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무림치매대응반 22
* * *
우드득.
시작됐다. 검후는 허공에 뜬 상태로 기괴한 소리를 내며 온 몸이 뒤틀렸다. 이거 꼭 매번 봐야하는건가.
“사…. 삼랑….”
“왜 그래?”
“저, 놓치시면 안돼요.”
“뭐라고?”
명문혈에 얹어 놓은 내 양손을 튕겨내듯 초화란의 몸에서도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다행히 초화란이 미리 언질을 해 준 덕분에 튕겨나가진 않았지만, 얘는 또 왜 이러는거지?
“흐으읍!”
뚜둑. 뚜두둑.
이제 초화란의 몸에서도 뼈 돌아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뭐지? 뭐가 일어나고 있는거지? 다행히 화란이의 옷이 터져나가진 않아서 민망하게 맨몸을 더듬는 사태는 면했는데….
“오라버니!”
“어, 연아.”
“괜찮아?”
“나는 괜찮은데, 밖은 어쩌고?”
“검후 치료하는 중이라니까 얌전해지더라고.”
뒤이어 금오사태와 려 아주머니도 이쪽방으로 건너왔다. 자기들끼리 쑥덕거리고는 그 자리에 호법을 서는 것 처럼 앉아 사방을 경계하며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식경 정도 지났을까. 온갖 노폐물이 피부 위로 밀려나온 검후의 몸이 천천히 초화란의 몸 위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 손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라서 종리연이 검후를 받아들었다. 겪어본 상황이라 미리 큰 수건을 준비해서 검후의 몸을 감싼 후 들고 나가버렸다. 남은건 화란이인데….
“삼랑….”
“끝났어?”
“하아아아아….”
“고생했다. 화란아.”
“다, 전부 다, 삼랑의 덕분이죠.”
노폐물이 더 나올것도 없는 몸이었기 때문에 화란이에게서 뭐가 나오진 않았지만, 온 몸에서 땀을 푹…. 아, 땀도 노폐물인가? 어쨌거나 화란이는 땀에 절었던 면사를 끌러내리고 뒤돌아서 그대로 나에게 안겨들었다. 따끈따끈하고 좋은 냄새가 난다. 그런데 어째 체형이 좀 변한 느낌이다.
“뭔가 좀 바뀐것 같은데?”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된거에요. 참. 제가 무슨 복이 있어서 이렇게 되는 걸까요?”
체구가 약간 더 작아진 것 같고, 얼굴도 좀 더 청초한 맛이 살아나며 연이와 비등할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이 되었다. 아마 앞서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검후의 성취를 기반으로 확실하게 환골탈태를 이룬 것 같았다.
“일단, 우리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검후부터 봐야 하지 않을까?”
“아, 맞다. 린이가 있었군요.”
“린이?”
“어릴때는 언니언니 하고 잘 따라다녔는데, 검후의 자리를 받고 나서는 아무래도….”
아,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좀 서로간에 편하게 부르기는 거식하지. 문파내에서 상하관계가 분명히 나뉘는 관계니까.
“일단은 가 보자.”
“네.”
원래도 반로환동 이후에 엄청난 고수였지만 더 완벽해졌으니까 내가 손을 잡아 주지 않아도 될텐데. 그래도 내가 먼저 일어나 내민 손을 붙들고 베실베실 웃으며 일어났다. 음. 점점 말리는 느낌이다. 화란이 손을 잡은 상태로 종리연을 찾아 나섰다. 척 봐도 여기 있는 건물들 중에 제일 그럴싸하게 생긴 건물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어서 검후의 거처인가 싶었다.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검후, 떠나주세요.”
“저는, 검각을 떠나선 살 수 없는 몸이라구요!”
음. 상당히 앙칼지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뾰족하게 튀어나왔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나와 화란이는 서로 얼굴을 한 번 마주보고 급하게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앞에 모여 있던 검각 인원들이 술렁거리는 와중에도 우리를 보고 길을 터 주었다.
“무슨일이야 연아?”
“으으음…. 일이 좀 꼬였어.”
그야 뭐. 일이라는건 꼬이기 위해서 존재하는거니까.
방 안에서 검각의 높으신분들과 검후가 툭닥거리며 설전을 하는 가운데, 나와 초화란은 종리연의 설명을 들었다.
꼬인일이라는 것은 바로…. 기억의 봉인. 혈맥을 따라 폭주하는 독기와, 불현듯 찾아온 남해파랑검의 깨달음이 뭉치고 뭉치고 뭉쳐, 그만 반로환동한 육체나이와 동일한 수준의 기억까지만 남은 채로 쌩 젊은이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판정 애매하네. 이러면 이건 그냥. 회귀? 아니지. 회귀면 세계가 다 뒤로 돌아가야지. 이도저도 아니고. 아, 검후 본인이 느끼기에는 타임슬립 같은 느낌이려나? 냉동수면에 들었다가 깨어난 느낌으로.
“화란언니!”
“린, 몸은 괜찮나요?”
“언니, 나 잘 모르겠는데 검각에서 나가래!”
문 밖으로 초화란을 발견한 검후가 뛰쳐나와 화란이의 품에 안겼다. 그 서슬에 화란이와 잡고 있던 손이 풀렸다. 어릴때 언니 언니 하면서 따라다녔다더니, 진짜이긴 한가보다. 아, 그러고 보면 지금 검후 입장에서는 갑자기 뒤집어진 세상에 초화란만 자기가 아는 얼굴일 가능성이 있네. 내가 저 입장이면…. 으음….
