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아가씨와 번뇌의 호위기사-79화 (79/122)

00079  6. 돋아난 날개, 몰락하는 별  =========================================================================

황도 로귀하르트.

황태자의 야울 궁.

범죄자가 탈주한 사건이 있어도 궁은 겨울새 울음소리만 감돌 뿐 아무런 소란도 일어나지 않았다. 헤그와 마리의 대화를 들은 비오르틴이 그들을 얼마간 지켜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수면제 삼아서 독한 술 한 잔을 마신 후 침실에 들었던 비오르틴은 몇 시간째 뒤척이기만 했다.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할데바인 잔존 세력을 없애는 것, 헤그 탈주에 관한 타 세력의 공격에 마땅한 변명을 생각하는 것으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더욱 심란하게 하는 한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마리니시네였다.

헤그와 함께 감옥을 빠져나가던 그녀의 모습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궁 마법사들 덕분에 마리의 모습과 목소리를 마치 가까이에서 접하는 듯 생생히 보았고 그 강렬한 이미지는 수면제로 마신 독주의 효과를 무력하게 했다.

그 여자, 마리는 궁이라는 위험한 곳에서도 전혀 두려워하거나 긴장한 기색이 없었다. 궁을 마치 제 집 안방처럼 뛰어다녔고, 헤그에게 친한 친구 대하듯 굴면서 거사를 논했다.

렌키스의 달빛보다 더 당당하고, 더 강렬한 그녀.

그녀를 향한 이 갈증을 언제쯤 깨끗하게 해결하고 편히 잠들 수 있을까.

아내와 똑같이 생겼지만, 아내가 아닌 여자.

아내보다…… 더 좋은 여자.

더 좋은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게다. 목소리, 성격, 웃는 표정,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점은 바로, 어린 시절의 추억.

그 추억 때문에 로테아르카는 절대로 마리니시네를 이길 수 없고, 없을 것이다.

아주 어린 시절의 일이었다. 제국 황태자는 무작위 추첨으로 뽑은 영지에서 며칠 간 머무르는 관례가 있었다. 이른바 제국 순례.

무작위 추첨이라고는 하지만, 무작위 지침이 지켜진 적은 사실은 없었다. 역대 황태자들은 대부분 황도와 가깝고도 각종 기반 시설이 발달한 영지가 순례 장소로 추첨되게끔 조작하곤 했다. 황도에 가까운 곳에서 순례하는 편이 훨씬 편하고 위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은 달랐다. 황궁과 황도 생활에 일찍부터 질려버렸고, 시골 생활에 환상이 있어서 황도와 가까운 영지에서 순례 일정을 치르기 싫었다. 하여 일부러 추첨과정을 조작, 변방의 소 영지 오를린이 나오도록 했고, 그 조작이 들켜 아버지와 마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멋대로 오를린 행에 돌입했다.

처음 갔을 때 혼자서 멋대로 시종들을 따돌리고 어느 위험한 산(소용돌이 산)을 겁도 없이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차원의 균열에서 나온 입이 뾰족한 생물을 보고 놀라 울고 말았다. 그 생물은 기어다니는 개미들을 모조리 먹어치워 댔다. 말로만 듣던 차원의 균열을 직접 보고, 이세계의 생물을 마주한 공포는 상상을 초월했다. 과거에 이세계에서 온 생물들이 인간을 공격했다는 글귀 때문인지 더욱 공포스러웠다.

바로 그때 말괄량이가 나타나 주었다. 금발이 눈부시고 뺨이 발그레하며 보조개가 예쁘게 패 들어간 그 작은 여자애는 ‘도시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약해빠졌다!’고 말하며 그 생물을 능숙히 다루어 숲 깊숙한 곳으로 보내버렸다.

놀라운 첫인상이었다. 궁에서 허영에 찌든 여자, 약한 척하는 여자, 거짓된 웃음만 지을 줄 아는 간교한 여자들을 보던 자신에게 그런 씩씩한 시골 소녀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때부터 함께 이틀을 놀았다. 꽃이 핀 산과 들판을 뛰어다니며 황도와 오를린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고,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드래콘을 잡겠다고 작은 모험을 시도하기도 했다. 난생처음으로 강한 척을 해보겠다고 목검으로 죄 없는 짐승을 쫓아다녔다. 난생처음으로 마법을 할 줄 안다며 허세를 부렸다. 난생처음으로 꽃 왕관을 만들어서 여자애 머리에 올려준 적도 있었다. 난생처음으로 그 여자애한테 비싼 장신구를 빼앗긴 적도 물론. 「내가 빼앗는 게 아니라 잠시 빌려가는 거야. 알겠지? 너희 부모님한테 이르면 안 된다!」

그때의 기억은 잊을 만하면 다시 떠올라 자신을 웃음 짓게 했다.

