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4 4. 가볍게 빛나는 보석은 없다 =========================================================================
바너의 수도 크래파.
강변 삼 번가의 팻말 뒤 가장 낡은 사 층 건물.
인신매매단 소굴인 이 층엔 주로 잡혀 온 아이들이, 삼 층엔 퇴폐 업소가, 사 층엔 관리자들이 있었다. 하이너는 이 층 감시자 하나를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곧바로 삼 층으로 올라갔다. 지배인으로 보이는 뚱뚱한 남자가 몸싸움에 제법 자신이 있는지 거침없이 달려들며 외쳤다.
“네놈은 뭐냐!”
날아오는 지배인의 발을 하이너는 발로 찼다. 거구의 지배인은 종아리 관절이 뒤틀리는 걸 느끼며 그대로 구석에 처박혔다. 이 소란에 다른 덩치들이 달려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미 하이너가 지배인의 목에 칼을 댄 후였다.
“피 보는 꼴 싫지? 다들 나가줘 보실까?”
하이너의 말에 모두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지배인은 덩치들에게 뭣들 하느냐고 얼른 나가라고 눈짓했다. 그 신호를 듣지 않으면 지배인의 목이 썰리리라. 덩치들은 그제야 출입문을 통해 모두 밖으로 나갔다. 이미 손님들도 두려워하며 나간 지 오래였다. 하이너는 루돌프에게 부탁했다.
“출입문을 좀 잠가 줄래?”
“예!”
삼 층 출입문이 폐쇄되자 하이너는 지배인 역시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풍덩! 하고 지배인이 강물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거구의 지배인을 대체 얼마나 세게 던졌기에 그런 소리가 나는 걸까! 어린 루돌프는 하이너의 힘에 경탄해 마지않았다.
그사이 하이너는 삼 층 업소의 내부와 연결된 사 층으로 올라가려 했다. 하지만 이미 사 층의 관리자들은 아래에서 일어난 소란을 알아채고 내려오고 있었다. 관리자들은 처음 보는 새파란 젊은이가 영업을 방해하는 상황에 기가 차서 물었다.
“넌 뭐하는 놈이냐!”
“너희 같은 놈 패는 놈.”
무신경하게 대답한 하이너는 제게 달려드는 네 명의 남자들에게 단도를 넓게 휘둘렀다. 이런 칼질로 그들에게 겁을 줄 수는 있었지만, 언제까지고 겁만 줄 순 없었다. 그렇다고 찌르기도 내키지 않았다. 피를 보는 건 왠지 싫었다.
그때 불현듯 드는 생각이 있었으니.
“루돌프! 내 뒤로 바짝 붙어라!”
하이너는 루돌프를 안전한 곳에 오게 한 뒤 헤츨링의 마법을 이용했다. 창밖 가랑눈이 실내로 몰아치더니 뜨거운 수증기가 되어 넷에게 열기를 뿜어댔다.
“으아아아!”
“앗, 뜨…!”
갑작스럽게 화상을 당한 이들이 고통에 신음했다. 그 꼴을 보고 하이너가 냉소를 흘렸다.
“아픔을 알긴 아나 보군. 그런 놈들이 죄 없는 애들 팔다리를 잘라댔나?”
하이너는 루돌프가 듣지 못할 정도의 작은 욕지기도 같이 뱉었다. 이런 상황이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다. 한때 기사를 꿈꾸었던 이로서 검이 아닌 저급 마법으로 몹쓸 놈들에게 복수하는 게 알량한 방식 같아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난생처음으로 기사다운 정의로운 일을 한 것 같아 뿌듯한 기분도 들었다.
‘헤츨링의 마법도 썩 나쁘지 않군.’
아가씨 때문에 드래곤화를 겪었던 것도 마냥 나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네 명으로 끝나지 않았다. 바깥 출입문이 쾅! 소리를 내면서 부서져 버렸고, 그 사이로 녀석들이 더 쳐들어오고 있었다. 녀석들은 동료들을 괴롭히는 수증기를 보고 기가 차서 외쳤다.
“뭐하는 새끼지?”
“일단 잡아!”
