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화 (22/39)

마음 속으로만 품어왔던 아름다운 순백의 여신과 이 정도로 짙은 입맞춤을 나누는데, 그것도 서로 몸이 

완전히 달라붙어 공기마저 뜨거워져있는 이 상황에서 내가 과연 무슨 수로 흥분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이건 제어를 하고말고가 아니라 어찌할 도리가 없는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하지만 플레어스커트 

위로 허벅지 안쪽에 살짝 닿아버린 그 이질적인 물건의 딱딱한 감촉에 내 고개를 꼭 끌어안고있던 그녀는 

순간 움찔해버렸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나는 자지 끝에 스커트 위로 살짝 닿은 그녀의 안쪽 허벅지 살의 

그 매끄러운 감촉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움찔해버린 듯, 그녀가 키스를 멈추려는 생각으로 그렇게하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그녀는 순간적으로 혀의 움직임을 멈추고는 꽤 오랜시간 끈끈하게 내 입술에 달라붙어있었던 그 매혹적인 

분홍빛 입술을 살며시 떼어냈다. 그리고는 감았던 눈을 뜨고는 그 깊고 아름다운 눈동자로 날 말없이 응시하기 

시작했다. 

'으아! 제, 제길...'

미쳐버릴만큼 쪽팔린 것은 둘째치고 그녀가 날 완전 무슨 변태취급이나 하지 않을까 너무나도 걱정되었다.

분명 이것은 불순한 상상 이전에 남자로서 어쩔 수가 없는 불가항력의 현상이었지만 그녀 또한 그렇게 

생각해 줄지는 과연 의문이었다. 그녀는 도대체 지금 날 어떻게 보고 있을까...

"미, 미안해요 누나.."

난 그 어색하다못해 참혹하기까지한 침묵을 간신히 깨고는 더듬더듬 그녀에게 사과했다.

따지고보면 그녀가 애초에 유도한 키스이긴 하지만 그 이후로 시작된 과감하고 무례한 신체접촉은 분명 나의 

잘못이었다. 어쩌면 오늘 이후로 그녀의 얼굴을 영영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이 마음속 구석구석

으로 번져나갔다. 내 사과에도 불구하고 잠시 아무런 말을 하지않은채 가만히 그 호수같은 눈망울로 날 뚫어져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을 좀체 마주볼 자신이 없어 나는 죄인처럼 그저 고개를 내리깔 수 밖에 없었다.

비겁하게 그녀의 시선을 외면하고 고개를 숙이고있던 내 귓가에 그녀의 귀여운 웃음소리가 들려온 것은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였다.

"후훗, 괜찮아."

"괜... 찮아요?"

"응... 조금 놀랬긴하지만. 후후.. 보기보다 응큼한 것 같네?"

마치 놀려대듯 꼬집는 그녀의 말 속에 날 책망한다거나 비난하는 듯한 감정은 없었다.

아니, 내가 속편하게 혼자서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일단 내 무례한 행동에 아무 비난도 

하지 않는 그녀의 이해심과 배려가 너무 고마웠고, 그 넓은 마음 씀씀이가 너무 감격스러웠다.

"죄송해요..."

"아냐, 사과할 것 없어. 제법 잘하던걸?"

유경 누나는 뜻모를 미소를 지으며 쿡쿡 웃었다. 그 귀여운 웃음을 보고있자니 내 불순했던 행동들이 어쩐지

용서가 된 것 같아 나도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저기..."

눈도 떴고, 입술도 떨어졌지만 서로 꼭 붙은 밀착된 몸만은 아직 그대로였다.

그랬기에 이 어색한 분위기를 어떻게든 해소해보려고 나는 겨우 용기를 쥐어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내가 미처 무슨 말을 꺼내보기도 전에, 갑자기 마른 하늘의 날벼락처럼 난데없이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끼익!

"언니, 나 왔어!"

현관문 앞의 신발장에서 서로를 꼭 끌어안고 서있던 우리는 그 갑작스럽게 열리는 현관문 소리에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깜짝 놀라 급히 서로에게서 재빨리 떨어졌다. 

