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화 〉17화 (17/173)



〈 17화 〉17화

VIP 마사지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경락부터 시작해서 피부미용 마사지까지. 강도도 디테일하게 지정할  있고 누르는 부위 또한 정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조심해야 하는 부분은 바로 서혜부 마사지 범위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여성전용 에스테틱은 어디까지나 건전한 업소이기 때문에 고객이 접촉을 거부한 부위는 건드리지 않는다. 따라서 접촉 가능 범위를 벗어나면 당연히 클레임이 들어올 수밖에 없다.
나는 카운터에서 신이설에게 한번 더 지시를 받고 머릿속에 그 범위를 똑똑히 새겨넣었다.
박유영이 원하는 범위는 허벅지와 골반의 경계 정도다. 사타구니쪽으로는 접촉을 못하게 되어있다. 나는 최원재와 이연두에게서 배운 마사지법을 기반으로 머릿속으로 순서를 이미지트레이닝하면서 VIP실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이미 박유영이 배드에 엎드려 누워있었다. 들리는 소리라곤 가느다란 숨소리와 가습기 돌아가는 소리뿐. 긴장한 채 숨을 집어삼키며 조명 밝기를 올리자 서서히 박유영의 뒤태가 드러났다.
모래시계처럼 빨려들어가는 허리라인. 말끔하고 잡티 하나 없는 피부. 여리여리하지만 그렇다고 근육이 아예 없는 몸매도 아니다. 확실히 관리를 오래 한 티가 났다. 머리는 똥머리로 묶어놨는데 은색으로 염색을 해놨다.

“반갑습니다. 바로 시작할게요.”
“강준현 선생님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미국에서 상류층 상대로 오래 하셨다고 들었어요. 기대할게요.”

... 신이설이 나에 대해 어떻게 말했는지 대충 감이 잡힌다. 원래 원장님한테만 마시자 받던 사람이니만큼 마사지사를 가려 받는 거다. 혹여나 잘못해서 일을 그르치면 그만한 개쪽도 없다.

“네. 그럼 오일 발라드리겠습니다.”
“저도 미국에서 잠깐 살았었는데.”

박유영은 마사지 받을 때 말을 많이 하는 스타일인 모양이다. 진아영한테 교육 받기를 잘했다. 여자들, 특히 고객과의 상담 및 접대용 대화를 이끌어나갈 때는 뭐니뭐니해도 공감이 최고다.

“그러시구나. 어디서 사셨어요?”

나는 그녀의 등에 오일을 바르며 말했다. 촉감이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아랫도리가 시큰해졌다. 동해물과백두산이마르고닳도록...

“샌프란시스코요. 공부하러  것도 아니고 친오빠가 거기 살아서 잠깐 놀러갔던 거예요.”
“친오빠분은 계속 거기서 사시나요?”
“네. 미국에서 야구하고 싶다나 어쨌다나.”

나는 그녀의 얘기를 들으면서 허리 부분에 있는 붉은점을 찾아 퇴치해 나가기 시작했다. 박유영은 자기 가족들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구성원들에 대한 칭찬을 하거나 가끔씩 불평도 적절히 섞어 넣었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일이 있으면 맞장구쳐주고 비슷한 사례를 들어서 공감을 샀다.

“실례지만, 무슨 일 하세요?”
“아. 모델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러시구나 어쩐지 몸매가 좋으시더라고요.”
“뭐 대단한 모델은 아니고 그냥 쇼핑몰에서 잠깐잠깐.”

나는 그녀의 말투를 듣고 게시판에서 자신이 피팅모델이라고 했던 여성이 박유영이라는  짐작했다.

“일은 힘들지 않으세요? 촬영하면 계속 서있어야하고 쉬고 싶을 때 쉬지도 못한다고 하던데.”
“헤헤.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딨겠어요?”

