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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치매대응반-5화 (5/122)

〈 5화 〉 무림치매대응반 5

* * *

“예?”

종리연이 살짝 표정을 굳히고는 벙찐 나를 보며 말을 잇는다.

“과연 내가 멀쩡하게 회복했다는 것을 기뻐해줄 사람이 있을까 의문이 생긴단 말이야.”

“어찌하여 그런 생각을….”

“지금 가가께옵서는 밖에 있는 소소인가 하는 여식을 부를 생각이 아니신가?”

“그렇습니다만….”

소협이나, 가가나, 상공이나. 아무거나 좋으니 하나로 통일좀 해 줘라.

“시간이 촉박한 것이 아니라면 일단은 그만두게.”

“에…. 예?”

아까부터 자꾸 등신같이 되묻기만 하는 느낌인데. 별 수 있나. 배분도 밀리고 실력도 밀리니 까라면 까야지.

“자네몫이라던 그 닭고기말일세.”

“예.”

“거기도 독이 잔뜩 발라져 있더란 말이지.”

그건 또 무슨소리야.

“즉효성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으나, 가가도 썩 그렇게 살아있어서 반가운 인물은 아니라는게야.”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만….”

“그러니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겠지. 노망난 노친네들 똥오줌이나 받아가면서.”

굉장히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나를 보며 혀를 끌끌차는데, 홀딱 벗고 있는 나신의 파괴력과 겹쳐 굉장히 상처 받는다. 20년전 대한민국의 모쏠아다시절이 생각날 정도로!

“그리 상처받은 얼굴 할 필요 없네. 어찌되었건 나와 자네 둘다 여기서 죽어나가야 한단 소리네.”

대체 내가 왜 죽어야 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솔직히 어제까지 노망나계시던 분께서….

“아, 그런데 언제부터 정신이 돌아오신 겁니까?”

“계속 깜빡깜빡하긴 했는데, 오늘 아침에 받은 약을 어쩌다 토해내고 나서일세.”

마약성분이 돌기 전에 토해버린 모양이다. 그러다 깜빡거리는 타이밍이 아다리가 맞은거겠지.

“그러면, 죽은척이라도 합니까?”

“호오, 귀식대법을 펼칠 수 있나?”

이 내공으로요?

“…미안하네. 그 부분은 내가 도와주지.”

자꾸 거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지 말라니까요. 쩝. 아,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대체 내가 왜 이 할머니를 보내러 왔다가 죽어서 나가야 하는지. 심지어, 이 종리연의 말처럼 소소나, 혹은 맹에서 내가 먹을 닭고기에 독을 타 놓은게 맞는건지. 닭꼬치는 아까 종리연이 기폭발을 일으키면서 휩쓸려서 어디론가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무림에서 제일 병신짓이 사람 믿는 짓이라고 했는데. 대체 뭘 믿고. 아니 애초에 반로환동은 반로환동이고 종리연이 지금 노망의 연장선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는 있는걸까?

“생각이 많은 것 같군. 좋은 자세야.”

지금 내가 소소를 부를 생각이라는 것을 따로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지는 않았다. 믿어야 한다면 내가 지난 몇 년 동안 몸담았던 무림맹과, 조는 다르지만 같이 부대끼던 동료인 정소소쪽이 훨씬 더 믿을 만 하다. 눈앞에서 터져나오는 기운과 반로환동이라는 초현실적인 노고수의 퍼포먼스에 잠시 판단이 흐려진거지. 딱 보면 옷 벗고 있는것도 나를 낚으려고 그러는게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쪽이 신빙성이 있었다. 나는 잽싸게 뒤로 돌아 쥐똥만한 내공을 다리로 밀어 내리며 문을 향해 뛰었다.

“이것 참. 아녀자의 몸으로 모든것을 내 보이며 믿어달라 외치고 있거늘.”

“어…어라?”

입에서 병신같은 추임새가 새어나왔다. 나는 문을 향해 뛰었지만 허공에 못 박힌듯 문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고수들의 기막인지 그건가? 아니면 격공섭물? 그대로 손을 뻗어 문을 두들기려고 했지만 닿지 않는다. 고수…. 사기네 사기! 밸런스 똥망이네!

“소첩이 다 알아서 할터이니, 상공께서는 한 숨 푹 주무시고 계시게.”

­ 뻑

Fuck이 아니다. 나는 목덜미에 둔탁한 충격을 느끼고는 그대로 쓰러졌다.

“…상공. 상공.”

뭔가 기시감이 드는 상황인데. 나 아까도 이런 상황아니었나?

“커흠! 큽!”

아우 씨. 목에서 불덩어리가 콱 올라오는 느낌인데. 시원하게 기침을 좀 했으면 좋겠는데.

“쉬이이이잇. 잠시만 참아봐요.”

그나저나 이제는 상공입니까. 컨셉 적응안되네 정말.

“이게 무슨…. 냄새가….”

내가 비위가 약한 사람이 아닌데, 본능의 저 밑바닥을 벅벅 긁어대는 구릿구릿한 냄새가 올라온다. 대체 이게 무슨….

“빠져나가야 해요.”

“어딜요?”

“여길요. 자세하게 설명할 시간 없으니 어서 일어나요.”

종리연이 내미는 손을 붙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데. 이거. 관짝 아녀?

“그나저나 대우좀 통일 해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지금 상황에 그게 중요한가? 좀 기다려보게, 나도 고민하는 중이니.”