내게 꼭 붙어있던 유경 누나의 몸이 순식간에 멀리 떨어졌고, 우리는 물론이고 현관문을 열고 명랑하게 인사하며 

신발장으로 들어서던 인형같은 얼굴의 귀여운 소녀는 그곳에서 어정쩡하게 서로 떨어져있는 나와 유경 누나의 

어색한 모습을 보고는 자신도 화들짝 놀랐는지 신발을 벗으려던 그 모습 그대로 딱 멈춰서버렸다. 

정말이지 신의 장난같은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뭐, 뭐야? 둘이 뭐하고 있었어?"

"아, 아무 것도 아냐." 

나와 유경 누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입을 모아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어설프게 둘러댔지만 

윤아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눈초리를 약간 가늘게떴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물음을 던졌다.

"흐음... 오빠는 왜 여기있어?"

내가 입원을 했던 기간동안 병실에 유경 누나만큼이나 자주 찾아왔던 윤아는 그러던 어느날부터인가

나를 '너' 가 아닌 '오빠' 로 부르고 있었다. 물론 내가 1살 위였기 때문에 보통은 그러는게 당연했겠지만

시종일관 반말을 유지해오던 그녀가 날 그렇게 높여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에 나는 알게모르게 속으로 

감격까지 했었다. 아마도 유경 누나의 일로 내게 고마움을 느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예전에 반말로 날 

야, 야 거리며 불렀던 것에 비해서 참 듣기좋다고 생각했건만 지금 날 그렇게 부르는 윤아의 목소리는 어쩐지

날카롭기까지 했다. 

"그, 그게... 누나가 놀러오라고해서..."

"맞아... 내가 초대했어. 윤아야, 좀 일찍왔네?"

"뭐 늘 오던 시간이잖아. 근데 진짜 둘이 뭐하고 있었던거야?"

"아, 아무것도 아니래니깐..."

그렇게 변명하긴 했지만 화들짝 놀라며 서로 떨어지던 모습을 윤아가 못 봤을 턱이 없었다.

뭐 제대로 보지는 못했겠지만.... 어쨌든 윤아는 고양이처럼 눈을 가늘게뜨며 수상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둘이 분위기 왜 이래?"

물론 나와 유경 누나는 그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딴청을 피울 뿐이었다.

"휴... 간 떨어질 뻔 했네."

유경 누나의 빌라 입구를 나서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푸욱 쉬었다.

정말 윤아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을 땐 그대로 심장이 멎어버리는 줄 알았다.

'그건 그렇고...'

나는 유경 누나와 나누었던 그 황홀하고 아찔했던 딥키스를 다시 한번 떠올리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어떤 남자라도 넋을 잃게 만드는 여신같은 미모의 유경 누나와 그렇게 끈적한 키스를 나누었던 사실에서 오는 

기묘한 흥분과 떨림이 아직까지도 가실 줄을 몰랐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벅차오르는 황홀한 기분에 제대로 

걸음을 옮기기조차 어려웠다. 

나는 주머니에 고이 넣어두었던 유경 누나의 십자수를 빼어들었다.

그녀가 직접 수놓았을 수능 성공기원의 문구를 보자 마음 속에서부터 무한한 활력이 샘솟아 올랐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정말 진심으로 행복했다. 

'집에 가서... 뭐할까?'

일단 주체할 수 없이 피가 쏠린 내 가랑이 사이부터 어떻게 좀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노래까지 

흥얼거리면서 쉽게 떼어지지 않는 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현관문을 나오던 순간까지 수줍은 듯 볼을 물들이고 있던 유경 누나와 어쩐지 약간 토라진 것 같은 윤아의 모습

을 떠올리며 웃음 짓던 나는 반대편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거기에다 유경 누나의 십자수를 매달았다.

그런데 십자수를 매달고 나자마자 핸드폰에서 진동이 한차례 위잉 하고 울렸다. 

슬라이더를 올려보니 문자가 한통 와있었다.

[잘 가♡] 

언젠가 병원에서 유경 누나와 주고받았던 그녀의 번호였다. 그런데, 끝에 붙은 하트 하나... 무슨 의미였을까.