“못난 놈들! 쥐새끼 하나 못 잡아서 이러고 있냐?”
하이너는 끊임없이 헤츨링의 마법을 사용해 녀석들에게 화상 공격을 먹이다가 문득 싸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다른 녀석들에 비해 말쑥한 차림의 중년 남자가 품 안에서 뭔가를 꺼내고 있었다. 하이너는 직감으로 알아챘다.
‘총이다!’
이미 중년 남자의 총을 든 손은 하이너를 겨누고 있었다.
탕!
탄환은 하이너의 강철 같았던 어깨 근육을 꿰뚫어버렸다.
“윽!”
정작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지르는 이는 루돌프였다. 하이너는 고통보단 오히려 어깨를 냉찜질 받는 듯 시원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0.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순간, 하이너는 느꼈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그렇다면 죽이는 편이 낫지 않은가?
정의로운 일을 하느라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해하고 있지만, 피만은 보기 싫어서 살인하지 않았던 고집은 그렇게 꺾였다.
헤츨링의 마법이 발현되었다. 하이너의 앞에 나타나는 인신매매단들은 하나둘씩 혈액이 얼어버렸다!
쿵……. 탁. 챙그랑! 쿵!
혈액과 체액이 얼어버린 그들은 시체가 되어 넘어지고 부서지면서 테이블을 넘어뜨리고 유리 장식물을 깨뜨렸다. 루돌프가 겁에 질려 소릴 냈다.
“흐악…!”
혼란에 빠진 루돌프는 주위를 살폈다. 안타깝게도 조금 전에 말쑥한 옷을 입은 중년의 남자 때문에 기사님이 어깨에 총을 맞아버렸다. 그런 때에 누군가가 마법을 부리기라도 하듯 나쁜 녀석들이 갑자기 몸이 굳어서 픽픽 쓰러져버리니…… 신기하고 무서웠다.
“기사님, 이건 대체 뭐죠?”
“…….”
하이너는 시체들보다 더 굳어버린 표정이었다. 난생처음 살인을 한 감각이 구름을 걷는 듯 현실감이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멍하니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 소굴에 득시글거리는 인신매매단 녀석들을 모조리 해치우는 게 우선이었다. 그는 부서진 출입문을 통해 사 층으로 올라갔다. 어깨에서 흘러내린 피가 몸을 타고 바닥 여기저기를 적시는 느낌이 썩 좋지 않았다. 아니, 끔찍할 정도로 싫었다. 곧바로 어깨 표면에 흐르는 피를 얼려 지혈했다.
예상대로 사 층엔 아직 잔챙이가 몇몇 더 있었다. 하이너는 그 중 구석에서 총을 꺼내 드는 녀석을 보았다. 저 녀석도 마찬가지로 죽여야만 했다.
“젠장.”
욕지기에 또 한차례의 살인이 이어졌다. 총을 꺼내려다가 피가 얼어버린 이는 곧바로 바닥에 데구루루 굴렀다. 하이너는 그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다른 이들에게 알렸다.
“저런 꼴이 되기 싫으면 여기서 꺼지는 게 좋을 거다.”
그러자 잔챙이들은 상어로부터 도망치는 작은 물고기 떼처럼 건물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루돌프는 그제야 기사님의 능력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놈들을 기절시키다니, 혹시 마법을 쓰시는 거야?’
이미 많은 피를 흘린 하이너는 현기증을 느꼈다. 그러나 여전히 할 일은 남아 있었다. 인신매매단 녀석들을 이 건물에서 쫓아내긴 했으나, 아직 그들에게 납치되었던 어린아이들은 이 층에 머물러 있었다. 그 불쌍한 아이들을 도망가게 해야만 했다.
그는 이 층으로 내려가려다 휘청거렸다. 걱정한 루돌프가 하이너를 앉혔다.
“어딜 가시려고요! 일단 앉아 계세요, 여기!”
하이너는 쓰러지듯 바닥에 드러누우며 루돌프에게 부탁했다.
“아이들에게 얼른 도망가라고 해줄래?”
“네!”
