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5화 (155/177)

鬼?祭 (12)

무엇인지 모를 향긋한 내음에 눈이 스르륵 열렸다.

흐릿하던 시야가 천천히 다시 돌아오자 눈앞엔 까만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하늘엔 짙은 먹구름이 자욱이 깔려 있었다.

나는 세월의 흔적이 물씬 느껴지는 나무로 만들어진 평상에 가지런히 누워있었다. 

그대로 누워 고개를 돌려보니 내 머리맡에 작은 다과상이 하나 놓여 있는 게 보였다. 그 위에 올려진 하얀 찻잔에서 뽀얀 김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를 깨운 것은 바로 찻잔에서 퍼지는 이 향기였다.

평상에서 일어나 앞을 내다보니 산등성이 아래,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 경치가 너무나 보기 좋아 한동안 멍하니 그 아래를 내려다봤다.

한기가 느껴졌다.

어딘지 모를 이 높은 산, 이곳이 이상하게도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갑작스런 한기에 몸이 떨려, 다과상에 있던 아직 식지 않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 따뜻하고 진한 맛이 금세 온몸으로 퍼져갔다. 

까만 먹구름 때문인지 주위가 한밤중처럼 온통 검은색으로 보였다.

내 시선이 한곳에 고정돼 있었다.

먹구름에 숨겨져 있던 검은 빛깔의 건물이 서서히 드러나 보였다.

검은색의 네모반듯한 기다란 건물이었다.

건물 벽면 중간 중간에 건물 빛과는 다른 투명한 공간들이 조금씩 시야에 들어왔다.

그곳은 유리로 된 넓은 창이었다.

건물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던, 그 창에서 갑자기 붉은 빛이 조금씩 새어 나왔다. 

얼핏 보이던 그 빛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밝아지더니, 새빨갛게 변해갔다. 

커다란 창 한가운데,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여자의 상체가 보였다. 

여자가 시선이 정면으로 나를 향해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여자가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직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여자가 서 있는 뒤쪽. 건물 안이 불이 난 것처럼 온통 붉은빛으로 어른거렸다.

검은 옷을 입은 채, 건물 안 창가에 서 있던 여자의 입이 열렸다.

천천히 오물거리던 그 입술이 점점 더 빨라져, 내게 뭐라고 크게 소리치고 있었다.

“하.......하........”

잠에서 깨어났다.

온몸에 바싹 소름이 돋아나 있었다.

마치 성난 듯, 무서운 표정으로 내게 소리치던 검은 옷을 입은 그 여자의 눈빛이 지워지지가 않았다.

침실엔 노란 스탠드가 켜져 있었다.

아내는 침대 위 내 곁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내가 덮고 있던 얇은 이불을 아래로 걷어 냈다.

눈부신 아내의 알몸이 완전히 드러나 보였다.

내 것과는 대비되는 아내의 하얀 피부가 스탠드 불빛에 반짝였다. 

침대 위에 힘없이 올려져 있던 아내의 손목을 잡아, 작은 손바닥이 보이게 위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팔꿈치 안쪽이 눈에 들어왔다.

새하얀 피부 사이 푸른 동맥이 그곳을 지나 손목으로 뻗어 있었다.

나는 숨겨진 무엇인가를 찾는 것처럼 한참 동안 그곳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아내의 몸을 돌려가며, 이곳저곳을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형부! 미나 왜 안 오죠? 어제 무슨 일 있었어요?”

카페에 출근해 한참 오픈 준비를 하던 처제가 물었다. 

“응? 아니....”

“늦으면 연락을 할 건데......전화 해봐야겠다...”

“아니...”

만류하려던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처제의 스마트폰은 이미 귀에 닿아 있었다.

스마트폰을 들고 한참을 그렇게 있던 처제의 손이 다시 아래로 내려왔다.

“이상하다.....안 받아요. 무슨 일 있나?”

“피곤해서 그렇겠지 그냥 둬.....”

하지만 걱정스런 처제의 그 표정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저런 잡생각에 혼란스럽던 머릿속이, 끊이지 않는 손님들에 의해 조금씩 편안해져 갔다. 

이래서 가끔은 루틴한 단순 노동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처제는 예전의 그 처제가 아니었다.

예전에 카페에서 일할 때 실수가 잦았던 처제가, 이젠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능숙하게 쳐내 가고 있었다. 

“형부. 미나.....그분....좋아한 것 같아요.”

“응?”

오후의 잠시 한가로운 시간, Bar에 앉아 여유를 즐기던 처제가 말했다.

나는 처제가 말하는 그분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죽은......세희 언니....오빠....”

“미나가 그래?”

“아니요. 물어보진 않았는데, 그냥 느낌이........그런 거 같아요.”

