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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712화 (1,692/2,000)

1712. 빌드 업-47-

'이제 한 개 남았네. 이걸로 30개 이상 벌 수 있으려나?'

[포기하시죠. 앞으로 한 번도 지지 않고 5연승을 해야 합니다. 한 개 걸어 2개, 2개로 4개, 4개로 8개, 8개로 16개, 16개로 32개까지. 그건 주인님이 초절정 강운일 때나 가능합니다.]

'어디가서 좀 쉬었다 와야 하나?'

섹스 후 곧바로 룰렛에 베팅할 수 있다면 운빨 대폭발 패시브가 작동할 것이다. 그러나 고작 10만원을 벌기 위해 무리하게 그런 짓까지 하는 건 너무나 비효율적인 방법이었다.

[그냥 환전하시죠. 어차피 인벤토리에 현금이 썩어나고 있습니다.]

'그건 못 하겠어. 도박왕 자존심이 있지, 이제와서 현금으로 칩을 사라고?'

[그럼 어떻게 30개 이상을 만드시려고요? 주인님은 가장 싸구려인 흰색 칩 한개만 들고 있는데요. 아시겠지만 자본이 없으면 결국 금액을 불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만약 숫자를 맞춘다면?'

[네?]

'숫자를 맞추면 최대 36배 아니야? 색깔이나 홀짝이 아니라, 숫자 하나만 딱 지정해서 맞추는 거. 그럼 1개를 걸어도 36개를 단숨에 딸 수 있잖아.'

[하아-. 그 정도 강운은 주인님의 운빨 대폭발 패시브가 터져도 쉽지 않을 겁니다. 확률이 너무 낮습니다.]

하지만 도훈은 기어코 고집을 부렸다. 현금 10만원을 칩으로 환전하면 끝날 일이지만, 이대로 쉽게 물러서자니 도무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아직 포기하긴 일러.'

[왜요? 망각의 라이터라도 쓰시게요?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동시에?]

'그건 안되지. 설사 성공해도 10분 동안의 기억이 지워져 버리잖아.'

[흐음, 전 주인님이 왜 이렇게 승부에 집착하시는 지 모르겠습니다만.]

'도박왕의 타이틀 방어전이라고 생각해 둬.'

도훈이 돌아가는 룰렛을 보며 계속 방법을 떠올렸다.

하지만 쇠구슬은 너무 작았다. 그의 동체시력이 남보다 수배는 뛰어나다 한들, 조그만 쇠구슬이 가진 운동량을, 마찰계수를 적용해 최종적으로 어느자리에 안착할지를 계산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신의 영역이었다.

승부는 계속 이어졌고, 다수의 참가자들이 따고 잃고를 반복했다. 승률을 지켜보니 딜러가 이길때도 많았지만, 그만큼 질때도 많았기 때문에 거의 반반이라고 볼 수 있었다.

물론 미세하게 딜러 쪽의 승률이 조금 더 높았다.

룰렛의 두 곳에 배치된 녹색 칸의 존재 때문이었다.

'0' 혹은 '00'으로 표시된 곳으로, 만약 구슬이 그곳에 들어가면 딜러는 참가자 전원의 베팅금을 딸 수 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수수료 개념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도훈은 10분 넘게 승부를 관찰하며 한가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잠깐, 이건 뭔가 말이 안되는 것 같은데?'

[네? 어떤 부분이요?]

'잠시만 기다려봐. 검색 좀 해보고 설명해줄게.'

도훈이 스마트폰을 꺼내 갑자기 룰렛 게임에 대한 정보를 뒤졌다.

한참 설명을 읽던 도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학적 확률 계산에 따르면 통상 룰렛 게임의 기댓값은 원금의 94.7%야. 평균적으로 매 라운드마다 원금의 대략 5.3%를 잃는 셈이지. 즉, 무한에 가깝게 게임을 돌리면 카지노 측은 참가자들이 가진 돈의 5%를 수수료로 먹는다는 뜻이야'

[그게 왜요? 저는 뭐가 잘못되었다는 건지 모르겠는데요?]

'계산 자체는 틀리지 않지. 하지만, 내가 아까 말했듯이 이곳은 일반적인 카지노에 비하면 규모가 너무 작아. 반면에 바텐더는 너무 많고.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어?'

[아뇨?]

'수지가 전혀 안 맞는다는 소리야. 고작 5%의 푼돈을 갉아먹자고 이걸 센터에 배치해서는 바텐더 월급조차 못 준다고. 대형 카지노가 아닌 이상, 규모의 경제를 펼치기 어려우니까.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방식이야.'

[그래서 주인님 결론은 뭡니까?]

'이건 사기라는 뜻이야.'

[네? 어디가요?]

'분명 기계 장치 어딘가에 조작을 해놓은 게 틀림없어.'

[정말요? 대체 룰렛을 어떻게 조작한다는 거죠?]

'룰렛이라 오히려 조작이 쉽지. 쇠구슬을 이용하니까.'

[저는 여전히 이해가···.]

'쇠는 뭐에 끌리지?'

[자석요?]

