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 E M O R I Z E - IF편 [외로운 그림자 #001] >
“아까 못 만지게 하겠다고 했을 때, 수현이 안달하고 분노하던 모습이 더 기억에 남네요. 솔직히 조금 기뻤어요.”
생긋 웃은 여인이 빙글, 몸을 돌렸다.
잿빛의 머리칼이 흔들리며 허공을 춤춘다. 멍한 얼굴의 사내의 시선을 뒤로하고 여인이 문을 열고 방을 나섰다.
철컥.
“…….”
문이 닫혔다. 그러자 기세 좋게 나온 여인의 얼굴이 싹 바뀐다. 방금까지 생긋 웃고 있던 미소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싸늘한 얼굴만이 그 위치에 자리한다. 그런 냉혈한 얼굴에서 한줄기의 쓸쓸함이 스쳐 지나갔다.
“어? 언니, 보고는 끝나신 거예요?”
“응, 물론이지.”
그때 복도 한쪽에서 한 여인이 아는 체를 해왔다. 안솔. 머셔너리의 복덩이이자 철부지. 하지만 요즘 철이 드는 듯해서 그녀 역시 좋게 보는 여자아이였다.
여인의 얼굴이 삽시간에 바뀌었다. 방금까지 풀풀 흘리던 냉기가 순식간에 사라지며 생글생글한 미소로 답했다.
“좀 더 얼굴보며 보고하고 싶었는데 워낙 바빠 보여서 말이지. 어쩌겠니. 우리가 이해해야지.”
“우, 맞아요. 오라버니는 스스로 몸 좀 챙기셨으면 좋겠어요. 안 그래도 한나 언니가 약초를 구해서 약까지 달여 주시는데 잘 드시는 지도 모르겠어요.”
“…그랬니? 그건 몰랐네.”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는 안솔을 보며 잿빛 여인, 고연주는 몸을 돌렸다. 그녀가 스쳐 지나가려는 안솔의 어깨를 잡고 이끌었다.
“우리 솔이 바쁘신 오라버니 건들지 말고 언니랑 차나 마시러 갈까?”
“네? 하지만 오라버니가 오늘 내로 보고하라고 하셨는데…….”
“그거야 조금 진정되고 나서 가면 되잖니? 오랜만에 언니가 손수 차 좀 끓여준다는데 거절하는 거니?”
“아니요! 그럴리가요! 당장 가시죠!”
차에 넘어온 안솔이 선수치며 걸어왔던 복도를 다시 되돌아갔다.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고연주의 차가 그리도 그리웠나 보다.
물론 그 사실 역시 고연주도 모두 계산한 상황이었다. 앞서가는 안솔을 보는 그녀의 눈이 다시 스산함을 발했다.
*
안솔과의 잠시간의 티타임이 끝나고. 고연주는 오늘따라 지친 몸으로 방에 돌아와 침대 위로 몸을 날렸다.
“…하아.”
푹신 푹신한 감촉을 느끼며 고연주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평소에 불을 켜놓는 습관 같은 건 없어 잔잔한 촛불 빛만이 방안을 어둑하게 비췄다. 일렁이는 불빛을 보던 고연주는 아까 전, 김수현의 업무실에서 보았던 상황을 다시 떠올렸다.
‘끄흐흐흐으으으으으으으음!’
고개를 가누지 못할 정도로 격렬했던 신음. 단순히 김수현이 화를 낸다라고 얼버무리긴 했으나 그림자 여왕으로 불리는 그녀가 그 상황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굳이 마력을 돌리지 않아도 느껴지던 인기척. 김수현의 쏟아지는 신경과 그쪽에서 들리는 질척하고도 뜨거운 기운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녀의 눈에 훤히 보였다.
“책상 밑에서 오랄……. 이라. 다은이도 통수 좀 칠 줄 아네?”
한번 쳐본 년이라 그런가? 까지 생각한 고연주는 순간 고개를 저었다. 본인이 생각한 것임에도 오싹한 소름이 돋았다. 남다은의 과거가 얼마나 처절하고 비참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였다. 그것을 꼬집어 비꼰다는 것 자체가 매우 혐오스러운 짓이나 다름 없다.
“후우……. 내가 좀 지쳤나?”
고연주가 숨을 내쉬며 한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요즘 들어서 급격하게 스트레스가 쌓이는 느낌이다.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제어 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요즘 밤의 업무를 핑계 삼아 클랜원들도 마주하지 않는 거였고.
하지만 스트레스가 풀리기는커녕 점점 더 심각해진다. 방금도 그러지 않았는가, 남다은의 과거를 들먹거리는 자신의 모습을. 하지만 자신이 이렇게 변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그녀는 책임을 남에게 전가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김수현한테.
“…내가 아무리 사람이 좋아도 말이야. 대체 언제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거냐고…….”
아무리 홀플레인에서 구르고 구른 몸이라지만 자신도 한 명의 여성이었다. 능력에 따라 한 사내가 여러 명의 여인을, 또는 반대의 경우도 허용되는 곳이지만 그래도 인간인 이상 사랑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바라는 건 생명체로서의 당연한 권리였다.
하지만 김수현은 그런 면에서 그녀에게 매우 소홀했다. 뭐, 믿기에 중요한 역할을 맡기는 것이다, 라고 애써 자위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몇 개월 동안 방치해 놓는 건 너무한 것이 아닌가.
“그리고서 정작 다른 여자들하고는 꽁냥꽁냥……. 게헨나라는 여자는 임신까지 시켜놓고 남다은하고는 업무시간에 그런 짓을 해?”
다시금 그녀의 눈에 불이 붙었다. 촛불로 일렁이던 방의 그림자들이 일순간 날카롭게 튀어나와 허공을 찢어발긴다. 소리 하나 없는 움직임이었지만 풀풀 풍기는 살기에 방의 온도가 급격히 내려간다. 그녀의 뇌리로 아까의 상황이 생생하게 구현되었다.
자신이 앞에 있음에도 표정관리를 못할 정도로 격한 쾌감에 몸을 떨던 김수현. 그리고 은밀하면서도 은근히 들으라는 듯 꼴깍 꼴깍 삼키던 소리. 입에 정액을 한가득 문채 내가 이겼다라고 소리치는 듯한 남다은의 얼굴이 떠올라 여성으로서의 자존감이 크게 흔들렸다.
“…….”
잠시 격한 감정을 억누르며 고연주가 숨을 가다듬었다. 다시 사그라드는 그림자들. 멍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던 고연주는 불현듯 몸을 일으켰다.
“…나 고연주야. 밤의 여왕……. 그림자 여왕 고연주라고!”
까득, 이를 갈며 중얼거린 고연주가 주먹을 꽉 쥐었다. 마치 자신의 처지를 위로하려는 것처럼 반복하면서 되새기다가 열려있는 창틀 쪽으로 걸어갔다. 소리없이 걸어간 그녀가 창틀 위로 다리 하나를 올린 순간.
펄럭-.
커튼이 살짝 펄럭였다. 그리고 다시 원위치로 돌아왔을 때에는 고연주의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
대도시 바바라. 구 북대륙의 중앙 도시로서 한때 찬란한 과거를 지녔던 도시였다.
신대륙 아틀란타가 발견되면서 대다수의 사용자들이 아탈란다로 이주했다지만 아직 바바라 만큼은 호황을 누리는 상태였다. 물론 일반적인 상업 부류는 신선한 물을 찾아 아틀란타로 옮겨갔지만 고인 물이여야 성황을 누리는 상업도 있는 법이다.
“좋은 술이 들어왔어요~. 다들 들려서 한잔씩 마시고 가세요~.”
“우리는 아리따운 아가씨가 들어왔다고~. 다들 신입 아가씨에게 팁 좀 주고 가지 그래?”
비교적 관리자들의 억압이 줄어들어야만 클 수 있는 사업. 바로 밤의 거리였다.
최고의 호황을 누린다는 코란의 거리를 떠올리면 조금 초라한 건 어쩔 수 없다. 실력자들이 새로운 도시로 이주하면서 비교적 등급이 딸리는 사용자들이 꾸린 만큼, 급이 떨어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문제였다.
하지만 이건 초입부에 불과했다. 실력이 떨어져도 추악한 욕망만큼은 뒤쳐지는 않는다고 자부할 이들이 이곳엔 널리고 널렸다. 이곳의 밤의 거리는,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진가를 발휘한다.
사르륵-.
주로 폭력조직과 흔히 볼 수 있는 술집이 즐비한 첫번째 거리를 다음으로, 두번째 거리부터가 바바라가 자랑하는 밤의 거리였다. 특별한 천막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뀐다.
“이 가게로 올래? 맛있는 걸 준비 했어.”
“맛있는 거? 그게 뭔데?”
“…나.”
앞의 거리에서 여자들이 헐벗고 호객행위를 했다면, 이곳의 여성들은 대놓고 노출을 하고 있다. 누구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였고 다른 어떤 이들은 특별한 코스프레 복장으로 남성의 눈길을 휘어잡았다. 본격적으로 일반적인 법으로 허용되지 않는 부분이 드러나는 곳이 바로 두번째 거리였다.
“어이, 아가씨. 남자가 고파서 왔나? 그렇다면 이쪽으로 오지 그래.”
물론 성에 구애 받지 않는 만큼 남창가도 존재했다. 덩치가 커다란 근육질의 남성이 지나가던 여성에게 허리를 튕기며 유혹한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로 가죽 팬티를 입은 남성이 볼록 튀어나온 부위를 강조한다. 주변의 여성들이 깔깔 웃으며 박수를 쳤지만 남성이 가리킨 로브를 걸친 여인은 코웃음 한번 치고 그대로 무시했다.
“어, 어이! 내가 직접 호명한 거라고? 그냥 가면 후회할 텐데?”
“엿이나 드세요.”
차갑고도 매혹적인 목소리. 순간적으로 남성과 주변에 있던 여인들이 멍하니 로브를 걸친 여인을 바라보았다. 이미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무시하며 앞서가는 여인의 뒷자락을 한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한 가게를 격파한 여인은 계속해서 거리를 걸었다. 그런 그녀에게 끝없는 추파가 던져져 왔다.
“아가씨~.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우리 가게로~.”
“여인이 홀로 이런 곳에 올 이유는 하나밖에 없지. 무엇을 원하나? 우리 가게는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네. 채찍, 가죽 갑옷, 수컷 노예 수인 등, 돈만 있다면 모든 것을 즐길 수 있지.”
“어머, 언니. 몸매가 끝내준다~. 혹시 지저분한 남자들 말고 소중히 보듬어줄 여자애 찾으러 왔어? 그렇다면 이쪽으로…….”
잘생긴 남성, 이상한 가죽 옷을 입은 남성, 그리고 허리에 딜도 벨트를 착용한 여성의 야한 허리놀림에도 여인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가게를 격파해 오던 여인이 끝자락에 다다랐다. 두번째 거리가 끝나는 부근이었다. 잠시 거리를 나누는 천을 바라보던 여인이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였다.
“거기서부터는 위험하다.”
“…….”
“여인이 함부로 들어갈 곳이 아니지. 위험하니 물러나라.”
한 남성이 또다시 말을 걸어온다.
“…….”
후드로 얼굴이 가려진 여인이 가만히 남성을 바라본다. 남성은 허리춤에 찬 단검을 꺼내 허공으로 던졌다. 휘리릭, 회전한 단검은 정확히 여인과 세번째 거리의 입구 사이 바닥에 깨끗이 틀어박혔다.
“…왜 나를 막는 거죠?”
“이 앞은 추악한 욕망이 가득한 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이곳도 더럽긴 매한가지지만 저기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역겹지.”
“…….”
“함부로 가는 곳이 아니야.”
남성이 고개를 젓자 여인이 코웃음쳤다.
“당신이 나에 대해서 무얼 안다고?”
“모르지. 당연히 모른다. 하지만 이건 잘 알고 있다. 네가 향하는 발걸음은 저곳이 아니라는 걸.”
“…어째서?”
“정처를 잃은 발걸음이잖나. 원래 목적은 이 두번째 거리가 아닌가.”
여인이 침묵했다. 가만히 바라보는 시선은 그의 말이 맞다는 것을 나타내 주었다. 그런 여성의 시선을 받던 남성이 몸을 돌렸다.
“책임지진 않는다. 하지만 이곳이 어쩌면 너의 욕망을 들어줄 수 있는 장소 일지도 모르겠군.”
“…….”
그 말을 끝으로 남성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여인은 잠시 서있다가 그가 사라진 건물을 살펴보았다.