“그렇구나....”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내 반응에 처제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세희 언니는 혼자 어떻게 그 집에 살려고......

형부. 그런데......

아직 형부한테 물어볼 게 있어요.

그날.

저 방에서. 

세희 언니하고 왜 그랬어요?

도대체 세희 언니하고 어떤.......관계.....예요?

그날.....실수한 거예요? 아니면.....오래전부터...”

갑작스런 처제의 물음에 숨이 턱하고 막혔다.

나를 보는 처제의 눈동자가 너무나 날카롭게 변해있었다. 그런 처제의 눈빛을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처제를 바라보는 내 눈이 떨리고 있는 게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다행이었다. 

카페 문이 열렸다.

문 앞에는 박스 여러 개를 들고 있는 택배 아저씨가 웃으며 서 있었다.

“오늘은.....은설 씨, 물건이 많네요....”

“아저씨, 안녕하세요....”

날카롭게 나를 뚫어져라 보던 처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으로 향했다.

택배아저씨가 박스 여러 개를 입구에 있는 테이블에 내려놓자, 처제는 하나씩 그것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럼 수고하세요....”

“아저씨 잠깐만요.......”

처제가 급하게 냉장고에서 생과일주스 하나를 꺼내, 그에게 전해주었다.

“하하하....아이고, 안 이러셔도 되는데, 

매일 올 때마다....잘 마실게요. 감사합니다.”

택배아저씨가 카페를 떠나자, 처제는 좀 전에 일은 벌써 잊었는지, 생글거리며 택배 박스를 확인하고 있었다.

“형부! 택배 왔어요.

어? 소린중학교? 뭐지 언니가 보냈나?”

처제가 작은 박스 하나를 Bar에 있는 내게 전해주었다.

발송인에 깔끔한 글씨로 소린 중학교라고 적힌 게 보였다.

아내가 다니는 학교였다.

처제는 이미 입구 테이블에 앉아 박스를 조심스레 뜯고 있었다.

나는 그 작은 박스를 들고 안쪽 방으로 들어왔다.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어제 그곳에 보았던 푸른색 침대가 유독 눈에 띄었다.

책상에 앉아 작은 박스를 뜯었다.

무엇인가 비닐 완충재로 꼼꼼하게 둘러싸여 있었다.

‘소린중학교’

검은색 USB메모리 한 중간에 아내가 다니는 학교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예전에 아내가 들고 다니는 걸 봤는지, 이 검은 USB를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노트북을 꺼내 USB를 연결했다.

노트북 화면에 수많은 파일들이 한꺼번에 펼쳐졌다.

파일 정보에 적힌 날짜를 보니 3~4개월 전에 생성된 파일들이었다.

대부분 사진 파일이었고, 그 중간 중간에 동영상 파일이 섞여 있었다.

가장 첫 번째 파일을 열었다.

사진이었다.

금빛의 단발머리를 한 아내의 얼굴이 보였다. 아내의 얼굴엔 표시가 날 듯, 말 듯한 옅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아내 바로 옆엔, 어제 아내의 학교에서 내게 인사를 했던 여선생이 활짝 웃고 있었다.

실내에 있는 방안이었다.

테이블에 각종 음식과 술이 수북이 놓여 있었다.

사진을 하나씩 넘겼다.

모든 사진의 중심엔 아내가 있었다. 아내 주위엔 아내의 학교 선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번갈아 가며 찍혀 있었다.

사진을 넘길수록 아내의 얼굴이 변해있었다.

뽀얗던 아내의 볼이 조금씩 빨갛게 변했다. 아내의 그윽한 눈동자가 또한 더욱 짙어져 갔다.

그리고.

아내가 입고 있던 가슴이 파인 하얀 블라우스가 사진을 넘길 때마다 흐트러져 있었다.

사진을 하나씩 넘기던 내 손이 순간 멈췄다.

아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무릎 위를 한참 올라간 작은 도트무늬 미니스커트가 아내의 엉덩이와 치골 부위만을 아슬아슬하게 감싸고 있었다.

스커트가 얼마나 타이트한지 치골을 감싸고 있는 그 부위가 조금 불룩하게 표시가 날 정도였다.

중년의 남자 손에 마이크가 들려 있었다.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얼굴이 상기된 남자의 손이 아내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아내는 풀린 눈으로 웃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생각났다.....’

아내의 저 짧은 도트무늬 미니스커트.....

이곳은 장 실장이 보여준 그 곳이었다.

방갈로....

장 실장이 방갈로 뒤편 에어컨 실내기를 딛고 올라서 작은 창으로 보여줬던 그 곳......그 곳보다는 훨씬 넓었지만, 내부의 모습이 똑 닮아 있었다.

한참을 멈춰있던 사진이 다음 사진으로 넘어갔다.

