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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251화 (1,218/2,000)

1234.. 2학년2학기-49-

"아니 그게…."

"네가 왜 우리 피씨방 회식을 잡는데?"

창범은 면목이 없었기에 그답지 않게 우겨댔다.

"왜요? 나도 맨날 여기 들락거리는구먼, 이만하면 나도 같은 식구 아니에요?"

"창범아. 매일 같이 PC방 오는 손님한테는 식구라고 안하고 가족이라고 한단다."

"같은 말 아닌가?"

"가! 족같은 새끼야. 니 놈이 무슨 식구야? 와서 일을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폐인처럼 게임만 하는 새끼가."

"에이씨, 진짜. 나도 모르게 당황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요!"

"왜 하지 말라는데 소연이한테 전화를 하냐고. 그러니까!"

대근은 갑작스럽게 추가된 일정에 몹시 짜증을 냈지만, 한편으로는 소연으로 인해 비롯된 창범의 변화를 흥미롭게 지켜보는 중이었다.

‘음,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무장정 나무랄 일만은 아니네. 저 목석같은 새끼가 대놓고 여자한테 관심을 보이는데 내가 도와 주지는 못 할 망정 꼽이나 주고….’

"미안하다고요. 대신 제가 쏘면 되잖아요."

궁지에 몰린 창범이 회식을 쏜다고 하자 대근이 그 기회를 틈타 타협을 선언했다.

"좋다. 남자가 그 정도 배포는 있어야지. 그럼 소고기로?

"

"예? 아니 돼지고기가 얼마나 기름지고 고소한데 굳이 열심히 일한 소를…."

"소연이가 저번에 소고기 좋아한다더라."

"소연이가요? …음."

창범은 평소 그답지 않게 소연이 얘기만 나오면 이성이 흐릿해지는 것 같았다. 대근은 그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속으로 실실 쪼갰다.

‘이햐, 이거 신기한데? 사람이 순식간에 멍청해질 수가 있나? 하긴, 불만투성이에 맨날 툴툴거리는 것보단 차라리 저게 나을지도.’

"신입이도 왔는데 선배로서 멋지게 한 번 쏴. 내친김에 미호도 부를게."

"미호까지요? 미호 올 수 있데요?"

"부르면 오는 거지. 지부장 호출인데."

대근은 정말로 핸드폰을 붙들더니 미호를 향해 문자를 보냈다.

-조대근 : $$$

옆에서 슬쩍 지켜보던 창범이 까무러치게 놀랐다.

"미쳤어요? 아니 직원 회식에 긴급 소집 명령을 왜 보내 는데?"

"이 정도 해야 미호가 움직이지."

과연 대근의 말대로 평소 늘 종적이 묘연하던 미호에게서 곧바로 전화가 왔다.

-뭔데요? 적의 습격이에요? 피해는?

"회식이야."

-…네?

"창범이가 간만에 소고기 쏜단다. 참, 오늘 신입도 한 명 왔거든? 그러니까…."

-아 씨, 존나 이 인간 미쳤나! 너 거기 딱 있어. 가서 간을 꺼내다 초장 발라 씹어 버릴 테니까!

미호는 갑자기 성격이 돌변한 것처럼 쌍욕을 퍼붓더니 전화를 끊어버렸다.

대근이 난처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두나 같지?"

"세나 아니에요?"

"세나면 대장 오늘 진짜 위험할 수도."

"음…. 장난이 심했나."

"맞는 말을 했으니 처맞아야죠."

"아, 이럴 때가 아니지. 회식하려면 손님들 내 보내야지.

"

"근데 무슨 수로 내보내요? 아예 밥 시켜 놓고 날 샐 것처럼 앉아있는 폐인들도 보이더만."

창범은 본인 스스로가 피씨방 죽돌이였기 때문에 몇몇 손님의 얼굴들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들은 라이트한 손님들과 다르게 한 번 자리에 앉으면 기본 10시간은 우습게 찍어버리는 핵과금유저들이었다. 아마 피씨방에 화재가 나지 않는 이상 꿈쩍도 않을 것이다.

그 말에 대근이 어쩔 수 없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 게임이 인간의 폭력성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는지 아냐?"

"네? 뜬금없이 무슨 소린데요?"