붉은 빛으로 가득한 밤의 거리. 그것은 스스로 그 빛을 비추는 게 아니라 욕망을 보다 쉽게 끌어낼 수 있도록 일부러 달아놓은 인위적인 색상이었다. 해서 화려하고 붉은 장식으로 치장된 가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마치 혼자만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수수하기 짝이 없다. 마치 산 한가운데 위치한 허름한 오두막처럼, 초라하기 그지 없는 가게가 바바라의 두번째 밤의 거리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
잠시 우두커니 가게를 바라보고 있던 여인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올라 사내가 사라진 가게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오, 사장. 손님 왔어!”
“내 손님이다. 일단 기다려라.”
혼자 지키던 가게가 아니었는가. 한쪽 구석에 앉아 있던 방정맞아 보이는 사내가 벌떡 일어나 여인을 반겼다. 그러나 가볍게 무시한 여인은 작은 바, 안쪽에서 술을 꺼내는 사내의 앞 좌석에 착석했다.
“내 가게에서는 후드를 벗어줬음 하는데.”
“…….”
“바깥의 더러운 먼지들이 떨어지거든. 냄새 빼려면 꽤나 고생이야.”
덤덤한 사내의 말에 여인이 드디어 후드 자락을 벗었다. 모자가 흘러내림에 따라 여인의 잿빛 머리카락도 따라 아래로 흘러내렸다. 날카롭게 솟아있는 코, 허무하지만 또렷한 초연한 눈동자. 갸름한 턱과 매끈한 입술이 드러나자 옆에서 지켜보던 방정맞은 사내가 감탄사를 흘렸다.
“와, 씨발 존나 예쁘네. 사장, 이거 대박이야. 이 정도면 역대급…….”
“아직 네 차례가 아니다. 입 다물어, 박일.”
“허, 참. 존나 예쁜 여자 보고 감탄도 못하나. 쳇.”
투덜대긴 하지만 박일이라 불린 사내는 남자의 말에 따라 입을 다물었다. 물론 그러면서도 눈으로는 쉴새 없이 고연주를 훑어보고 있지만.
그런 사내의 시선을 가볍게 무시한 고연주가 물었다.
“어떻게 안 거지? 딱히 날 드러내지도 않았는데.”
“무슨 소리냐. 네가 누군지 나는 모른다. 그저 위태로운 발길을 잡아주었을 뿐이다.”
“그것도 궁금하네. 대체 내 어딜 보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야?”
“쉽지. 관심 없는 척해도 너는 호객행위에 모조리 응답했다. 차갑게 거절했어도 일일이 대답을 했다는 건 무언가를 알아줬으면 하는 심리에서 나오는 버릇이다. 여성이 홀로 이곳을 찾아오는 이유는 단 하나. 혼자서 어쩌지 못하는 추악한 욕망을 처리하기 위해서.”
고연주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가 턱을 까딱였다. 계속 말을 하라는 의미.
“느긋느긋한 발걸음엔 주저함이 없었다. 이곳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지. 제일 안쪽의 경매장을 찾아올 생각이었다면 이런 곳에서 노닥거릴 시간은 없었을 것이다. 늦으면 늦을수록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테니까.”
“…엄청난 추리네? 어디 정보 길드에서 일 했어?”
사내는 여전히 등을 돌린 상태였다. 선반에 올려진 잔을 꺼내 깨끗한 천으로 닦는다.
“오래된 일이지만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다. 좋은 기억이라고는 하나 없는 곳이었으니.”
“…숙녀의 속셈을 모조리 파헤쳐 놓고 본인은 속을 숨기다니. 매력 없네.”
“나는 매력을 팔지 않는다. 매력 담당은 저 놈이야.”
“하핫, 드디어 내 차례인가?”
고연주와 두 좌석 정도 떨어져 앉아있던 박일이란 사내가 단박에 고연주 옆자리로 이동했다. 그가 친근하게 웃으며 고연주 어깨에 슬그머니 팔을 올렸다.
“누님, 대체 무엇을 찾아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꽃잎을 따줄 사람을 찾아온 거면 아주 잘 찾아 왔어. 일단 이름이 뭐야?”
“…….”
“아하, 오해하지는 말고. 이쪽 세계에서는 통성명을 나누는 건 철저히 금지되어 있으니까. 내가 물은 건 바로 이쪽이라고.”
노련한 손길로 고연주의 어깨를 손끝으로 쓰다듬던 박일이 반대편 손으로 은밀히 고연주의 가슴에 가져갔다. 몸을 가리는 로브 아래로는 가슴 골이 드러난 치명적인 복장을 하고 있다. 그의 손가락이 조심스레 고연주의 윗 가슴을 찔렀다.
담담히 잔을 닦고 있는 사내를 바라보던 고연주가 말했다.
“보면 몰라? F컵.”
“에, 에, F컵? 오우야, 나 완전 땡잡았……. 나?”
여유롭게 말을 잇던 박일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무언가가 자신의 몸을 타고 올라온 것을.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목 부근에서 숨통을 끊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 역시.
“이 떨거지는 뭐야? 당신의 분위기 랑은 정 반대의 앤데.”
“…각자 맡은 역할이 있는 법이지. 조금 모자라보여도 이쪽에서의 능력은 봐줄 만하다. 덕분에 생계도 아주 잘 유지되고 있지.”
“당신의 능력으로도 충분히 벌어먹고는 살 텐데?”
“이곳에서 고민 상담은 주 품목이 아니라서 말이야.”
동료의 목에 그림자가 흉흉하게 꿈틀거리는데도 사내는 조금의 동요도 없었다. 그런 사내를 희한하게 바라보던 고연주가 손끝으로 톡톡 테이블을 건드렸다.
“가장 진한 걸로.”
“…붉은 욕망. 사람의 마음을 꺼내는데 아주 도움을 주는 술이지. 독하기도 하지만 약간의 미약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세모 모양의 앙증맞은 잔. 익숙한 손놀림으로 잔을 내려놓은 사내가 선반에서 꺼낸 술병을 천천히 기울였다. 쪼르르, 채워지는 반짝이는 붉은 액체에 고연주의 시선이 고정됐다.
“미약이라……. 이것도 알고 준비한 거야?”
“이 거리에서 여자의 욕망이라 함은 뭐가 있겠나. 뻔하지. 어차피 매우 미약한 수준이다. 이걸 먹는다 해서 이성을 잃거나 그러진 않아. 혹시나 그렇다 하더라도 당신 정도의 여자면 단숨에 몰아낼 수 있겠지.”
“나를 안다는 눈치네?”
“알다마다. 조금 놀라기는 했다. 아틀란타에서 바쁘게 움직여야 될 사람이 이런 곳에 나타날 줄은 전혀 몰랐으니.”
고연주의 아미가 찌푸려졌다. 한 번 떠 본건데 완전히 간파 당했다. 어마어마한 정보력. 이런 통찰력까지 지닌 자를 왜 지금까지 몰랐던 걸까?
‘…오래전에 은신한 도피자인가? 아니야, 아무리 뒤쳐진 곳이라 해도 밤의 거리에 내가 모르는 건 있을 수 없어.’
고연주의 의심이 날카로워지고 있음에도 사내는 일절 흔들리지 않았다. 고연주는 서서히 몸을 긴장시켰다. 이유는 몰라도 이 정도의 사람이라면 자신도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생각을 사내는 완전히 부인했다.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된다. 전투 능력으로 따지면 나는 당신의 한 합도 견디지 못하겠지. 그런 남자일 뿐이다.”
사내의 말에서 조금의 거짓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에게서 알 수 없는 신뢰감이 느껴진다. 고연주는 저도 모르게 끌어올렸던 긴장감을 풀고 있었다.
“이곳에 온 이상, 이곳에 온 이유만 생각해라. 그것이 너도 편할 테니.”
“…좋아.”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박일의 목을 조이던 그림자가 사라졌다. 박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고연주를 안고 있던 팔은 풀지 않았다.
“후아, 죽는 줄 알았네. 누님, 정체가 뭐야? 저 사장이 저래도 나한테는 숨기는 게 많은 아저씨라 물어봐도 안 알려 줄 것 같거든.”
“어머, 얘 좀 봐? 그 꼴을 당했는데도 팔을 안 빼네?”
“하하, 사내가 가오가 있지 한번 뻗은 팔을 어떻게 빼?”
그러더니 반대편 손까지 올려 고연주를 완전히 껴안아 버린다. 맞잡은 팔을 조이며 꽉 끌어안는데 고연주가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박일은 고연주의 감촉을 만끽하는데 여념이 없다.
“웃긴 애네? 얘 죽여도 돼?”
“그거야 네 마음이지만 웬만하면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이 가게의 주 수입원이니까.”
“이 얼간이가 그렇게 잘할 거란 생각이 안 드는데……. 참. 이상한 조합이네.”
“와, 이게 F컵의 감촉이구나. 지린다, 지려. 사장! 이거 눌러도눌러도 계속 튕겨져 나온다. 거유는 분명 브라 없으면 처질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전혀 안 그래! 탄력이 끝내줘!”
실제로 박일은 고연주를 껴안으며 팔로 그녀의 풍만한 가슴을 이리저리 누르고 있는 중이었다. 평소라면 단숨에 목이 달아났겠지만 고연주는 이 둘에게 흥미를 느끼던 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눈 앞의 사내와 박일을 높게 평가하는 그의 안목을.
“내 가슴 함부로 만지네?”
“하하, 이곳에서는 암묵적으로 그런 룰이 있어서…….”
“그런 룰 없다.”
“내가 만들었어, 어제.”
사장이 피식 웃었다. 고연주도 철없다 못해 뻔뻔한 박일을 어이없다는 얼굴로 바라본다.
“미안하게도 내 가슴은 특산품이거든. 맛보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해.”
“대가가 뭔데? 내 피 보는 거랑 목숨 건드리는 것만 아니면 모두 낼 의향이 있어.”
“그래? 그거 잘 됐네. 사장님~. 오늘 술값 모두 직원이 낸다네요?”
“잘 들었다.”
피식 웃은 고연주가 앞에 놓여있던 술잔을 한입에 들이켰다. 미처 입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붉은 액체가 한줄기 입가를 타고 흘러내렸다. 매혹적인 붉은 입술과 매우 잘 어울리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박일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누님. 그건 좀.”
“왜? 다 낸다면서? 약속 어기는 거야? 그럼 나도 네가 만든 약속 하나 어겨도 되겠네?”
“…응?”
“가슴 만져도 된다는 룰. 그거 없는 거로 하고 대가 좀 치를래?”
시원한 미소를 짓는 고연주를 보며 박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가 고개를 황급히 저었다.
“아, 아니, 아니! 수, 술값 내가 낼 게.”
“응, 잘 마실 게~. 사장님~. 제일 비싼 걸로 한잔 더.”
“주문 받지.”
이윽고 네모난 잔에 검푸른 술이 담겨 나오자 박일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그 술 역시 고연주는 깔끔하게 원샷으로 넘겼다. 그리고 이어져 나오는 술들.
그렇게 술이 채워지고 비워지고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열 잔이 넘었다. 박일은 완전히 체념한 얼굴이었다. 그런 그가 눈에 불을 켜며 고연주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기 시작했다.
“어머, 어머. 얘 좀 보게? 너 진짜 막 나가는구나?”
“눈뜨고 전 재산 다 털리게 생겼는데 이걸로라도 충당해야지. 어차피 만져도 닳는 거 아니니까 누님은 떼돈 버는 장사잖수. 에이, 어떻게 봐도 내가 손해네!”
“손해?”
허벅지와 허리를 더듬던 손길이 다시 가슴으로 이동한다. 고연주는 피식 웃으며 로브를 벗어 젖혔다. 두꺼운 옷자락이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그녀의 폭발적인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어깨와 윗가슴을 그대로 드러내는 탱크탑 코르셋. 홀플레인에서 김수현만이 유일하게 마음껏 만져도 되는 성지를 박일의 손이 우악스럽게 움켜쥔다.
“손해라고 했니?”
“…와, 씨.”
불만 가득한 기색을 드러내던 박일이 입을 다물었다. 팔로도 미리 느낀 감촉이지만 손에 느껴지는 부드러움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살짝 누르면 쏙 들어갈 것 같이 부드러우면서 어느 정도의 깊이까지 들어가면 더 이상 들어오지 말라는 듯 강하게 튕겨내 버린다.
마치 장인이 만든 고도의 장난감인 것 같아 박일은 홀린 듯 고연주의 가슴을 주물렀다.
“…내가 개이득이었네.”
“그렇지? 그러니 조용히 입다물고 가슴이나 주무르렴?”
“…넵.”
고연주는 박일의 머리를 싹싹 문지르며 다시 채워진 술잔을 입에 가져갔다. 보기 좋게 꼬아진 반곱슬 머리카락에서 기분 좋은 샴푸냄새가 올라온다. 약간은 달뜬 얼굴로 고연주가 다시 사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아직 말하지 않은 게 있잖아?”