말괄량이에다 천방지축, 날건달 같은 그녀와 함께 한 시간이 비록 흐릿한 어린 때일지라도 인생에서 가장 활력이 넘치던 시절이라 자신할 수 있다.

그녀와 헤어질 땐 얼마나 아쉬웠던가. 아쉬움에 저도 모르게 선언해버렸다.

「너와 결혼할 거야.」

결혼이 그렇게 쉽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째서?」

「너와 결혼해야만 인생이 지루하지 않을 것 같거든.」

권력 싸움으로 지루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대답했다.

「흐음. 글쎄? 나는 눈이 아주 높아서 너랑 결혼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내 남자가 되려면 무엇보다 겁쟁이여선 안 돼! 비올 너는 겁이 너무 많아!」

「그래도 반드시 할 거야! 너와 나는 결혼을 하게 되고 말 거라고!」

고집을 부렸다. 고집을 부리고 다짐하면 훗날 정말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헤헤. 비올. 너 참 되게 긍정적이구나.」

「이, 인, 인간에게 그, 긍정을 빼면 뭐가 남지?」

난생처음으로 뭔가 멋진 말을 뱉은 것 같았다. 말해놓고도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혔는데, 정작 그 말을 들어주던 그녀는 너무나 진지한 표정이었다. 한참 후에 그녀가 지은 미소는 너무나 눈부셨다. 마치 사월의 따사로운 햇살처럼.

「그 말 멋있네. 비올. 좋아. 인간에게 긍정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말엔 동의해. 너는 앞으로도 계속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면 좋겠어!」

불꽃처럼 번지던 꿈도 잠시, 그런 추억 조각은 안개꽃송이처럼 점점이 줄어들고 안개처럼 아스라해졌다. 다시 황도로 올라가 황태자의 삶을 살아야 했기에.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몇 년간의 세월 동안 오를린에서의 추억은 하나의 색 바랜 그림이 되어버렸고, 결국에는 소멸하는 듯했다.

그렇게 황태자 간택 연회 준비 시간을 맞이했다. 단지 너구리(할데바인)의 딸을 피하고자 별다른 기대도 없이 신청한 각 영지 여인들의 초상화에서, 맙소사! 말괄량이를 보았다. 어릴 적 소용돌이 산에서 만났던 그 소녀를! 자신이 결혼을 약속한 그 소녀가 분명했다. 성격, 외모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 그녀가 내 반려가 될 것이다. 그녀만이 내 반려가 되고 말리라! 아무런 뒷배가 없는 그녀야말로 제 반려가 되기 적당했다.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기회라 생각했다.

그런데 결국, 그 기회는 신의 속임수일 뿐이었다.

어릴 적 만났던 말괄량이 소녀가 아니라 소녀의 동생이 반려가 되어버리다니. 그리고 그 동생이 지금 황손까지 가졌다.

불러오는 배를 볼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다.

신에게 물을 수 있다면, 묻고 싶었다.

시간을…… 돌릴 수 있느냐고.

“젠장!”

아무리 자려고 노력해도 상념에만 젖어갈 뿐.

헤그와 함께 궁을 떠나는 그녀, 마리의 뒷모습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녀가 헤그에게 하던 말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남자로서 대답해 봐요. 당신…… 나를 만지고 싶죠?」

「그럼 손대요. 얼마든지.」

「몸은 더 대단하답니다.」

온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고 알 수 없는 불쾌감에 몸서리가 쳐졌다.

***

할데바인이 재판에서 지고 살해당한 후에, 할데바인의 조카인 황후도 그 입지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내궁부에서 휘두를 수 있던 권한들이 일부 축소된 것이다. 권력은 그런 식으로 서서히 변해가는 법이었고, 그 틈새에서 황태자는 제 아내에게 내궁부의 권한을 조금씩 나눠주는 데 신경 썼다. 그것은 당연히 아내를 위한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입지를 위한 것이다.

내궁부의 권한 이동 덕분에 로테는 자기 마음에 드는 시녀를 직접 고를 수 있었다. 새로 온 시녀들은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들 중 친 할데바인 영지의 시녀는 단 한 명도 없다. 오를린 출신의 시녀 두 명, 황태자 관할지 야울 출신의 시녀 한 명, 그리고 중립 바너의 시녀 한 명, 이렇게 총 네 명의 시녀들은 예전 시녀와는 다르게 건방지지도 않고 딱딱하지도 않으며 황도에서 외로움을 많이 타는 로테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친구가 되었다.

