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무림치매대응반 6
* * *
“그래, 그럼 그 건은 나중에 생각하도록 하게.”
“예에?”
“어차피 지금은 한정된 정보밖에 없지 않나. 고민해 본들. 그보다야, 저기 달이나 좀 보게.”
안이 달은 밝고 좋은데요. 하 놔.
“우리 미래를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 가가?”
“아, 그거 말인데요.”
이대로 종리소저는 어쩔생각인걸까? 가가니 상공이니 하는 이야기는 농담일테고.
“여기면 될 것 같네. 아까 시신을 구해오면서 봐 둔 동굴이 하나 있어.”
과연 노고수 답게 철두철미하기도 하셔라. 아주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하십시요.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았으니 천라지망 수준이 아니라면 찾아낼 수 없을걸세.”
“어…. 예.”
입에서 나오는건 뇐네 소리인데 바닥에 내려서서도 내 어깨에 닿는 가슴은 탱글하기가 이루 말 할 수 없으니. 이 밸런스가 도통 적응불가다. 그렇게 종리연의 품에 안겨있는 상태로 왠지 모를 훈기가 도는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그제서야 바닥에 내려 주는데, 혹시 몰라서 뒷걸음질을 쳐 보니 또 기막으로 막혀 있다.
“그냥 얌전히 자리에 앉게.”
“언제 이런것 까지 다 준비 해 놓으셨습니까?”
“무턱대고 나오는 것 만이 능사는 아니니까.”
“아늑하네요.”
“자네는 외당 임무를 하지는 않았던 모양이군?”
“무림맹에 외당 없어진 지가 언젠데요….”
내당이니 외당이니 그런 구 시대적인 행정체제는 없어졌다. 어떻게 되었냐면… 나도 잘 모른다. 꼭 거기 근무한다고 조직도를 다 아는건 아니니까. 사실 관심도 없고. 근데 진짜 제정신인가? 종리연이 여기 들어오기 전에도 내당 외당 체제 없어진건 한참 전일텐데.
“살아온 날이 하나하나 모두 기억나고, 정신도 또렷하니 자꾸 그렇게 떨떠름한 표정으로 쳐다보지 말게.”
“그러시다면야 뭐….”
동굴 안쪽은 대체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침상과 주전자같은 집기, 말린음식 위주지만 간단한 먹을거리까지. 아니 대체 날 관짝에 넣어 두고 뭘 하고 다니신거야?
“흠, 옛날에는 맹의 임무로 멀리 나가면 모든것을 현지에서 조달했어야 했지.”
저기 뭐 무림맹이 사실은 잠입전문 특수부대 이런거라도 됩니까?
“마교의 영역에서 마공을 익히지 않은 몸으로 활보하고 다닐 수 있는 줄 아는가?”
생각해 보니 잠입전문 특수부대가 맞다.
“어쨌거나, 요 며칠 고생했으니 숨좀 돌리고 이야기 하세.”
며칠이라고? 내 기억에는 점심때쯤 종리연의 방에 갔다가 이차저차해서 기절하고 그 다음에 관에서 일어났는데. 그러면 그 사이에 며칠씩이나 흘렀단 말인가? 아직도 온 몸이 뻐근하고 속이 답답한게 괜히 그런게 아니었구나.
“뭐 하십니까?”
“옷을 벗고 있네만?”
“왜요?”
“갈아입으려고?”
그걸 그렇다고 여기서 그러고 계시면 솔직히 반칙이잖아요…. 왠지 안 봐야 될 것 같은 느낌에 고개를 돌리려고 하는데, 이 분위기에서, 멀쩡한 남자라면 시선을 뗀다는게 가능할 리가 없다.
“그러고 빼지말고 당당하게 보도록 하게. 내가 뭐라고 하는것도 아니고. 아깝지 않나?”
“저기, 원래도 그렇게 자기애가 넘치는 성격이셨어요?”
“글쎄, 이전의 일은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네. 필요도 없고. 앞일만 생각하기에도 바쁠텐데.”
