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9. 빌드 업-24-
"그런 것도 있나요?"
"그 정도는 요새 클럽만 가도 쉽게 구해. 우리 같은 경우는 아는 마담 형님이 직접 공수해서 보내주는 데 진짜 성능 좋아. 한 잔만 마셔도, 계집애들이 그냥···. 알지? 불판 위에 올린 조개처럼 알아서 쩍하고 가랑이를 벌린다니까?"
"아···."
"그 담엔 적당히 돌려 드시고, 영상을 남겨놓는 거야. 나중에 외상값 안 갚으면 확 뿌려 버릴 거라고. 물론 진짜로 뿌리진 않지. 미쳤다고 영상을 뿌리냐? 증거 남기면 잡혀 들어갈지도 모르는데?"
"만약 여자애들이 경찰에 신고하면요?"
"신고는 무슨. 야. 어린애들은 겁 많아서 신고 못 해. 막말로 지가 술에 뽕을 탔는지 어떻게 알 거야? 결국 남은 건 채무 관계인데, 이게 또 대박이거든."
"채무 관계요?"
"외상값 달라고 몇 번 학교 찾아가서 깽판 좀 쳐주면 쫄아가지고 제발로 다시 찾아오더란 말이지. 빚 갚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때 사채로 변제를 시키는 거야. 일단 사채로 빌려서 대신 갚아주고 나중에 돈 생기면 천천히 갚으라고."
"그런 방법도 있군요."
"왜? 너 마이낑 안 땡겨 봤어?"
"저는 딱히···."
"그래 잘 생각했다. 어차피 다 빚인데 그딴 돈을 왜 빌려 쓰니.
암튼 너도 알다시피 이런 쪽 사채 이자가 살인적이거든. 그때쯤 우린 완전히 손 터는 거지. 그쪽에서 알아서 추징하러 다니니까. 그러다 보면 늘어나는 이자에 감당 못 하고 여자애들이 또 질질 짠단 말이야."
"그때 오피로 보내는 건가요?"
"그렇지. 이제야 말귀를 알아듣네. 솔직히 요즘 대학생들 발랑 까져 가지고 자진해서 오피 알바 뛰잖아. 처녀가 어딨어 요즘 세상에? 보짓값 비싸게 쳐줄 때 돈이나 벌면서 실컷 몸뚱이 굴리는 거지."
"···네."
"그럼 우린 또 소개비 받고, 여자애들은 빠르면 몇 달, 길면 1~2년 동안 신나게 빚잔치하는 거야. 근데 웃긴 게 뭔 줄 아냐?"
"뭔데요?"
"그 짓 하다 제대로 맛 들린 애들은 빚 다 갚고도 거기 눌러앉는 경우가 많더라고. 솔직히 쉽게 돈 버는걸 알아버리면, 다신 취직 못하거든. 침대에 누워서 가랑이만 벌려주면 한달에 천만원 이천만원우습게 버는데, 누가 일하고 싶겠냐고."
"그렇군요."
알아서 술술 부는 태오의 태도에 도훈은 일이 쉽게 풀리는 걸 느꼈다. 이 정도면 거의 범죄 자백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직접 증거가 없는 이상 제보의 설득력을 얻기는 부족할 것 같았다.
"일단 업무 내용은 대충 파악한 거 같으니, 어떻게? 오늘부터 바로 일 시작해 볼래?"
"오늘부터요?"
"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
"아닙니다. 단지 저도 일을 오랫동안 쉬었다 복귀하는 처지라 ···."
"걱정마. 첫날부터 바로 작업은 안 시킬테니까. 간만이니 그냥 가볍게 몸풀기나 해. 내가 쉬운 테이블로 넣어줄게."
"쉬운 테이블이요?"
태오가 빙긋 웃더니 테이블 위에 달린 단추를 눌렀다. 식당에서 점원을 부를 때 쓰는 초인종 버튼이었다. 버튼을 누른 후 몇초 뒤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매니저님, 박찬홉니다. 부르셨습니까?"
"들어와."
어느새 정장셔츠에 베스트 차림으로 갈아입은 웨이터 박찬호가 들어왔다. 삐끼를 할 때 입고 있던 점퍼를 벗어 던지자 진짜 웨이터느낌이 물씬 났다.
"이쪽은 새로온 우리 선수, 하서준. 아까 봤지?"
"네. 면접 잘 보셨나 보네요."
"이 정도 와꾸면 볼것도 없이 통과지. 그냥 형식적인 절차였어."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서준아 저 친구는 박찬호라고 하는데, 눈치 빠르고 싹싹한 친구라 서준이 네가 우리 가게 적응하는데 도움을 줄 거야. 찬호야, 오늘 콩순이 예약 잡은 게 몇시지?"
"콩순이 누님은 1시에 온다고 했습니다."
"거기 오늘 3명 놀러 온다고 했으니까 서준이도 같이 묶어서 넣어줘. 새끈한 뉴페이스 있으면 꼭 소개시켜달라고 저번부터 계속 부탁하더라."
"어, 근데 콩순이 누님은···."
"왜? 문제 있어?"