“뭐를 말이지?”
“내가 이 거리에 온 이유…….”
“…수없이 말했을 텐데. 이곳에 온 여자들의 목적은 다 같은 맥락이라고.”
“그런 얼버무리는 말 말고. 정확히 말해 주겠어?”
“…….”
가만히 다음 주문을 기다리던 사장이 가만히 고연주를 바라보았다. 고연주의 가슴을 가리는 코르셋은 어느새 박일에 의해 내려간 상태였다. 폭발적인 가슴이 속박이 풀어지자 세상을 만끽하려는 듯 위용을 자랑했다. 물론 곧바로 박일의 손에 의해 붙잡히긴 했지만.
사장이 피식, 웃었다. 그가 정확히 고연주의 시선을 마주한 채로 입을 열었다.
“머셔너리의 2인자 그림자 여왕은 머셔너리 로드와 은밀한 사이일 것이 분명하다. 머셔너리 로드는 그 냉철한 태도와는 달리 여색을 밝히는 사내다. 그림자 여왕은 은밀한 임무를 맡아 장기간 머셔너리 로드의 곁을 떠났다.”
“…계속해.”
“오랜만에 돌아온 그림자 여왕은 머셔너리 로드와 은밀한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그런 여인이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이런 동떨어진 밤의 거리에 모습을 나타냈다…….”
“흐응…….”
사내의 말에 집중하며 고연주가 입을 벌렸다. 살짝 벌려진 입술에서 달뜬 신음이 흘러나온다. 고연주의 풍만한 가슴 위로 이제 막 입을 가져가던 박일이 반색하며 분홍 유실을 깨물었다.
“으응……. 계속…….”
“머셔너리 로드로 달래지 못한 몸을 달래고자 밤의 거리를 찾았다. 뜨거워진 몸을 달래줄 남자를 찾으면서도 자신의 몸을 바란 게 아닌, 여인의 가치를 찾아줄 그런 사내를 찾고 있다. 해서 앞의 호객을 모조리 무시했다.”
“…더. 더…….”
“그리고 지금 여기서.”
사장이 말을 멈추고 몸을 옮겼다. 테이블을 돌아 이제는 박일의 애무를 완전히 허락한 고연주의 앞으로 다가온 사장은 고개를 낮추고 그녀의 시선과 정확히 마주했다.
“그림자 여왕은 자신이 바라던 상품을 찾았다. 몸을 달래줄 박일과, 마음을 정확하게 마주해 보듬어줄 나를.”
“쮸릅, 츄릅……. 쯉.”
“하응……!”
“오연하게 사람을 죽이는 이들의 정점에 선 어둠의 제왕이자, 모든 이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된 그림자 여왕 고연주는!”
“흐응……!”
“그저 자신을 범해줄 남자를 찾기 위해 이 밤의 거리에 나타났다.”
“…정답이야.”
사장의 또박또박 내뱉은 말에 고연주는 환희에 찬 얼굴로 손을 뻗었다. 홀로 열심히 애무를 하고 있던 박일의 머리를 껴안은 그녀가 뒤로 몸을 눕히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림자 여왕으로 홀플레인에 어마어마한 명성을 쌓은 그녀가.
“아흐응……!”
마음에 맞는 남성들과의 잠자리로 외로움을 달래던 보잘것없는 술집 여자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 M E M O R I Z E - IF편 [외로운 그림자 #002] >
털썩-
바닥으로 쓰러진 남녀. 여인은 품에 안겨있는 남자를 향해 환희 넘치는 미소를 보낸다.
“와……. 누님이 그림자 여왕이였어? 정말로?”
“왜. 안 믿겨지니?”
“…아니, 저 양반이 한 말이니 거짓말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조금 믿기지가 않네. 그 소문의 그림자 여왕이 내 아래 깔려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것 치곤 많이 흥분한 거 같은데?”
고연주가 미소 지으면서 무릎을 세웠다. 사내가 움찔 떨었다. 다리 사이로 들어온 여인의 다리. 그 부드러운 살이 노골적으로 남성의 민감한 부위를 문지르고 있다.
“하, 진짜 미치게 하네. 대충 그림자 여왕의 행색을 들어서 야한 여자일 거라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이건 상상 이상이잖아.”
“내 소문이 어떻길래?”
“가슴을 까고 다니면서 남자들의 시선을 즐기는 빗치녀. 그러면서 노골적인 시선을 보내오면 아작을 내버리는 초 사디스트 여자.”
“훗, 정확히 봤네.”
“그러면서 클랜 로드한테는 하염없이 다리 벌리는 걸레.”
“…….”
고연주는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한 미소를 그리고 있는 걸로 보아 심기를 건드린 건 아니라 확신했다. 그리고 그의 생각답게 고연주는 야릇한 숨을 흘리면서 박일의 얼굴을 끌어당겼다.
“그건 좀 잘못된 소문이네.”
“…응?”
“지금 봐. 클랜 로드가 아닌 다른 남자한테 이렇게 다릴 벌리고 있잖아?”
매혹적인 자태. 고연주의 색기 어린 미소를 보며 박일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 바닥에서 일해온 지도 어엿 4년이 지났다. 그 동안 수많은 여성을 상대하며 여인의 욕망에 대해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고연주를 보니 그건 자신의 자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박일이 애써 미소 지었다.
“…그건 아직 섣부른 말이지 않아?”
“응?”
“다릴 벌리기 직전이지, 아직 벌린 건 아니잖아.”
“내가 이제 와서 뺄 거 같니?”
박일은 답하지 않았다. 그의 양손이 고연주의 가슴을 쥐고 있지만 여차하면 그의 손에서 빠져나가는 건 일도 아니다. 그 사실을 박일도 잘 알고 있었다.
“천하의 그림자 여왕이 두말을 할까 싶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지. 뒤쪽 계열에서는 감히 대적할 자가 없다는 그 그림자 여왕이니까.”
“…의심이 많은 애구나?”
그림자 여왕은 웬만하면 뒤통수를 치지 않는다. 그녀의 말만 잘 들으면 건들지 않는다, 라는 소문이 있지만 그거야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은밀하게 다 죽여놓고 소문을 그리 조작하는 건 그녀에게 매우 쉬운 일일 테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믿을 거니? 너무 질질 끌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내게 좋은 물건이 있거든.”
그렇게 말한 박일이 사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금방이라도 입술이 닿을 만한 거리에서 고연주와 눈이 마주쳤다. 생긋 웃는 미소에서 알 수 없는 한기가 몸을 타고 흐른다. 박일은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지금은 사정을 봐주고 있지만 여차하는 순간 자신이 죽는 건 일도 아닐 거란 것을. 단어를 잘 선택해야 한다.
“재미없는 도구를 쓰는 군.”
“어쩔 수 없으니까…….”
고개를 저은 사장은 가게 한 쪽으로 이동했다. 서랍장에서 은빛의 철을 꺼낸 그가 다시 박일에게 건네주었다.
“…수갑?”
그것은 다름아닌 수갑이었다. 고연주는 조금 의외라는 듯 눈을 치떴다. 단박에 그것이 무엇인지 꿰뚫어 본 것이다.
“…다른 오해는 하지 마시고 누님. 이건 단순히 마력 제한용으로서…….”
“알아. 내가 그것도 모를 까봐?”
“그림자 여왕의 주 아티펙트지. 그녀가 잡아 고문한 사용자가 얼마나 될 거라 생각하나.”
“그, 그래?”
박일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박일의 모습을 보던 고연주가 피식 웃었다.
“하여간 겁은 많아 가지고는……. 처음에 당돌하게 들이댄 모습과는 너무 동떨어지는데?”
“…그림자 여왕에게 배까고 들이댈 남자는 없을 거유.”
“그건 그렇지. 사내라는 것들이 배짱이란 게 없어. 자, 채워.”
박일의 머리를 쓰다듬던 고연주가 양 팔을 붙여 보였다. 미소 짓고 있는 그녀를 보며 박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로?”
“속고만 살았니? 빨리 채우는 게 좋을 걸? 내가 참는 건 별로 안 좋아해서~.”
섬뜩한 음성.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일은 얼른 고연주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수갑은 잠시 은은한 빛을 발하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효과 좋네.”
몸에 흐르던 마력이 서서히 느려 지더니 이내 무감감해진다. 고연주가 자신의 팔에 걸린 수갑을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이런 것도 시간이 흐르면서 기술이 발전하는 건지 마력이 제한되는 속도가 꽤나 빠르다.
“자, 그럼.”
마력도 완전히 끊겼겠다, 고연주의 표정이 다시금 욕망으로 물들었다. 그녀의 다리가 살짝 벌어졌다. 도발 어린 눈빛으로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는다.
“이제 어떤 식으로 나를 기쁘게 해줄지 기대가 되네.”
“…온 힘을 다해 봉사하겠습니다, 누님.”
박일 역시 이제야 안심한 미소를 지었다. 여전히 가슴을 쥐고 있는 손. 그가 다시 손가락을 움직이며 살무덤을 천천히 주무르기 시작했다.
뭉친 근육을 풀 듯, 바깥에서부터 천천히 안쪽을 녹이기 위해 힘을 조절한다. 큰 가슴은 남성들이 보기엔 황홀함을 선사하나 정작 소유한 여인들에게는 꽤나 거추장스러운 짐이기도 하다. 순수 지방덩어리라고 해도 이런 거유를 달고 다니면 피로 쌓일 수밖에 없다.
그것을 잘 아는 박일은 단순히 욕정에 휘둘려 움직이지 않았다. 고연주에게 편안함을 선사하기 위해 본능을 억제하고 이성적으로 움직인다.
“흐응, 잘하네…….”
“고맙습니다.”
고연주의 뜨거운 숨결이 흘러나오자 박일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자신의 손결이 그림자 여왕에게도 통한다는 사실에 자신감이 붙었다.
“흐응……. 으음…….”
그렇게 마사지하듯 움직이던 손결도 가슴의 경직이 풀려가며 점차 강해졌다. 그리고 그것이 완연한 욕정에 다가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응…. 흥…. 으응…….”
박일의 손이 젖가슴을 떡 주무르듯 주무른다. 안쪽 깊숙이 넣은 손가락이 한번 움켜쥘 때마다 가슴 상단부가 터질 듯이 부푼다. 단순한 지방덩어리인데도 탄력이 어마어마해 손가락을 밀어낸다. 지금껏 수많은 여성들을 주물러 왔어도 이런 감촉은 처음이라 박일 역시 감탄했다.
“누님, 이 가슴은 만져도 만져도 질리지가 않네요. 그동안 이걸 혼자 소유 했단 말이지? 그 머셔너리 로드님이?”
“…너, 자꾸 그이 얘기 꺼낼래?”
“…민감한 이야기인가?”
“으응…! 어찌 보면 지금 그이를 배신하고 있는 거니까…….”
“그런가? 그런 것 치곤 누님 여기가 너무 빨딱 서있는 거 같은데.”
“으읏?!”
고개를 내려 젖가슴 첨단에 있는 유실을 바라보던 박일이 이로 살짝 유두를 깨물었다. 갑작스런 날카로운 감각에 고연주가 움찔 떨었다.
“…너.”
“으음~. 이게 그림자 여왕님의 젖꼭지 맛이구요~. 누님, 원래 이렇게 민감했어? 아니면 머셔너리 로드의 이야기가 나오니까 흥분한 건가?”
“…그 이야기 하지 말랬지.”
고연주의 스산한 눈빛이 박일을 향했다. 하지만 그 반응을 보고도 박일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보라는 듯 혀를 길게 내밀어 고연주의 유두를 진하게 핥았다.
“그렇게는 못하겠는데?”
“…읏!”
“누님 반응 보고 선택하려고 했는데 이런 반응을 보이니 내가 어떻게 그만두겠어.”
양쪽 가슴을 부풀어 오르도록 꽉 움켜쥐고 첨단의 유실을 마음껏 맛본다. 쭙, 쭙, 음란한 소리가 울리게 일부러 크게 빤 박일이 다시 진한 미소를 그렸다.
“…무슨 소리야?”
“누님, 머셔너리 로드 이야기 꺼낼 때마다 흥분 하잖아.”
“…….”
“이렇게 빨딱 빨딱 서잖아. 분명 아래도 찔끔찔끔 젖어오겠지. 그거 알아? 누님 허벅지 엄청 떨려.”
고연주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자신을 가지고 노는 듯한 박일을 모습을 보며 고연주는 자신의 생각이 조금 미숙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여성 경험이 많아 입 좀 놀릴 줄 아는 사내라고 생각했었는데 단순히 말만 많은 게 아니었다.
“…여자에 대하서 잘 아네?”
