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 ex wife-5-
[뭐 하십니까?]
'···응? 아니 내년 새터 때 신입생들 처녀 감별사 좀 해보려고.'
[헐, 주인님도 역시나 변태였군요.]
'뭔 소리야. 나는 지금도 마음 먹으면 정보창으로 누구든 처녀인지 볼 수 있다고.'
[그래도 대량으로 한 번에 숫자를 파악하기엔 시간이 걸리겠죠. 스킬쿨타임도 기다려야 하고요.]
'어쨌든 버리긴 아까우니 일단 챙겨두는 거야. 혹시나 써먹을 데가 있을지 모르잖아.'
[헨타이···.]
'거기까지.' 두 번째, 세 번째 아이템도 감정했으나 딱히 도훈에게 쓸모가 없거나 도훈이 이미 가지고 있는 물건보다 훨씬 성능이 떨어지는 아이템이었다.
'이 새낀 무슨 뭐든 다 만들어내는 금손처럼 굴더니먼 쓸만한건 한개도 안 만들었네.'
도훈이 속으로 욕을 하며 다음 아이템을 확인했다.
그것은 조그만 수첩이었는데, 앞부분은 이미 썼는지 뭔가가 기록되어 있었다.
'이게 뭐지? 설마 일기장은 아닐테고.'
도훈이 내용을 훑어보는데, 영어와 숫자가 반복적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꼼꼼히 내용을 살피던 도훈은 문득 익숙한 단어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amzn, aapl, msft? 이게 뭐죠?]
'잠깐만, 설마 이거···.'
[무슨 암호처럼 적혀 있는데 혹시 알아 보시겠습니까?]
'나스닥에 상장된 회사 아니냐?'
[네? 정말입니까?]
'맞잖아. amzn는 아마존, aapl는 애플, msft 마이크로소프트.
하나만 있으면 모르겠는데 연달아 있으니까 맞는것 같은데?'
[정말로 회사이름이라고요? 그럼 그 옆의 숫자는요?]
도훈은 수첩을 넘겨가며 내용을 살폈다. 수첩은 상장된 기업들의 이름과 함께 그 옆으로 당일의 주가를 달러로 표기해 적어놓은 것이었다. 영문과 숫자만 적혀 있다보니 한눈에 알아보기 어려웠던 것이다.
'확실해. 이건 미국 기업의 주가를 기록해 놓은 일지야. 근데 이걸 왜 굳이 인벤토리에 넣어서 보관하고 있었을까? 요즘엔 그냥 인터넷만 뒤져도 바로 확인할 수 있을텐데?'
[일단 감정부터 해보는 것이···.]
'아, 그렇지.'
도훈이 스크롤을 찢어 수첩을 감지하자 놀라운 내용이 디스플레이에 등장했다.
[ITEM] 미래 수첩
-특정 년월일과 기업명을 수첩에 적으면, 해당일의 주가가 표시된다.
-최대 5년 뒤까지 미리보기가 가능하며, 다 쓰면 수첩은 자동파기된다.
-해당 주가는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바뀌지 않는다.
'헐! 이거였네!'
[장만석이 미래 수첩이란 아이템을 이용해 막대한 재산을 불렸던 것이군요. 세상에, 이런 아이템을 제작해 내다니!]
아이템의 설명을 확인한 도훈이 기록된 내용을 보다 꼼꼼히 살폈다.
유심히 보니 맨 위에 적힌 날짜와 왼쪽 열에 회사명 영문 표기는 장만석의 손글씨인듯 삐뚤빼뚤 했으나, 오른쪽 열에 적힌 숫자는 컴퓨터로 프린트 한 것처럼 완벽한 인쇄판 글씨로 새겨있었다.
예상해 보건대, 날짜와 기업명을 쓰면 자동으로 수첩에서 주가를 표시해 주는 것 같았다.
