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 ex wife-6-
도훈은 현재 서울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방문한 이가 최소한 대학 후배들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대체 누구지?'
초인종 카메라에 잡힌 얼굴을 보니 예상외의 인물이었다.
'오잉? 김 비서잖아? 여긴 왜 왔지? 설마 장만석의 사망 때문인가?'
[기억 안 나십니까? 주인님이 주말에 한 번씩 집에 들러 청소하라고 시키셨잖습니까?]
'아아, 그랬었지. 거참 성실하기도 하지. 부르지도 않았는데.'
띵동도훈이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김 비서가 초조한 표정으로 한번 더 벨을 눌렀다. 손에는 스마트 폰을 꼭 쥐고 전화를 걸지 말지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저게 뭐 하는 거지?'
[혹시 주인님이 집에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그렇구나. 내가 일주일 가까이 자리를 비웠으니까. 아니 잠깐.
그럼 저번 주에도 그냥 왔다 갔던 건가?'
김 비서가 하는 행동을 봐선 그럴 가능성이 농후했다.
'헐. 김 비서 경기도 고양에 사는 거 아니었어? 멀리서 여기까지 와놓고 전화도 안 해보고 그냥 돌아갔던 거야 그럼?'
[주인님이 워낙에 신출귀몰하시니 전화를 걸기 망설여졌나 봅니다.]
'그것 때문에 망설일 이유가 뭔데?'
[주인님은 물론 그렇게 생각 안 하시겠지만, 김 비서에게 주인님은 대하기 어려운 직장 상사니까요.]
'상사는 무슨? 민수가 멋대로 비서라고 붙여 준거지. 내가 무슨 악덕 고용주도 아니고.'
[게다가 저번에 주인님께서 대학 다시 다니라면서 재수 학원비까지 두둑이 챙겨주셨잖습니까? 그래서 더 어려워하는 걸지도 모르죠.]
'그건 또 왜?'
[원래 도와준 사람이야 금방 잊어버리지만, 도움을 받은 사람은 부담을 느끼니까요. 김 비서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주인님은 무척 고마우면서도 동시에 어려운 사람일 수밖에 없죠. 하물며 민수같은 조폭들도 깍듯이 대하는 인물인 걸요.]
'흐음, 그려러나?'
모니터 화면을 계속 쳐다보는데 김 비서가 결국 전화를 걸지 못하고 한숨을 푹 내쉬더니 고개를 떨구고 돌아서는 것이었다.
기운 빠진 모습으로 터벅터벅 물러서는 김비서를 보고 도훈이 혼자 소릴 질렀다.
"어어? 그냥 가버리네?"
도훈이 급히 현관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놀란 김 비서가 뒤를 돌더니 뻘쭘해하며 집으로 들어왔다. 도훈이 입구까지 마중 나갔다.
"뭐야? 힘들게 와놓고 왜 그냥 가려고 해?"
"지, 집에 계셨군요! 저는 집을 비우신 줄 알고···."
"아니, 청소하러 왔으면 사람이 없어도 문 열고 들어와서 청소를 해야지."
"예? 열쇠가 없는데···."
'내가 김 비서한테 열쇠 안 줬어?'
[주인님은 누구에게도 이 집의 열쇠를 맡기신 적 없습니다.]
'그랬구나.' 괜한 말을 꺼낸 도훈이 민망함에 덧붙였다.
"혹시 지난주에도 그냥 왔다가 돌아간 거야?"
김 비서가 꾸중을 듣는 것처럼 얼굴을 떨구더니 기어서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아니, 전화를 걸지 그랬어? 내가 토요일에 외출할 일이 있었는데, 미리 연락을 못 했어."
"중요한 일 하시는데 방해될까 봐서요."
"참나. 중요한 일은 무슨."
김 비서는 유독 도훈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이었다.
도훈은 그녀의 태도가 마치 짝사랑에 빠진 여자가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어려워하는 태도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그런 눈치였다.
'헐, 언제 또 저렇게 된 거야? 저번에는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충분히 그럴 수 있죠. 주인님에 대한 호감도가 커진 상태라면요.]
'난 어색한 거 질색인데.'
"암튼 들어와. 이주 가량 청소가 밀려서 집안 꼴이 엉망이라고."
"네, 넵!"
김 비서가 후다닥 집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도훈의 말은 사실과 달랐다. 그 역시 구원회 미션을 해결하느라 집을 비운 지 오래라, 집안이 전혀 흐트러지지 않은 것이다.
2주 전 김비서가 청소했을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이, 그저 약간의 먼지만 가구 위에 쌓인 정도였다.
김 비서가 당황하는데 도훈이 못된 집주인처럼 팔짱을 끼고 말했다.
"근데, 청소하러 왔다는 사람이 복장이 그게 뭐야? 아직도 자기가 비서인 줄 아네?"
"···예?"
혹시나 도훈을 만날까봐 최대한 예쁘게 차려입고 온 김 비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신경 써서 옷을 고르고 머리까지 예쁘게 고대기로 잡고 왔는데, 도훈은 영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그런 옷을 입고 어떻게 청소를 하려고? 게다가 난 쓸기만 하고 물걸레질 안 하면 청소를 한 것 같지가 않단 말이지."