“말했잖나. 이쪽 분야의 전문가라고.”
대답은 사장에게서 나왔다. 머지 않은 곳에서 의자에 앉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느낀 고연주는 피식 웃었다.
문득 이 상황이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묘한 분위기의 사장에게 이끌려 들어왔는데 정작 몸은 다른 남자가 탐하고 있다. 자신 정도면 꽤나 좋은 여자라고 고연주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장이란 작자는 자신의 색정 어린 모습을 보아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당신 혹시 고자야?”
“설마. 단지 이성을 제어하는 게 남들보다 조금 뛰어날 뿐이다. 그러니 이 일을 하고 있지.”
“…그거 참 불행하네. 으흥……!”
다시 가슴을 잘근잘근 씹는 감각에 고연주가 몸을 비틀었다. 자신에게 신경 써달라는 듯 박일이 격하게 애무해 온다. 그가 쭈욱 빨며 고개를 들자 젖가슴이 그의 입을 따라 딸려가다가 뽁, 하고 떨어져 내렸다.
“푸핫, 됐다.”
“흐읏…! 흐응…….”
가슴이 출렁이는 감각. 2차 성장이 온 후로부터 수년간 느껴왔던 무게감이지만 지금은 사뭇 다른 느낌. 박일의 애무로 민감해져 있는 가슴이 흔들리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생각 외로 몸이 많이 흥분하고 있다.
“자,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 볼까요?”
“…너. …읏?!”
일부러 상스런 소리를 하는 걸까? 괜히 듣기 불편해져 고연주가 지적하려 했지만 박일의 행동이 먼저 이루어졌다. 젖가슴을 만지던 손에 힘을 풀자 물풍선이 흘러내리 듯 가슴이 좌우로 벌어졌다. 젖무덤에 가려 보이지 않던 명치. 그 부근을 혀끝으로 핥으며 박일이 점차 그녀의 몸 아래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누님, 이거 아끼는 옷이야?”
“…아니.”
“오케이.”
찌지직-
고연주가 입고 있던 탱크탑은 그대로 아래로 내린 상태였다. 가슴은 드러났어도 제대로 벗기지 않아 복부가 가려져 있다. 고연주의 대답을 듣자마자 박일은 마력을 일으켜 고연주의 탱크탑을 반으로 찢어버렸다.
“…너 진짜 빠꾸 없구나?”
“누님도 좋으면서.”
“참나.”
어이가 없다는 얼굴. 그러나 그런 박일의 행동에 고연주도 꽤나 흥분한 상태였다. 대외적으로 S로 알려져 있는 그녀지만 의외로 M의 기질을 가진 그녀였다. 그렇기에 일부러 김수현을 자극해 격렬한 밤을 이끌지 않았던가.
이번엔 상대가 김수현이 아닌 일개 밤일하는 사내였다. 김수현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으며 그 말썽쟁이 안현한테도 비할 바 못되는 보잘것없는 사내. 그런 사내에게 깔린 채 옷이 갈갈이 찢겨지고 있다.
“하아…. 하아…. 흐응……!”
“쯉.”
“흐응……!”
그렇게 몸 안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는 와중 몸의 중심을 깊게 찌르는 감각에 고연주의 허리가 높이 튕겨 올랐다. 반사적으로 입을 다문 고연주는 본인조차 놀란 얼굴로 박일을 내려다 보았다.
“기분 좋았어? 여기가 기분 좋구나?”
“…너.”
길게 내민 혓바닥. 그 송곳같이 뾰족한 끝으로 움푹 파인 배꼽을 찌른다. 단순히 스치는 감각에도 몸이 떨릴 정돈데 생각보다 강한 힘이 그녀의 배를 깊게 찔러왔다. 고연주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너 그거 하지마. 하면 가만 안 둬.”
“응? 이걸 갑자기?”
“하지 말라면 하지마. 이건 화낼 거야.”
그림자 여왕의 보복. 평범한 이라면 몸서리를 치며 물러날 일이지만 박일은 가만히 미소 지을 뿐이었다. 그는 다시 상체를 올려 고연주와 시선을 맞추었다. 고연주의 몸이 움찔 떨렸다.
“화낼 거야? 그건 이 일이 끝나고 날 죽이겠다는 소리?”
“…너 죽고 싶니?”
“아니, 그럴 리가. 하지만 이러면 이야기가 다르지. 이건 누님이 바란 일이라고. 이런 식으로 나오면 흥이 깨져버리는데.”
“…….”
고연주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박일을 노려보았다. 표정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지만 은은한 노기가 서린 상태였다. 당장이라도 수갑을 풀고 목을 찔러 올 것만 같은 표정.
그럼에도 박일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런 모습에 오히려 고연주가 당황스러울 정도.
‘설마 이 수갑 하나 믿고 이러는 건가?’
마력을 제어하는 수갑. 확실히 마력을 사용하는 사용자들에게 치명적일 수도 있는 장비인 건 확실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림자 여왕이었다. 아무리 마력을 제한한다 하더라도 그녀에게는 감히 견줄 수 없는 체술이 있다. 마력이 없더라도 이 두 사내는 가볍게 쓰러뜨리고 가게의 문을 나갈 자신이 있었다.
‘그것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시선은 박일을 향하면서도 의식은 조금 떨어진 사장에게 향한다. 사람의 내면을 정확히 파악할 줄 아는 저 사내라면 그녀가 아무런 뒷배없이 순순히 묶일 거라고 생각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장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뭔가 숨겨둔 수가 있나?’
괜스레 고연주는 조금 불안해지는 걸 느꼈다. 너무 실력에 자만하여 오바했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사장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 모를 믿음이 들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만난 지 한시간도 되지 않는 남자에게 믿음이 들다니. 그럴 마음이 들게 한 건 홀플레인에 와서 김수현 외에 이 사내가 처음이었다.
“누님, 그러지 말고 우리 솔직해집시다.”
“…또 무슨 말을 하려고?”
“누님도 여기 온 이상 깔끔 떨 생각 없잖아?”
“…….”
“괜한 이성 유지하지 말라니까? 그저 이끄는 대로 흘러가자고. 나는 누나한테 봉사하고 누나는 가만히 봉사를 받는 거야. 그러다가 마음 내키면 누나가 나한테 상을 줄 수도 있는 거고 나는 그걸 위해 더 열심히 할 거고.”
박일의 청산유수 쏟아져 나오는 말에 고연주는 입을 다물었다. 웃으면서 헛소리 하는 것 같아도 그의 말이 고연주의 양심을 찔렀다.
고연주의 팔에 스르르, 힘이 빠진다. 그걸 느낀 박일이 좀더 얼굴을 가까이 했다.
“그러니까 즐기자고. 이곳에 온 목적. 잊지 말자고.”
“…마음대로 해.”
“오케이!”
결국 고연주도 그 입 발린 말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자신도 익숙지 않은 자극에 본심이 나오고 말았다. 이건 자신의 실수였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다시 눈을 부릅 뜰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코앞까지 다가온 사내의 얼굴이 곧장 입술을 겹쳐왔기 때문이다.
“으읍……!?”
“쯉, 쯉.”
꽉 다물린 고연주의 입술을 사내의 혀가 빨아들인다. 닫힌 여인의 입술을 열기 위해 윗입술, 아랫입술 번갈아가며 입술로 베어 문다.
“으흐응…! 흐읏!”
반사적으로 고연주의 몸이 비틀렸다. 방금까지 반발심이 일어서 인지 입맞춤에 강한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배꼽에서 느껴지는 자극에 고연주는 몸을 파르르 떨었다.
“흐으응! 하읏……!”
“어허, 아직도 반항이 심한데? 누님, 그만 할까?”
박일이 물었지만 고연주는 답할 수가 없었다. 배꼽을 침투한 손가락이 집요하게 안쪽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살 바깥을 자극하지만 복부 안쪽 깊숙한 곳을 만지는 감각에 고연주는 쉴새 없이 몸을 떨었다.
“거, 거기는 그만……. 제발 그만……!”
“그만해? 여긴 그만 자극해? 그러면 반항하지 말고 입술 벌려.”
“아, 알겠으니까……. 제발 그만……! 읍?!”
살면서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각. 이런 성감대가 있는지도 몰랐던 그녀가 다급히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었다. 그녀가 준비하기도 전, 틀어막 듯 겹쳐오는 입술에 그녀는 눈을 부릅떴다. 반항 하듯 고개를 이리저리 비틀었지만 이미 완전히 맞물린 입술에 그녀는 제대로 된 반항도 하지 못했다.
“…우웁!”
그런 그녀의 입 안으로 사내의 혀가 침투해 들어온다. 바로 밀어내려 했으나 뱀처럼 유려하게 들어온 사내의 혓바닥은 그녀의 반항을 너무나도 쉽게 제압했다. 배를 자극할 때도 느꼈던 혀의 강함. 그 단단한 혀가 그녀의 혀를 가볍게 누르고 입안의 공간을 차지한다.
“으읍……. 흡…. 흐읍…….”
“츄릅, 츄릅, 쮸릅…….”
고연주의 혓바닥을 완전히 누르고 그녀의 타액을 탐한다. 사내의 흡입에 입안의 침이 사라지는 걸 느낀 고연주는 눈을 꼭 감았다. 무언가 해보려 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순식간에 박일의 기에 눌린 것이다.
‘아, 안돼……. 이건 좀 위험해…….’
사내에게 완전히 기선을 제압당한다. 자신은 사내에게 봉사를 받고자 이곳에 왔다. 범해질 생각이 있긴 했어도 이런 식의 압도를 당할 것이란 건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되면 안된다. 해서 무언가라도 해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그런 시도마저 고연주는 너무나도 가볍게 저지당했다. 배꼽을 자극하던 박일이 다시 강하게 손가락을 찔렀기 때문이다.
“흐응……!”
“하하, 누님 여기 너무 약하잖아! 천하의 그림자 여왕한테 이런 약점이 있을 거라고 누가 생각 했겠어?”
사내의 노골적인 비웃음. 하지만 분하게도 고연주는 그런 사내에게 아무런 보복도 하지 못했다. 배꼽을 후비는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에도 몸이 감전된 것마냥 떨린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제 몸 같지 않은 이 몸을 최대한 억누르는 것밖에는 없었다.
“누님, 혀 내밀어.”
“으읏……. 시, 싫어…….”
“어허!”
“흐윽……?!”
다시금 눌러오는 손길.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전류에 고연주의 허리가 다시금 튕겨져 올랐다. 그런 격한 그녀의 몸짓에 박일은 얼른 손바닥으로 그녀의 배를 지긋이 눌렀다.
“으응……. 하, 하지마…….”
“혀 내밀어.”
“으, 응.”
방금까지 강하던 그 그림자 여왕은 어디 갔을까? 어느새 고연주의 얼굴은 자신이 모르는 쾌감에 겁먹은 여인이 되었다. 본능적으로 내민 혓바닥에 박일이 쾌재를 부르며 자신의 혀를 갖다 대었다.
“흐응……. 으응…….”
“쯉, 쮸릅……. 츕.”
그리고 다시 시작된 입맞춤. 아니, 이건 입맞춤이 아니었다. 단순히 혀와 혀가 얽히는 음란한 행위. 혀로 하는 섹스나 다름 없는 그러한 행위였다.
‘아, 안돼……. 이, 이러다간 빠져나갈 수 없어…….’
사내에게 놀아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고연주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배에 올려져 있는 사내의 손. 그것이 과거 목에 겨누어 졌던 칼날보다 더욱 무섭게 느껴졌다.
어떻게 해야할까. 고연주는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계속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혓바닥을 노니는 사내의 행위가 점점 격해진다. 그녀의 의식이 자꾸만 그곳으로 끌려갔다.
“하으……. 하으…….”
“누님, 표정 죽이는데.”
완전히 녹아 내린 얼굴. 여인의 저항을 무너뜨리는 데에는 다른 방법보다 이런 진한 입맞춤이 최고다. 그런 사실을 박일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입맞춤은 단순히 다른 육체의 결합과는 달랐다. 민감한 점막을 자극하면서도 끓어오르는 열기로 머리를 들끓게 만드는 데에는 이만한 행위가 없었다.
해서 박일은 이러한 입맞춤을 집요하게 노려왔다. 그리고 그 효과를 여실히 보고 있는 중이었다.
완전히 풀린 눈. 그리고 녹아있는 얼굴. 사고가 정지한 여성의 얼굴을 보며 박일은 천천히 바지춤을 풀러 내렸다. 사내가 입었던 천이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얇디 얇은 팬티만 남았다.
“아…….”
그리고 가운데 솟은 부위를 허벅지에 갖다 대자 고연주의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그런 그녀의 눈동자가 다시금 또렷해지려 한다.