루돌프는 재빨리 2층으로 내려갔다. 아이들은 모두 신기해했다. 분명히 낮에만 해도 같이 잡혀있었던 루돌프가 도망쳐 이렇게 다시 돌아온 것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겁에 질린 그들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냐고 루돌프에게 물었다.
“위층 나쁜 놈들 어떻게 된 거야?”
“아까 그 멋진 형이 놈들을 다 물리쳐준 거야? 그런 거야?”
“대답 좀 해봐!”
그러나 루돌프는 대답해줄 여유가 없었다. 일일이 설명하다간 시간이 지체될 뿐이었다. 밤의 소란은 누군가에게 들키기 딱 좋은 것이고 그것은 분명 또 다른 소란을 불러올 것이리라.
“난 하나도 몰라. 너희는 여기 있으면 안 돼. 얼른 뭐라도 챙겨 입고 떠나. 그리고 절대 다시 잡히면 안 돼. 알았어? 도시는…… 너무 무서운 곳이야.”
아이들은 삼삼오오 건물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루돌프는 커튼을 찢어 챙겼다. 기사님을 지혈하기 위한 물건이었다. 지혈하지 않으면 기사님이 위험할 것 같았다.
루돌프가 커튼 천을 들고 하이너가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일 층에서 아이들 목소리가 아닌 어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야?”
“예! 갑자기 나타나서 영업 방해를 하지 뭡니까!”
루돌프는 인신매매단 녀석이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했단 사실을 알았다. 계단 아래를 슬쩍 내려다보니 경관 모자를 쓴 다섯 명의 모습이 보였다.
‘뭐지? 어째서 인신매매단 녀석들이 경관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거야? 어째서 경관들이 이 나쁜 녀석들을 돕는 거냐고!’
시골 출신 소년이 부패할 대로 부패한 경관들의 사정을 알 리는 없었다. 루돌프는 재빨리 하이너에게로 가서 조용히 알렸다.
“놈들이 경관을 데려오고 있어요! 그것도 다섯 명씩이나 돼요!”
“뭐라고?”
“도망을 가야 할 것 같아요!”
하이너는 이런 상황이 웃겼다. 죄를 지은 것은 인신매매단인데 어째서 자신이 도망을 가야 하는지? 하지만 이미 살인을 했으니 자신도 범죄자인가? 도망가야 한다는 루돌프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경관들은 골치 아픈 존재다. 인신매매단 녀석들이야 기껏 사용할 수 있는 무기란 게 칼이나 총 등 물리적인 것이 전부였지만, 엘리트들로 구성된 경관 중에는 간혹 마법을 사용해 범죄자를 제압하는 이도 있었다. 그 말인즉 하이너가 사용하는 헤츨링의 마법도 무력화할 수 있단 뜻이었다.
경관들이 계단을 올라 사 층으로 가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하이너는 조급해졌다. 도망을 쳐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얌전히 계단으로 내려가면 포박을 당하기밖에 더 하는가?
‘드래곤이 되어야 한다.’
그전에는 어떻게든 드래곤화를 막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몸이 공중부양을 할 줄 아는 것도 아닌 이상 하늘을 날고자 하면 드래곤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변신해야 하지?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가 진정으로 드래곤화의 필요성을 느낀 순간, 그의 몸은 드래곤으로 변신을 시도했기 때문이었다.
“으아아아악!”
등을 찢고 나오는 날개. 하이너는 고통에 겨운 비명을 지르면서도 루돌프에게 말하는 걸 잊지 않았다.
“내 등에 올라라!”
“예?”
“얼른 등에…… 그어아아아!”
하이너의 등에서 무시무시한 검회색의 날개를 뻗치자 루돌프는 기절할 것 같았다. 실수로 이식한 드래곤 링클의 효력을 이런 식으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이제야 인신매매단들이 왜 픽픽 쓰러졌는지도 알 수 있었다! 모두 기사님이 드래곤의 마법을 쓰신 것일 터! 변하는 건 기사님 등의 모습뿐만이 아니었다. 기사님의 모습도 드래곤을 닮아가기 시작했고, 그가 내는 목소리 또한 드래곤의 포효가 되었다.