자리에서 일어나기만 했는데 그대로 손을 끌어 당겨서 나무 관 밖으로 나오게 만들고는 그 자리에 뭔가를 던져 넣었다. 퍽석하는 소리와 함께 냄새가…. 어우야. 시취구나 이게.

“고작 이 정도로 인상을 쓰면 어찌 험한 세상을 살 것인가?”

아니 뭐 지금 시대가 명나라에 역병이 도는 시즌도 아니고, 무림이 서로 죽고 죽이는 시절도 아니고. 그냥 무림맹 지부 호스피스 병동 간호조무사 생활중이던 사람이 이런 푹 썩은 시체냄새 맡아 볼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까?

“하여간, 시체인척 하고 나오는 것 까지는 성공하였으나 화장을 하는 모양이더군. 시체를 구해오느라 간만에 고생깨나 하였네.”

이거를 내가 나서서 지푸라기에 말아 놓은 다른 시체를 받아 들어야 하는건지, 그냥 옆에 서서 어정쩡하게 있어야 하는건지. 갈팡질팡 하게된다. 생긴건 저렇게 생겼어도 속은 노괴물이라는걸 알아서 그런가. 그러고 있는 사이에 종리연은 자기 관에도 시체를 대충 던져놓고 멍석을 덮어 버렸다.

“나가세.”

쥐뿔도 없는데 내가 이리저리 뛰어다니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여전히 종리연이 제정신인가, 믿어도 되는가는 의문이지만 이미 이렇게 시체처리되어 맹 밖으로 빠져나왔는데 어쩔것인가. 일단은 시신을 보관해두는 전각에서 빠져나가려고 문쪽으로 이동하여 밖을 살피려고 하는데 종리연이 호쾌하게 문을 열고 나가 버린다. 아니 아까는 나보고 기침도 하지 말라면서.

“밤이라 괜찮을 걸세. 아까는 순찰인원이 왔었고. 하나하나 따지고 들지좀 말게.”

“아니 따지고 드는게 아니라….”

졸래졸래 종리연의 뒤를 따라 전각을 나와 담치기를 했다. 종리연은 그냥 발만 톡 찍어도 벽을 넘어가는데 나는 벽에 매달려 낑낑거려야 했다. 아. 모양빠지게 진짜.

“일단 여기를 벗어나지.”

담벼락에 매달려 있으니 넘어갔던 종리연이 다시 넘어와서는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혀를차고 나를 안아들었다. 둘다 얄팍한 베옷이라서 어깨에 가슴이 꾸욱 눌린다. 방금 전 까지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던 고민들이 싹 사라지고 아 까짓거 정신연령이 좀 높으시면 어떤가 맛만 좋으면…. 같은 생각이 들면서 머릿속의 대지가 꽃밭으로 막 용도변경이 되는데….

“주변에 혹시 하루 쯤 몸을 의탁할 만 한 지인이 있는가?”

“그런거 없는데요.”

“대체 그 동안 뭘 하면서 살았던겐가?”

아니 거, 고명하신분들 똥치우고 하느라 맹 밖으로 제대로 나다니지도 못해서 그런건데 너무 하시네.

“하루 이틀 정도 벗어나면 당장 찾지는 못하겠지. 없어진것도 모를테고. 혹시 시체를 처분하는 과정에서 얼굴을 확인하거나 그런가?”

“안할겁니다.”

아마도. 거기서 죽으면 보통은 환자얼굴을 확인하거나 하는 경우도 잘 없다. 담당 보감대원이 사망을 확인하고 얼굴을 덮어 놓으면 그걸 다시 까 보는 일이 없다. 세상을 떵떵거리며 살던 노고수들의 죽음 치고는 씁쓸한 결말이다. 보통 집안에서 별 볼일 없는 인물이 와 있다보니 딱히 뭐 치매걸린 노고수에게 정이 있을리도 없고, 대부분이 아우 드디어 죽었네 노친네 같은 반응이다.

이게 뭐 집안에서도 파워가 있고 존경받을만한 고수라면 집안이나 문파에서 직접 오기도 한다. 그치만 중국 땅 덩어리가 좀 큰가. 이걸 거기 가서 매장하시라고 시체를 옮기기도 어려우니, 화장하고 위패와 함께 골분만 보낸다. 즉슨, 거기서 이미 정소소가 대충 확인하고 나왔으면. 아니 잠깐만. 정소소는 제대로 못 본건가?

“혹시 소소가 종리소저의 얼굴은 못 본건가요?”

“모르겠네. 적당히 얼굴에 음식 찌꺼기를 붙이고 널부러져 있었더니 맥만 짚고 넘어가더군.”

아니, 종리연이야 그렇다고 치지만 나까지 그런 취급이라니. 사람이 죽고 나면 온 몸의 근육이 풀리면서 스멀스멀 배설물도 나오고 이래저래 험한꼴을 보게된다. 맹에서 죽으면 어차피 다 화장하는 마당에 염을 하고 수의를 갈아 입힌다거나 그런 호사스러운 짓을 할 리가 없다. 그런 각종 분비물들이 흘러내리기 전에 잽싸게 말아서 관짝에 처박고 방을 빼는 데 집중하겠지. 애초에 그런쪽에 관심을 가지는 치매환자 가족들도 없고. 매정하기는!

"그런데, 자네는 왜 죽은건가?"

"그걸 저도 모르겠으니까 미칠거 같은 상황 아니겠습니까."

말 하고 있는 목소리는 평온하지만 우리는 지금 주변 풍경이 휙 휘릭 뒤로 흘러가는 속도로 무림맹 남경지부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진짜 내가 무림에서 제일 배우고 싶은게 경공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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