“자, 누님. 누님이 그토록 바라던 거 여기 있어.”
“…….”
“다음은 어떻게 할까? 누님이 알려 줄래?”
고연주는 그걸 말이라고 하냐는 듯한 얼굴로 박일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곧이어 이런 질문을 하는 박일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너 진짜.”
“응? 어서 말해줘. 나, 누님이 하지 말라는 거 해서 조금 겁난단 말이야. 앞으로는 누님의 허가가 떨어지는 것만 할게.”
능글맞은 얼굴에 고연주는 입을 다물었다. 박일의 의도. 그건 그녀가 이곳에 온 이유를 상기시키기 위함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사내의 리드에 조급해진 여인의 마음을 다잡기 위한 행위. 이곳에 누가 그녀를 보냈느냐, 바로 본인이 아닌가, 하고 박일은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자식. 대체 정체가 뭐야?’
당연히 고연주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방금까지 압도된 것을 생각하면 계속하기가 꺼려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만하라고 하기에는 이곳에 온 그녀의 목적과 매우 부합하다. 물론 이 둘을 죽여버리고 없던 일로 하면 그만이긴 하지만, 그렇기에는 박일의 손에 몸이 너무 달아올랐다.
인정하기 싫으면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토록 원했던 쾌락을 줄 수 있는 이. 이 박일보다 나은 자를 찾기엔 힘들 거라는 것도.
‘…이대로 갔다간 분명히 말려. 하지만 그만큼 헤어나올 수 없는 쾌락을 주겠지…….’
김수현에게 느껴온 서운함, 사내의 손길을 받지 못했던 지난 날의 욕망들. 그것이 쌓이고 쌓여 지금은 여인에게 있어 씻지 못할 상처가 되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여인이 된 고연주는 그러한 유혹을 떨쳐내지 못했다.
“…해.”
“응? 뭐라고?”
“하던 대로 하라고.”
허가가 떨어지자 박일의 입가가 비죽 올라갔다. 그가 환호하며 물었다.
“어디까지 하라고는 말 안했다?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거지?”
“…실망시키기만 해봐. 바로 목 따서 대문 앞에 걸어버릴 테니까.”
살벌한 경고. 하지만 박일에게 있어 그건 단순한 여인의 투정이나 다름 없었다. 고작 이정도로 허물어진 여인. 그것을 완전히 녹여버릴 자신이 그에게는 있었다.
“물론입죠.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지금껏 느끼지 못할 만큼 떨게 해드릴 테니까.”
“…….”
사내의 자신만만한 대답. 그 모습을 보며 고연주는 알 수 없는 감정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 M E M O R I Z E - IF편 [외로운 그림자 #003] >
떨고있는 여인. 그 위를 정복한 사내가 음침하게 웃는다.
“…….”
사내가 손을 들어 보였다. 마치 고연주한테 잘 보라는 것처럼 손가락을 유려하게 움직인 박일이 천천히 그녀의 배로 손을 가져갔다.
“…읏.”
다시금 느껴지는 손길. 복부를, 배꼽 주변을 살금살금 문지르는 손길에 고연주는 몸을 움츠렸다. 그동안의 훈련으로 이루어진 매끈한 복부가 탄탄한 형태를 이루며 긴장한다. 그것을 만끽하 듯 박일이 그녀의 배 이곳저곳을 천천히 문지른다.
“누님, 머셔너리 로드도 여기 알아? 누님이 굉장히 약하다는 거?”
“…몰라.”
“이런이런. 사랑하는 님이 여자에게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나 보군.”
“…닥쳐.”
으르렁거리는 여인. 역시나 박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 입 벌려.”
그가 다시 얼굴을 가까이했다. 숨결이 닿는 거리에서 여유 있게 말하자 여인이 움찔 떨었다. 반항하고 싶어도 반항할 수 없다. 이미 그에게 맡기기로 한 이상 여기서 더 거부해도 이상한 그림이 된다.
“…….”
해서 고연주는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천천히, 그녀의 붉은 입술이 벌어진다. 하지만 그녀가 이어질 행위에 마음을 다잡기도 전, 사내의 혀가 깊숙이 그녀의 입안으로 침투되어 들어왔다.
“으응……. 읍……!”
“핥아.”
“…….”
입안을 노니는 혀. 같은 혀로는 절대 거부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에 고연주가 허덕였다. 그렇게 입을 완전히 허용한 상태에서 사내가 명령했다.
“안 할거야? 흐음, 방금 한 말과 많이 다른데.”
“…….”
자신 마음대로 하겠다는 말. 거기에 허락을 내린 이상 고연주는 그의 말에 따라야했다. 어느새 그에게 완전히 눌린 상태라는 걸 인정한 것이다.
고연주의 시선이 누그러들자 박일이 다시 길게 혀를 내밀었다. 고연주의 벌어진 입으로 긴 혓바닥만 쏙 들어갔다. 잠시 후, 고민하던 기색이 흐르던 고연주가 눈을 꾹 감고 천천히 입술을 오므렸다.
“쯉……. 쯉, 쮸읍…….”
“음…….”
입술의 조임과 혀의 움직임을 느끼며 박일이 만족스런 신음을 흘린다. 단순히 그 소리만으로도 고연주는 몸서리치는 굴욕감을 느껴야 했다. 자신을 한 명의 여인이라 생각하면서도 그림자 여왕으로 이 세계에 군림하던 그녀였다. 이런 굴욕은 참아낼 수 없는 치욕 과도 같았다.
‘…이 녀석. 일부러 이런걸 시키는 거야.’
하지만 그러면서도 몸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은 점차 커져만 갔다. 그것이 점점 크게 다가올 때마다 고연주는 박일의 요구에 거부할 수 없을 것이란 것을 잘 알았다. 당장에 배를 어루만지는 것만으로 아무런 반항도 할 수가 없다. 이 불씨가 더 커지면 자신은 어떻게 될까?
“흐응……. 음…….”
그것은 확신할 수 없다. 아니, 이미 알고 있지만 억지로 그 생각을 떨쳐냈다. 자신이 어떻게 망가질지 뻔히 알면서도 그것을 알고 당하는 것은 그녀로서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림자 여왕도 별 수 없는 여자군.’
그렇게 파르르 떨며 자신의 말을 따르는 고연주를 내려다 보던 박일은 속으로 미소 지었다. 겉으로 내색하고 있진 않아도 그 역시 속으로 엄청난 환호성을 내지르는 중이었다.
그럴 수밖에. 세상이 그토록 떠받들던 그림자 여왕이 아닌가. 아무리 자신의 성격이 이렇다 하더라도 목숨을 걸고 하는 짓이다. 떨리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이토록 강하게 나선 이유는 바로…….
‘저 아재의 감은 진짜 대단하단 말이야.’
바로 한쪽에 앉아있는 사장에게 있었다.
이곳에 떨어지고 나서 일반적인 사용자의 과정을 따라가지 못해 낙오됐던 자신을 받아준 자. 할 줄 아는 거라곤 여자를 다루는 솜씨 밖에 없던 자신에게 딱 맞는 일을 준 사람.
박일은 사장의 정체를 모른다. 하지만 자신을 받아준 그는 4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한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해서 그는 누구보다 사장을 믿고 따르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가 아무런 만류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그의 감. 아니, 그의 능력을 믿고 박일은 고연주에게 과감하게 밀고 나갈 수 있었다.
콧대 높은 그림자 여왕에게 봉사 받으면서 그녀의 몸을 느낀다. 상체를 가깝게 붙이자 풍만한 가슴의 탄력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자신이 세워놓은 유실. 그 단단한 감촉에 자극이 가도록 가슴을 맞닿아 문지르면서 그는 손가락을 구부려 다시 고연주의 배꼽을 파고들었다.
“응핫……!”
“이야, 진짜로 잘 느낀단 말이지. 이러니까 괜히 궁금해지잖아.”
“으읏……!”
고연주의 허리가 파르르 떨렸다. 허벅지로 그녀의 다리를 감싸 움직이지 못하도록 한 다음 그는 손가락에 힘을 싣고 그대로 아래로 그어 내렸다.
“그림자 여왕의 비밀스런 부위는 대체 얼마나 더 민감할까 하고.”
“…흐응. 모, 몰라.”
고연주는 타오를 듯이 뜨거워진 얼굴에 고개를 돌렸다. 배꼽을 지나 음부로 향하는 손가락을 느끼며 그녀가 다시 파르르 떨었다. 허벅지가 훤히 드러난 짧은 바지. 워낙 잘록한 허리 덕에 공간이 있는 앞부분으로 사내의 손가락이 스윽 들어갔다.
“누님의 털이 닿았어.”
“…….”
“아래도 속옷 안 입고 있었네?”
고연주는 여전히 눈을 꾹 감은 채였다. 수치심에 물든 얼굴을 즐기며 박일이 손을 움직였다. 은밀한 부위가 닿기 바로 직전 부분에서 손바닥으로 수북한 여인의 숲을 어루만진다.
“뭐, 나야 편하지만. 원래도 아래 안 입고 다녀?”
“…오늘은 특별히.”
“음~. 면도한 느낌이 있는데. 혹시 머셔너리 로드가 볼까 봐 미리 정리해 둔 건가?”
일부러 의식하도록 유도하는 사내의 말. 그걸 다 알면서도 고연주는 절로 반응하는 자신의 몸을 느꼈다. 절로 허벅지가 오므라드는 느낌. 사내의 손가락이 움찔 떨면서도 다시 유려하게 움직인다.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박일은 분명 자신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엄청 뜨겁네. 누님 털.”
“…….”
“분명 아래도 흠뻑 젖었겠지? 이정도로 습할 정도면 따로 풀지 않아도 바로 들어갈지도 모르겠는데?”
귓가를 자극하는 목소리. 고연주는 작은 사내의 입김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꼈다. 그저 눈을 꼭 감고 사내의 다음 행동을 기다린다.
“자, 드디어 그림자 여왕님의 속살을 맛볼 시간인가.”
“…….”
“뭐라고 말 좀 해봐. 나만 혼자 하는 것 같잖아.”
사내의 비웃음이 가득한 말에도 고연주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차츰차츰, 자신의 음모를 비비며 자극하던 사내의 손길이 점차 아래로 내려온다. 그리고 자신의 약점을 후벼 파던 그 손가락이 음핵에 닿는 순간 그녀는 순간적으로 몸을 관통하는 전류에 파르르 떨었다.
“흐읏……!”
“오우, 누님. 엄청난 감돈데? 이러면 내가 못 움직이잖아.”
“으으…….”
박일이 씨익 미소 지으면서 말하자 고연주는 그제서야 자신이 한 행동을 인지했다. 어느새 움츠러든 허벅지가 박일의 손을 꽈악 물고 있다. 그녀가 화들짝 놀라서 허벅지를 열자 박일의 손이 한순간에 아래로 쑥 내려왔다.
‘아, 안돼. 이건 너무…….’
고연주는 저도 모르게 눈을 떴다. 황급히 고개를 돌린 그녀는 바로 지척에서 봐오는 박일의 시선과 마주쳤다. 그녀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너무 많이 젖었어…….’
박일의 손이 닿자마자 느껴진 질척함. 마치 젤이라도 듬뿍 발라놓은 것 같은 기분에 자신도 모르게 당황했다. 엄청 느끼고 있다는 걸 알았음에도 이토록 꿀을 흘려대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뒤늦은 반응은 박일에게 통하지 않았다. 꼼짝도 하지 못하도록 손바닥 전체로 고연주의 음부를 누른다. 그가 천천히 원을 그리며 팔을 움직이자 질척거리는 소리가 가게 내부에 울려 퍼졌다.
척, 척, 척.
“와우, 이거 대박인데. 누님, 들려?”
“아읏, 윽……?!”
“사장님, 들려? 이거 완전 늪이야, 늪. 아하핫!”
“흐, 흐으윽?!”
촥, 촥, 촥, 촥, 촥.
무슨 이런 게 있냐는 듯한 목소리로 박일의 팔이 세차게 휘둘러진다. 고연주가 허리를 크게 튕겼다. 이리저리 허리를 비틂에도 박일의 손은 멈추지 않는다.
“아흐으윽?! 머, 멈춰!”
“와, 진짜 대박이다. 내가 수많은 걸레들을 만나봤지만 누님 만한 여자가 없었는데. 누님이 진정 걸레 중에 걸레였던 거야.”
고연주가 고개를 맹렬히 내저었다. 그런 여성을 폄하하는 말이 그녀의 마음을 세게 할퀸다. 하지만 그 자극은 오히려 쾌감이 되어 그녀의 몸을 괴롭혔다. 음부에서 올라오는 강렬한 쾌감이 한순간에 몸을 뚫고 올라와 그녀의 머리를 세게 후려쳤다.