“그아아아아아!”
건물 벽이 부서지고 매캐한 흙먼지 사이에서 드래곤의 눈빛이 외치고 있었다.
얼른 등에 타!
루돌프는 주저하지 않고 하이너의 등에 오르려 했다. 그 순간, 뒤에서 경관들의 외침이 들렸다.
“저건 뭐야! 드, 드래곤 아닌가!”
“드래곤이 쳐들어왔단 말은 없었잖소?”
“일단 여기서 나갑시다! 위험해요!”
루돌프가 그들을 멍하니 보는 사이, 드래곤화한 하이너는 날개를 뻗어 루돌프의 다리를 살짝 쳤다. 덕분에 루돌프는 드래곤의 날개 위에 엉덩방아를 찧게 되었다. 루돌프는 날개를 엉금엉금 기어 하이너의 등에 올라탔다.
푸드덕푸드덕!
드래곤이 날기 시작했다.
가랑눈이 휘날리는 밤하늘 아래로 밤보다 더 짙은 검회색 드래곤이 하늘을 날았다. 드래곤은 오들오들 몸을 떠는 루돌프를 위해 루돌프의 주변 수증기를 가열해 열기를 만들어주었다. 스아아아아…… 수증기가 끓어오르는 소리가 퍼졌다. 열기 덕분에 그들 주변이 새하얀 안개에 휩싸인 듯했다.
저 멀리 날아가는 안갯속 드래곤은 흡사 신화의 한 장면이라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적어도 태어나서 드래곤을 처음 보는 경관들에겐 그랬다.
경관들은 해야 할 일도 잊은 채, 하늘에서 드래곤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구경했다.
“우리가 지금 꿈을 꾸는가?”
“꿈이 아니라고. 드래곤이었어, 분명! 맙소사, 우리 할아버지 세대나 볼 수 있었던 것을…….”
***
마리는 드래콘 마리아 그로스와 함께 침묵의 장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얌전히 잠들어 있어야 할 호위 기사가 보이지 않았다. 취미는 아가씨에게 잔소리하기요, 특기 또한 아가씨 걱정하기인 호위 기사는 그사이를 참지 못하고 아가씨를 찾으러 갔으리라.
마리는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여간 나를 너무 과보호한단 말이지. 나에겐 이렇게 든든한 마리아가 있는데 말이야. 응?”
마리는 자그마한 마리아 그로스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비비며 대답을 바랐다. 그 모습은 마치 애완견이 주인에게 애교를 떠는 것 같았다. 이 경우엔 애완동물과 주인이 뒤바뀌었지만.
마리아 그로스는 제게 찰싹 달라붙은 주인을 보며 의식의 메시지-텔레파시를 건넸다.
[주인님, 호위 기사를 찾으러 나갔다 올까요?]
“그러지 않아도 돼. 곧 오겠지. 날씨도 춥고 짐도 여기 있는데 말이야.”
그러자 마리아 그로스는 객실 소파에 앉았다. 하얀 원피스 차림에 진줏빛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얌전히 앉아있는 모습은 예쁘고 순한 아이를 보는 듯했다. 물론 그 기이한 기운을 뿜어내는 선홍빛 눈동자만은 예외였다.
마리는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있는 마리아 그로스의 모습이 어쩐지 불편해 보였다. 본래 드래곤과 유니콘의 중간격인 드래콘은 사람의 눈이 그다지 닿지 않는 마구간이나 주택의 옥상 같은 데서 몰래 자는 것을 좋아했다. 마리는 마리아를 위해 문을 열어주며 상냥하게 말했다.
“그렇게 불편하게 앉아있지 말고 마구간에 가서 자렴!”
[…….]
“괜찮대도! 당분간은 귀찮게 하지 않을게!”
보통의 주인이었다면 ‘당분간은 부르지 않을게!’라고 했을 것이나, 마리는 마치 자기가 민폐 주인임을 시인하듯 ‘귀찮게 하지 않을게!’라고 했다. 마리아 그로스는 그런 주인을 한참 동안 보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리아 그로스가 옥상으로 자러 간 사이 마리는 외투를 벗고 침대에 뻗어버렸다. 영원의 봄에서 륀체르와 독주를 마셨다. 취하지 않은 척했지만, 그 후유증이 상당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속이 메스껍기 짝이 없었다. 오를린에서 술 마시기 훈련(?)을 많이 해두었으니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진즉 기절했을 것이다.
