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아가씨와 번뇌의 호위기사-78화 (78/122)

00078  6. 돋아난 날개, 몰락하는 별  =========================================================================

자주 쓰지 않는 성대에서 어설픈 인간의 말이 나왔다.

“아, 아가씨께서, 기다리지 말고 당분간, 느긋하게 황도 구경, 하시라고, 전해드리라 하셨습니다만.”

이상하다. 인간의 말을 거의 쓰지 않았다고는 하나, 예전에는 그럭저럭 말이 잘 나온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자꾸만 더듬거렸다. 어쩌면 기사님 바로 앞에서 하는 말이라 그런지 도 몰랐다.

그런데 그런 마리아의 모습이 퍽 귀여운지 하이너가 웃었다.

마리아는 조금 부끄러워하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아가씨를 구, 굳이 마중 나가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

“마중 나가려는 게 아니다.”

마리아는 그러면 어째서 기사님이 나가려 하는지 궁금했다.

사실 하이너는 거처에서 마리아와 단둘이 있는 조용한 시간이 머쓱했다. 그런 참에 마침 필요한 물건이 생각나기도 하여, 이런 밤이지만 사러 가려고 외출 준비를 했다. 혼자 산책도 할 겸 조용히 갔다 오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이 작은 드래콘 아가씨의 표정이 좀 쓸쓸해 보인다.

하이너는 마리아에게 물어보았다.

“뭘 좀 사러 가려는 참인데, 같이 갈 텐가?”

몇 초간 망설이던 마리아는 입가가 살짝 올라가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수줍고 설레는 표정이라서 하이너는 잠시 고민했지만,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함께 데려가지 않으면 텅 빈 방에서 혼자 있을 마리아가 신경 쓰일 것이다. 게다가 위험할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가 갑자기 쳐들어오면 이 소녀는 원래의 야성을 드러내 드래콘으로 변신하여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을 택하기보다, 그저 얌전히 인간체로서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에.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했다. 그녀가 단 한 번도 누군가와 함께 어떤 목적을 가지고 외출한 적이 없었기에, 하이너는 그녀가 외출 시에 어떤 모습을 할지 기대됐다.

또한, 이번 외출로써 자신이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것도 괜찮겠지.

하이너는 먼저 앞서며 중얼거렸다.

“가자. 너와는 산책을 해본 적이 없구나.”

두 사람은 말없이 거리를 걸었다. 두 개의 달이 뜬 날이라 그런지 밤거리가 밝고 사람도 다른 밤보다 많아서 왁자지껄하다. 질 나쁜 거리답게 수상쩍어 보이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흘긋흘긋 기분 나쁜 시선을 던졌지만, 하이너의 모습 자체가 든든한 호위기사 역할을 하다 보니 별난 수작을 거는 이들은 없었다.

아니, 어쩌면 하이너의 드래곤 기운에 그들이 무의식적인 공포를 느꼈는지도 모른다. 초보 드래곤의 기운이란 그런 것이다. 제아무리 기운을 숨긴다 하더라도 솜씨가 어설프니 조금씩 드러나게 마련.

그리고 그 기운을 가장 강렬하게 느끼는 생물은 바로 드래콘이다. 유니콘과 드래곤의 특징이 반반 섞인 이 생물이야말로 누구보다 드래곤의 기운을 잘 감지한다.

두 사람이 길모퉁이를 돌아설 때, 하이너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

“마리아.”

“……?”

“맨 처음 너를 봤을 때, 굉장하다고 생각했다.”

갑작스러운 말에 마리아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하이너는 거리 먼 곳에 시선을 고정하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아가씨께서는 하얀 드래콘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지. 하얀 드래콘인 너는 기적처럼 내게 나타나 쉽게 잡혀주었어. 마치 신이 날 위해 널 거기(소용돌이 산)에 둔 것 같았다. 아, 혹시 이런 말이 기분 나쁘게 들린다면 사과하마. 마치 널 마냥 종속물인 거처럼 말한 것이 미안하구나. 나는 사냥 때만 너를 종속물로 보았지, 그 이후엔 아니다. 너를 잡았지만, 완전한 종속물로 여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마리아는 그때를 아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지난가을 어느 날이었다. 어미의 둥지에서 떠날 때가 되어 소용돌이 산을 어슬렁거리는데 우연히 한 인간, 즉 지금의 기사님을 만났다. 아니, 기사님이 자신에게 나타났다.