‘으으……. 아, 안돼……!’
너무 많이 느낀다. 머리에 울리는 경종을 느끼면서도 고연주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몸서리치던 그녀의 복근이 힘껏 도드라졌다.
“아니야…. 아니야아……. 아니야아아아아!”
“오우, 쉣.”
여인의 허리가 그대로 튕겨져 오른다. 대충 여인의 반응을 느끼던 박일이 적당히 힘을 주어 여체를 눌렀지만 생각보다 격렬한 반응에 살짝 놀란 얼굴을 보였다. 그런 와중에도 그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손바닥 안에서 쉴새 없이 꿈틀거리는 살을 느끼면서 쏟아지는 애액을 그녀의 음부에 넓게 펴 바른다.
척, 척, 척, 척.
“아흑……! 아흐윽……! 으흐으…….”
“…진짜 지리네.”
격렬한 경련. 그녀가 조금씩 숨을 몰아 쉬며 진정하는 기미가 보이자 박일은 그녀의 바지 속에서 손을 꺼내 보였다. 흠뻑 적셔진 손. 마치 진득한 액체 속에 손을 담갔다 뺀 것마냥 흠뻑 젖은 손을 보며 박일이 어이없는 얼굴을 했다.
“…누님 진짜 많이 쌓여 있었구나?”
“…으흑.”
“이러면 더 장난은 못 치겠네. 좀더 괴롭히려고 했는데 이제는 본격적으로 해 드릴게.”
반쯤 풀린 눈으로 고연주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워낙 강렬하게 다가온 쾌감인지라 그녀는 박일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인지하지 못했다.
스르륵, 스륵.
그렇기에 박일의 마지막 남은 천이 벗겨지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이미 힘껏 성이 나있는 양물이 튕겨져 나오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손에 젖은 꿀을 양물에 펴 바르며 고연주의 다리 사이로 침입해 들어왔다.
“자, 이거 보여?”
“……어?”
“누나가 방금 싸지른 물. 굉장하지?”
눈앞에서 흔들어 보이는 손에 고연주의 초점이 천천히 돌아온다. 여전히 멍한 얼굴을 하던 고연주는 흠뻑 젖은 박일의 손을 보고는 숨을 들이켰다.
“치, 치워…….”
“나 참. 본인이 쏟은 물인데 본인이 치워야지. 에잉, 뭐 그건 나중에 해결하기로 하고.”
박일이 허리를 붙였다. 그가 다가옴에 따라 무언가가 자신의 은밀한 부위에 닿은 것을 느낀 고연주가 흠칫 몸을 떨었다. 그녀가 설마 하는 눈으로 박일을 바라보았다.
“…너.”
“뭘 그런 얼굴을 하고 있어. 이미 다 이야기 된 거잖아.”
“…그, 그래도 아직은 좀…….”
“또 그런 소리 하네. 이미 이야기 끝난 거니까 내 맘대로 한다.”
그가 허리를 들썩이자 단단한 물건이 음부를 간질이는 게 느껴졌다. 아직은 바지 건너편에 있지만 어차피 하나의 얇은 천에 불과하다. 그걸 증명하듯 박일은 손에 마력을 일으켜 바지의 안쪽 부위를 가볍게 잘라내었다.
“…자, 잠깐만!”
“쉿.”
가랑이 부분을 가리던 부위가 잘리며 이제는 치마처럼 무방비가 되었다. 훤히 드러난 그녀의 음부. 이미 거의 풀려 벌어져 있는 분홍 살 속으로 사내의 귀두가 살짝 파고들었다.
“으, 으으.”
“뭘 으으야. 누님 경험 많잖아.”
“지, 지금은 너무 느껴져서…….”
천천히 자신의 안을 벌리며 들어오는 감각. 단순히 누르는 압박일 뿐이지만 그 자극 하나하나에 몸이 관통 당하는 듯한 쾌감을 느낀다. 그 쾌감에 고연주는 절로 침을 삼켰다. 아직 끄트머리뿐이지만 이 정도의 쾌감이 느껴진다. 이것이 끝까지 들어온다면? 고연주로서는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아, 안돼……. 여기서 삽입 당하면 진짜 망가져버려……. 어떻게든 해야…….’
뭐라도 해야 한다라는 생각에 몸을 움직이려던 찰나였다. 박일이 그녀의 팔을 묶은 수갑을 잡아 위로 쳐올렸다. 한순간에 팔을 구속당한 고연주가 만세하는 자세로 박일을 쳐다보았다.
“허튼 짓은 하지마.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거 누님도 잘 알잖아?”
“…….”
“그림자 여왕이라며? 그 정도나 되는 인물이 자꾸 구차하게 이럴래? 약속한대로 우리 약속 지키자.”
손을 짓누르며 박일이 그녀의 얼굴 앞으로 고개를 숙였다. 숨이 닿는 거리에서 남녀의 시선이 조용이 오고 갔다. 고연주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저 입술을 깨문 채로 천천히 시선을 내려 사내의 시선을 회피할 뿐.
그 반응을 지켜보던 박일이 슬쩍 미소 지으면서 천천히 허리를 앞으로 밀었다. 미세한 저항. 하지만 남자를 잘 아는 여인의 살은 곧 저항을 풀며 깔끔하게 사내를 받아들였다.
“으, 으으…….”
“…….”
점차 안을 넓히며 들어오는 존재감. 지금껏 느껴오던 것과는 한참이나 다른 느낌에 고연주는 숨을 멈추었다. 그녀의 속이 꿈틀거리며 들어온 사내를 맞이한다.
“와, 이걸 이렇게 조여오네. 누님, 완전 명기잖아?”
“시, 시끄러워…….”
박일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처음에 느낀 고연주의 속살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그녀의 음부가 대량의 애액을 쏟아낼 때만 해도 기대 만발이었는데 생각보다 잘 풀어진 모습을 보며 역시 경험이 많은 여자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삽입을 한 순간 그 생각을 바로 고칠 수밖에 없었다. 마치 들어온 침입자의 신분을 확인하는 것마냥 조심스레 달라붙어오던 속살이 허가가 내려지면서 순식간에 돌변해 달라붙어 온다. 마치 녹아 내린 떡처럼, 남성을 꾹꾹 쥐어 짜는 감각에 박일은 저도 모르게 허리를 떨었다.
반면 고연주는 다른 생각에 몸을 떨었다. 드디어……. 결국 이런 식으로 다른 남자를 받아들였다, 라는 현실에 암담함이 몰려온다.
‘…그래. 나는 어쩔 수 없는 이런 여자였던 거야.’
방금까지 지녀왔던 김수현에 대한 원망감이 눈 녹듯 사라진다. 그 자리에는 오로지 그에 대한 죄책감만이 자리할 뿐이었다.
‘미안해요, 수현……. 나는 그저 이런 싼 여자였을 뿐이에요…….’
차오르는 눈물에 그녀가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걸 억제할 수는 없었는지 눈가에 한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갑작스런 눈물에 박일이 당황하려 하는데 그런 그의 앞으로 하나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어느새 멀리 있던 사장이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가녀린 새가 우는 군.”
“…….”
“하지만 그 모습조차 아름답다.”
사내의 무감정한 목소리. 그에 반응해 고연주의 눈이 뜨였다. 머리맡에 서있는 남자를 고연주는 가만히 응시했다.
“무엇이 그리 슬프지? 그에 대한 죄책감? 이 일에 대한 후회?”
“……당신.”
“사람은 누구나 괴로움을 안고 살아가지. 언제나 행복할 수많은 없다. 울 수도 있고 가만히 견딜 수도 있고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참을 수 없을 수도 있다.”
사장은 천천히 무릎을 굽혀 고연주에게 다가갔다. 그의 아련한 눈에 고연주는 홀리 듯 그의 시선을 응시했다. 사내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 누구도 묻지 않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죄책감 따윈 가질 필요가 없어. 그저 이곳에서 쏟아내고 위로 받으면 된다. 네 행위는 잘못되지 않았다.”
“으, 으으…….”
볼을 쓰다듬는 두터운 사내의 손길. 그 손길에 고연주의 얼굴이 무너져 내렸다. 그녀의 마지막까지 버티던 최후의 벽이 무너져 내렸다.
“읏차!”
철썩.
그리고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 박일이 세차게 허리를 튕겨 올렸다.
*
척, 척, 척, 척.
사내의 격한 움직임에 여체가 크게 흔들린다.
이제는 완전히 벗겨진 몸. 새하얀 육신이 사내가 박을 때마다 여지없이 흔들렸다. 한 손으로는 가득 담을 수 없는 거유가 물결치듯 위아래로 출렁인다.
“으응, 흣……. 흐응, 흣……!”
“누, 누님…! 나 또 싸……!”
“으응……. 또 싸줘어……!”
여인의 다리를 활짝 벌려 그 안을 파헤치던 사내가 몸을 잔뜩 웅크렸다. 있는 힘껏 틀어박은 양물이 크게 움찔이며 정을 토해내기 시작한다.
이미 수차례 이루어진 사정. 고연주는 몸을 활짝 벌리며 사내의 정을 받아주었다. 마찬가지로 절정에 다다른 그녀 역시 환희에 찬 얼굴로 몸을 파르르 떨었다.
뷰릇, 뷰륵. 부륵…….
“으으…….”
또 한차례 뜨거운 정을 쏟아낸 박일이 지친 숨을 내쉬며 고연주 위로 쓰러졌다. 젖가슴을 베개 삼아 기대 숨을 몰아 쉬던 박일이 그녀의 젖꼭지를 빨기 시작했다.
“쯉, 쮸릅. 쯉.”
“흐응……. 응…….”
그가 얌전히 젖을 빨자 고연주는 팔을 둘러 그의 머리를 안아주었다. 사랑스럽다는 듯 쓰다듬는 손길. 그런 여인의 손길을 느끼자 박일은 다시 아래가 뻣뻣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후우. 누님 진짜 마약같다. 벌써 네 번이나 쌌는데 질리지가 않네.”
“…그러니? 그럼 또 할까?”
“으으, 날 완전히 미라로 만들 생각이요? 조금은 쉬었다 합시다. 내가 테크닉에는 자신 있는데 몇 번이나 싸질러도 멀쩡한 절륜남 스타일은 아니라서.”
박일은 그답지 않게 질색한 얼굴로 몸을 떨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고연주가 지친 미소를 지었다.
“…그런 말 치고 안은 벌써 회복되어 있네?”
“…그래도 좀 쉽시다.”
힘 빠진 목소리로 말하는 고연주의 목소리에 박일은 절로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자신에 손에 놀아나던 그림자 여왕. 그녀와의 위아래는 사장에 의해 마음의 벽이 무너진 순간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조금은 남아있던 이성과 김수현에 대한 죄책감. 그것이 발목을 잡아 박일이 완전히 우위를 잡았으나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면서 그림자 여왕은 완벽히 변했다.
“난 쉬기 싫은데?”
“…누, 누님.”
“몸이 식는게 싫거든.”
“…….”
마치 처음에 자신을 두고 여유를 가졌던 것처럼, 그녀가 박일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육체적으로 박일을 억압하고 즐긴다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육체적으로 우선권을 갖는 건 박일이었으나 상황은 고연주가 원하는 대로 흘러갔다. 바로 이처럼.
“조금만 더 힘내 줬으면 좋겠네~. 그렇게 자신 만만해 하던 꼬맹이가 어디 갔을까?”
다 지친 목소리로 도발하는 여인. 사내로서 어떻게 참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박일도 이쪽 일로는 전문가였다. 그는 서서히 양물을 조여오는 속살을 느끼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너무 그렇게 놀리면 남자로서 좀 화가 나는데?”
“…화가 나면……. 한번 화풀이 해보던가.”
“난 화가 나면 화를 내는 성격이 아니라 심술을 부리거든. 한번 부려봐?”
박일의 자신만만한 말에 고연주도 진득한 미소로 화답했다. 박일은 이제 완전히 조여든 음부에 양물을 쿡 찔러 넣었다. 고연주가 허리를 비틀며 다시 신음을 끌어올린다.
“…흐응! 이번엔 어떤 식으로 날 구워 삶을 작정이실까.”
“아니, 그다지 대단한 건 아니고. 그냥 하나 신기한 거 알려줄까 해서.”
“…음?”
박일은 고연주로서도 상대하기 버거울 의외성을 가진 남자였다. 그가 속셈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연주는 기대감을 가지며 박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여자를 좀 많이 안아 봤잖아? 그것도 좀 비상식적인 루트로. 그래서 알게 된 건데 여자는 몸으로 남자를 기억해.”
“……?”