곧 호위 기사가 돌아와서 이 술 냄새를 맡는다면 잔소리를 한 보따리나 퍼부을 것이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까. 열린 문 사이로 호위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꼴이 말이 아니었다. 어깨에서 쉴 새 없이 피가 흘렀고 낯빛은 시체처럼 창백했다. 그런 꼴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여 소년의 어깨에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마리는 놀라서 침대 밖으로 튀어나왔다.
“맙소사! 이게 무슨 일이니! 호위기사가 다치는 일이 생겨? 그것도 이런 도시에서? 이 상처는 다 뭐야? 그리고 꼬마 너는 누구니?”
소년, 루돌프는 하이너를 일단 침대에 눕히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려 했다.
“저, 그게, 기사님께서 저 대신 인신매매단 녀석들에게 복수를 해주시려다가 총을 맞….”
하이너가 그 말을 끊고 마리에게 물었다.
“그러는 아가씨야말로 대체 이 새벽에 어딜 다녀오셨습니까?”
조용한 목소리이나 섬뜩할 정도로 신경질적인 감정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으악, 하이너! 무서워!’
마리는 이런 때에 ‘어떤 갈보 좀 약 올리고 왔다!’는 너스레를 떨어선 안 될 거라고 느꼈다. 어릴 적 어머니 몰래 소용돌이 산을 탐험하러 간다고 나섰다가 밤늦게 돌아왔을 때 어머니가 지으셨던 표정을 지금 하이너가 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어머니께 비 오는 날 먼지가 나도록 엉덩이를 맞아야 했지…….
호위기사가 감히 아가씨의 엉덩이를 눈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때리는 일은 없겠지만, 그 대신 대륙 여행 따위 가지 않겠다고 나올 수도 있었다. 마리는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호위기사만큼 재미있는 여행 동반자도 없고, 호위기사만큼 데리고 다니기 괜찮은 수컷도 없었다. 호위기사만큼 강력한 동료도 없지 않은가? 그는 드래곤으로 변신도 가능하니까!
마리는 너스레를 떠는 대신, 야밤 외출 내용을 육하원칙에 따라 정직하게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네가 잠들었을 때! 바너의 실세라는 보석 길드 마스터 륀체르 사파이어의 집에서! 그를 매수하기로 했어! 왜냐하면, 그래야 대륙 정복을 하고 로테를 구하는 일의 첫 단추를 끼울 수 있으니까! 그런고로 지금 그의 고민을 해결해주고 그의 환심을 사려고 해!”
하이너는 분명 육하원칙에 따른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어느 횡설수설보다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들은 것 같아 머리가 아팠다. 총 맞은 어깨도 아파서 죽을 것 같은데 머리까지 아프게 하는 아가씨가 너무나 미웠다.
“대관절… 누구의 고민을 해결하고… 누구의 환심을 사려 한단 말입니까…….”
제발 그 전에 호위 기사의 고민을 해결해주시고 호위기사의 기분을 생각해달라고 빌고 싶었다.
…… 대륙 정복이고 뭐고 다 떠나서 어딜 가면 간다고 알려주시면 안 되나? 꼭 이렇게 멋대로 나가서 호 기사의 속을 썩여야 하는가? 호위기사가 밤늦게 거리를 떠돌아다닐 거란 건 예상하지 못하시나?
물론 루돌프 대신 복수하다가 살인을 하고 총을 맞은 것은 자신이 선택한 일의 결과니 아가씨를 탓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호위기사의 선에서만 분노하고 따지고 싶을 뿐이었다.
하이너는 다량의 출혈과 드래곤화로 인한 고통에 의식을 까무룩 잃으며 중얼거렸다.
“가끔은 아가씨를 어디에 묶어놓고 그 가벼운 엉덩이를 패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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