"아, 아닙니다.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서준이 휴게실 데려가서 다른 선수들도 소개시키고. 시우 대타로 왔다고 해."
"넵."
찬호가 도훈에게 다가가더니 휴게실로 안내했다.
"그럼, 저 따라오십쇼. 서준 형님."
"아···. 네."
도훈이 태오에게 깍듯이 인사하고 찬호를 따라 갔다.
문이 닫히자 태오가 천장에 달린 CCTV를 향해 소리쳤다.
"형님, 면접 끝냈습니다."
그때 태오의 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태오가 두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예, 형님. 실물로 보니까 와꾸는 쓸만해 보입니다."
-신원은? 확실해?
"시우가 소개시킨 동생인데,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던데요?"
-그래도 모르니 견적 한 번 따봐.
"알겠습니다. 오늘 일하는 거 보면 초보인지, 진짜로 지방 에이 스 출신인지는 드러나겠죠. 내일 출근할 때는 학적 증명서랑 가족관계 증명서도 챙겨오라고 하겠습니다."
-그래. 만약 하나라도 거짓말이면, 곱게 돌려보내면 안 돼.
"당연하죠 형님.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말을···. 제가 책임지고 교육 시키겠습니다."
-그래. 시우 이자식 병원에서 쓸데없는 소리 떠들지 못하게 감시잘하고.
"시우는 보기보다 입이 무거운 놈이라 괜찮을 겁니다. 조직을 배신하면 무슨 꼴을 당하는지 제 눈으로 똑똑히 봤을 테니까요."
-태오야. 내가 늘 말했지. 사람처럼 간사한 동물이 없다고. 누구도 믿지마. 믿는 척만 하는 거야.
"네, 명심하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태오가 씨익 웃었다.
'어디, 신참 실력 한 번 볼까?'
* * *
선수 휴게실로 가던 중 도훈이 웨이터 찬호에게 물었다.
"저 근데 스물 셋인데···."
"네, 형님."
"아니, 혹시 웨이터님 나이가?"
"아이고, 나이는 신경쓰지 마세요. 형님 일하던 곳은 나이순으로 호칭을 불렀을지 몰라도, 여기선 선수님들은 무조건 형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익숙하니까요. 웨이터가 나이 많다고 선수를 낮춰부르면 손님들도 선수를 우습게 봅니다. 그냥 편하게 반말 하십쇼. 저도 그게 더 편하니까요."
"아···."
"그런거 신경쓰지 마시고, 시간만 오래 잡아 주십쇼. 웨이터들은 TC에서 일정비율 받는게 월급의 전부거든요. 술 넣을 때 팁도 따로 챙겨주시면 더 좋고요."
"알겠습니다."
"에이, 반말로 하시라니까. 형님이 저를 어려워하시면, 다른 선수들이 오히려 저를 못살게 굽니다."
"알았어."
"첨 만 그렇지 금방 적응하실 겁니다."
"근데, 아까 태오 형님이 말한 예약이라는 게 뭐야?"
"아, 콩순이 누님요?"
"응."
찬호가 휴게실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멈추더니 도훈에게 설명했다.
"콩순이 누님은 저희랑 같은 계통에서 일하시는 분입니다."
"같은 계통이라면···."
"쩜오 텐프로랄까."
"아···."
"아시죠? 화류계 출근하는 누님들 가끔 여기로 스트레스 풀러 오시는 거."
"알지."
"콩순이 누님은 쉽게 말해 진상입니다. 다른 곳 같으면 벌써 블랙 먹였을 건데, 워낙에 씀씀이가 크니까 매니저님이 일부러 눈감아 주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친분도 좀 있다고 하고요."
"진상이라면 어떤 식?"
"흠, 그게···. 선수들을 좀 많이 괴롭히더라고요. 그래서 콩순이 누님 놀러오시면 다른 선수들이 선약있다고 피하거든요."
"그랬구나."
"그래서 보통은 잘 못나가는 형님들이 대신 출전합니다. 아시겠지만, 지명이 없는 선수들은 진상이라도 잡아야 입에 풀칠이라도 하니까요."
"흐음, 그럼 같이 들어가는 형님들은 어떤 분들이야?"
"휴게실에서 기다리고 계시겠지만, 한결 형님이랑 준후 형님입니다. 한결 형님은 저희 호빠 최고 연장자신데, 매니저님보다 2살더 많고, 준후 형님은, 스물 다섯인데 폭탄 처리반으로 많이 들어갑니다."
"폭탄 처리반?"
"진상 전문 담당이거든요. 솔직히 와꾸가 호빠하기엔 좀 부족한 편이라···. 그래도 비위가 좋아서 잘 버티십니다. 한결 형님은 젊었을 땐 나름 끝발 날렸는데 도박때문에 모은 돈 다 탕진하고 나선 돈 되는 거면 뭐든 다 하십니다."
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썅. 가볍게 몸 풀라더니 조합 난이도 개 빡세네.'
[왜 그러십니까?]
'이건 날 테스트하려는 거야. 일종의 신고식이랄까?'
[신고식이요?]
'새끼마담 자식 앞에선 듣기 좋은 말만 뻔지르르 하더니, 결국엔 날 전혀 안 믿는 것 같아.'
