鬼?祭 (11)
중학교 건물 뒤편 주차장엔 선생들이 들이 타고 온 듯 보이는 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아내의 하얀 차도 그 속에 섞여 있었다.
여전히 수업중인 건지 학교 안은 너무나 고요했다.
[은비야. 몇 시에 수업 끝나? 데리러 갈려고......]
[오빠. 오늘 카페 안 해요?]
[응....오늘까지만 쉬려고....]
[두시에 수업 끝나요, 정리하고 하면.....두시반쯤에 나갈 거 같아요]
운전석에 앉아 아내와 주고받은 메시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머릿속엔 다른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방.
최 진욱의 그 방에서,
노트북 화면에 향해 있던 미나의 떨리던 눈빛과 그리고 뒤에서 미나의 입을 틀어막고 있던 그 하얀 손이 천천히 풀리던 그 순간.
몇 분간의 적막 속에서 귓가에 윙윙 되던 알 수 없는 그 소리가 지워지지 않았다.
갑자기 울리는 스마트폰에 시야가 다시 돌아왔다.
장 실장이었다.
[여보세요?]
[김....김 사장님.....]
잠시 동안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여보세요?]
[김 사장님. 지금 카페 왔는데 안열었네요?]
[아네.....일이 좀 있어서....오늘 쉽니다....]
[김 사장님. 어제 도대체........]
[네? 어제요? 무슨.....]
[아니....김 사장님.....]
장 실장이 내게 무슨 말을 하려다 계속 머뭇거리는 것 같았다.
[김 사장님 괜찮습니까?
아니......아닙니다......다시 통화합시다]
내 대답을 듣기 전에 전화는 그렇게 끊겨 버렸다.
고요하던 교정에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건물 복도에 학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게 보였다.
다시 시간이 지나, 무리 지어 다니던 학생들의 모습이 하나둘씩 사라져갈 때 즈음, 학교 건물 뒤편 출입구에서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건물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들과 섞여 있는 아내의 화사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깔끔한 아이보리색 투피스 정장을 입은 아내의 시선이 무엇을 찾는 듯 잠시 두리번거리다 내 차에 머물러 있었다.
아내는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 웃으며 간단한 인사를 하곤 곧바로 경쾌한 그 걸음이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나는 차에서 내렸다.
“오빠!”
아내가 내게 풀썩 안겼다.
“어어.......사람들 본다....”
아내와 함께 있던 선생들의 시선이 그런 나와 아내에게 향해 있었다. 그중 몇 여선생들은 웃으며 인사를 건네 듯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선생님 좋겠다. 데이트하고.....호호호.....”
한 여선생이 내 차 앞을 지나가다 웃으며 말했다. 그때서야 아내의 몸이 내게서 서서히 떨어졌다.
몇몇 남자 선생들이 무표정하게 이쪽을 흘깃거리는 게 느껴졌다.
“은설이는 집에 있던데, 미나는요?”
차가 교문을 빠져나가자 아내가 물었다.
“피곤해 보여서 오늘 쉬라고 했어. 나도 컨디션이 좀 안 좋고...”
“네? 아파요? 어디요?”
나를 보며 마냥 환하게 웃던 아내의 표정이 단번에 변해버렸다.
“하하....그런 거 아니야. 점심 먹었어?”
“네. 조금....”
“그럼 우리 간단하게 디저트 먹고 들어가자....”
아직 점식을 먹지 않아, 배가 고팠던 이유도 있지만, 그 보다 아내의 작고 앙증맞은 입술이 오물거리며 무엇인가를 먹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컸다.
차가 들어선 곳은 아내와 가끔 가던 샐러드바 레스토랑이었다.
“여기....오랜만이다....”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자 아내가 나지막이 혼잣말로 소근 댔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홀에는 여유로이 각양각색의 샐러드와 해산물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내가 몇 번 Bar로 가서 돌아오자, 테이블에는 예쁘게 담긴 음식들이 하나둘씩 놓여있었다.
아내의 반짝이는 눈이 감기고, 포크에 있던 음식이 아내의 입속으로 들어가자, 붉은 립스틱이 발린 그 입술이 오물거리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나는 어느새 배가 고팠던 것도 잊은 채, 진한 커피만을 홀짝이며 그런 아내를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아내의 모습에 복잡하던 머릿속이 점점 단순하게 변해갔다.
“어! 이게 누구야?”
한 사내의 목소리에 나와 눈을 맞추며 입을 오물거리던 아내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김 대리 아니야?”
테이블 옆에는 남색 정장을 입은 중년의 사내가 서 있었다. 그 옆에 함께 서 있던 짙은 화장을 한 여자의 시선이 아내에게 향해 있었다.
살찐 사내의 얼굴에 기름기가 번들거렸다.
“김 대리. 이렇게 만나네.....퇴사하고 회사에 한 번도 안 찾아오더니....섭섭하게 말이야, 하하하”
포크를 쥐고 있던 아내의 손이 아래로 내려가 하얀 접시에 살포시 그것을 내려놓았다.
테이블 옆에 서 있는 사내는 예전 직장의 팀장이었다.
“배 팀장님......안녕하십니까.”
“그래 그래.....근데 김 대리 얼굴에 살이 왜 이렇게 빠졌어? 어디 몸 안 좋아?”
“아닙니다.”
“여긴 우리 와이프.....”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나 짙은 화장한 여자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했다.