"시, 시정하겠습니다. 다음에는 좀 더 편한 옷차림을···."
"됐고. 내 옷방에 가서 아무거나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와."
"네, 넵!"
김 비서가 후다닥 옷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도훈은 김 비서를 골리는 게 재밌는지 씩 웃고 있었다.
[왜 착한 김 비서한테 못되게 구십니까?]
'나를 너무 불편해하는 거 같아서, 일부러 더 막대하는 중이야.'
[불편해하는 것 같아서 막대하다니요?]
'계속 장난을 치면서 긴장을 풀어주려는 거라고. 아무 말 않고 가만히 놔두면 혼자 묵묵히 청소만 하다 갈까 봐.'
[거참, 별 희한한 방식도 다 있군요. 기껏 목숨걸고 김 비서의 복수를 해놓고선 막상 앞에선 나쁜 남자처럼 구시다니. 저로선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말은 바로 하라고. 목숨까지 걸진 않았는데? 장만석이 진혈의 뱀파이어로 변신했으면 모를까, 막상 상대하니까 완전 좆밥이었잖아. 진짜 땀 한 방울 안 흘린 듯.]
[그보다는 권 권사를 상대할 때 말입니다. 복상사로 응급실까지 실려 가셨잖습니까. 주화입마에 걸려 사경을 헤매셨고요.]
'아니 그건···. 어쨌든 그 덕에 내공이 일취월장했잖아. 일종의 전화위복이랄까?'
[그야 운이 좋으셨던 거죠. 주화입마에서 깨어나지 못했으면 그대로 코마에 빠져 식물인간이 되셨을 겁니다.]
'뭐, 어쨌든 그런 걸로 김 비서에게 생색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어. 따지고 보면 나도 미션 보상 때문에 나선 것뿐이니까. 서로의 이익이 우연히 맞아떨어졌달까?'
[흐음, 그렇게 안 봤는데 은근히 츤데레 같은 기질이 있으시군요.]
'내가 뭘 또?' 도훈이 로시와 옥신각신하는데,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갔던 김비서가 문을 열더니 빼꼼히 고개만 내밀었다.
"저···."
"왜?"
"옷이 맞는 게 하나도 없는데···."
당연한 소리였다. 도훈의 옷장에는 185의 신장에 맞는 커다란 옷밖에 없었다. 165정도인 김비서가 입기엔 죄다 큰 옷뿐이었다.
"대충 티만 걸치면 되잖아."
"그건 입긴 입었는데···"
김 비서가 문틈 사이로 상체를 더 내밀었다.
빅 사이즈의 옷을 걸친 김비서는 하의 실종 상태로 커다란 옷으로 허벅지 위까지 간신히 가린 모습이었다.
"근데 뭐?"
"바지가 아무래도···."
"그럼 바지는 생략."
"네?"
"말했잖아. 우리 집에서 청소할 땐 최대한 편한 옷차림으로 청소하라고. 그냥 그것만 입고해. 왜? 처음도 아니잖아."
김 비서의 얼굴이 빨개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어디부터···."
"그거야 김 비서 마음이지."
"네, 그럼 거실부터 청소 시작하겠습니다."
도훈의 상의를 걸친 김비서가 아슬아슬한 차림으로 집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미니스커트보다 짧은 똥꼬 치마를 입은 것처럼 그녀가 걸을 때마다 팬티가 슬쩍슬쩍 비칠 정도였다.
도훈은 물끄러미 김 비서가 청소하는 모습을 감상했다.
[역시 헨타이···.]
'난 저런 게 좋더라. 여자가 남자친구 상의만 걸치고 하의 실종으로 있는 거.'
[그게 변태라는 겁니다. 굳이 시간 내서 청소하러 온 사람한테 저게 뭡니까?]
'흐흐. 이걸 나만 좋아할 것 같아?'
[그럼요?]
'김 비서도 은근히 내 시선을 즐기고 있을걸?'
[그걸 어떻게 압니까?]
'딱 보면 몰라? 창틀을 닦으면서 자꾸 상의를 밑으로 끌어 내리고 있잖아.' 도훈의 말대로 김비서는 돌아선 상태로 팔을 들어 창문을 닦다가 자꾸 옷이 말아 올라가 팬티가 보이자 반복적으로 상의를 끌어내려 밑을 가리고 있었다.
발꿈치를 살짝 든 채 하체를 완전히 드러낸 모습은 한 폭의 성인 화보를 보는 것처럼 야한 맛이 있었다.
'키아. 각선미 예술이네. 김 비서가 치마를 즐겨 입는 이유가 자기 다리 늘씬한 거 과시하려는 것 같지 않아?'
[역시 주인님은 생각하시는 게 저질입니다.]
'내가 뭐?'