[주인님을 의심한다는 뜻인가요?]
'의심이라기 보단 일종의 확인이지. 내가 정말 지방에서 호빠를 뛰었던 선출인지 확인할 겸, 진상을 상대할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려는 거야.'
[흐음.]
'거기다 파트너로 들어가는 애들도 떨이들이잖아. 나이 서른 처먹은 도박쟁이에다 폭탄 처리를 전문으로 하는 와꾸라면 볼 것도 없지.'
[외모는 좀 그렇다지만 진상 손님을 상대하려면 딱 적절해 보이 는데요?]
'그게 아니야. 한 놈은 너무 늙다리고, 한 놈은 와꾸 작살났다며? 그럼 진상들이 누굴 집중적으로 노리겠어?'
[아···. 설마.]
'맞아. 나를 집중 공략하겠지. 그때 내 반응을 보려는 거야. 얼마나 비위가 좋은지, 이 일을 오래할 만한 멘탈을 갖췄는지.'
[결국 이번 신고식을 통과해야 놈들의 범죄에 동참시켜 주겠군요.]
'아마도. 그럴 작정이겠지.'
도훈이 마음을 굳게 먹었다. 호빠에서 진상을 상대해본 경험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갑의 위치에서 여자를 공략하던 도훈에게 을이 되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었다.
"이쪽이 휴게실입니다. 안에 한결 형님이랑, 준후 형님이랑 계실 겁니다."
"고마워."
"별 말씀을. 처음이니까 너무 무리하진 마시고요."
"걱정마."
걱정하는 찬호를 뒤로한 채 도훈이 휴게실의 문을 열었다.
선수 대기실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미용실같은 구조로 되어 있었다.
마치 연예인들이 분장을 준비하는 곳처럼 조명이 달린 화장대가 벽면에 설치되어 있었고, 반대편에는 푹신한 소파가 있었다.
소파 위에 길게 누워 잠이 든 남자와,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사내를 보고 도훈이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누구?"
스마트 폰을 만지작 거리던 젊은 사내가 도훈을 보고 아는 체 했다. 와꾸를 보니 호빠에 있기엔 다소 밋밋한 외모였다. 도훈은 그가 폭탄처리를 전담한다는 준후임을 알아봤다.
"시우 형님 소개로 오늘부터 일하게 된 하서준이라고 합니다."
"아, 대타로 온다는 애가 너야? 반가워. 난 이준후."
준후가 일어서서 악수를 건넸다. 도훈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걸보니, 키도 170 초반이나 되는 것 같았다.
[와, 저 사람이 호빠 선수라고요? 얼굴은 그렇다쳐도 키도 너무 작은거 아닙니까? 호빠에서 일하기엔 많이 부족해 보이는데요?]
'아니지. 오히려 반대로 생각해야지.'
[반대로요?]
'저 얼굴에 저 키로 호빠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았으면, 비장의 한 수가 있다는 소리거든. 비위가 좋다는 걸 보면, 시키면 뭐든 해내는 근성이 끝내주는 모양이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악수를 건넨 준후가 소파에 누워 자고 있던 사내를 불렀다.
"한결이 형. 일어나 봐요. 신참 받아요."
"······."
"아이참, 한결이형. 뉴페이스 왔다니까."
한결은 준후가 불러도 미동도 없었다. 선수 대기실을 무슨 안방처럼 여기고 깊이 잠이 든것 같았다. 깨워도 반응이 없는 한결을 보며 준후가 난처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미안. 한결이 형이 어제 또 날 샜나봐. 출근해서 지금까지 저 상태네."
"괜찮습니다. 어제 일이 늦게 끝났나 봐요."
"일은 무슨. 또 사설 도박장가서 포커나 치고 왔겠지."
"포커요?"
"저 형은 도박 중독자야. 그렇게 끊으라고 말려도 도통 말을 듣지 않으니. 아잇 진짜, 한결이 형! 얼른 깨서 단장하라고요. 예약 손님 20분 뒤에 온다니까?"
결국 준후가 한결을 흔들어 깨웠다.
뒤척이며 버티던 한결은 하는 수 없다는 듯 일어나더니 졸린 눈을 비볐다.
"에이, 10분 전에 깨워달라니까."
"뭔 10분 전이에요. 괜히 매니저 형님한테 한 소리 듣지 말고 얼른 준비해요."
"하아암, 어? 근데 쟨 또 뭐냐? 새로 왔어?"
"안녕하십니까. 오늘부터 함께 일하게 된 하서준이라고 합니다."
준후가 옆에서 거들었다.
"왜 시우 형님 교통사고 나서 입원했잖아요. 그래서 대타로 추천한 동생이래요."
"그래? 니가 시우보다 나은데?"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에이스 급인데 완전?"
겨우 잠을 깬 한결이 담배를 꼬나물며 도훈에게 말했다.
"넌 근데 몇살이냐?"
"스물 셋입니다."
"어이구, 어린 놈의 새끼가 뭐 할 짓이 없다고 이런 델 제발로 찾아오냐? 사지 멀쩡하면 알바를 구할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