기사님은 언뜻 보기에는 체격 건장한 남자였으나 어딘가 달랐다. 그래. 그때부터 기사님에게서 드래곤의 기운을 미미하게나마 느꼈던 건지도 모르겠다. 기사님은 맹수보다 더 맹수 같은 도전적인 눈빛을 빛내며 사냥의 의지를 전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자신은 기사님에게 마법 공격을 하려 했으나, 이미 기사님의 몸에는 방어 스크롤이 발동되어 있었다. 기사님은 그뿐만 아니라 스크롤을 하나 더 써서 드래콘을 무력하게 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금속(플래티르콘)과 은이 합성된 검으로 공격해왔다. 짧은 시간에 일어난 공격에 난생처음 당황한 자신은 그대로 굴종의 인을 기사님께 넘겨야만 했다.

처음엔 적응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굴종해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다. 굴종해야 할 상대가 그렇게 허무하게 생겨버린 것에 자존심이 상했고, 자신이 드래콘으로서 하찮은 부류인지 모르겠다는 자괴의 탄식도 했다.

그렇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마력 생물 드래콘과 일개 인간의 대결에서 인간이 이겼고, 그 이긴 자를 주인으로 삼는다는 것. 주인에 관해 기대심이 생겼다. 자신을 이긴 자는 다른 인간들과 달리 종속물한테 거칠게 대하지 않았고 자기가 가진 드래곤의 힘을 과시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래서 곁에 두고 봐도 괜찮을 거로 생각했는데, 결국 진짜 주인은 기사님이 아니라 ‘마리’라는 이름을 가진 다른 아가씨가 되었고…….

마리아의 시선이 천천히 내려갔다.

잠시 상념에 젖었던 하이너가 이런 말을 전했다.

“그리고 때로는 이런 생각도 했다. 마르틴이 날 위해 환생해준 건 아닐까, 하는.”

마리아는 최초로 먼저 물어보았다.

“마르틴이… 누구예요?”

“내 동생이지. 유일한 가족이었는데 몇 년 전에 병을 앓다가 떠나버렸다. 하늘로 말이지.”

“아.”

드래콘에게 병이란 개념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웬만한 병이나 상처는 스스로 치료 가능하기 때문에 애당초 병이란 개념이 생길 수 없다. 비록 그런 드래콘이긴 하지만, 마리아는 루돌프를 통해 병과 치료의 개념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병을 앓다가 죽었다는 마르틴이라는 사람이 가여웠다. 그녀는 병에 동생을 잃어야만 했던 하이너를 측은한 눈으로 보았다. 기사님이 상심한 것은 아닌가 걱정도 됐다.

“아주 버릇없는 녀석이지. 형보다 먼저 가다니. 어쨌든 그 애가 살아있었다면 아마 네 또래였을 거다. 그래서 너를 볼 때, 그리고 너보다 더 어린 루돌프를 볼 때, 마르틴 생각을 많이 했지.”

“…….”

“난 신을 믿진 않는다. 하지만 운명 같은 것은 믿는 편이지. 동생이 사라진 내게 너희가 나타난 것은…… 세상이 내게 동생을 준다는 의미였다. 지금도 그러하고.”

하이너는 예전 마르틴에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루돌프에게 그랬던 것처럼, 마리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아주 다정한 오빠나 된 듯 쓰다듬어주었다.

마리아는 잠시 얼굴을 붉혔으나 그것은 기사님의 손길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니었다. 왠지 모를 발끈하는 기분을 숨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를 동생 같은 존재로 보는 걸 다 알고 있다고요!’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아마도 목소리에서 원망하는 기분이 드러나고 말 테지. 하지만 결국, 그런 원망도 배부른 것이 아닌가? 종속물 주제에 노예 취급을 받지 않고 동생 취급을 받는 것만 해도 당연 감지덕지해야 할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마리아는 노력했다.

“그만큼 너를 귀여워하고 있단 말이다. 마리아.”

어디까지나 동생으로서.

마리아는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눈썹이 토라진 사람처럼 일그러지고 있다는 걸 하이너는 알지 못했다.

한참 후, 하이너는 가까운 곳에 있는 어느 낡은 옷가게를 가리켰다. 그곳은 도시로 올라온 빈곤한 여행자들에게 간단한 외투나 장화 따위의 물건들을 파는 상점이다.

“저기로 들어가자.”

가게엔 하이너와 마리아 외에도 손님이 대여섯 명은 더 있었다. 언제나 붐비는 거리답게 이런 시간에도 손님이 많다. 서글서글한 청년 점원이 가게를 보면서 손님들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청년은 마리아의 예쁘장한 얼굴을 보자마자 놀라며 다가왔다.

“와우! 이런 거리에서 보기 힘든 아름다운 꼬마 숙녀분이군요! 잘생긴 오라버니와 무얼 사러 왔나….”

“오라버니가 아니야!”

점원의 말을 갑작스럽게 끊은 이는 마리아였다. 하이너는 놀라고 말았다. 마리아가 점원에게 호통치듯 외쳤다.