근데 이상했다.
진아영이나 김서아 그리고 신이설 같은 경우에는 붉은점만 퇴치해줘도 살살 녹아내리는목소리를 냈었다. 흐느적거리거나 고개를 휘청 떨구거나 목소리는 아니더라도 숨결이 거칠어지는 경우를 지금까지 많이 봐왔는데 박유영은 아무렇지도 않아했다.
약간의 당혹스러움을 품은채 허리라인을 손으로 훑었다. 연습했던대로 가슴과 배드 사이에 손을 넣고 전체적으로 오일을 넓게 펴바른다는 느낌으로.
옆가슴이 툭 삐져나올 정도로 박유영의 가슴은 크기가 컸다. 이렇게 엎드려 누워 있다는 것만으로 의학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는 걸  수 있다.
신이설에게 들었는데 가슴 수술을 했거나 얼굴에 손을 많이 댄 여자들은 후면 마사지를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나는 자연산의 커다란 가슴을 조물딱거리며 쑥 들어간 모델 허리를 손으로 사악 훑었다. 그걸 몇 번을 반복. 분명 이 자리에 있던 붉은점들을 깨끗하게 씻어냈다. 그런데도 아무렇지 않게 조잘조잘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다했다.

“친구들이랑 스키타러 갈 생각하면 벌써부터 신나요. 이제 시즌까지 두달  더 남았잖아요.”
“스키 좋아하시나봐요.”
“네, 완전. 매번 겨울만 기다려요. 저는.”
“요즘은 남자친구랑도 자주 가잖아요.”
“하. 말도 마세요. 친구들이 가끔 남자친구도 데려오는데 짜증나 죽겠어요. 꽁냥꽁냥 대느라고 다음 스케줄도 제대로 소화 못한다니까요? 스키 타기도 바쁜데 연애는 무슨.”
“남자친구 없으세요?”
“네. 헤어진지 얼마 되긴 했어요.”

상체를 끝내고 엉덩이쪽을 주물거렸다. 서혜부 쪽을 주의해가면서 엉덩이 아랫부분을 마사지할 때는 손으로 누르지 않고 팔꿈치로 눌러야 했다.

“모델이시면 남자들한테 인기 되게 많으실거 같은데.”
“그렇지도 않아요. 남자들이 절 좀 부담스러워 하는거 같더라고요. 사실  이상형은 딱히 잘생긴 사람이 아닌데도요.”
“부담스럽다기보단 다른 남자들의 시선이 불편한게 아닐까요. 어딜가든 남자들 시선 독점하실테니까요.”
“그런가...  잘 모르겠어요. 내가 남자면 오히려 그게 더 좋을거 같은데.”
“크큭. 좋긴 좋죠. 근데 아시잖아요. 남자들은 자기 여자친구 노출있는 옷만 입어도 호들갑 떨면서 입지 말라고 하는거.”
“아, 맞아요~ 난 나름 예뻐보이려고 입는건데 불편해하면 되려 미안해지고.”

생각보다 순탄하다. 분명 최원재가 말하기로는 깐깐한 손님이라고 했는데 압력에 대한 지적도 하지 않고 계속 잡담만 나누고 있다. 오히려 이런 부분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듯해서 왔다갔다 계속해서 티키타카를 했다.
또 한가지 이상한 점은 말문이 막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대화를 잘 이어나가는 편은 아닌거 같은데 그냥 이 여자가 말하면서 대화를 주도했고 나는 그에 맞춰서 대답하거나 적절한 질문을 해줄 뿐이었다.
진아영처럼 말할 때마다 빵빵 터지는 스타일이 아닌데도 이렇게 대화가 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구나. 문득 김서아와 신이설이 생각나면서 역시 대화는 상호간에 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유영은 이제 스물네 살이 됐다고 했다. 공부를 너무 하기 싫어했어서 수능  자기만 했다던가. 2년제 대학도 띄엄띄엄 나가면서 클럽만 주구장창 다녔다는 얘기를 했다. 아무래도 내숭 떠는 타입은 아닌 모양이다. 하긴 나한테 내숭 떨 필요도 없겠구나.
기다란 다리를 오일로 쓱쓱 문지르고 공을 들여 주물렀다. 박유영이 제일 신경 쓰는 부위인 종아리 비복근을 집중적으로 주무르고 내 기량으로 붉은점이 보이는 부분을 따로 신경 써줬다.
발가락 사이에 손가락을 끼워서 발바닥까지 시원하게 주물렀는데 간지럼조차 타지 않는다.
나는 후면 마사지를 끝내고 시간을 확인했다. 딱 생각했던 시간만큼 소비했다.
오일의 열기가 올라오고 계속해서 뜨끈한 여체를 만져댔더니 슬슬 땀이 나기 시작한다. 나체의여자를 쪼물딱거린다고 개꿀 직업은 아닌 듯. 생각보다 힘들었고 마사지에 집중하니까 처음에는 살짝 발기됐던 사타구니도 어느새 꼬무룩 상태다.