“제가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검각의 높으신 분들이 모여 있는 방 안으로 초화란이 검후를 다독이며 들어가고 종리연이 옆으로 다가왔다.
“아무래도 우리가 달고 가야할것 같은데.”
“뭘? 검후를?”
이렇게 치매노인 컬렉션에 또 하나가 추가되는구나.
“대충 듣기만 해도 사고를 많이 친 모양이더라고.”
젊고 팽팽한 검각의 제자들을 대상으로 비급을 유출했다던가, 몸을 팔았다던가, 존장을 업신여겼다던가 그런 얼토당토 않은 개소리들을 해대며 몰아세우고 폭행한 모양이었다. 흐음…. 그런데 보통 치매에 걸리면 조금 폭급해지는건 있어도 영 근본없이 뒤집힌 성격이 나오는 경우는 또 잘 없던데. 원래도 승질머리가 지랄맞은가.
“그래서 나가래?”
“지금 검각의 젊은 여자애들이 죄다 작살이 났다나봐.”
흠…. 평소 성격이 정말 그런거면 내가 달고 다니기에는 부담스러운데.
“검후 목소리만 들려도 애들이 다 벌벌 떤다는데….”
“트라우마까지 생긴모양이구만.”
“트라..뭐?”
“아냐, 혼잣말이야. 어쨌거나 날뛰더라도 너랑 화란이 정도면 제압할 수 있겠지?”
“지금 수준이라면 뭐, 나까지 나설것도 없어.”
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올때까지 기다리면서 연이랑 이야기를 나누었다. 듣자하니, 결정적으로 문제가 된것은 몸에 좋다고 노망끼 있는 검후에게 때려먹인 각종 영약들의 기운이었던 것 같다. 이게 문제다. 검후 정도면 무림맹에서 케어해 줄 수도 있었을텐데.
치매 발병 초기에 빠르게 환자임을 인지하고 적절한 인력을 투입하거나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데, 왠지 모르게 무림에 발생하고 있는 치매는 각 문파의 손꼽히는 강자들이나 높으신 분들이 많아서 그런것들을 방해하고 있었다. 여기 검후도 영약같은거 먹이지 말고, 나이가 좀 드셨으니 그런 소리를 하실 수도 있다 하고 넘기지 말고 꼼꼼하게 살펴봤다면 훨씬 상태가 나았을텐데. 보통은 자기보다 높은 사람이다 보니까 이리저리 눈치보다가 결국 조치가 늦어지는거다.
“그럼, 하다못해 스승님께 인사라도 드리고 가고 싶어요.”
“스승님 께서는 출타중이십니다.”
“그럴리가요!”
“그렇습니다.”
“이이익!”
검후가 말하는 스승이라면 말 안해도 느낄 수 있다. 죽어서 자연으로 돌아간게 최소 20년은 될테니까.
“린 진정해요, 지금 떠난다고 해서 검각으로 다시 안돌아올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검후가 뭐라 개겨봤지만, 그 뒤로도 대화는 결국 제자리를 맴돌았다. 화란이 어르고 달래보지만 진정이 될 리가 있나.
“이상해! 이상하단 말야!”
어릴때 진짜 성격 저랬으면 와….
결국에는 검후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우리와 함께 쫓기듯 검각 문을 나섰다. 일사천리다. 뭐 짐을 챙기고 배웅인사를 하고 이딴것도 없었다. 검후를 쳐다보는 눈빛이 하나같이 이제 두 발 뻗고 잘 수 있다. 그런 표정이었다. 그 동안에 얼마나 시달렸으면. 실제 자신의 제자인 소검후도 정인에게 남해파랑검의 비급을 유출한것이 아니냐며 팔다리를 꺾어놨다고 하니까.
“이게, 대체 무슨일이죠?”
보타산을 내려오는 내내 검후 모용린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검각의 결정이 이해안가는 바는 아니다. 검각 입장에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핵폭탄을 떠안고 있는거나 마찬가지니까. 최소한 제대로 치료가 되었다면 모를까. 본인 스스로가 깨달은 무공에 대해서 자각을 못하고 있고 젊은 시절의 몸으로 돌아왔다는 생각도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무력은 기억과 함께 오히려 퇴보한 상태다. 실제로는 강하지만 그쪽 관련 소프트웨어가 아예 머리에서 날아갔다고 봐야할지도.
“이건 또 뭐야?”
“뭘 말하는거니 린아?”
“이거. 왜, 화란언니가 외간남자의 팔을 다정하게 붙들고 있는거지?”
사람을 이거라고 표현하는걸 보면 이새끼 이거 제법 안하무인인데. 하긴, 이해가 안갈만은 하다. 같이 검각에서 구르던 언니가 어느날 갑자기 남자한테 매달려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고 있으니까.
“삼랑, 인사해요. 이쪽은 검후 모용린. 린? 여긴 내 정인인 장삼이야.”
“삼랑이라니…. 푸풉….”
당당하게 밖에서 정인이라고? 그것 참. 기특해서 입고리가 싸악 올라가는데 반대편에서 종리연이 들러붙는다. 누구 마음대로 정인이야? 죽을래? 같은 내용의 눈빛이 나를 사이에 두고 오간다. 왠지 분위기가 싸해지는 느낌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