지금도 그녀들은 로테의 주위에 모여 수를 놓고, 황궁 예술가들에 관해 수다를 떠는 등 로테를 지루하지 않게 해주고 있었다. 특히나 수다의 꽃은 바너 출신 시녀의 궁정 남자들에 관한 소문이었다.

“지휘자로 들어온 포반트 말이야. 지금은 궁내 여자들에게 인기가 최고지만, 원래는 뭐였는지 알아?”

그러자 로테의 머리를 빗질해주던 오를린 출신 시녀가 물었다.

“뭔데? 그 사람, 진짜 잘 생겼던데.”

“소싯적에 제국 음악원에 갈 학비를 모으기 위해 바너의 뒷골목에서…….”

로테는 격식 투성인 궁에서 잘 들을 수 없는 어두운 바닥의 말에 저절로 귀가 기울여졌다. 시골에서 얌전하게 살다가 황도로 온 로테에겐 세상 모든 일이 흥미로웠다. 그녀가 시녀들의 수다에 섞여들어 망측스러워하고 적당히 대꾸도 하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침소에 찾아왔다.

“야울을 지키는 왕이시자 로젠플라드의 수호자 그리고 제국의 황태자이신….”

시녀들은 하던 것을 멈추고 황태자의 앞에서 인사를 하려 했다. 그러나 비오르틴은 한 손을 들어 그들 모두에게 나가란 표시를 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 기분이 좋은 표정이 아니었다. 침의 그대로 온 것을 봐도 뭔가 심상치 않았다.

시녀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한둘 씩 침소에서 떠났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방문과 심상찮은 표정에 로테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몰아치는 것을 느꼈다. 시녀들이 완전히 나갔을 때, 비오르틴은 아내에게 서서히 다가갔다.

시선이 아내를 향해 있어도 아내를 보는 게 아니었다. 일그러진 눈썹은 누군가를 원망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로테는 텅 빈 황무지에서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짐승 같은 그의 시선에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껴 뒷걸음질 치려 했다. 그러자 비오르틴의 한 손이 뻗어 그녀에게 닿았다.

“전하?”

그녀의 하늘하늘한 침의가 인형 옷 벗기듯 벗겼다.

“전하!”

비오르틴은 반쯤 흘러내린 침의를 다시 입으려는 로테의 몸을 사납게 돌렸다. 그리고 그녀를 천천히 벽 쪽으로 밀고 갔다. 감정이라고는 조금도 느낄 수 없는, 오직 욕정에 의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로테는 그의 힘을 이길 수 없었고, 이기려는 시도도 하지 못했다. 오랜만에 침소를 찾은 남편이 이런 식으로 자신을 안는 것, 그 행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아, 아!”

제대로 젖지 않은 곳에 잔뜩 발기한 것이 들어가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로테는 이런 일을 아주 오랜만에 해서 마치 처음 하던 때처럼 쓰라렸다. 비오르틴은 메마른 나뭇가지 같은 손길로 그녀의 가슴과 아래를 대충 만지더니 전혀 젖지 않자 포기하고 그녀를 돌려세웠다.

“뭐지, 그 표정은?”

입으로라도 시키려 했더니 이 여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그는 잠시 그대로 정지한 듯 멈춰 있었다.

“전하, 어째서….”

“어째서라니?”

어째서 이리도 막 대하듯 할 수 있느냐고 원망하는 눈빛에다 대고 비오르틴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말했다.

“아내를 안는 것에 뭐 잘못되었나?”

그의 손은 로테의 어깨를 천천히, 그리고 강하게 짓눌렀다. 로테는 주저앉듯 않았고, 그의 성기를 입에 물어야 했다. 그녀는 도구처럼 다루어졌다. 이런 일에 익숙지도 않은 그녀의 입이 무자비하게 괴롭혀졌고, 한참 후 비오르틴은 절정에 떨었다.

“삼켜.”

로테는 처음으로 남성의 욕구가 ‘배설’되는 것을 보고, 겪었다. 목이 메었다.

비오르틴은 침대에 털썩 드러누웠다. 곧 아내의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울음소리가 역겹게 느껴졌다.

“이리와.”

로테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정신도 없이 비틀거리며 비오르틴에게로 걸어갔다. 그녀가 침대 가까이 와 머뭇거리자 비오르틴은 명령했다.

“내 몸 위로 올라타.”