필사적으로 종리연에게 말을 붙이고는 있지만, 그 와중에도 종리연은 느긋하게 베옷을 벗어 바닥에 하나 하나 떨구고…. 아니, 안에 아무것도 없어서 금방 알몸이 되었다. 동굴안에 천천히 일렁거리는 촛불을 따라 굴곡진 나신 위로 그림자가 떨어진다. 침을 삼키려다가 없어보일까봐 참았다.
“흠. 냄새는 안 나는것 같은데.”
“진짜 고수들은 때도 잘 안탑니까?”
“허어, 한심한지고. 지금 이걸 앞에 두고도 그런게 궁금한가?”
궁금할수도 있지….
“자네도 어서 벗게.”
갈아입는다고 하시더니. 벗으라면 못 벗을 줄 아나? 나도 입고 있던 베옷을 훌러덩 벗어던졌다. 그리고 그녀의 이끌림에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이건 음. 아니 욕조는 또 언제 갔다놨어. 뭐 진짜 며칠동안 살림차릴 준비를 하신건가. 베시시 웃는 종리연을 보면서 느긋하게 발을 담그는데. 앗 차가워.
“아, 잠시만.”
종리연이 욕조 안으로 따라 들어와서 손을 물에 담그고 휘휘 젓는다. 순식간에 물이 뜨끈뜨끈해진다. 야. 고수 편하네. 어. 만능이네 만능. 나무로 만든 욕조는 충분히 커서 무릎을 조금만 구부리면 둘이 들어가도 괜찮았다. 따끈한 물 속에 몸을 담그고 욕조에 등을 기댔더니 절로 속에서 한 숨이 푹 나온다. 아우 모르겠다. 손으로 물을 퍼서 얼굴에 끼얹었다.
“원래 있던 뭐 은신처 그런거에요?”
“그런건 아니고, 이 주변에 연이 좀 있었지. 조금 더 가까이 와도 괜찮네.”
“아뇨, 어. 일단은 요 정도로.”
“내가 자네 몸이 보고 싶어서 그러지.”
불쑥 물결을 만들어 내며 내쪽으로 들러붙는다. 눈치도 없이…. 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의식하는 순간에 아랫도리는 이미 풀발기 상태. 젠장. 감추지도 못하겠네.
“그래, 우리 장 가가께서는 고향이 어디신가?”
“해남인데…. 갑자기 그건 왜요?”
“시댁 위치는 알아야지.”
“누구 마음대로요.”
“고향에 정인이라도 있는겐가? 그렇다면야 이 노구는 첩으로도 충분하네.”
허허. 왕년의 무림제일화가 첩이라니. 무공도 무공이지만 이름값에 딸린 배분만 따져도 각파 장문인들 싸다구는 줄세워놓고 날릴 수 있는데.
“정인이 있는건 아니지만, 해남 가시게요?”
“이미 죽은 사람인데 본가에 돌아가기를 하겠나, 아는 이 하나 없는 연화봉을 오르겠나?”
“그래도 기왕 다시 젊어지셨는데 뭐 하고 싶었던 거라거나, 그런게 있을거 아닙니까?”
“아주 없는건 아니지만…. 그건 나중 이야기고, 자네는 어떤가?”
그러게 난 어쩌지. 무림맹에서는 죽은 걸로 처리 되었을거고. 고향에 돌아가면 뭐.. 여기서 해남이 오지게 멀긴 해서 적당히 거기 짱박혀 산다면 크게 문제가 될 일은 없을 것 같은데.
“흐음…. 저도 뭐 딱히. 죽은걸로 고향에 기별이 가면 걱정하실테니 한 번쯤 얼굴을 보일 필요는 있겠지만 그 뒤는 딱히 생각해 본게 없네요.”
아, 내가 왜 죽어야만 했는지 궁금하긴 하다. 궁금하긴 한데, 내가 이걸 복수하겠다고 깝친다고 어떻게 되는것도 아닐거고…. 여기 이 무림에 떨어지고 나서 목표로 한 것도 뭐 큰 부귀영화를 바랄게 아니라 그냥 제 명대로 살다 가기만을 빌었었다. 어디서 칼침맞고 객사만 하지 말자고. 뜬금없이 여기 떨어진것도 좆같은데 그건 억울하지 않나.