"찔러라! 찔러라! 찔러! 찔러! 찔러!"

마침 대근의 말을 증명하는 거처럼 컴퓨터 게임에 몰두해 있는 학생들 입에서, 입에 담기 힘든 온갖 욕설이 튀어 나왔다.

"저 새끼! 씨발! 야! 넌 뒤졌다, 이 병신아. 곱게 죽여주지. 뒤져 버려!"

"보이지? 총으로 사람들을 이유없이 죽이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잖아."

"네? 아니 그냥 게임이잖아요. 컴퓨터 그래픽이라고요."

"그래? 하지만 실험을 해보면 확실히 알 수 있지."

"실험요? 무슨 실험요? 아니 뜬금없이 왜 이러는 건데요? 목소리 톤은 왜 그래요 또?"

대근은 말없이 주방으로 가더니 벽면에 두꺼비집을 열어 차단기를 내려버렸다. 창범은 대근의 행동에 경악했다.

"미, 미쳤어!"

"어, 어, 어? 뭐야! 아- 씨발! 보스깨고 있었는데! 아…"

"꺼졌던데, 이 쪽에?"

"아, 미치겠다. 내가 진짜 아-"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곳곳에서 욕설과 함께 격한 반응이 터져 나오지? 폭력 게임의 주인공처럼 난폭하게 변해 버린 거야."

"아니 이게 무슨 개소리에요! 게임하고 있는데 셧아웃시키면 누구라도 빡치지!"

그때였다.

대근이 의미심장한 얼굴로 주방 문을 닫은 것은.

"얼래? 말하다 말고 왜."

"사장님! 어떡하실 거예요? 정전 때문에 만랩 캐릭 죽었잖아요! 아이템 떨궜으면 책임지세요!"

"아씨, 환불해 달라고!"

"불 좀 켜줘요 진짜, 뭐야!"

성난 손님들이 우르르 카운터로 몰려들었다. 신입 알바인 건은 어버버 거리며 대응도 못했고, 졸지에 카운터에 서 있던 창범이 사태를 수습해야 했다.

그제야 창범은 대근이 두꺼비집을 내리고 주방에 숨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이씨! 미친 대장!"

대근은 주방에 허리를 수그리고 숨어 끅끅거리며 웃음을 참았다.

"니가 우리 식구라며? 식구면 어려움도 같이 이겨내야지. 그나저나 이거 2시간 비우면 손해가 얼마야. 어휴."

* * *

[근데 김양에겐 왜 다시 돌아가시는 겁니까? 이제 최실 장을 옭아맸으니 김양은 더 이상 필요 없는 거 아닌가요?]

‘달삼쓰뱉이냐?’

[네? 그건 무슨 사자성언가요?]

‘달아서 삼킬 땐 언제고 쓰니까 뱉냐고.’

[그게 무슨….]

‘김양의 효용가치가 떨어졌으니 그냥 쌩까라 이거야? 나 때문에 오늘 강간까지 당한 여자를?’

[아…. 죄송합니다.]

‘아무리 미션이 우선이라도 사람이 그래선 안 되는 거야.

이용가치가 떨어졌다고 헌신짝 버리듯 내동댕이치면 그건 양아치지.’

[주인님 원래 근데 먹튀….]

‘에이씨. 먹기는 했어도 튄 적은 없다니까 그래? 그리고 설사 내가 먹튀는 해도 피해는 안 줬잖아. 김양은 나 때문에 확실한 피해를 봤고.’

[그렇긴 하죠.]

‘김양은 나 때문에 끔찍한 일도 당하고 직장 다니기도 곤란해졌잖아. 생각해봐 앞으로 어떻게 사무실을 나가겠어?’

[흐음…. 주인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어딘가 어색하군요. 왠지 내공을 익히신 뒤 대협의 풍모를 보이는 것 같아 보기 좋습니다.]

‘대협은 무슨. 그냥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는 거지.’

[근데 어떻게 책임지시려고요?]

‘부탁해 봐야지.’

[부탁이라뇨?]

도훈은 시간을 확인하더니 뜬금없이 나예림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 웬일이야? 이 시간에 전화를 다 주시고.

"바빠?"