'미친. 5년 뒤의 주가를 미리 확인하고, 잘 될 기업에 투자를 한 거였구나! 이러니 엄청난 속도로 재산을 불릴 수 있었던 거야. 교회에서 착취한 돈을 시드머니로 이용해서 레버리지를 한계치까지 굴린 거지.'
[세상에! 이건 진짜 엄청난 물건이군요. 어떻게 이런 아이템을 제작할 생각을 했을까요?]
'장만석은 돈 버는데는 확실히 천재였네. 단순히 변태 늙은이로만 봤는데···.'
놀란 도훈이 수첩에 적힌 내용을 분석했다.
표기상으론 미래 시점의 날짜를 적어놓았기에 작성한 날짜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최대 5년 뒤를 내다본다고 했을 때 작성시기의 대략적인 추정이 가능했다.
'장만석은 아마 대충 이짓을 IMF 쯤부터 꾸준히 해온 것 같은데?'
[IMF요?]
'응. 우리나라가 1997년에 외환 위기로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거든. 그리고 장만석이 당시 내다 본 미국 주식은···.'
도훈은 수첩을 넘길수록 장만석의 투자 감각에 혀를 내두룰 수밖에 없었다. 당시는 미국에서 IT버블로 인해 수많은 기업들이 상장하고 주가가 뻥튀기 되던 시기였다.
'장만석이 이 수첩을 이용해서 옥석을 가렸었네. 그때 적은 기업들을 보면 지금은 아예 사라진 기업도 엄청 많거든. IT버블이 엄청 심했던 시기니까.'
[한마디로 장만석은 절대 실패할 수 없는 투자를 한 셈이군요.
미래 특정 시점의 주가를 100% 확인한 뒤에 투자를 했으니까요.]
'그렇지. 망할 기업은 처음부터 재끼고, 5년 뒤에 크게 주가가 오를 기업에 전재산을 몰빵 한 것 같아. 젠장. 이때 이미 구글에 돈을 넣었겠네.'
[구글이요? 그때에도 구글이 있었습니까?]
'응. 수많은 IT기업들이 난립했을 당시에 구글도 함께 세상에 나왔거든. 이걸 정확히 예측해서 투자한 투자자들은 대부분 엄청난 돈을 벌었어. 장만석도 그틈에 껴 있었던 거야.'
도훈은 계속 수첩을 뒤로 넘겼다. 수첩은 그렇게 두껍지 않았기 때문에 장만석이 직접 기록한 페이지는 10장 내외였다. 뒷장엔 별도의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단면으로만 작성하는 원칙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수첩에 적힌 기업과 주가를 확인할 때마다 도훈은 내심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종목선정 오졌다. 최근 20년 동안 급성장한 기업 목록은 죄다 들어가 있어!'
그가 정확히 얼마의 수익률을 거두었는지 알 수 없지만, 세계적으로 커다란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해 엄청난 성공을 거둔것은 분명해 보였다.
'2000년대 이후 기업가치가 몇 배씩 뻥튀기된 회사들을, 장만 석은 5년 전부터 부처님 손바닥처럼 내다보고 있었던 거야. 그것도 완전히 우량주로만.'
[어쩐지 장만석의 재산이 너무 많다 싶더니, 이 방식으로 재산을 증식한 것이었군요.]
'잘은 몰라도 이 정도면 워렌버핏보다 몇 배는 수익률이 좋았을 것 같은데,'
[오마하의 현인이라 불리는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 말씀이십니까?]
'어. 그 양반은 지금도 전설이긴 하지만, 솔직히 긴 시간을 이용한 투자로 돈을 번 케이스거든. 또 투자했지만 실패로 돌아간 종목도 생각보다 많고. 하지만 장만석은 절대 실패할 수 없는 투자를 해온 거잖아. 무려 20년이 넘게.'
[세상에···. 대체 몇 배나 재산을 튕겼을까요?]
'모르긴 몰라도 최소 수백배 이상일 거야. 그러고 보니 조단위재산으로는 오히려 부족한 감이 있는데? 그게 전부가 아닐것 같아.'