“전면할게요.”
“네~”

내가 가슴쪽에 수건을 건네자 나긋하게 대답하고 몸을 뒤로 돌려 누웠다. 전면부 복부 마사지와 전면 하체 부분을 마사지 해주면 끝이다.
나는 이때서야 박유영의 얼굴을 처음으로 봤다.
예쁘다. 내가 지금까지 봤던 여자 중에 이연두가 얼굴로만 따지면 제일 예뻤는데 그녀와 비견해서 손색이 없을 정도다. 얼굴도 예뻐, 몸매도 예뻐. 어디 하나 모자란 구석이 없다.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베시시 웃으면서 고개를 까딱. 인사를 해왔다.

“안녕하세요. 히히...”

입꼬리가 올라갈 때, 보조개가 잡힌다. 얼굴은 완전 베이비페이스. 근데 몸매는 섹시 그 자체. 세상에서 가장 언밸런스하면서도 완벽한 조합이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게 된다.

“안녕하세요. 초면이네요.”
“풉. 맞아요. 그러네요.”
“복부에 오일 발라드릴게요.”

군살 없이 밋밋한 복부는 배꼽마저도 예쁘게 보였다. 내가 오일을 듬뿍 떨어트리자 매끈한 피부를 타고 양옆으로 흘러내렸다. 나는 그걸 잡아서 그대로 끌어올리며 복부 구석구석에 바르기 시작했다. 오일 묻은 복부가 반짝 번들거리자 그 홀쭉한 허리 탓에 뒤지도록 섹시하게 느껴진다.
내가 그걸 열중해서 하고있는 동안 박유영은 눈을 내리깔고  얼굴을 빤히 올려다봤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또 아기처럼베시시 웃는다. 미친. 존나 사랑스럽네.
그런데 마사지를 하다보니 문득 푸른점이 눈에 아른거렸다. 수건으로 가리고있는 사타구니쪽에서부터 삐져나와 허벅지 안쪽 근육을 드넓게 가리고 있는 거대한 반점. 과연 이번에는 또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음, 고객님. 마사지를 많이 하다보면 근육의 모양이나 경직된 정도를 보고서 느낌이 오거든요? 혹시 예전에는 없었던 증상이 일어나지 않았나요?”
“예..? 어떤 식의 증상이요?”

박유영은 지금까지는 보지 못했던 걱정스러워 보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올망졸망한 눈을 번뜩이며 심각한 소리를 들은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아마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을 거다. 푸른점은 어떤 결함이나 기능적 장애가 생겼을 때 나타난다는 것을 최원재와 이미경을 통해 알  있었다.
나는 혹시나하는 마음이 들었다. 사타구니쪽에 푸른점이 있으니 생식기에 이상이 생긴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성적으로 문제가 생겼다거나.”
“예!? 성적으로요? 그게 무슨 뜻이죠?”
“문제가 나타나는 부분은 서혜부 쪽이거든요. 그래서 혹시나 해서 물어본건데 아니면 제가 잘못 짚었겠군요.”

