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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377화 (1,344/2,000)

1360. 여대 잠입-60-

도훈의 말에 눈앞에 둥둥 떠다니던 상태창이 사라졌다.

"혹시 인벤토리도 그대로 쓸 수 있나?"

[본래 주인님이 쓰시던 인벤토리는 게임 난이도 조절을 위해 모드 중에는 사용 불가가 됩니다. 대신 허리띠에 차고 다니는 복주머니 속에 필요한 물품들이 구비되어 있을겁니다.]

도훈은 복대 한쪽에 채워진 조그만 금낭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도 겉으론 작아도 내부는 광활하겠지?'

[시나리오상에서 주어지는 인벤토리는 원룸 하나의 크기를 갖습니다. 안에 든 내용물을 확인하고 싶으시면 역시 '인벤토리'를 말로 하시거나 생각하시면 됩니다.]

'말로 안 하고 생각만 해도 되는 거라고?'

[암습을 위해 암기를 조용히 꺼내야 할 때도 있으니까요.]

'아하.'

도훈이 머릿속으로 인벤토리를 떠올리자 이번에는 정보창홀로그램과 비슷한 화면이 떠올랐다. 격자무늬로 칸막이가 쳐진 화면에는 내공 회복을 위한 단약 몇 개와 지혈용 금창약, 그리고 몇 가지 비상식량이 들어가 있었다.

특이한 것은 아이템으로 별도로 구분된 난에는 손에 쥔 묵빛 검 외에도 창과 방패나 활 등이 있어 이들 무기로 바꿀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오. 무기 교체도 가능?"

[네, 얼마든지요. 하지만 백현은 기본적으로 검사 클래스의 인물이기 때문에 검을 사용할 때 가장 위력이 배가됩니다. 또 다른 무구들은 평범한 수준의 아이템인 반면, 현재 들고 계신 묵향은 나름 레어급 아이템이니 효과가 더 좋을 거구요.]

'묵향? 이 검의 이름의 묵향이야?'

[네.]

'이거 모드 개발한 사람 왠지 한국인 같은데?'

[개발자들은 대부분 개인 정보를 숨기기 때문에 누군지 알수는 없습니다. 단지 추정할 뿐이죠.]

'아니, 무공 비급도 구음진경에 검 이름이 묵향이면 빼박이잖아.'

[당최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요.]

'아냐, 됐어. 혼잣말이야. 근데 레어 아이템이라면 뭔가 다른 점이 있는 거야?'

[네. 절삭력에 +5의 포인트가 붙어있고, 내구성이 다른 무기에 비해 월등히 뛰어납니다. 어둠 속에선 검이 불빛에 반사되지 않아 상대가 쉽게 거리를 재지 못한다는 장점도 있고요. 현철이라는 특수한 철로 만들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대로 쓰는 게 가장 좋다는 말이구나?'

[그렇습니다.]

'쓰읍, 근데 맨날 주먹질로만 연습하다가 갑자기 손에 칼을 쥐어보니까 당최 어떻게 싸워야 할지 모르겠네.'

[걱정 마십시오. 곧 튜토리얼 모드가 진행될 예정이니까요.]

'튜토리얼?'

도훈이 고개를 갸웃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숲 안 쪽에서 불량한 무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동물 가죽으로 만든 의복에 허리엔 망나니칼을 찬 것을 보니 전형적인 산적의 차림이었다.

"이야, 기가 막히는 클리쉐구나? 아무리 게임이지만 좀 성의있게 만들 수는 없나? 처음으로 등장한 놈들이 산적이라니."

도훈이 혼잣말을 지껄이는데 눈앞의 산적들이 아랑곳하지 않고 대사를 읊었다. 마치 정해진 스크립트를 수행하는 것처럼 기계적인 모양새였다.

"허어! 간덩이가 부은 놈이로구나. 감히 이곳이 어느 안전이라고···."

"누구 안전인데?"

"뭐, 뭣이?"

생각보다 NPC의 인공지능은 잘 만들어졌는지 도훈의 뜬금없는 질문에 반응하는 기색을 보였다.