[구혜진양이 저번에 그랬잖습니까. 자신이 금고지기긴 한데, 장만석 재산 전부를 관리하는 것은 아니라고요.]
;추정컨대 장만석의 차명으로 된 무기명 채권이나 증권 계좌도 상당히 많았겠어. 사이가 안 좋은 자식이나 동생에게 물려줬을리 없으니.'
[아···. 그런데 이미 죽어버렸군요. 쩝.]
'가만 있어봐, 근데 이거 수첩 남은 부분이 있는데?' 계속 페이지를 넘기던 도훈은 문득 백지 부분이 얼마 안남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아쉬워했다.
수첩에는 줄 눈금이 그려져 있었는데, 한 페이지에 최대 11줄을 쓸 수 있었다. 맨 위에는 날짜를 지정해야 하는 규칙때문에 한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주식의 가짓수는 10개라는 뜻이기도 했다.
[남은 페이지가 고작 2장 뿐이군요.]
'젠장. 아까 사용규칙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쓰고 나면 수첩이 파괴된다고 했었나?'
[맞습니다.]
'하아. 아쉽게 됐군, 이것만 온전히 남아있으면 나도 장만석을 능가하는 부자가 되었을 텐데.'
[그래도 2번은 써먹을 수 있는게 어딥니까? 주인님의 시드도 적은 편은 아니고요. 아, 코인으로 반토막 나셨던가요?]
'코인은 건들지 마라.'
[그래도 이젠 주식으로 돈 벌수 있는 길이 열렸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마지막 두장만 남은 미래 수첩이 아쉽긴 했지만, 도훈은 그게 어디냐는 심정으로 인벤토리에 챙겼다.
'암튼 이건 소모품인 것 같으니까 최대한 신중히 써야겠어. 나중에 내 자산관리사에게 부탁해서 종목을 뽑아 봐야지.'
[자산관리사라뇨?]
'나도 있잖아. 금고지기.'
[아아, 안소영양 말씀이군요. 의사이면서 동시에 주식투자자인.]
'응. 소영이가 미국 주식쪽으론 전문가니까, 5년 뒤 유망할 종목을 추천해주면 거기에 투자해야 겠어.'
[정말 좋은 생각입니다. 주인님은 절대 스스로 투자하지 마십시오.]
'갑자기 뭔소리야?'
[주인님은 검증된 마이너스 손이잖습니까.]
'자꾸 비난하지 말라고. 존버는 언젠가 승리하니까.'
[네, 다음, 반토막.]
'닥쳐!'
이후로도 아이템을 하나씩 확인했지만, 막상 도훈이 쓸만한 것은 별로 없었다. 자작한 아이템들이 대부분 처음에 나왔던 처녀탐지기처럼 용도가 의심스러운 어처구니 없는 물건이거나 혹은 종교적인 목적으로 만든 물건이었던 것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더니, 실화냐. 제대로 건진건 포션 몇개랑 미래 수첩 뿐이군.'
[처녀 탐지기도 챙기셨잖습니까?]
'그건 어차피 내 능력이랑 중복되잖아.'
도훈이 이제 마지막 하나 남은 아이템을 확인했다.
당구공 크기의 구슬이었는데, 실제 상아를 깎아 만든것처럼 독특한 질감을 가지고 있었다. 묵직하면서도 단단한 것이 투척무기로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설마 이것도 자작품인가?'
[네. 마켓 데이터 베이스에는 없는 물건입니다.]
'생긴게 당구공 같기도 하고, 그냥 장식품 같기도 하고.'
[장만석은 정말 각양각색의 아이템을 제조했군요.]
'다른 건 몰라도 자신이 지닌 엄청난 능력을 쓸데없는 곳에 썼다는 것은 잘 알겠어. 그 대단한 능력으로 VR체험존을 만들지 않나, 처녀 탐지기를 만들지 않나.'
[그래도 미래 수첩은 나름 획기적이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만들 거면 두껍게나 만들지 꼴랑 두장 남겨놓고 다 써버렸으니, 쩝. 죽은 놈 살려내서 다시 만들어 달랄수도 없고.'