“자 이쪽을 좀 보게. 자꾸 시선을 돌리지 말고. 매사에 그런 식인가?”
내가 좀 매사에 그런 식이긴 하지. 고수라서 그런지 보는 눈도 날카롭다. 바짝 밀착하고 있던 몸을 앞으로 기울여 내 몸 위로 올라탄다.
“저어, 종리소저라고 부르면 될까요?”
“신소리말고 연매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예?”
“자네와 내가 저자에 나가면 누구 나이가 더 많다고 할 것 같은가?”
지금 나와 바짝 밀착하고 있는 종리연의 얼굴이나, 드러난 피부 이런걸 보면, 아무리 잘 쳐줘도 갓 스물이다. 그러면서도 가슴은 처진 부분 하나 없이 풍만하고 엉덩이도 바짝 붙어올라 색기가 뚝뚝 떨어진다. 덥석 내 손을 붙들고 올려놓는 허리는 또 어떤가. 이런걸 세류요(???)라고 하나?
“응? 말해보게.”
말해보라고 하면서 입술을 들이밀면 어쩌십니까. 욕조에 있는 물에다가 뭘 탔는지 은은하게 올라오는 꽃 향기와 함께 말캉한 입술이 그대로 내 입을 덮었다. 부드럽게 뿜어지는 콧김을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손을 움직여 종리연의 허리춤을 쓸어내렸다.
“후우…. 자네가 주저하는것이, 내가 일흔이 넘은 노파라서 인가, 아니면 자네보다 고수라서인가? 그도 아니면….”
종리연은 그대로 이마를 맞대고 눈을 마주치며 조곤조곤 부정적인 이야기를 주워섬겼다. 그러게. 듣고보니 생각보다 크게 문제될 것은 없을 것 같은데. 여전히 내 머릿속에 치매 걸린 제일매화 할머니가 남아서 그런건가.
“뭣도 모르는 인간들이 가치는 불변한다, 모든것이 하나다 무책임하게 그런 소리들을 하지.”
“그게 맞는거 아닙니까?”
“맞을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지. 세상 모든일에 절대라는 것이 있을 것 같은가?”
“그래도 그 무학의 진리라는 것이….”
“웃기는 소리. 그렇게 점잔빼고 있으면 뭐라도 되는줄 아는게야. 보게. 서시의 유방이 온들 이에 비할까? 아름답지 않나?”
종리연이 살짝 몸을 일으키며 내 눈앞에서 풍만한 가슴을 흔든다. 가슴골 사이로 물방울이 굴러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손을 가져가 조심스럽게 감싸쥐자 종리연이 흠칫하고 몸을 떨었다. 딱히 거부하는 것 같지는 않아 천천히 손을 움켜쥐어 보니 탄력있게 손가락을 밀어내며 극상의 감촉을 전해주었다.
“모든것이 변하고, 추했다가 아름다웠다가 마음에 들었다가 미워졌다가. 그 모든것이 본질이지.”
“아까는 아니라면서요.”
“살아가면서 답을 찾아 보게. 자네가 준 깨달음이니.”
종리연은 뭐가 그렇게 만족스러운지 계속해서 가슴을 주무르고 있는 나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 뭔가 그, 손자를 보는 할머니의 미소 그런 느낌은 아니고 순수하게 즐거워 하고 있는 그런 느낌으로.
“아무튼 말일세, 불과 며칠전까지 무력하게 벽에다 분칠을 하며 패악을 부리던 쭈글쭈글한 몸뚱아리와, 지금의 내 몸은 엄연히 다르네. 내 기억에 그 때 자네가 나에게 욕정을 품은적은 없었는데, 지금은 어떤가?”
종리연은 그렇게 말하며 시선을 나에게 고정한 채로 조용히 손만 뻗어 내 하초를 움켜쥐었다.
“음심을 품을만 한가?”
머릿속에서 무언가 펑 하고 터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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