'맞아. 전자석 장치를 교묘하게 이용하면 분명 구슬을 원하는 곳에 걸리도록 컨트롤 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지금껏 지켜본 결과 조작의 흔적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는데요? 주인님도 직접 보시지 않았습니까?]

'당연하지. 조작을 너무 자주 했다간 보는 눈이 많은 구경꾼 중 무조건 의심하는 사람이 생길테니까.'

[그렇단 말은···.]

'때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베팅이 지금보다 과열되기를. 그러다 큰 돈이 걸리면, 딜러가 한방에 털어 먹도록 세팅한 거지. 녹색칸인 제로나 더블 제로에 걸리면 단 한 판으로 참가자 전부의 돈을 긁어버릴 수 있으니까.'

[아! 그럼 수익 기댓값이 5%가 아니라···.]

'맞아. 실제론 훨씬 더 클 거야. 승률만 보면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공평하지 않은 거지.'

[세상에. 주인님 예상대로면 이건 완전히 사기 아닙니까?]

'그래서 말했잖아. 사기라고. 그렇다고 여기서 이루어지는 모든 게임이 사기라는 뜻은 아니야. 하지만 몇몇 돈 되는 게임엔 분명 장난질을 치고 있어. 그게 아닌 이상 이 정도 규모의 업장이 무리없이 돌아가는 건 불가능 하거든.'

[주인님 예상이 맞다고 치면, 대체 누가 기계를 조작하는 걸까요?]

'누구겠어? 당연히 저 딜러겠지.'

도훈이 구경꾼 사이에 숨어 딜러를 쳐다보았다.

굉장한 미모의 여성. 아마 바텐더 중에선 가장 눈에 띄는 미모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성희나, 주아가 어딘가 살짝 부족하다면 룰렛을 굴리는 딜러는 남자들이 첫눈에 혹 할 만큼 빼어난 얼굴과 몸매를 자랑했다.

'분명 테이블 어딘가에 조작 버튼 같은 걸 숨기고 있을 거야. 그리고 베팅액이 높아지는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겠지.'

[그럼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조작을 실행할 때 거액을 베팅하시게요? 그럼 당장 환전해 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 오히려 희박한 확률에 거액을 투자하다면 업장 측에서 당연히 나를 의심할 거야. 딜러와 짜고 카지노를 털어먹으러 온 공범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보안 요원에게 끌려가는 게 두려운 게 아니라, 여기서 쫓겨났다간 주아를 작업하기 어려워지니 곤란해.'

[그럼 주인님이 생각하신 방법은요?]

'지금 가진 칩 한개로 충분해. 설사 싸구려 칩을 걸어 36배를 먹었다고 의심할 사람은 없을 걸? 어차피 난 큰 돈을 벌려는 계획이 아니라, 텍사스 홀덤에 참여할 자금을 모으는 게 목표니까.'

도훈이 비밀을 발견한 뒤로도 룰렛이 돌아가는 걸 지켜보았다. 그가 실제로 보는 것은 게임의 결과가 아니라, 게임 시작 전 손님들이 베팅하는 칩의 개수였다, 계속 참가자가 바뀌다보니 금액은 고정되지 못하고 들쭉날쭉했다.

그렇게 5분간 더 지켜보는데, 큰 손들이 참여했는지 베팅 테이블위에 검은 색 칩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제껏 룰렛을 지켜본 결과, 가장 큰 총액이었다.

'지금이다. 이 판은 무조건 딜러가 먹으려 들거야. 로시, 마음의 소리.'

[넵]

도훈이 룰렛 딜러를 쳐다보며 속마음을 읽었다.

{슬슬 시작해 볼까? 이쯤에서 제로에 한 번···}

도훈의 예상이 적중했다. 딜러가 사기칠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도훈이 기다렸다는 듯이 아무도 걸지 않는 제로의 영역에 칩을 올렸다. 주변에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그냥 돈을 허공에 뿌리는 구나."

"제로나 더블제로는 거의 안나오지 않아?"

"그래봐야 흰색 칩 한갠 데 뭐? 버리는 셈 치는 거지."

도훈이 딜러에게 베팅하자 딜러가 도훈을 슬쩍 힐끔 거렸다.

{앗, 저놈은 또 뭐야? 싹 쓸어버리려고 했는데 귀찮게···. 하긴 그래봐야 흰색 칩 한개니까 신경 쓰지 말자. 이런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아.}

룰렛이 회전을 시작하고 베팅액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딜러가 베팅 중지를 외쳤다.

"노 모어 베트."

걸린 칩이 많은 만큼 참가자들이 숨죽여 구슬의 행방을 쫓았다.

구슬은 계속 원판 위를 돌아가더니 하필 녹색 칸에 멈춰섰다. 이제껏 20여분 동안 안나오던 딜러 승에 참가자들이 탄식을 쏟아냈다.

"아! 하필 저게···."

"말도 안 돼. 여기서 제로라니."

"어? 아까 누가 제로에 걸지 않았나?"

"그래봐야 흰색 칩 한개잖아."