'키햐, 진짜로 사람하고 똑같네. 얼굴에 묻은 땟국물까지 완벽하게 재현했는데?'

[천상계 기술력은 우주최강이니까요.]

'근데 이거 살 떨려서 칼 쓸 수 있겠냐? 사람 베는 느낌도 똑같을 거 아냐? 너무 리얼하면 오히려 별론데. 난 무협에 나오는 살인귀가 아니라고.'

[아하. 그 점은 걱정 마십시오. 미성년자 플레이어를 위한 청소년 보호 옵션이 별도로 존재하니까요. 해당 옵션을 활성화하면 피도 튀지 않고 데미지도 게임처럼 수치로만 표현됩니다.]

'이거 완전 게임하고 똑같은 거네.'

[당연하죠. 천상 크래프트 게임 모드니까요.]

"이, 이놈이 얘들아 저놈을 껍질까지 벗겨서 나무에 매달아 버려라!"

"네, 형님!"

두목으로 보이는 산적의 명령에 양 옆에 흩어져있던 산적들이 우르르 도훈을 둘러쌌다. 그 순간 세상이 일시정지 된 것처럼 멈추더니 도훈의 앞으로 스크린이 떠올랐다. 이제까지완 너무나 다른 비현실적인 장면에 도훈도 속으로 실소를 흘렸다.

[튜토리얼 모드가 시작되었습니다. 상세한 설명을 원하시면 화면을 터치하세요. 스킵을 원하시면 오른쪽 하단 스킵을 누르시면 됩니다.

도훈은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어 보여 스킵했다.

"흥, 튜토리얼 용 잔챙이 정도야."

도훈이 묵빛의 검을 세워 들자 검신 주변으로 검은색의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오옷, 이것이 오러 블레이든가?"

[묵향이 가진 옵션입니다. 절삭력을 강화해주는 특별한 기운이 담겨 있습니다.]

두서없이 달려드는 산적들을 향해 도훈이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검을 직접 다루긴 처음이었으나, 무기를 몇 번 부딪치고 나자 금세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오호라, 검은 결국 팔의 연장. 격투술이 그대로 응용되는구나.'

[벌써 깨우치신 겁니까? 과연 천무지체!]

'아니 뭐, 상대가 너무 약하기도 하고.'

"꺼져, 이 잔챙이 새끼들아!"

도훈이 크게 검을 휘두르더니 단숨에 산적들을 베어 넘겼다. 워낙에 동작이 빠르고 정확했기에 산적들 3명이 우르르쓰러졌다.

신기하게도 검으로 맨살을 베었는데, 몽둥이를 후리는 것 같은 둔탁한 타격감이 전달되었다. 검에 베인 산적들 또한 피 한방울 뿌리지 않고 붉은 색의 숫자만 머리 위로 떠오르더니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34, 32, 60? 저 숫자들은 뭐야?'

[방금 전 주인님이 행하신 동작의 공격력 수치입니다. 상대의 최대체력을 넘어서는 데미지가 들어갔기 때문에 즉사판정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근데 마지막은 왜 데미지가 60이 뜬거야? 앞에 두명은 30대인데.'

[아마도 크리티컬 히트라고 급소를 정확히 가격하신 것 같습니다. 급소 위주로 공격하면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습니다.]

'이거 진짜로 게임이네. 완전 현실적인 리얼VR.'

도훈은 현실과 똑같은 완벽한 감각에 전율하며 검의 사용 법에 적응했다. 손에 무기만 들었다 뿐이지, 이제껏 몸에 익힌 칠성권을 응용하는 동작이 대부분이었다. 칠성권에서 배운 보법과 회피기, 투로 모두 검을 든 채 진행하는 것 뿐이었다.

'호오, 무기가 있으면 편리한 점도 있구만. 리치가 말도 안되게 길어졌네.'

[좀 적응이 되셨습니까?]

'어. 오히려 쉬워.'