로테는 도무지 남편이란 사람의 의중을 알 수 없었다. 단 한 번도 그에게 반항이란 것을 해본 적 없는 그녀는 실에 묶인 인형처럼 너덜너덜한 몸짓으로 그의 배 위에 올라탔다.

“힘을 빼.”

“……?”

“편히 앉으란 말이다.”

로테는 주저하다가 비오르틴의 눈빛에 지레 겁을 먹고 시키는 대로 했다. 곧 비오르틴은 그녀의 무게는 완전히 느낄 수 있었다. 단지 그녀의 무게뿐만이 아니다. 그녀의 배에 들어선 아이의 무게도 동시에 느꼈다. 임신한 여자의 무게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가벼웠는데도, 그는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무겁군.”

그의 한 손이 서서히 올라가 그녀의 배를 만졌다. 그의 시선은 그녀의 얼굴에 가 있었다.

짓무른 꽃잎 같은 얼굴.

언제나 저런 얼굴.

비오르틴은 신물이 났다.

“어째서 너여야 했지? 어째서…… 네가….”

한참 후에야 로테는 그 말을 알아들었다. 어째서 자기여야 했느냐, 라니. 그럼 언니가 황태자비 후보로 왔어야 한단 말인가? 한 군데 처박혀서 인형처럼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면,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어버리는 길을 택할 그 여자를? 그 바람 같은 여자를?

“어째서 네가, 내 아이를 배고 있는 건가.”

“…….”

“할 줄 아는 거라고는 그런 표정을 짓는 것밖에 모르는 네가, 어째서…….”

로테는 듣다못해 물었다.

“싫으십니까?”

“싫다.”

로테의 눈물 줄기는 더욱 굵어져 아래로 흘러내렸다. 나중에는 아예 비오르틴의 옷을 적실 정도였다.

비오르틴은 이 여자가 싫었다. 궁에 들어온 야심만큼이나 강하지도 않으면서, 몸 하나 믿고 궁에 들어온 다른 여자들처럼 자존심을 버릴 줄 아는 것도 아니면서, 배 속의 생명 하나 쥐고 끈질기게 궁 생활을 버텨내는 것이 무척이나 성가셨다.

이런 감정이 언제부터였을까.

그래. 이 여자의 언니, 쌍둥이 언니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인지도 모르겠다.

“싫으시면서 어째서 저를 찾으신 겁니까.”

“그럼 누굴 찾아야 하지?”

“궁에 여자는 많습니다.”

로테가 그의 몸을 벗어나려 하자, 비오르틴은 그녀가 그러지 못하게 꽉 잡고 경멸의 미소를 흘렸다.

정말이지 머저리 같은 여자다. 다른 여자를 찾으려 했다면 진즉 찾았겠지. 이쪽은 어디까지나 황태자비의 체면을 생각해서 이곳으로 와 배설한 것일 뿐.

그래. 설사 다른 여자를 안는다고 하자. 황태자에게 안긴 여자들은 그 순간부터 한 마리의 뱀이 되고 만다. 그 뱀들이 온갖 공격을 퍼부어도, 저 여자는 언제나 저런 표정을 하겠지? 언제나 저런 울 것 같은, 혹은 울음 범벅의 표정으로 지낼 머저리 같은 여자. 스스로는 절대 뭔갈 시도하지 못하는 여자.

“늘 그렇게 피해자의 표정을 짓는군.”

“…….”

“늘 그렇게 피해자가 되려 하고.”

“전하.”

“역겹다. 진짜 피해자들은 따로 있고 서로 만나지도 못하는데 어째서 너만 늘 그런 얼굴인지.”

로테는 황태자가 말하는 ‘피해자들’이 황태자 본인과 제 언니 마리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손이 멋대로 움직였다. 황태자의 뺨이 아주 세게 후려쳐졌다.

황태자는 로테의 손찌검에 가느다란 웃음을 지었다.

“그…… 시, 실수… 인, 전하, 저는…….”

로테는 자기 손을 내려다보면서 놀라다가, 순식간에 무너질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실수, 실수였습니다. 피, 피해자라면, 언니…… 말씀입니까.”

“그렇다면?”

“제 언니는 피해자가 아닙니다. 제 언니는… 황태자비가 될 기회를 놓쳤다고….”

“놓친 게 아니라 너에게 빼앗긴 거겠지.”

“……놓친 것이든 빼앗긴 것이든, 제 언니는 이 궁의 안주인이 되지 못했다고 그것을 피해로 여길 사람은 아닙니다.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언니를 원망해야 하는 이때, 어째서 언니를 감싸주는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 작품 후기 ============================

황태자 이 나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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