딜러가 다른 참가자들의 베팅 칩을 수거하다 제로에 걸린 흰 색 칩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여기에 거신 분 누구세요?"

"접니다."

"운이 좋으셨네요. 혼자 따셨어요. 무려 36배 짜리를."

"딜러님도 운이 좋으셨네요. 저빼곤 다 이기셨으니."

도훈의 뼈있는 말에 딜러가 순간 움찔했다.

하지만 사기를 치고도 당당한 딜러가 그 정도에 감정을 드러낼리 만무했다.

"호호, 저희도 가끔 이길 때가 있어야죠. 여기있습니다."

딜러는 침착하게 검은색 칩 3개와, 빨간 칩 1개. 그리고 흰색 칩 1개를 도훈에게 내밀었다. 흰색 칩 기준으로 36개에 해당하는 수익금이었다.

"또 참여하실 건가요? 싹쓸이 기회를 놓쳐서 다시 한 번 붙어보고 싶은데."

"아뇨. 그만 하려고요. 가진 칩 모두 잃어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걸어 본 거거든요. 오늘 제 운은 다 쓴것 같으니 여기까지 할게요."

순식간에 36개의 칩을 확보한 도훈이 웃으며 물러났다. 도훈의 태도가 살짝 수상하긴 했지만, 고작 30여개의 칩 가지고 그를 의심하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다. 딜러가 거둔 다른 수익에 비하면 푼돈이나 다름없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시길."

필요한 칩을 확보한 도훈은 다시 주아에게 돌아갔다.

마침 주아가 그를 찾는 중이었다.

"어? 어디 있었어요? 계속 찾고 있었는데?"

"인원 다 모였어?"

"네. 다른 손님들은 아까부터 테이블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칩은 다 환전하셨어요?"

도훈이 방금 딴 칩을 손에 쥐고 보여주었다.

"이거면 됐지?"

"간신히 30개 넘겠네요. 근데 그걸로 가능하겠어요?"

"왜? 최소 30개면 된다며?"

"운 나쁘면 그걸론 30분도 못 버텨요. 그래서 보통 100개 정도 들고 하시는데."

"그래? 뭐, 상관없어. 말했잖아, 나 마술사라고."

"풉-. 제가 딜러를 보는 이상, 카드에 장난질은 절대 금지예요. 오빠라도 안 봐줄거예요."

"농담이야."

주아는 텍사스 홀덤 테이블로 도훈을 안내했다. 미리 도착해 앉아있는 다른 손님들이 보였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미시 한명과 대머리를 반짝이는 중년 사내. 그리고 남은 한명은 도훈보다 살짝 나이가 많은 20대 후반의 청년이었다. 그는 특이하게 실내인데도 알이 작은 검은 색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어, 이제야 왔네."

"거 시간 좀 맞춥시다. 매칭 됐다고 해서 왔는데 사람을 기다리게 만들고 말이야."

남자 둘이 도훈에게 불만을 토했지만, 담배를 피우고 있던 중년 미시는 도훈의 얼굴과 몸매를 노골적으로 훑어보더니 색기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얼마나 기다렸다고 그래요? 어서와, 젊은 총각. 얼굴 참 예쁘게 생겼네."

"죄송합니다.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전 이쪽에 앉으면 되나요?"

도훈이 5각형으로 생긴 독특한 테이블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딜러를 맡은 주아는 의자에 앉지 않고 선 상태로 카드를 셔플하며 게임 룰을 설명했다.

"반갑습니다. 이번 홀덤 게임의 딜러를 맡은 이주아라고 합니다. 최소 참가금 확인을 위해 보유하신 칩은 테이블 위로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텍사스 홀덤 게임의 수수료는 시간당 칩 두개씩입니다. 이건 끝날 때 정산해 주시면 됩니다."

참가자들이 하나 둘씩 테이블 위로 칩을 올렸다.

사방에서 각양각색의 원기둥이 세워지는 반면, 도훈은 검은 색 칩이 포함되긴 했지만 고작 6개의 칩만 올라갔다. 다른 사람에 비해 너무나 초라해 보이는 칩 기둥이었다. 이를 한심하게 지켜보던 대머리 중년이 도훈을 보고 한마디했다.

"뭐야? 고작 10만원 들고 참전한 거야? 이것참, 1시간도 못 버틸 거면 뭐하러 홀덤에 들어왔담? 그냥 구석에서 짤짤이나 하지."

자본이 적은 도훈을 대놓고 무시하자 딜러인 주아가 곧바로 도훈을 편들었다.

"최소 참가금은 칩 30개 이상이면 충분합니다. 불필요한 언쟁은 삼가주세요."

"아니, 딜러 아가씨. 말이 나와서 말인데 이러다 한 명 나가리 되면, 우린 셋이서 게임을 해야 하니까 하는 말이잖아? 홀덤 인원 수 채울라고 30분을 기다렸는데 사이즈가 맞는 사람끼리 매칭을 시켜주든가 해야지, 원."

"그래요. 솔직히 너무 적은 감이 있네."

선글라스를 쓴 20대 청년도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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