-바쁘지. 바빠서 통 연락도 못 했잖아. 밀려드는 주문 때문에 눈코 뜰 새도 없어.

"그래? 혼자서 하긴 좀 벅차지 않아?"

-안 그래도 직원 하나 고용할지 고민 중이야. 일은 잘 되고 있으니까 붙들어 매. 투자한 것 몇 배로 돌려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예림은 몇 달 전 도훈의 투자로 인터넷 쇼핑몰 사업을 시작했다. 도훈은 그녀가 잘된다는 소식에 몹시 기뻤다.

"잘됐네. 그나저나 사람 구한다니 내가 아는 애 하나 소개 시켜 줄까 하는데."

-누군데?

"음, 자세히는 묻지 말고. 받아 줄 수 있어?"

-뭐야? 아는 애야? 여자애?

"어."

-…뭐지? 너 무슨 사고 쳤니?

"사고는 아니고. 암튼 부탁 한 번 하자."

-야. 내가 무슨….

예림은 발끈하려다 갑자기 생각이 바뀌었는지 도훈에게 말했다.

-좋아. 대신 대충 하면 쫓아낼 거라고 해. 알았지? 나도 일손 딸려서 당장 직원 구해야 하는 입장이라 받아주는 거라고.

"당연하지."

-그리고 맨입으로 부탁할 생각 말고. 아무리 지분 가진 투자자라도 무턱대고 부탁할 땐 성의 표시는 해야 하는 거 아니니?

"성의 표시아니? 음…. 비율 좀 조종해줘?"

-됐어. 내가 돈 때문에 그래? 그냥 몸으로 때워.

"모, 몸으로?"

-지금은 바뻐서 힘들고 나중에 좀 한가해지면. 아씨, 바빠서 섹스도 못하고 있다고.

"아…. 그래. 그건 약속할게."

-분명 약속했다?

"응, 알았어."

-휴, 나 또 주문 들어온다. 제품 발주 넣어야 하니까 나중에 다시 통화해.

예림은 정말로 바쁜지 바로 전화를 끊었다.

[나예림양에게 김양을 맡기신 다고요?]

‘응. 괜찮겠지?’

[쓰읍. 그다지 좋은 아이디어는 아닌 것 같은데요. 무슨 기둥자매 모임도 아니고….]

‘별 수 없잖아. 당장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곤 예림이나 미나정도 밖에 없는데…. 미나는 필리테스 쪽이라 실력이 없으면 어차피 힘들거고.’

[예림양은요?]

‘예림이는 어차피 인터넷 쇼핑몰이라 전화 응대하고 택배 포장만 해주면 되니까 비교적 쉬울 것 같아서. 그래도 잘 됐네. 사업 잘 나간다니까.’

[주인님 지분의 가치가 계속 상승하고 있군요.]

‘잘할 줄 알았어. 딱 천직이라니까.’

[흐음…. 인맥을 이렇게 활용하실 줄 몰랐습니다.]

‘예림이가 거절 못 할 건 알고 있었지.’ 도훈은 일이 생각대로 진행되는 데 만족하며 김양의 집을 방문했다. 김양은 시골서 혼자 상경한 터라 원룸에 살고 있었다.

똑똑-

"누구세요?"

"나야."

도훈의 목소리를 들은 김양이 곧바로 문을 열었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그녀는 어딘가 긴장된 표정이었다.

"괜찮으세요? 어디 다치신데는…."

"내가 다칠 사람으로 보였어?"

"그, 그건 아니지만…."

김양은 아까 도훈이 양아치패거리를 어린애처럼 가지고 노는 모습을 직접 목도했었다. 남자들의 싸움에 대해서 잘 아는 바는 없지만, 적어도 그녀가 본 사람 중에 가장 빼어나는 것 정도는 눈치로 알 수 있었다.

"들어가도 돼?"

"아, 네…. 갑자기 오신데서 치운다고 치웠는데 좀 어지러울 거예요."

"사람 사는 집이 다 똑같지 뭘."

도훈은 거침없이 방 안으로 들어갔다. 20대 초반 여자가 혼자 사는 평범한 집이었다. 가구는 조촐하지만 아기자기했고, 나름 살림에 꼼꼼히 신경쓴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마실 거라도…."