“여기 말이야 여기. 이쪽에 잔뜩 박아주면 이쪽이 그 남자의 모양으로 변한다고.”
고연주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하자 박일이 그녀의 안쪽을 쿡쿡 찔렀다. 갑작스럽게 사내가 안을 자극하자 고연주는 허리를 떨면서 몸을 비틀었다.
“…흐응! 딱히 그런 건 못 느꼈는데…….”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나 혼자 눈치챈 거라고. 나도 처음엔 몰랐는데 하다 보니 알았다니까?”
박일은 한번 들어보라는 식으로 말하면서 허리를 움직이는데 멈추지않았다. 다시 민감한 부위를 헤집으며 꿈틀거리는 사내에 고연주가 신음을 흘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으, 으흑. 무슨 얘길 하려는 건데……? 아흥!”
“왜, 누님도 잘 알다시피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잖아. 남자는 뭐, 좆맛이 다르다던가 하는 그런 느낌 말이야.”
“으응……. 그렇지……. 사람마다……. 그게 다르지…….”
좆맛. 그런 상스러운 말에 고연주는 흐느꼈다. 그럴 때마다 안쪽 살이 꿈틀거리며 남근을 삼켜 댄다. 고연주가 그런 말에 자극을 많이 받는다는 걸 알고 박일은 상스러운 말을 일부러 사용했다.
“여자들도 마찬가지거든. 여자마다 보지맛이 다 달라. 근데 신기한 건 경험 있는 여자들은 대부분 가지각색으로 맛이 나뉘거든? 근데 처녀들은 대부분 다 비슷한 맛이 난다 이거야.”
“…처녀도 먹어… 봤어? 홀플레인에서 처녀인 애들이 많지는 않을 텐데…….”
“당연히 지구에서 먹어봤지. 이쪽은 씨가 말랐어 씨가.”
과거 황금사자 비리 사건. 입지를 보장해주는 대신 여성 사용자들은 고위 간부에게 성접대를 해야 했다. 물론 황금사자를 박살내며 그 부정적 뿌리를 뽑아 내긴 했지만 그건 대외적인 부분에서 였다. 약육강식이 원칙인 이 세계에서 결코 흔하지 않은 일이 아니다.
“아무튼……. 그래서……?”
“이상하잖아. 당연히 경험이 없으니 뻑뻑한 건 어쩔 수 없다지만 금방 느끼는 애들이 있거든. 근데 걔네들도 다른 처녀 애들하고 그다지 다르지 않은 느낌이라니까?”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지 말고……. 그래서 말하려는 바가 뭔데……. 으으윽!”
가파르게 오르는 흥분감을 느낀 고연주가 턱을 쳐들었다. 그리고 파르르 떨리는 몸. 남근을 뽑아낼 듯 수축해오는 느낌에 박일은 저도 모르게 괄약근을 꽉 쥐었다.
“이 누님, 진짜 잘 가네……. 아무튼 계속 이야기 하자면 좆맛을 모르는 애들은 아직 길들여지지 않았다는 거지. 반면 맛을 아는 애들은 그 맛을 알게 해준 남자들의 모양으로 변해있다 이거야.”
“…으, 으읏……. …그래서?”
“누님도 마찬가지다~ 이거지.”
박일이 진한 미소를 짓고 허리를 깊숙이 찔러 넣었다. 하지만 뿌리가 완전히 파묻히기 전에 절묘하게 멈추었다. 고연주는 아직까지 여운이 떠나가지 않은 얼굴로 박일을 바라보았다.
“…….”
“여기지?”
장난기가 가득한 목소리. 고연주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어느 지점까지 들어온 박일의 남근이 집요하게 그곳을 노리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왜 대답이 없어. 여기 맞잖아.”
“……너 진짜.”
“머셔너리 로드. 그 남자는 딱 여기까지 들어왔지?”
박일이 멈춘 그곳. 흐물흐물하게 물어오는 여성의 질은 딱 여기까지만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그 안쪽은 아직 미지의 세계 인양 조금은 단단하게 긴장되어 있는 게 느껴졌다.
고연주는 다시 굳어진 얼굴로 박일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의 시선을 여전히 싱글벙글 웃으며 박일이 맞받아쳤다. 그녀를 자극하 듯, 허리에 힘을 주며 그녀의 특수한 지점을 조금씩 짓누르기 시작하자.
“……귀신이네.”
고연주가 이실직고했다. 무표정이었던 그녀의 입꼬리가 다시 미소를 그리며.
“그럼 여기서부터는 처녀네.”
“흐이익……!?”
다시금 행위가 시작되었다. 박일의 가일층 힘차게 내밀어진 허리에 고연주가 눈을 부릅떴다.
지금껏 일정 범위까지 침입하지 않았던 사내의 남근이 처음으로 뿌리 끝까지 틀어박혔다.
< M E M O R I Z E - IF편 [외로운 그림자 #004] >
“…….”
경악한 얼굴. 고연주는 턱을 벌린 채 벌벌 떨었다. 그런 그녀의 입으로 길게 뺀 박일의 혀가 침투해 들어갔다.
“…….”
굵직한 혀가 뱀처럼 입안을 헤집는데도 고연주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입이 엉망진창 범해져도 그녀의 의식은 오로지 뱃속에 있는 사내의 육신에만 몰려있을 뿐.
“…내가 말했지? 처녀의 보짓살은 다 비슷비슷 하다고. 누님 내 귀두를 문 쪽, 그쪽만 딱 걔네들하고 비슷해.”
“…….”
“내가 누나 처녀 따먹었네?”
그제서야 고연주의 의식이 돌아온다. 그녀가 저도 모르게 삼았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너 자꾸만 말로…….”
“킥킥, 이게 내 특기인 걸. 누님도 그게 흥분되잖아? 아까부터 미친듯이 조여오고 있다고.”
고연주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의 말마따나 자신의 안이 미칠 듯이 떨려오는 것이 스스로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는 경련. 그럴 때마다 사내의 남근이 생생하게 느껴져 온다.
“근데 그거 알아? 아직 다 안 들어갔어.”
“…너 진짜.”
“읏차!”
몸을 완전 밀착하던 사내가 몸을 털어 자세를 다시 잡았다. 단순한 그 움직임만으로 엄청난 자극이 전해져 오자 고연주가 그를 끌어 안았지만 그는 상체를 떼며 고연주를 타일렀다.
“잠시만. 조금만 더 넣고.”
“아, 안돼……. 여기서 더 들어오면 진짜 안돼…….”
“왜? 어떨 거 같은데?”
“나……!”
저도 모르게 답하려던 고연주는 순간 입을 다물었다. 왜냐하면 지금 자신이 하려던 말이 그동안의 자신과 굉장히 동떨어진 단어였기 때문이다. 그림자 여왕이 되면서 단 한번도 하지 않았던 말.
“…….”
“왜? 뭔데? 뭔데 갑자기 입을 다물어?”
“…모, 몰라.”
“그래? 그럼 계속 넣는다?”
“자, 잠깐!”
사내가 여인의 허벅지를 쥐고 허리를 전진시킨다. 안쪽의 남근이 자신의 내부를 넓히며 들어오자 고연주가 다급히 말렸다. 박일은 순순히 그녀의 의도대로 동작을 멈춰주었다. 그가 웃으며 내려보자 고연주는 입술을 깨물며 눈을 내리깔았다.
“…어.”
“응? 안 들리는데?”
“…더 이상 넣으면 나 죽는다고.”
쥐꼬리만한 소리. 하지만 박일은 똑똑히 들었다. 그림자 여왕의 한없이 나약해진 모습이 그의 남심을 한없이 불태웠다. 순식간에 피가 몰리며 하체가 뻐근해 짐을 느낀다. 고연주는 갑자기 팽창하는 남근을 느꼈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 잠시만……!”
“누님 진짜 대박이다. 아니다. 이젠 일부러 그러는 건가?”
“무, 무슨 소리야. 그리고 무슨 생각이야?”
“뭐긴, 이럴 생각이지!”
불길한 생각에 고연주가 그를 밀어내며 허리를 비틀었다. 하지만 단단히 휘어 잡힌 허벅지 때문에 그녀는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잘록한 허리가 도드라지도록 넓게 벌어진 골반. 그것을 손잡이 삼아 틀어 잡은 박일이 한순간에 허리를 깊게 전진시켰다.
“아, 안돼! 그, 그러지 마아아악!”
“자, 들어갔다.”
고연주가 턱을 높이 쳐들었다. 경악한 그녀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한없이 크게 벌어진 턱에서 침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 아아…….”
“누님. 느껴지지? 안쪽 깊이 들어간 거?”
“……아아아.”
“누구 말로는 이게 자궁이라 하더라고. 보통 이런 쪽에 종사하는 여자들 보면 자궁 쪽이 많이 망가져 있던데 누님은 멀쩡한가 보네?”
완전히 꽉 문 촉촉한 살 안쪽으로 이것보다 더한 매끈한 감각이 귀두를 옥죄어온다. 여자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생명체를 형성하는데 있어 절대 없어서는 안되는 신비한 곳. 그곳에 웬 사내의 물건이 침투되어 들어온 상태였다.
고연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살면서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충격. 그 충격은 방금까지 느꼈던 쾌감마저 깡그리 잊어버릴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다가왔다. 단숨에 뇌가 반이 날아가버린 듯한 느낌.
‘…이, 이건 안돼. 이것 만은 안돼.’
이대로는 진행돼서는 안된다고. 이 다음으로는 절대로 넘어가면 안된다고 그녀의 본능이 미칠 듯이 경종을 울렸지만 그녀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 움직이면 바로 시작해버리겠다는 무언의 협박. 안쪽을 꾸욱 누르는 남근을 통해 박일의 의사가 그대로 전해져 들어왔다.
“아, 안돼. 이, 이건 정말로 안돼에…….”
“다들 그렇게 빌었지. 근데 나중에는 다들 울면서 매달렸어. 나 없이는 못산다고 말이야.”
피식 웃으면 넘긴 박일이 천천히 허리를 끄집어냈다. 깊숙이 틀어박혔던 남근이 보드랍게 감싸오는 자궁을 달고 아래로 내려왔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라 1미리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고연주는 머리 속에 벼락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아아아아아……! 아, 안돼! 머, 멈춰!”
“응? 아직 아무것도 안했는데?”
“모, 몰라! 그,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어어!”
그런 박일의 허리를 고연주의 다리가 옭아매었다. 뒤로 들리던 박일의 허리가 다시금 고연주의 가랑이에 딱 붙는다.
“허어, 자궁은 안된다더니 다시 안으로 집어넣었네? 꽤나 마음에 들었나 봐?”
“아으으으…….”
짓궂은 말. 하지만 그런 박일의 목소리는 고연주에게 들려오지 않았다. 그녀의 온 신경은 안쪽에 못 박히 듯 들어온 남근의 끄트머리에만 몰려 있었으니까.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온 힘을 다해 사내와 얽힌 여인의 소중한 곳을 떨어뜨려 놓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으, 으으…….”
허리를 웅크린 채 삽입된 곳만 응시하는 고연주를 박일은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녀가 무엇에 열중하는지는 바로 알아차렸다. 그녀의 배가 수시로 수축하며 안쪽의 살이 미세하게 꿈틀거린다. 귀두에 걸린 자궁. 어떻게든 떼어내려고 발악하지만 몸 내부의 기관이 의지에 따라 마음대로 움직일 리가 없다.
“에이, 그래선 안 빠진다니까.”
“어, 어떻게 해야 되는데?”
“이렇게 그냥 확!”
제발 살려달라는 고연주를 보며 미소 지은 박일이 그대로 허리를 쭉 빼내었다. 고연주의 눈이 튀어 나올 듯 커졌다. 그것도 잠시, 그녀의 허리가 활처럼 휘며 그대로 뒤로 젖혀졌다.
“아—————.”
“자, 간다!”
단숨에 귀두까지 뽑혀 나온 남근을 다시금 안쪽 깊숙이 박아 넣는다. 경악하여 입을 벌린 고연주가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질렀다. 그런 그녀의 젖가슴을 한입 크게 베어 문 박일은 감전된 것마냥 경련하는 그녀의 내부를 느끼며 걸신들린 듯 허리를 흔들었다.
“허윽? 힉?! 끄읍?!”
철퍽, 철퍽, 철퍽, 철퍽.
흠뻑 젖은 살이 부딪히며 음란한 소리가 울렸다. 그런 소리와 함께 꾹꾹 조여오는 살을 느끼며 박일이 침음성을 흘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파닥거리는 그녀의 한쪽 다리를 어깨위로 올린 그가 더욱 격렬하게 허리를 흔들었다.
‘하, 완전히 맛이 갔네.’
