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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치매대응반-20화 (20/122)

〈 20화 〉 무림치매대응반 20

* * *

“드디어 왔다!”

“오래 걸렸네.”

“그러게요. 생각보다….”

나는, 누차 말했지만 치열하게 산다거나,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거나. 그런거랑은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나.

“이게 지금 두달이나 걸릴 일이냐? 어? 해도해도 너무한거 아니냐?”

“그치만, 오라버니가 너무….”

“그쵸….”

그치만 같은 소리하고 있네. 화란이 너도 동의하지 말아라. 어영부영 소주에서 나선다음 여기 보타암까지 오는데 두달이 걸렸다. 말타고 관도따라 낮에는 달리고 밤에는 자는 페이스로 가더라도 너끈하게 보름이면 충분할거다. 세상에.

육욕과 신음소리가 번들거리는 밤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날은 그냥 누워서 뒹굴거리는게 전부였다. 내가 왠지 똘똘이가 커져서 뒤척거리고 있으면 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미친듯이 떡을 치면서 점철된 나날은 아니었다.

수다. 끔찍한 수다. 나는 그냥 두고 니들끼리 놀라고 밀어 놔도 기어이 나를 가운데 끼고 양쪽 귀에 피가나도록 수다를 떨어댄다. 라떼는으로 시작해서 요즘애들은 안그런것 같더라는 마무리 까지. 나한테 요즘 애들 어떠냐고 물어보는데 알게 뭐냐. 나도 무림맹에 박혀서 똥수발만 든게 벌써 몇년인데.

“빨리 가자. 토굴은 지긋지긋하다 이제.”

보타산을 올라 드디어 보타암이라고 쓰여있는 현판을 지났다. 저걸 일주문이라고 하던가. 근데 암(?)이면 본사는 어디지?

“이상하네요.”

“뭐가?”

“보타암은 늘 열려 있는데요.”

화란의 지적대로 중문이 굳건하게 닫혀있었다. 그리고 종이로 X자 모양이 되도록 붙인다음. 어. 봉문(?門)?

“무슨 일일까요.”

“봉문이라고 너까지 못들어가는건 아닐거 아냐?”

“늙은 몸인 저라면 그렇겠지만요. 음. 지금은 너무 젊어져서 호법패만 가지고 될까 모르겠네요.”

보타암은 무림문파의 색을 띄지는 않는다. 관음보살을 모시는걸로 유명하기때문에 절강성 인근의 불교신자들이 활발하게 드나드는 곳이라고 했다. 아, 이것도 셋이 누워서 이야기 하다가 나온거다. 온갖 TMI의 폭풍…. 군대도 안 갔는데 군대 이야기를 잔뜩 들은 훈련병이 된 느낌이다.

여튼, 그렇다보니 고관대작의 부인이라거나, 대상의 부인이라거나 등등. 여인들로만 이루어진 암자와 검각이었으므로 높으신분들의 부인이나 따님이 드나들기에도 제법 적합한 환경이라 세간의 인식과 달리 막 뭐 보타암이 공격을 당한다거나 검각이 능욕에 이은 몰살을 당한다거나 하는 시도는 없다고 했다. 즉. 안전지대라는 거지. 그런데 봉문이라니.

“어쩐일로 찾아 오셨습니까?”

“아, 금오사태로군요. 접니다. 초화란이요.”

“…예?”

“검각의 초화란입니다. 건강을 회복하여 간신히 본산에 돌아왔네요.”

“아아…. 총호법. 총호법이….”

“대체 무슨일인가요?”

종이로 떡발라 놓은 문 앞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는데 뒤에서 비구니 한명이 나타났다. 어디서 뭘 사오는지 지게에다가 짐을 잔뜩 지고 있었다. 다행히 화란이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호법패를 보여주고 이름을 밝히니 스무스하게 넘어갔다. 면사를 하고 있는데도 볼 생각도 없는것 같다. 그런데, 그냥 일개 호법이 아니라 총호법이었다고? 아, 물론 그냥 호법이라도 대단하긴 하지만.

“검후를, 검후를 멈춰 주십시요. 이제 더는….”

“뭘 사오시는 겁니까? 어린 애들은 뭘 하구요?”

“일단 안으로 들어갑시다.”

우리는 고민한 것이 아무 쓸모 없을 정도로 신속하게 보타암을 지나 검각으로 안내되었다. 그런데, 보타암을 지나오는 동안 사람이 하나도 안보였다. 아무리 봉문중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사람이 없을리가? 보통 봉문이면 대외 활동이나 접는거지 이렇게 초상집마냥 분위기가….

“총호법님이 돌아오셨습니다!”

“총호법! 정녕 총호법입니까?”

보타암에서 검각으로 넘어가는 길은 별 것 없었다. 그냥 산문을 하나 지나 산의 뒷쪽으로 탁 트여 바다가 보이는 길을 돌아가니 현판도 뭣도 없는 문이 검각이라고 했다. 금오사태라는 노사태는 문을 벌컥 열어 젖히며 총호법이 돌아왔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원래 보타암은 안전한 곳이 맞는것 같았다. 이런 시대에 이런 안전 불감증이라니. 면사아래를 확인도 안하고서는.

“아, 려구나. 잘 지냈느냐?”

“금오사태님, 총호법이라시기엔 너무 어린 분 같은데요?”

“호법패는 확실히 가지고 계셨는데?”

아, 그렇지. 금오사태라는 분만 좀 나사가 빠진거였구나. 화란은 조용히 기운을 끌어 올렸다. 조용히 옷자락이 펄럭거리며 아지랑이처럼 기운이 피어올랐다. 이거,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기운인데? 이게 그 검각의 독문심법인가?