“이분은 내 오라버니가 아니라, 내, 내 주인님이시다!”

마리아가 지금처럼 제 의견을 단 한 번도 강하게 주장한 적이 없거니와 이토록 발끈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도 없었다. 순간, 점원 청년과 가게 안의 사람들은 소녀의 고운 외모와 다른 거친 성깔에 놀랐고 소녀가 말하는 ‘주인’이라는 말에 또 놀랐다. ‘주인님’이라는 말을 쓰는 이들은 대개 귀족의 노예들 아니던가? 이런 위험한 거리에 귀족이 스스로 발을 들일 이유가 없었다. 마리아의 말 한마디로 하이너는 자그마치 무려 ‘노예’를 부릴 정도로 높은 신분이라는 오해를 사고 있었다.

이렇게 빈곤하고 위험한 곳에서 높은 신분임을 내세우는 것은 여러모로 좋을 게 없다. 게다가 진짜 높은 신분도 아닌데 말이다. 하이너는 서둘러 수습에 나섰다. 마리아를 정신 이상한 아이 보듯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네 주인님이 대관절 어디 있다고? 자꾸 그런 헛소리를 하면 혼을 내주겠다. 그나저나 여기 이 아가씨가 쓸 만한 옷을 찾고 있는데.”

점원은 금세 친절하게 말했다.

“어떤 옷을 원하시죠?”

“가능하면 남자애로 보이게 하는 옷이 필요합니다만.”

“아, 이리 따라오시죠.”

마리아는 그제야 기사님이 사러 온 물건이 무엇인 줄 알았다. 여자 복장을 하는 드래콘이 줄곧 신경 쓰여 위험에 휘말리지 않도록 남자애 옷을 사주려 하는 것이다. 기사님이 그토록 자기를 생각해주는 것은 고맙긴 하지만, 마리아는 어쩐지 남자애 옷을 입는 것이 마뜩잖았다.

그러니까 기사님에게, 남자애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

황도 로귀하르트.

지괴르 저택.

밝고 따스해 보이는 두 개의 달빛도 날을 잔뜩 세운 침엽수 무리 사이에 내려앉으면 차갑게 보인다. 저택을 둘러싼 을씨년스러운 숲 사이로 바람이 음산하게 불었다.

헤그가 도주했다는 것이 이미 궁에 알려졌을 텐데도, 저택은 바람 소리 외엔 고요하기만 하다. 아마도 황태자가 손을 써서 도주 사건을 숨기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헤그는 생각했다. 야울 궁에서 그런 짓을 할 만한 이는 그 친구밖에 없으니까.

뭐, 아무래도 좋다. 잡히면 또 잡히는 거고, 잡히지 않는다면 또 그대로 지내면 그만이다.

마리가 침실에 들어와선 저택을 평했다.

“너무 고요해서 유령이 사는 곳 같아요.”

헤그는 새하얀 면포가 덮인 침대에서 면포를 치워버리고 누웠다.

“당신도 눕지그래.”

“어머, 어째서요?”

“스스로 내건 조건이 있지 않나?”

마리는 손바닥 뒤집듯 다른 태도를 했다.

“네. 그러기로 했죠. 하지만 어디까지나 성황을 죽이고 나서의 일이랍니다. 지금 이 장소는 남녀가 그런 일을 하기에 그리 안정된 장소가 아니기도 하고요. 언제 궁의 병사가 들이닥칠지도 모르고, 게다가 할데바인의 무리가…….”

“아. 그런가?”

헤그는 능청스럽게 되물으며 힘없이 웃었다. 자기도 딱히 침대 위에서 뒹굴고 싶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사괴탄과 닮은 여자를 봐서 기분이 이상하긴 하지만, 긴 복도를 걸어오면서 그 이상하고 야릇한 기분이 어느샌가 쉬고 싶다는 생각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이미 처음부터 이 뻔뻔한 아가씨는 약속을 지킬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기도 했다.

마리는 헤그가 어떤 시선으로 보든지 상관하지 않고 자기의 전략을 읊기 시작했다. 그녀는 지괴르 대령이라는 남자를 잘 꿰뚫고 있었다. 제멋대로 구는 군인이긴 했으나 부하들이 위험에 휘말리는 것은 늘 꺼리던 자다. 아마 이번 성황파 살해 계획에 부하들이 직접 얽히는 것을 원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성황파를 제거하려면 그에게 지원 병력은 필요하다. 마리는 그 지원 병력에 관해 말했다.