"으흐흐흐~"

자꾸만 치밀어오르는 웃음을 자제할 수가 없어 나는 히죽히죽 웃으며 발걸음도 가볍게 길거리를 걸었다.

주위의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도 같았지만 뭐 아무렴 어때.

'아자~ 오늘은 정말 너무너무 행복했던 하루였어.'

유경 누나와 첫 데이트를 하고 처음 딥키스를 나누었던 바로 이 날. 

나는 이 하루를 평생이 지나도록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다음날 아침, 언제나처럼 제시간에 등교하여 교실에 들어서는 나를 맞이한 것은 

반 친구들의 거의 천둥소리와도 같은 엄청난 대함성이었다.

"엇! 왔다!"

"야, 조성재 너!"

마치 날 잡아먹기라도 할 것처럼 빼곡히 스크럼을 둘러싸듯 반의 모든 친구 녀석들이

내 주위로 순식간에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그 무서울 정도로 어마어마한 기세에 나는

이 녀석들이 날 무슨 집단 구타라도 하려는 줄 알고 나도 모르게 순간 움찔하여 뒷걸음질쳤다.

"뭐, 뭐야? 너희들 왜 그래?"

가장 가까이 들러붙은 친구 녀석 몇놈이서 날 붙잡고는 미친듯이 마구 닥달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불어, 임마! 너 어제 그 누나랑 무슨 사이야?"

"애인이야? 진짜 애인이야?"

"야, 완전 천사더라 천사! 그 누나 이름 뭐야? 나이는?"

"혹시 그 누나 연예인 지망생이야? 그렇게 예쁜 여자 정말 첨 봤다!"

"난 어제 부러워서 한숨도 못 잤어."

"진짜 사귀는거야? 너 도대체 무슨 재주로 그런 미인을!"

"조성재, 제발 나도 소개시켜줘!"

"....."

이건 뭐 정말이지 난리도 아니었다. 바글바글 몰린 친구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으며 말그대로 아예 발광을 

해대고 있었다. 광분하며 함성을 질러대는 그 목소리들 탓에 잠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던 나는 자꾸만 

다그치는 그 말소리에서 녀석들이 어제 날 찾아왔던 유경 누나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곧 깨달았다. 

"그, 그런거 아냐, 자식들아. 저리 좀 떨어져! 나 아직 환자야!"

"엇, 이 녀석 어디 가!"

"야, 누군지 말해달라니까!"

난 마치 아수라장에 빠진 듯한 그 어수선하고 난잡한 분위기를 견디다못해 그냥 그 자리에서 휙 튀어버렸다. 

등 뒤에서 녀석들이 저마다 갖가지 지랄발광을 떨며 계속 함성을 지르는 소리가 학교 전체를 뒤흔들 듯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것을 들으며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침부터 이게 무슨 소란인지 참...

=".....그래서 지금 이렇게 도망쳐온거야?"

"뭐... 말하자면 그렇지."

"오빠... 진짜 되게 한심하다."

윤아는 교내 매점의 테이블 의자에 앉은 채로 날 마주보며 한심하다는 듯 혀를 쯧쯧 찼다.

일단 피할 데가 마땅찮아서 매점으로 피신하기는 했는데, 거기에 때마침 주스 한잔 하려고 내려온 윤아가 

있었다는 것 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자초지종을 들은 윤아는 날 위로하다기보다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그저 눈쌀만 찌푸리고 있었다. 

"사방이 쏠로 천지인 거기서 내가 달리 무슨 말을 하겠냐."

"쳇... 남들이 보면 진짜 언니랑 무슨 애인 사이라도 되는 줄 알겠네."

입을 삐죽거리며 볼을 부풀리는 윤아. 어딘가 살짝 삐진 듯한 그 모습은 그녀의 인형같이 귀여운 얼굴과 

왠지 모르게 잘 어울려 너무나도 깜찍해보였다. 얘가 이런 표정 지으니까 되게 귀엽네... 

"근데... 진짜 언니랑 어제 데이트했어?"

"어? 어... 뭐 데이트랄 것 까진 없고."