“확실히, 기운만큼은 검각의 자매입니다만…반로환동이라도 하셨다 말씀하시는 겁니까?”

“려, 원한다면 검을 나누어도 좋다.”

“…그에 대한 답이라면 검후께서 하실겁니다.”

아까는 검후를 막아달라고 하더니?

“곧 오실 시간입니다.”

바람이 불어온다. 상투에서 삐져나온 잔머리가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 같더니, 순식간에 살벌한 기운이 실린 광풍이 몰아쳤다. 줄기줄기 삐쳐나오는 살기가 어우야. 남해파랑검(?????)이구나. 과연 초절정의 고수다운….

“오라버니!”

“가암히! 검각의 울타리 안에 남정네라니!”

뭐, 뭐지? 바람이 불어오던 곳에서 푸확 하는 느낌과 함께 폭발적인 기운이 쏟아졌다. 그것도 나한테. 왜요?

“내 오늘 크게 살계를 열것이니라!”

그런거 열지 마세요 할머니. 검후는 칼을 쭉 뻗은 상태로 나를 향해 일직선으로 떨어져 내렸다. 내가 검후를 딱 봤는데 보이는거라고는 시퍼런 눈빛과 금속성으로 빛나는 칼 끝 밖에 안 보였거든. 아. 여기서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지만 발악이라도 해 봐야겠다 싶어서 앞뒤 잴 것 없이 내공을 다리쪽으로 밀어 내리면서 쨀려고 했는…데?

­ 퍼어엉!

나를 향해 떨어져 내리던 검후가 그대로 튕겨나갔다. 와우. 연이 나이스. 나는 종리연을 바라보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그런데 어째 연이 표정이 떨떠름…하다? 고마워 인마. 고맙다고. 워후. 죽다살았네.

“반탄강기라? 요즘 젊은 놈들 하나같이 비리비리하더니 오늘 손맛을 좀 보겠구나!”

“린, 검을거두세요. 그는 제 손님입니다.”

튕겨나간 검후가 바닥의 석재를 밟아 깨며 자세를 다시 잡았다. 화란은 그 틈을 타서 검후와 나 사이로 껴들었다. 화란이 허공에 손을 한 번 휘저으니 ‘려’라고 불린 사람의 허리춤 검집에서 철검이 날아 올라 손에 척 달라 붙었다.

“무어라? 손님? 검각이 언제부터 남정네를 손님으로 받았더냐? 그리고 대관절 너는 누구기에 그리도 강맹한 기를 가지고 있는고?”

“접니다 린. 화란이에요.”

“화란이? 총호법인 초화란을 말함이렸다?”

“반가워요. 오랜만이네요.”

“그럴리가 없다. 총호법은 노망이 났다고 전해들었음이야.”

“회복했어요.”

“그 말을, 날더러 믿으라는 말이냐?”

음, 지금 검후를 보면 딱히 노망이 나거나 하진 않은 것 같은데.

[오라버니. 검후, 그녀의 머리에서도 독기가 느껴져.]

[아, 그래?]

걸렸구나. 그런데 그런것 치고는 기운이 펄펄 넘친다?

“뭐. 상관없지. 베어버리면 그만일것이다.”

팟. 하는 소리와 함께 검후가 화란에게 달려들었다. 눈에 내공을 집중하니 확 시간이 느려진 느낌이 나면서 두 사람의 공방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야. 이게 안력이 좋다는건가…본데 왜 이렇게 내공이 많지?

[오라버니, 나중에 이야기 해 줄테니까 오늘은 가급적 내공을 심하게 돌리지 마.]

나는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연이가 그러라면 그러는거지. 어쨌거나, 다시 화란이와 검후의 격돌로 돌아가서. 두 사람은 미친듯한 스피드로 공방을 주고 받고 있었다.

“뭐지? 뭐란 말이냐! 대체!”

“린, 마음을 가라앉혀요. 물 위에서 아무리 큰 파도가 친다해도 물 속은 조용한 법이잖아요.”

“크윽, 나는 검후다, 감히 내 앞에서 남해의 파랑을 논하는가!”

“그런 허명에 사로잡혀서는 영원히 검도(??)의 환희를 맛볼 수 없어요. 정신차려요.”

차이가 있다면 척봐도 개쌉명검같은 검후의 검에서는 검강이 줄기줄기 뻗치고 있는데 앞사람에게 빌린 화란의 검에는 검기조차 찾아 볼 수 없다는 것? 거기다 검이 한 번씩 충돌할 때 마다 검후의 검은 눈으로 표가 날 만큼 기세가 깎이고 있었다.

“려, 지금 검후께서는 정신이 바른 상태이신가?”

“아닙니다…. 달포쯤 전 부터….”

음. 거 봐. 빨리 오자고 했잖아!

[다 이유가 있다니까.]

[이유는 무슨.]

[아오 답답해. 좀 이따 봅시다 오라버니?]

좀 이따 보자고 하면 뭐 내가 쫄 줄 아냐?

“네놈! 그 쥐새끼같은 눈깔을 멈추지 못할까!”

“린, 아직 여유가 있으시다면 제 검에 집중하세요.”

“네가 정말 화란이라면 나를 핍박할 것이 아니라 저놈을 토막내야 할 것이 아니냐!”

“제 손님이라니까요.”

“언제부터 검각에 남정네가 손님입네 하고 들어앉았단 말이냐!”

아, 대화가 빙글빙글 도는데. 화란이도 슬슬 검후가 맛이 간 상태라는 걸 눈치챈 것 같았다. 칼질을 하면서도 대화를 이어가 보려던 화란은 그냥 기절시킬 생각으로 바뀐 모양이다.

“린. 일단 잠시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겠네요.”

“무, 무, 무어라?”

검후는 충격적인지 말을 두 번 더듬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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