눈동자까지 반쯤 뒤집어진 상태로 완전히 망가진 고연주를 보며 박일은 다시금 하복부에 피가 끓어오르는 걸 느꼈다. 그림자 여왕을 완전히 망가뜨렸다는 사실에 사내로서 어마어마한 달성감이 다가왔다. 그가 자궁을 쿡쿡 찌를 때마다 고연주는 비명도 아닌, 바람 빠진 소리만 흘릴 뿐이었다.
“히익! 끄으으으윽!”
돌연 고연주가 허리를 뻣뻣이 세우면서 허벅지에 힘을 주었다. 절정. 양물을 꽉 쥐듯 조여오는 감촉에 박일 역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 그의 하체로 뜨거운 액체가 쏟아져 내린다.
쪼르르르….
“누님……!”
애액을 쏟아내다 못해 누런 소피까지 쏟아지는 걸 본 박일은 순간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걸 느꼈다. 침으로 범벅이 된 고연주의 입술을 다시 한번 탐하며 미친 듯 허리를 내지른다. 퍽퍽퍽, 살을 치는 소리에 폭발할 것 같은 심장을 움켜쥐며 그 역시 터져 나오는 정을 그대로 내뱉었다.
뷰륙, 뷰류륙, 퓨부붓.
“아, 아윽……!”
머리가 새 하애지는 쾌감. 그 헤어나올 수 없는 나락에서 사내의 정이 여인의 자궁 속으로 주입된다. 정신을 반쯤 잃은 상태에서 여체는 자신을 수정시키려는 사내의 씨앗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 본능적으로 남근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단 한 방울도 남김없이 빨아내겠다는 것처럼, 쪽쪽, 빨아내는 질의 움직임에 박일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그녀의 안으로 모조리 쏟아냈다.
“하아, 하아, 하아…….”
완전히 탈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탈력감에 박일의 몸이 고연주의 위로 쓰러졌다. 뜨거운 그녀의 육향과 탄력적인 가슴이 고스란히 느껴져 왔지만 박일은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대로 죽어버려도 괜찮다는 생각만 머리 속에 가득할 뿐.
“이 누님 진짜 대박이네…….”
그림자 여왕. 그 이름의 값어치 때문에 심리적인 면에서 크게 작용한 건지, 그 역시도 이 정도의 쾌감은 처음이었다. 뇌가 타버릴 듯한 쾌감은 다시 생각해도 몸이 절로 저린다. 박일은 새삼 고연주를 다시 바라보았다.
“으, 으으. 으으으…….”
이제 조금씩 진정이 되는 자신과는 달리 아직까지 절정의 늪에서 빠져나오고 있지 못했다. 이제는 조금도 서지 않는 양물을 빼내자 부드러운 살은 머금었던 정액과 함께 사내를 놓아주었다.
뷰륙, 뷰륙.
꽤나 오랫동안 사내를 받아냈던 음부는 사내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하고 잠시간 그 상태로 유지했다. 벌어진 구멍에서 사내가 쏟아낸 정이 울컥거리며 흘러내린다.
“누님, 이러다가 진짜 임신하는 거 아냐?”
“……으으.”
거의 의식을 잃은 와중에도 그 말에는 반응하는 걸까? 고연주의 허벅지가 움찔 떨렸다.
원래라면 수정할 일 따윈 조금도 없다. 마력 수치가 한참 위인 고연주의 자체 마력으로 사내의 씨앗 따윈 단숨에 무력화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마력을 제한하는 수갑을 차고 있다. 만약 이 상태에서 수갑을 풀어주지 않는다면? 임신을 하지 않을 거라고 박일은 확신할 수 없었다.
‘이대로 임신시킬까?’
순간 혹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자 여왕이라는 거물을 이렇게 가지고 노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이대로 계속 자신에게 속박 시킨다면?
“추잡한 욕망이다. 욕망은 욕망 선에서 끝내.”
하지만 천천히 걸어오는 발소리에 박일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사장, 그가 천천히 다가와 고연주 손에 걸려있는 수갑에 손을 뻗었다.
“쩝, 진짜로 그럴 생각은 없었수. 그냥 상상만 했수.”
“상상은 무슨. 완전히 그럴 생각이던데.”
“흠흠.”
괜히 속을 후비는 말에 박일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제 완전히 수갑이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가자 괜히 아쉬운 마음만 남는다. 그런 그의 마음을 읽은 건지 사장이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선은 철저히 지켰던 네가 이리도 흔들리다니. 과연 그림자 여왕이군.”
“어쩔 수 없잖수. 그 그림자 여왕이요. 뭇 사내들의 욕망의 정점에 서 있는 여자. 하지만 치명적인 맹독이 있어 아무도 손을 뻗지 못했던 꽃이 내 아래 무방비로 뻗어있어. 그 어떤 남자가 흔들리지 않을까.”
“이해를 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만…….”
사장이 허물어진 고연주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 움찔 떤 그녀였지만 이내 따뜻한 손길을 느낀 건지 조금씩 편안한 얼굴로 돌아온다.
“그러는 사장도 오늘따라 적극적이시던데?”
“…그래 보였나?”
“아까 슬쩍 보니 완전 섰더만. 나 사장 아재 발기한 거 처음 봤수.”
사장이 쓰게 웃었다. 과거 ‘그 일’이 일어난 후, 단 한번도 여인에게 욕정을 품은 적이 없다. 아니, 품어도 칼같이 쳐냈다. 그의 강철 같은 이성은 성욕이라는 욕망마저 지배했다.
그런 그가 오늘 처음으로 욕망에게 밀렸다. 만약 박일이 혼자만의 소유욕에 휘둘리지 않고 그에게 권했다면 그도 참전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음, 이렇게 싸질러 놓고 할 말은 아니지만 사장도 함 하실라우? 안은 좀 치워 놓을 테니까.”
“…다음에 기회가 온다면.”
“와, 정말로?”
박일이 깜짝 놀란 눈으로 반색했다. 그게 그렇게도 놀랄 일이었나. 사장은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강철같이 살아왔는지 새삼 느꼈다. 그가 조용히 한 여인을 떠올렸다.
‘세월이 지나면 칼 같은 다짐도 무디게 만드는 군.’
자신이 살면서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인. 그리고 그 여인을 잠시 잊을 정도로 매혹적이었던 여인.
“…….”
잠시 고연주를 내려본 사장이 몸을 돌렸다. 그가 물었다.
“다 끝났나? 그렇다면 슬슬 정리하지.”
“어? 음, 원래는 그러려 했는데 조금만 더 가지고 놀래. 그래도 되지?”
“…가능하다면야.”
사장의 우려를 눈치챈 박일이 킥, 웃었다. 자신의 양물은 이미 힘을 잃어 축 늘어진 상태다. 손으로 툭툭 쳐도 반응할 기미가 안보인다. 하지만 그는 유려한 손가락을 놀리며 씨익 웃어 보였다.
“사장도 알잖아. 사실 내 주특기는 이쪽이란 거.”
“…지독하군.”
“내가 원래 그렇잖아.”
손가락을 이쪽 저쪽 움직이던 박일은 고연주의 음부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퉁퉁 불은 여인의 살을 지긋이 주무르며 비비던 그가 오므려 붙인 손가락을 그대로 쏙 밀어 넣었다.
“……!”
활짝 벌어진 여인의 다리. 다시 침입한 외부자의 존재에 그녀의 허벅지가 파르르 떨렸다.
“자, 완전히 떨어뜨려 줄게. 절대로 잊지마? 이 쾌감을 준 나를.”
“으으……. 으으으으……!”
단번에 세 손가락을 밀어 넣은 사내가 천천히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질척한 여인의 내부를 헤엄치듯 헤집으며 그의 팔이 점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여인이 다시금 시작된 쾌락의 물결에 허리를 끊임없이 들썩거렸다.
촥, 촥, 촥, 촥, 촥.
“아, 아아……. 아아아아앙!”
푸슈슉, 푸슉.
여인의 허리가 번쩍 들렸다. 힘이 잔뜩 들어간 허벅지가 다시금 경련하며 시원한 분수를 쏟아낸다.
“와하하하하! 사장! 이거 봐!”
그런 여인의 욕망의 파도를 고스란히 받으며 사내가 크게 웃었다. 사내의 정복욕. 그것을 충만시키는 짜릿한 쾌감에 그 역시 다시 열기에 미쳐가기 시작했다.
*
“그럼 누님. 또 올 거지?”
“…….”
사내의 밝게 묻는 물음에도 여인은 답하지 않았다. 후드를 꾹 눌러쓴 여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옆으로 박일이 바짝 다가섰다.
“…읏!”
“왜 대답이 없어? 또 올 거지?”
“…아, 알았어.”
그제야 대답하는 여인. 고연주는 파르르 떨며 간신히 답했다. 그가 장난스레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단순한 손짓에도 고연주는 몸에 벼락이라도 친 것마냥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으으!”
“어이쿠, 이러다 넘어지겠네. 허벅지에 힘 꽉 줘. 그래서 걸어 다닐 수나 있겠어?”
이미 무너져 내린 하체. 몸을 부들부들 떠는 그녀는 좀처럼 바르게 서지 못했다. 사내의 손이 몸에 닿을 때마다 자꾸만 풀리는 다리에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왜? 좀만 더 쉬고 갈래?”
“으, 아, 아냐. 지금 갈래…….”
걱정스레 묻는 박일. 고연주는 기겁을 하며 거절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이대로 다시 들어간다는 건 호랑이 굴에 제 발로 들어가는 거나 다름 없었다. 방금 전의 기억을 떠올린 고연주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쩝, 아쉽네. 그럼 잘 가고. 앞으론 혼자 갈수 있지?”
“…어, 어.”
“마음 같아선 워프까지 데려다 주고는 싶은데 정리 좀 해야 할 것 같거든. 그게 뭔지는 잘 알고 있지?”
“……?”
의아해하는 고연주를 보며 박일은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보았다. 나란히 붙인 세 손가락을 마치 허공을 헤집는 것처럼 접었다 폈다를 반복한다. 그것을 본 고연주의 얼굴이 화르륵 타올랐다.
“누가 마룻바닥을 흠뻑 적셔 놔서 말이야. 물걸레질 좀 빡세게 해야겠어. 그것도 꽤 오랫동안.”
“으, 으으…….”
한없이 붉어진 얼굴. 그의 손가락에 끝없이 허덕이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 고연주는 그 지옥 같던 쾌락에 다시금 몸이 떨려오는 것 같았다.
“이, 이만 갈게. 들어가.”
“응, 잘 가. 그리고 약속했다? 다음에 꼭 오기로? 나 더 열심히 준비해 놓을 테니까.”
“주, 준비는 무슨…….”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냐며 고연주는 애써 몸을 돌렸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놀려 가게를 벗어나려는데…….
“준비는 철저하게 해놔야지.”
“…….”
“다음은 후장……. 건드릴 건데.”
뒤에서 갑자기 어깨동무를 해오며 박일이 귓가에 속삭였다. 또다시 선언된 그의 음란한 말에 고연주는 다시금 하복부에서 뜨거운 기운이 쏟아져 나오는 걸 느꼈다.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거야.”
“누님, 그쪽 처녀 아니잖아.”
“……!”
“슬쩍슬쩍 건드리니 완전 풀리던데. 경험 있어 보이더만.”
고연주가 다시 한번 경악한 얼굴로 박일을 바라보았다. 바로 지척의 거리에서 박일이 쪽, 하고 입술을 맞췄다. 고연주가 황급히 물러났다.
“너, 너, 너……!”
“반응을 보니 머셔너리 로드가 뚫어준 건 아닌 것 같고. 숨겨진 그림자 여왕님의 과거인가?”
“……너 조용히.”
“그 부분은 다음에 샅샅이 파헤쳐 보도록 합시다. 자, 그럼 이만~! 조심히 가. 괜히 그런 식으로 걷다가 지나가던 남자들한테 잡혀서 따먹힌다~.”
그 말을 끝으로 박일은 몸을 돌려 가게 안으로 쏙 들어갔다. 이어 완전히 닫히는 문.
“…….”
천천히 흔들림이 줄어들며 잠잠해지는 문을 보던 고연주는 떨리는 몸을 감싸 안았다. 마지막으로 남긴 박일의 말. 그 말 한마디에 몸에 다시 불이 붙고 있다. 그녀가 입술을 깨물며 떨리는 몸을 애써 진정시켰다.
‘아, 안돼. 지금 이대로 다시 돌아가면 정말로 못 빠져나와.’
이대로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망이 충만했지만 그녀는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참아냈다. 이를 악물며 몸을 다시 돌린 고연주는 자신이 그대로 헤쳐왔던 밤의 거리를 다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들어왔을 때의 당당했던 걸음과는 다른, 매우 위태위태한 걸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