도훈이 순식간에 산적들을 쓰러뜨리자 두목으로 보이는 마지막 놈이 갑자기 겁을 집어 먹고 도훈 앞에 무릎 꿇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대협을 몰라뵙고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무례를 저질렀으면 목숨으로 갚아야지."

도훈이 칼을 머리 위로 치켜드는데, 갑자기 화면이 정지되면서 선택창이 떠올랐다.

1 . 산적을 그냥 죽인다.

2 . 산적에게 구음진경에 대한 단서를 묻는다.

'오잉? 이건 또 뭐야?'

[선택지 옵션이 발동한 것 같습니다.]

'저놈이 두목이라서?'

[그게 아니라 마지막 한 사람이 남게 되면 자동으로 항복을 선언하고 선택창이 떠오르도록 설계된 것 같습니다.]

'호오. 그렇구만.'

자유도가 없다더니 고를 수 있는 항목도 두 개 중에 하나였다. 도훈은 재미삼아 1번을 누르고 싶어졌다.

'혹시 그냥 죽이면 시나리오에 변수가 생기는 건가?'

[저라면 선택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왜?'

[참고로 개발자들은 자신이 개발한 게임에 몇 가지 보상을 걸어 놓기도 합니다.]

'보상이라고?'

[음, 일종의 잭팟 개념으로 모드에 참여한 플레이어들 중 한명을 뽑아 특전을 주는 것입니다. '구음진경을 찾아서' 모드의 특전은 실제 무공 비급이라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억? 진짜로 무공 비급이라고?'

도훈은 무공 비급을 얻을 수 있다는 말에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수련을 하려고 모드를 구매했더니, 엄청난 보상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구매하기엔 너무 비싸서 엄두도 못 냈던 내공심법이 게임의 보상으로 걸려있다는 말에 도훈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자, 잠깐만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다면 이 모드를 모두 깨고 나면 무공비급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거야? 구음진경인가 뭔가를?'

[맞긴한데 확률은 무척 낮을 겁니다.]

'왜?'

[엔딩을 본 플레이어가 많은 데 아직까지 무공비급 특전을 받아간 플레이어가 없는 걸 보면요.]

'엔딩을 보는게 조건이 아니라고?'

[당연하죠. 해당 시나리오 모드는 플레이 난이도가 높은 편은 아닙니다. 어지간한 중수급이면 충분히 깰 수 있는 수준으로 구성되어 있을 겁니다.]

'그럼 어떻게 특전을 받을 수 있지?'

[아마도 개발자가 이스터에그 방식으로 게임 내에 숨겨두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참가한 플레이어들은 아직까지 못찾은 것 같고요.]

'호오, 그러니까 운빨일수도 있다는 거네?'

[네. 쉽게 말하면요.]

모드가 일시 정지된 상태였기 때문에 도훈은 턱끝을 쓰다듬었다. 확률이 희박하긴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특전이 걸려있었다. 막대한 보상이 걸려 있는데 허투루 진행할 순 없는 일이었다.

"일단 게임부터 진행하자. 2번."

도훈이 선택지를 고르자 갑자기 저절로 대화가 진행되었다. 마치 도훈의 영혼이 빙의되어 있고, 입만 별도로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혹시나 구음진경에 대해 아는 게 있다면 살려줄 수 있을지도."

"구, 구음진경 말씀이십니까 대협?"

"그렇다."

"아! 요 산 아래 넘어가면 처음 나오는 객잔이 실은 마교의 비밀지부라고 합니다. 거기 지부장을 족치면 구음진경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요."

"호오, 그렇군. 좋은 정보를 주었으니 살려는 드리지."

도훈이 갑자기 검집으로 산적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윽!"

산적이 쓰러지자 갑자기 마비가 풀린 것처럼 통제권이 돌아왔다.

"뭐, 뭐야 이건? 방금 완전히 몸이 내 멋대로 움직였는데?"

[시나리오 모드의 시네마틱 컨트롤입니다. 주인님의 몸으로 펼치는 일종의 연출효과랄까요?]

'아니 그래도 사람 몸을 멋대로 조정하는 게 어딨어? 깜짝놀랐잖아!'