“일은 내일 아침이 좋을 듯해요. 신성군대 훈련이 있다고 하더군요. 당신의 부하들은 신성군의 시선을 돌릴 아주 자그마한 소란만 일으키면 돼요. 부하들 기체가 실수로 건물 어디에 스쳤다거나, 장비 문제로 폭발했다거나 그런 소란 말이죠. 그렇게 되면 당신 부하들이 이번 계획에 직접 뛰어드는 게 아니니까 괜찮겠죠? 신성군 시선이 분산되는 사이 당신은 당신의 기갑체로 성황파가 있는 곳에….”

“공격을 하면 된다?”

“그렇죠!”

헤그는 작전을 지시하는 마리가 마치 그 어떤 군인보다 필사적으로 보여 재미있었다. 신성군대 훈련 날짜를 아는 것이야 군사정보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자라면 쉽게 알 수 있고, 부하들이 신성군의 시선을 돌리기도 그다지 어렵진 않다.

하지만 뭐? 당신은 당신의 기갑체로 성황파가 있는 곳에 공격하면 된다고? 이 아가씨는 그 어마어마한 일이 무슨 그림 그리듯이 뚝딱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헤그는 한심한 사람에겐 화도 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며 설명했다.

“성황 무리에겐 언제나 신의 가호(신성 방어력을 말함)가 따르지. 제아무리 마력기갑체라 해도 그것을 파괴하는 덴 무리가 있어.”

“물론 그 정도는 알고 있어요!”

“알고 있다? 아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지.”

“아니요! 나는 그렇게 대책 없는 사람이 아니에요! 다 생각이 있답니다! 짠!”

마리는 한 손을 자신의 앙가슴 깊숙이 넣더니 뭔가를 꺼냈다. 그것은 자그마한 장식이어서 자세히 보기가 힘들었다. 로젠플라드 성물이 투명한 유리에 감싸여 있다. 마리가 자신 있게 건넬 만한 지원 ‘병력’이다.

헤그는 그것을 보고 조금 놀랐다.

“이건…….”

마력기갑체 엔진부에 들어가는 부속물. 성력 동화 매개체. 오직 신성군 조종사만 정식 훈련을 받은 뒤에 가질 수 있는 물건이다. 본래 신성군 출신이 아닌 헤그는 절대로 가질 수 없는 물건이었다.

헤그는 이 아가씨가 어째서 저걸 손에 넣을 수 있었는지 몹시 궁금했다.

설마하니, 제 동생인 황태자비를 통해 얻은 건가?

헤그가 그런 생각을 하며 물건을 받아들었다.

“어떻게 구한 거지?”

“제가 한때 신녀 지망생인 적 있었거든요. 거기 사제님이 절 예쁘게 봐주셔서 받은 선물이죠. 후후!”

거짓말이다. 마리는 사제를 통해 성물체를 구한 것은 맞지만, 거기에 사제의 의사는 없었다. 즉 그녀는 도둑질을 한 것이다.

노인 사제는 소싯적 신성 기갑체를 다루던 신성군에 속해 있었고, 출신별 파벌 싸움이 어마어마한 그곳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데 회의를 느껴 퇴역했다. 보통 그럴 시엔 상관이 신성군인의 성물체를 회수해야 하지만, 야망 없는 군인의 성물체가 어디로 가든 그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노인 사제 역시 성물체를 아무런 의미 없이 줄곧 가지고 살아왔다.

훗날 륀체르가 정보 수집처로 쓸 겸 만들어 둔 신당에서 노인 사제는 관리일을 하기 시작했고, 성물체는 그날부터 신당 구석에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되었다. 마리는 딱히 관심 두는 사람이 없는 그것을 앞날에 대비해 미리 챙겨두었고, 지금 이렇게 헤그에게 건넬 수 있었다.

이 성물체가 마력기갑체 엔진부에 들어가면 신성 보호막을 깨뜨릴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조종사의 마력이 성력으로 변환되어 헤그가 그 점을 이용해 성황파에 막대한 공격력을 행사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즉, 마리는 모든 준비를 다 해왔고 헤그만 움직여주면 될 일이다.

“어쨌든 이것만 있으면 당신은 무적이라고요! 절대 질 일 없음!”

헤그는 마리에게 놀라기보단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아주 근원적인…….

“당신 목적이 뭔가?”

대뜸 나온 물음에 마리가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침대에서 일어난 헤그가 마리에게 점점 다가가며 취조하듯 물었다.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일개 시골 출신 아가씨가 성황을 제거하려 하고….”

“어머! 말하지 않았나요?”

마리는 분명 세계 정복에 관해 말했을 텐데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헤그가 답답했다. 어째서 남자들이란 여자의 말을 그냥 흘려듣지?

“말했다고?”

“뭐, 잊었으면 다시 말해주죠! 이젠 잊지 말아야 할 거예요! 난 대륙 정복이 소원이랍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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