[일단 마지막 아이템부터 감정해 보시죠.]
도훈이 스크롤을 찢어 마지막 남은 당구공 모양의 물체를 감정했다.
[ITEM] 회귀의 알
-해당 아이템은 빼어난 재능을 지닌 연금술사가 평생의 공력을 바쳐 만든 물건입니다.
-회귀의 알이 부화하면, 당신은 과거의 특정 시점으로 현재의지식을 가진 채 되돌아 갈 수 있습니다.
-회귀의 알이 부화하는 시기는 아무도 모릅니다.
[허헉, 이것은 대체···.]
'잠깐만 내가 생각하는 회귀가 그 회귀가 맞지?'
[네. 시공간을 거스르는 아이템이군요. 장만석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어마어마한 물건을 만들었을까요?]
'이게 그렇게 대단한 아이템이야?'
[당연하죠. 회귀 아이템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특정 세계관에서 끝판 왕급으로 등장하는 아이템입니다. 구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실제로 회귀에 성공한 플레이어도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근데 이거 부화를 안하면 무쓸모 아닌가?'
[아마도 장만석의 능력으로도 완전한 형태의 아이템을 제조하는 것은 역부족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시공간을 거스르는 형태의 마법은 구현이 어렵기 때문이겠죠.]
'흐음, 이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네. 근데 이 딴걸 왜 만들었을까?' 도훈이 고개를 갸웃하다가 스스로 답을 찾은 것처럼 자문자답했다.
'아아! 알겠다.'
[알아내셨습니까?]
'장만석은 불로불사를 꿈꿨잖아.'
[그렇죠. 나중에는 미국에 건너가서 뱀파이어에게 일부러 물리 기까지 했을 정도니까요.]
'그놈도 처음부터 뱀파이어가 되려는 계획은 아니었던 모양이야.'
[그럼요?]
'처음엔 자신이 가진 연금술의 능력으로 시도해 보고 싶었나봐.
회귀 아이템을 만들어서 과거로 정신을 이전시키면 젊은 나이로 돌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아아, 그렇군요. 현재의 지식을 가지고 과거의 젊은 시기로 돌아갈 수 있으니.]
'근데 만들어 봤는데 이렇게 미완성품이 나와버린 거야. 알이 부화를 하지 못하면 결국 쓸수가 없는 형태로. 심지어 언제 부화 한다는 기약도 없는.'
[무슨 말인지 알것 같습니다.]
'하긴 근데 아까 수첩을 보니까, 장만석이 왜 죽기 싫었는지 알것 같기도 해.'
[쌓아놓은 막대한 재산 때문에요?]
'그렇지. 장만석은 비교적 늦게 플레이어로 각성했잖아. 근데 하필 받은 능력이 연금술이었고, 그걸 이용해 늙은 나이에 엄청난 부와 권력을 거머쥔 거야. 그대로 죽기엔 억울할 만큼. 그러니 회귀든, 불사든, 영생이든 뭐든 하고 싶었겠지. 처녀 1000명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따먹는 다는 미친 의식을 자행할 정도로.'
[끝내 주인님에게 저지당했지만요.]
'맞다. 정의의 여신 미션 보상은 언제 들어오는 거야? 김 비서의 복수까지 완전히 끝냈는데.'
[구원회 분쇄가 아직 이루어지 않아서 그런것 같습니다. 혜진 양에게 시간을 두고 맡겨놓고 있으면, 나중에 미션을 성공했다는 알림이 도착할 겁니다.]
'흐음, 고생은 고생대로 했는데 보상이 늦는다니 짜증나는데.'
[그래도 아이템은 건지셨으니 다행입니다.]
도훈은 회귀의 알을 인벤토리에 넣은 뒤 모든 것을 정리했다.
그때 누군가가 집 초인종을 눌렀다.
'어? 토요일에 누가 우리 집에 방문하기로 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