[어차피 이곳은 가상현실입니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현실과는 상관없으니 안심 하시길.]

'하긴 그런가?' 도훈은 몸의 통제권을 뺏기는 경험이 오싹하기는 했지만 점점 시나리오에 몰입하는 중이었다. 쓰러진 산적들을 뒤로 하고 산을 넘어간 도훈은, 산자락 밑에 있는 건물을 발견했다.

"저긴가? 산적이 말한 주막이?"

[용문 객잔이라고 씌여있습니다만.]

"한자를 몰라서 그런 게 아니야. 흐음!"

도훈은 부끄러운 듯 헛기침을 하더니 객잔으로 향했다.

무복을 입은 도훈이 등장하자 객잔에 있던 일단의 무리들이 순식간에 도훈을 쳐다보았다.

호기심어린 시선도 있었고, 악의가 넘치는 시선도 있었다.

도훈의 예리한 눈썰미는 순식간에 객잔 손님들의 피아를 식별했다.

'흐음, 정파와 사파의 인물들이 섞여 있는 모양인데.'

무심한 듯 자리에 앉은 도훈이 지나가는 점소이를 불렀다.

"여기 주문을···."

"저희 객잔은 만두와 죽엽청이 특히 맛있습니다, 나리."

"내어 오거라."

"한 냥입니다."

'선불인가? 돈은 어딨지?'

[금낭 속에 20냥 정도가 주어집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산적들을 해치우고 전리품을 챙겼어야 했는데 말이죠.]

'아니, 그걸 지금 말하면 어떻게 해?' 도훈은 주머니에서 한 냥을 꺼내 점소이에게 건네며 객잔안을 유심히 살폈다. 산적 두목에게서 마교의 비밀지부라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단서는 찾을 수 없었다. 방금 전 주문을 받아간 점소이만 해도 무공을 익히지 않은 자였다.

'흐음, 여기서부턴 어떻게 진행해야 할 지 모르겠군.'

도훈은 주문으로 나온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가상의 세계에서 먹는, 비현실의 음식임에도 씹는 식감이 입안에 고스란히 느껴졌다. 실제로 식도를 타고 위로 내려가는 음식물을 느끼며 도훈이 감탄했다.

'대박. 진짜로 먹는 것하고 똑같은데? 포만감까지.'

[당연하죠. 진정한 가상현실은 실제와 구분되지 않으니까요.]

'이쯤 되면 내가 속한 현실도 매트릭스의 세계인지, 진짜 인지도 모를 정도로군.'

도훈이 복잡한 생각을 하며 음식을 먹고 있는데, 객잔의 입구로 여자 한 무리가 들어왔다. 사막에서나 볼 법한 긴 망사천으로 얼굴을 가린 호리호리한 미녀들이었는데, 몸에 달라붙은 의복 때문에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오우 고져스!'

도훈은 게임 속 여성 캐릭터의 디테일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완전 몸매 사기네. 그것도 4명 모두.'

[캐릭터 조형은 창조자의 자유니까요.]

'그냥 지나가는 엑스트라는 아닌 것 같은데? 맞지?'

[정보창으로 확인해 보시는게 가장 확실합니다.]

'다른 사람의 것도 볼 수 있는 거였어?'

[플레이어가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NPC니까요. 배역이 정해진 비중있는 NPC의 경우엔 설명이 나오기도 합니다.]

'오케이.'

도훈은 조용히 속으로 상태창을 읊었다.

그러자 그에게만 보이는 반투명한 스크린에 4명의 미녀에 대한 정보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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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옥봉사선자 (금소소, 매산산, 유향향, 곡청청)

나이 : 20대 초반~20대 중반

내공 : ???

스킬 : 옥녀검법.

목표 : 옥녀검이라는 절기를 물려받은 4명의 젊은 여고수.

각기 빼어난 절기를 가지고 있으며, 외모가 수려하기로 유명하다. 무사수행을 하고 오라는 스승의 명을 받아 전국을 유랑하던 중, 용문객잔에서 주인공과 마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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