“결혼했단 소식은 들었는데, 왜 청첩장 안 보냈어? 부조라도 했을 건데......조 대리는 결혼식 갔던데...”
“와이픕니다.
여보. 예전 회사에 팀장님.....”
아내에게 시선을 돌려 말했다.
“아....안녕하세요....”
아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배 팀장에게 인사를 했다. 배 팀장을 바라보는 아내의 얼굴엔 보기 좋은 미소가 가득했다.
“하하하.....안녕하세요. 소문대로......
조 대리가 결혼식 갔다 와서 김 대리 와이프 이쁘다고 얼마나 그러던지.......하하하...“
아내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던 배 팀장의 시선이 아이보리색 투피스 정장을 입고 서 있는 아내의 몸을 따라 노골적으로 아래를 찬찬히 훑고 있었다.
아내도 그 시선을 느꼈는지, 순간 얼굴에 당황함이 역력했다.
나는 말 없이 커피 잔을 들어 마셨다.
“김 대리. 시간 있을 때 회사 한번 들리라고, 그동안 어떻게 지내는지 이야기도 좀 들려주고......담에 또 봐요.”
배 팀장의 능글맞은 시선이 다시 아내에게 향했다. 아내의 볼 한쪽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배 팀장이 우리가 있던 테이블을 떠나 창가 쪽에 자리를 잡는 게 보였다.
“오빠. 회사 다닐 때 저분하고 안 친했죠?”
자리에 다시 앉은 아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하하....왜?”
“오빠 얼굴에 다 쓰여 있어요. 불편해 보여....
그리고......나도 저 분.....싫어요....”
아내는 좀 전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대놓고 훑어보던 그 시선이 불쾌했던 것 같았다.
테이블에서 아내가 집어주는 음식을 먹다가 창가에 앉아 있던 배 팀장과 몇 번 시선이 마주쳤다. 그럴 때마다 그는 무척 과장된 표정으로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오빠. 왜요?”
주차장에 있던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어 놓고는 잠시 생각에 빠져있는 내게 아내가 물었다.
“은비야. 조금만 기다려 금방 올게.....”
“오빠. 어디가요?”
아내의 물음을 뒤로하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다시 레스토랑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창가에 앉아 있던 배 팀장이 조금씩 가까워져 갔다.
“배 팀장님.”
“어! 김 대리? 왜? 이제 가?
인사하러 왔어? 니 와이프는 어디 갔어?”
그가 내 뒤를 두리번거리며 아내를 찾고 있었다.
“야! 배 선학 팀장.”
“뭐.....뭐?”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의 갑자기 휘둥그레 졌다.
“아직도 그 지랄하고 다니냐?”
순간, 그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그리고 맞은편에 앉아 새우를 집어 먹던 여자의 표정 또한 일시에 변했다.
“이.....새끼가.....돌았나......너 지금 뭐라고 했어?”
그가 갑자기 일어나자 테이블이 흔들리며 접시에 올려져 있던 나이프와 포크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너 아직도 회사서 그 지랄하고 다니냐고.....
예쁘장한 신입여직원 새로 들어오면 회식한다고 불러내서 억지로 술 먹여서 건드리고, 거래처에서 뒷돈 받아 처먹고, 그것도 부족해, 니가 스폰하는 룸빵에 거래처사장들 불러 성상납 받고......
아직도 그 지랄하고 다녀?”
“이....이....새끼가 미쳤나?”
빨갛게 달아오른 돼지 새끼 같은 얼굴이 내 얼굴 바로 앞에 다가와 있었다.
“저...저기.......손님......여기서 이러시면......”
갑작스런 소란에 언제 왔는지, 아직 앳돼 보이는 레스토랑 여자 매니저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조심스레 말했다.
“배 팀장.
배 선학. 이 개새끼야.
내가 퇴사할 때, 왜 그냥 조용히 나왔는지 알아?
니 인생이 불쌍해서야.
오늘같이 이렇게.....니 와이프나 니 애새끼들 데리고 이런 데 와서 밥이라도 처먹으라고......
그래서 그냥 조용히 나온 거야.”
“이...이 새끼가.....보자보자 하니까....”
그는 금방이라도 내 얼굴을 칠 기세였다.
“내가 퇴사할 때, 모아둔 자료.......
회식할 때, 니가 선미 씨, 노래방 다른 룸에 끌고 가 강간한 거...
다달이 거래처 돌아가며 100만 원씩 상품권으로 상납 받은 거,
그리고 니가 스폰하는 그 룸살롱........마담......이건 더러워서 내입으론 도저히 말도 못하겠다 개새끼야.
감사실에 싹 다 보내줄까? 어떻게 되는지?”
죽일 듯 나를 노려보던 그의 떨리는 눈이 조금씩 사그라들어갔다.
“배 선학 팀장님.
인생이 구리면, 나대지 말고 조용히 쥐 죽은 듯이 살아요. 그래야지 너는 물론이고 너 와이프, 애새끼들 조동아리에 풀칠이라도 할 테니...
알았어? 이 쓰레기 같은 새끼야!!!”
나를 향하던 그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나는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여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얗던 얼굴의 화장이 새빨갛게 변해,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 입술이 떨리는 게 보였다.
레스토랑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춘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뒤를 돌아 레스토랑 출입구로 걸어갔다.
출입구 바로 앞에선 채.
아이보리색 투피스를 입은 아내의 놀란 눈빛이 나를 향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