나는 턱짓으로 그녀의 사타구니를 조심스럽게 가리켰다.
그러자 박유영의 얼굴이 심각할 정도로 굳었다. 소름이 돋았는지 팔뚝 쪽에 닭살이 오소소 돋기도 했다.

“그, 그런... 음... 사실 문제가 좀 있기는 한데요...”
“불편하시면 말씀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확실한건 제가 그걸 치료해줄  있다는 겁니다.”
“... 정말요?”
“네. 저 이외에 그 사실을 알아차린 마사지사가 있나요? 아니면 주변의 지인이라도.”

내 질문에 박유영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단숨에 그 사실을 알아차렸죠. 그리고 미국에 있을 때, 이런 분야로도 고객들을 치료해줬던 이력도 있습니다.”

최대한 설득력있게끔 말하기 위해서는 스펙을 속여야 했다. 확실한건 내가 그녀를 낫게 해줄  있다는 것이지,내 스펙을 속이는것 정도는 그녀를 위해서라면 필요한 선의의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무슨 문제길래 저렇게까지당황해하는 걸까.

“... 근데 그걸... 어떻게 해결해줄수 있는 거죠?”
“저는 마사지삽니다. 마사지를 통해 가능합니다.”

그러자 박유영은 휴하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다행이네요. 그래도 고칠 수 있다는거 자체가 저한테  힘이 되요.”
“넵. 그런데 허벅지 안쪽으로 너무 깊숙한 곳에 위치한 곳을 풀어줘야 해요. 그래서 고객님이 충분히 고민해보시고 다음에 오실 때, 서혜부 제한사항을 전부 해체 해주셔야만 마사지가 가능합니다.

내 친절하고  부러지는 설명에 문제는 없었다. 박유영도 오히려 친절함을 느꼈는지 표정을 편안하게 지었다.

“그렇군요. 하긴 그걸 지금 당장 고친다고 해서 써먹을 일도 없으니까.”
“예?”
“아, 아니에요. 그럼 다음번에 올  부탁드릴게요.”
“... 근데 제가 문제가 있다는건 알고 있지만, 어떤 증상인지는 모르는데 혹시 어떤 증상인지 말씀해주실수 있나요?”
“네? 아... 그건 좀... 말씀드리기 민망한데.”
“치료할 때 도움이 될겁니다.”

거침없이 말했다.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런 화법에 대해서 진아영에게 배운 바가 있었다. 예의를 차릴 때와 차리지 않을 때를 정확하게 해야 한다. 상대가 나한테 호의와 신뢰를 보이고 있을수록 과감성은 오히려 플러스 요인이 된다.
나는 그녀의 허벅지 안쪽을 아슬아슬하게 마사지했다. 닿을 듯 말 듯 푸른점이 있는 곳을 살살 만졌다. 딱 사타구니와 허벅지의 경계가 되는 부분이기에 수건 밑으로 손을 살짝은 집어넣어야 했다.
민망한 자세로 서로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중, 박유영은 결심했다는  달콤한 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 느끼지 못한지 좀 됐어요. 처음에는 관계를 맺을 때만 그런줄 알았는데... 통증이나 간지럼같은 것도 예전보다 많이 무뎌졌더라고요.”

...
어쩐지 간지럼 탈만한 곳에서도 간지럼을 안 타고 붉은점을 공략했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박유영은 내 반응을 보며 뜨끈한 침을 꼴깍 삼켰다.

“혹시 병이 생겼다고 하면 너무 창피할거 같아서 병원에도 못 갔어요. 평생 이렇게 살아야 되나 싶어서 너무 무서웠어요...”

박유영의 상체가 부르르 떨렸다. 눈시울은 어느새 붉게 달아올랐고 커다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다리 마사지를 멈추고 박유영의 동그랗고 귀여운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줬다. 한손으로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으시면 지금 해드릴까요? 30분 정도 시간 추가만 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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