"아니, 됐어. 그보다는…."

도훈이 말없이 김양을 안아주었다.

봉순은 당황하면서도 그의 품에 꼭 안겼다.

"미안해. 나 때문에."

"…괘, 괜찮아요."

"최실장 그 양아치 새끼는 내가 단단히 혼을 내줬어. 아마 다시는 너한테 그런 짓 못 할 거야."

"네."

"많이 힘들었지?"

김양이 씁쓸한 눈으로 말했다.

"솔직히…. 한 번 대준 건 기분 더럽긴 해도 그러려니 할 수 있어요. 제가 뭐 처녀도 아니고, 놀만큼 놀아 봤으니까.

"

"음…."

"근데 나중에 오빠 함정에 빠뜨려서 담그려고 하니까 도저히 못 참겠더라고요. 분명 저한테는 USB만 돌려 받겠다고 했거든요."

"그래."

"…미안해요 저도. 저만 살자고 오빠를 위험에 빠뜨려서."

"아니야. 미안할 건 없어. 난 그냥 네가 상처받지 않았길 바랄 뿐이야."

"상처는 무슨…. 신경 안 써요. 술 먹다 꽐라되서 누군지도 모른 놈한테 따먹혀도 봤는데 뭘."

확실히 김양은 성폭행에 대한 충격은 덜한 듯했다. 사람 마다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른데, 김양은 다행히 이런 쪽으론 많이 무던한 편이었다.

[음…. 덤덤하게 말하니 어딘가 더 애처롭네요.]

‘그러니까. 봉순이도 고생 많이하면 자랐겠네.’

"아참, 회사는 이제 그만 나가."

"나가지 말라고요?"

"최실장한테도 말해 놨어.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얼굴보기 불편할 거 아니야. 혹시나 위험한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그렇긴 한데…."

김양이 난처한 표정으로 원룸을 두리번 거렸다. 그녀가 위험한 줄 알며서도 사채사업소 경리로 일했던 건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였다. 일을 당장 그만 두면 다음날 월세 내기도 빠듯했다.

"너 옷 입는 거 좋아하지?"

"네?"

뜬금없는 물음에 김양이 되물었다.

"아니. 새로운 옷 피팅해보고 사진 찍고. 그런거."

김양은 여느 20대 초반 여자들처럼 옷을 많이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렇긴 한데… 그건 왜요?"

"나 때문에 일까지 그만두게 된 게 미안해서 일자리 하나 섭외해 놨어."

"오빠가요?"

"응. 아는 동생이 하는 인터넷 쇼핑몰인데 일이 바빠져서 직원이 필요하다더라고."

"아…. 정말요? 전 근데 배운 것도 없고 인터넷 같은 것도 잘 못하는데…."

"그냥 전화 응대하고 옷 싸서 택배 붙이는 일이야.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아? 그리고…."

도훈이 김양의 몸매를 일부러 위아래로 훑었다.

"뭐, 급하면 니가 그 동생 대신 피팅 모델 해도 되겠구만."

"제가요?"

김양이 눈을 반짝였다.

‘피팅’이라는 말보다 ‘모델’이라는 말에 더 꽂힌 것 같았다.

"솔직히 너 몸매 좋잖아. 옷 빨도 잘 받고."

"아…. 정말 제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정말 전 일자 무식이라…."

"야. 너네 사장 될 사람도 대학도 안나왔어. 중퇴야."

[휴학 아니었습니까?]

‘그런가? 암튼 그거나 그거나.’

우울해 있던 김양이 뛸 듯이 기뻐했다.

안 그래도 안 좋은 일만 하는 사채 사무소를 월급 때문에 다니는 게 찝찝했는데 도훈 덕분에 훨씬 좋은 직장으로 전 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오빠, 정말 뭐라고 고마움을 표시해야 할지…."

"아니야. 내가 너한테 미안한 마음이 있어서 그런거니 신경 쓰지마."

"오빠…."

김양의 눈이 촉촉해졌다.

그러고 보니 처음의 야수같은 인상도 익숙해졌는지 거슬리지 않고, 내 여자에겐 따뜻한 상남자가 떡 하니 있었다.

"오빠앙!"

김양이 도훈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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