응…. 일단 제가 잠깐 볼게요.”

초화란이 허공에 떠 있는 검후의 아래로 들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눈을 감았다가 반개하고는 그대로 검후와 함께 남해파랑검의 구결을 읊기 시작했다. 뭐 싱크로라도 맞출려고 하는건가.

“죄송한데 삼랑, 제 뒤로 앉아서 명문혈에 양손을 포개 얹어 주세요.”

“알았어.”

명문혈이면 앉은 자세로는 약간 애매한 위치긴 한데, 엉덩이 윗쪽으로 양손을 곱게 겹쳐서 눌러주었다. 연이가 화란이를 치료할 때 처럼 손을타고 기운이 휘돌아나간다. 아, 조금만 아래로 이동하면 화란이 엉덩이를 주무를 수 있는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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