".....둘이 뭐하고 놀았는데?"

"그냥 같이 밥먹고 산책하고 차 마시고 너네 집에서 누나 설거지 도와주고... 뭐 그랬지."

그리고 마지막엔 너무너무 찐한 키스도 했지롱, 으흐흐~ .... 라는 말까지 굳이 덧붙일 만큼 난 멍청한 놈은 

아니었다.

"흥! 무지 좋았겠네."

하지만 앞의 설명만 듣고도 윤아는 갑자기 표정히 냉랭하게 굳어지더니 한마디 톡 쏘아붙이고는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어쩐지 그녀의 손에 들린 오렌지주스 팩이 무참하게 구겨지는 것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드는건 

내 착각이었을까... 화가 난 것 같기도 한데, 그런 것 치고는 어째 반응이 좀 이상하고... 

솔직히 윤아 성격으로 봐서 진짜로 화났을 것 같으면 벌써 테이블을 뒤엎었을 것이다. 

"오, 오늘은 누나 미용실에 일 나가지?" 

어쨌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쩐지 윤아의 기분이 조금 안좋은 것 같아서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분위기를 쇄신해보려는 나의 그 시도가 왠지 윤아의 기분을 더 나쁘게 해버린 것 같았다.

"왜? 언니 일 없으면 또 데이트라도 하게?"

"아, 아니... 그런게 아니라."

"안됐네! 오늘은 언니 하루종일 일하는 날이야."

"그, 그렇구나."

"흥! 실망해서 어쩔 줄을 모르시는구만."

"...."

무슨 말을 한마디도 못하게 톡톡 쏘아붙이는 윤아의 퉁명스런 대답에 나는 어쩐지 살짝 무서워지기까지 했다.

얘가 대체 왜 이러지? 혹시 자기 언니가 외간 남자랑 데이트했다는 사실이 좀 언짢아서 그러나?

'아니면... 혹시 그 반대?'

문득 윤아가 예전에 병원에서 유경 누나에 이어 내게 짤막한 입맞춤을 남기고 가버렸던 일이 떠올랐다.

그 때는 그냥 말그대로 내게 고마운 것도 있고해서 순전히 장난삼아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얘가 지금 내가 유경 누나랑 데이트했다는 것 때문에 삐져버려서 이러는건가?

'에이~ 무슨 말도 안되는 생각이야, 하하. 조성재, 너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어.' 

설마 그럴 리는 절대 없겠지. 종잡을 수 없는 괴팍한 성격의 대명사, 천하의 송윤아가 말이야. 

하지만 나는 어쩐지 이유모를 악동같은 장난기가 자꾸만 발동되어 치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뭐 조금 놀려볼까? 장난삼아 말하면 별로 문제될 건 없겠지?

"윤아야, 너 혹시 지금 질투해?"

"뭐, 뭐! 지, 질투?"

"흐흐흐. 음, 내 생각엔 말이야, 넌 지금 날 너무너무 좋아해서 나랑 데이트한 너네 언니를 마구 질투하고 

있는거 같애. 내가 눈치가 좀 빨라서 척 보면 다 알... 으아악!"

난 히죽히죽 능글맞게 웃으며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윤아에게 겁없이 깐죽거리다가 도중에 허공을 부웅 

갈라오는 그녀의 주먹세례에 기겁하며 몸을 날려야했다. 으아, 역시 저 불같은 성질머리하고는!

'크, 큰일이다. 저 성질 한번 폭발하면 빼도박도 못하는데.'

배때기에 붕대까지 두르고 있는 이 난감한 상황에 예전처럼 그녀에게 빗자루 세례라도 얻어맞았다간 그대로 

황천길로 떠나게 될지도 몰라. 윤아의 그 무지막지한 성격으로 봐서는 곧 주먹이든 뭐든 사정없는 난타가

쏟아질텐데... 게다가 여긴 사람도 바글바글 많이 몰려있는 매점 한가운데. 

쪽팔리게 이런 곳에서, 그것도 여자애한테 얻어맞았다간 망신도 그런 개망신이 없을 것이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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