[기껏 공들여 김 비서의 대리 복수까지 다 해줘놓고선, 정작 앞에선 부하 직원을 괴롭히는 못된 직장 상사처럼 구시니까요.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나도 쑥스러워서 그렇지.'
[네? 주인님이요?]
'솔직히 내 입으로 어머님의 원수를 대신 갚았다고 밝히기도 뭐 하잖아.'
[거참, 난감하군요. 말하지 않으면 김 비서의 입장에선 원수를 갚아준 것도 평생 모를 텐데요.]
'그래도 장목사가 죽은 것 정도는 알지 않을까?'
[아···. 기사가 났었죠?]
장만석의 사후 구혜진을 도와 사태수습을 하는 과정에서 장목사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졌다. 물론 신문에는 단신으로 사망 소식이 보도되는 정도였지만, 구원회 신도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청천벽력같은 비보였다.
혜진은 장목사의 실체를 낱낱이 밝히는 것보다, 오히려 그의 죽음을 순교로 만드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장목사에 대한 구원회 신도들의 맹신은 절대적이야. 아무리 진실을 밝혀도 믿으려 하지 않을 거야.
-그럼 진실을 덮겠다는 거야?
-아니. 조금씩 신도들을 변화시키면서, 스스로 깨닫게 해줘야지. 당장은 밝히지 말자는 거야. 괜히 소요 사태로 번지면 매스컴통제도 불가능해 질테니까. 지금도 총력을 다해서 틀어 막는 중이야. 총격전이 벌어지고 사람이 그렇게 죽었는데 기사 한 줄 없는 걸 보면 모르겠어?
혜진은 굉장히 철저한 여자였다.
장목사에 가스라이팅 당해 그의 악행에 동참한 것에 누구보다 분노하는 그녀였지만, 사태의 수습을 위해선 장목사의 악행마저 잠시 묻어두겠다고 한 것이다.
도훈도 현실적인 그녀의 판단을 존중했다.
-뭐, 네 판단이 그렇다면 그게 맞겠지.
-참, 이번 주일에는 성대한 안식 행사를 가질 예정이야. 정통적인 기독교 장례 방식으로. 너도 참석할래?
-아니, 난 불교 신자거든.
-그랬구나. 미안.
물론 뻥이었지만, 도훈은 이미 그때 구원회를 떠나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주일에 있을 추도 예배에 참석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더구나 자기 손으로 죽인 악당의 장례식에 아무렇지 않게 참석할 정도로 뻔뻔한 성격도 아니었다.
물론 사람이 아닌 뱀파이어였지만, 어쨌든 그의 심장을 뽑아 터뜨린 것은 본인이었으니까.
"이제, 바닥 걸레질 하겠습니다."
창틀 청소를 마무리한 김 비서가 이번엔 젖은 걸레로 거실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도훈은 소파에 앉아 그녀가 청소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티셔츠의 늘어난 목 부위가 아래로 흘러내리자 봉긋한 가슴골이 드러났다. 하지만 김 비서는 도훈이 쳐다보든 말든 엎드린 상태로 계속 걸레질을 이어갈 뿐이었다.
'흐음, 이젠 대놓고 즐기고 있군.'
[네?]
'아깐 팬티가 보일까 봐 가리는 척이라도 하더니, 이젠 가리지도 않네.'
[주인님이 계속 쳐다봐서 포기한 게 아닐까요?]
'아니라니까? 김 비서도 지금 내 시선을 즐기는 거라고.'
[그걸 어떻게 압니까?]
'장담하지.'
김 비서가 방향을 바꾸기 위해 몸을 반대로 돌렸다. 엉덩이를 살짝 쳐든 자세로 바닥을 걸레질을 하는데, 하의 실종 상태라 팬티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저기 보라고. 팬티 가운데 젖은 거 보이지?'
[아앗!]
도훈의 말대로 김 비서의 팬티엔 500원짜리 크기의 물자국이 진하게 맺혀 있었다. 팬티 색깔도 하필 연분홍색이라 짙은 부분이 바로 티가 났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죠?]
'김 비서도 아닌 척하면서 은근히 내 집요한 시선에 흥분하고 있다는 뜻이지.'
[그럼 그걸 주인님에게 보란 듯이 보여준다는 뜻은···.]
'나보고 멋대로 해달라고 사인을 주는 거야. 간만에 회포나 풀어야 하나?'
[역시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법이죠.]
도훈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자, 열심히 걸레질하던 김 비서가 흠칫 놀라 동작을 멈추었다.
"아냐, 하던 거 계속해. 나 신경 쓰지 말고."
"네."
김 비서가 다시 걸레질을 시작하는데 도훈이 그녀의 뒤에 바짝 붙었다. 김 비서는 애써 태연한 척하려고 했지만, 귀밑까지 빨개지는 것이 젖은 팬티를 보여주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나 전혀 신경 안 써도 돼."
"네, 넵."
하지만 도훈이 마치 뒤치기를 하는 것처럼 바짝 붙어 있었기 때문에 김 비서로는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도저히 무시할 방도가 없었다.
도훈이 대뜸 김 비서의 뒤에서 팬티를 끌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