마이크를 쥐고 있던 남자가 아내 뒤에 조금 비켜 서 있었다. 그 남자의 손이 아내의 허리를 지나 배 부분에 닿아 있었다.

아내의 시선은 고개를 돌려 뒤에 서 있던 남자에게 향해 있었다.

그 짧은 아내의 스커트 사이로 속옷이 조금 드러나 보였다.

그다음 사진은 남자의 몸이 아내의 뒤에 바싹 달라붙어 한 손으로 아내를 완전히 안고 있었다. 

남자의 얼굴이 아내의 얼굴 바로 옆에 와있었다.

다음 파일로 넘기니 사진이 아니라 갑자기 동영상 창이 열렸다.

흔한 트롯을 부르는 남자의 굵은 목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이야....좋다!!]

[어머.....둘이 너무 진한 거 아니에요?]

알 수 없는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가 노랫소리에 묻혀 동시에 들렸다.

아내는 웃고 있었다.

뒤에서 자신의 배를 감싸고 있는 남자의 손길이 없다면 아내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비틀거렸다. 

아내가 움직일 때 마다 그 도트무늬 짧은 스커트 사이로 팬티가 완전히 보였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양 선생님. 술 한잔해요. 그만 찍고....]

남자의 소리에 화면이 테이블 쪽으로 내려왔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중년의 남자와 그와 함께 있는 아내에게 쏠려 있었다.

모두가 한결같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양 선생님. 뭘 자꾸 이런 걸 찍어요? 

양 선생님도 노래해요.

양 선생님도 예전에 보통 아니었잖아....

그때 생각나요? 영감들 앞에서...하하하.]

테이블위에 머물던 화면이 다시 위를 향했다.

노래를 부르던 남자가 아내의 귀에 바짝 다가가 뭐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박 선생님. 노래 안 하고 지금 뭐하세요?

둘이 사귀나?

언제부터 이 선생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 됐어요? 

샘나게 말입니다..... 하하하] 

조용히 마지막 간주가 흐르던 음악이 끝났다.

노래를 부르던 남자의 손이 아쉬운 듯 안고 있던 아내를 놓아주었다. 그러자 아내가 테이블이 있는 방바닥에 조심스레 무릎을 모으고 앉았다.

노래를 부르던 남자가 아내 옆에 자리를 잡았다.

화면이 아래로 내려와 나무로 연결된 천장을 비추고 있었다. 

[이야...오늘 대단한데요?

우리 이렇게 회식한 지가 몇 년 만인지 모르겠네]

[이 선생이 오랜만에 출근하니까 다들 좋아서 그러지 뭐] 

[이 선생님. 오늘 너무 많이 마신 거 아니에요?

원래 소주도 잘 못 마시면서.....]

[아니요....괜찮아요. 강 선생님]

소란스런 대화 속에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 오늘 이 선생님 출근할 때 보고 놀라 기절하는지 알았어요. 스타일이.....너무 변해서.......머리하고.....]

[강 선생님. 저....이상해요?]

[아니요....]

[이 선생님. 이상하긴요. 이쁘기만한데....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젊은 선생님들 화끈하고 개성이 있어야 애들도 잘 가르치지......안 그래요 박 선생님?]

[하하하......이 선생 이쁘고 섹시한건, 우리학교 수위까지 다 아는데 뭐 새삼스레.....]

[그래도 좀 과하지 않아?]

[에이...양 선생. 이 선생한테 또 그런다.]

[그렇잖아. 아무리 그래도.....]

[양 선생. 그만해. 분위기 깨게....

이 선생 사정도 생각해 줘야지. 

병원에서 지금까지 얼마나 힘들었겠어...]

[자자....오늘은 여기서 끝장을 봅시다.

아무도 먼저 집에 가면 안돼요....

자....한잔합시다....

이 선생 학교 복귀한 거 축하하고, 

우리 예전처럼 잘해봅시다.

자 건배......]

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 또다시 어지러운 대화가 시작됐다.

천정을 향하던 화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검은 틈 사이 새어 들어오는 빛이 보였다.

화면이 비추는 곳은 테이블 아래였다.

그 속엔 앉아 있는 사람들의 다리가 여러 개 보였다.

검은 화면이 자동으로 조도를 찾아가자 조금씩 밝아져 갔다. 

무릎을 가지런히 모으고 앉아 있는 하얀 맨살이 보였다. 

도트무늬 스커트는 이미 허벅지를 타고 위쪽으로 한참 말려 올라가 있었다.

위로 말려 올라간 스커트와 포개어져 있는 허벅지사이......

그 틈 속에, 검은 손이 박혀 있었다.

그 검은 손이 조금씩 움직여 더 깊은 곳, 안쪽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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