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250화 (1,217/2,000)

1233.. 2학년2학기-48-

도훈의 협박에 최실장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흔히 '성난 도훈'을 처음 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떠올리는 인상은 '언젠가 분명 사람을 죽여봤을 것'같다는 것.

역용술로 말미암아 깊게 패인 주름이 살벌함을 더했고, 묘하게 올라간 눈꼬리와 비틀린 입술은 잔악성을 드러내기 충분했다.

게다가 최근 심후한 내공까지 더해지며 특유의 살기마저 은근히 퍼지자 보통 사람들로서는 감히 감내할 수 없는 수준의 위압감이 전신에서 뿜어져나오는 것이었다.

'지, 진심이다. 저 새낀 수틀리면 분명 이자리에서 나를 죽이고 말 거야.'

최실장은 본능적인 공포에 사로잡혔다.

나름 하류 인생을 전전하면서 더럽고 험한꼴을 봐왔다고 생각했지만, 도훈이 지금 풍기는 기도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나마 사채업으로 다져진 독기로 근근히 버텨냈다.

"워, 원하시는 것이라면 말씀하십시요! 뭐든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내가 그래서 너같은 새끼가 싫다는 거야."

도훈이 차갑게 대꾸했다.

"…네?"

최실장이 도훈의 눈치를 살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사내였다.

"너란놈은 애초부터 충성심이랄 게 없잖아? 수년간 모신 박회장이라도 가차없이 배신 때리는데, 내가 뭘 보고 널 믿으라는 건데?"

최실장은 말문이 막혔다.

'미, 미친새끼. 그럼 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오늘 일을 발설않겠다고 하니 죽여서 입막음을 하겠다고 하질 않나, 조직을 배신하겠다고 하니 신의가 없는 사람이라서 못 믿겠다는 식이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그러나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고 느낀 최실장은 끝까지 매달렸다.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자존심 같은 것 중요치 않았다.

"형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알려주십시요.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뭐든?"

"네. 뭐든요. 진심입니다."

"그럼 네 놈이 얼마나 쓸모가 있을지 보도록 하지. 네놈조직에 대해 아는대로 불어봐."

"조직이라시면…."

"너네 오야붕 말이야. 박회장에 대한 것 전부 다."

최실장에 따르면 자신은 조직의 허리쯤 되는 위치였다.

사채 사업소 한 지점을 운영하며 조직에 현금을 갖다 받치는 캐시카우의 역할이랄까?

"그럼 박회장 재산이 얼마나 되는데?"

"저, 저도 거기까진 잘 모릅니다."

"금고지기 새끼가 재산 현황을 모른다?"

"그, 그게…. 회장님의 전체 재산 규모를 아는 조직원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왜?"

박회장은 태생이 사채꾼 출신이었기 때문에 돈을 오래전부터 직접 챙겼다고 했다. 다섯군데나 되는 사채 사업소는 일종의 분점으로서 제각기 융통하는 금액이 다르고 수익율도 다르기 때문에 일괄로 퉁치기가 어렵다는 소리였다.

게다가 근래에는 건물임대 쪽으로 확장하면서 사업 전체에서 사채가 비중도 많이 줄었다고 했다.

"따라서 저로서는 박회장님의 재산이 얼마만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 제가 알면 당연히 말씀 드리죠. 믿어 주십시요."

"대충도 모른다? 그래도 니 오야붕인데 나름 견적은 내 봤을 거 아냐?"

"소문에는 수천억 규모라고만."

"전재산이?"

"네. 그냥 떠도는 소문일 뿐입니다. 정확히 얼마인지는 누구도 모를 겁니다. 어쩌면 박회장 본인조차도요."

"햐. 이 새끼. 대체 얼마를 해처먹은 거야?"

박회장의 힘은 바로 금력에서 나왔다.

돈으로 검찰과 경찰에 연줄을 대서 로비를 하고, 전관예우를 받는 고문 변호사를 고용해 허술한 법망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건 다반사.

또 돈으로 나름 세력을 구축하고, 그마저도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주변에 알아주는 건달패와 긴밀한 동맹관계를 유지한다고 했다.

"여러 동맹이 있지만, 그중에서 석산파가 대표적입니다."

"석산파라면?"

도훈에게 익숙한 이름이 거론되었다.

"네, 형님도 아시겠지만 전국구로 이름난 조직입니다. 저희쪽과 보호협정이 맺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조직을 꾸린 걸로도 부족해 다른 강력한 조직에 보호비까지 꼬박꼬박 내고 있다는 소리지?"

"네, 그렇습니다."

금력으로 조직을 급조할 순 있었어도 의리와 인맥으로 촘촘하게 엮인 정통파 조폭의 위력에는 한참 못 미쳤다고 했다.

이 때문에 석산파에까지 줄을 댄 것인데, 앞서 최번개가지적한 부분도 바로 그 지점이었다.

'흐음. 그렇게 된 것이로군. 까닥 일이 꼬였다간 민수랑 불편한 일이 생길수도 있겠는데.'

물론 무공까지 익힌 도훈은 누군가와 싸워 자신이 질것이라는 걱정은 전혀 없었다. 오늘 시험삼아 테스트를 해보니, 과거의 자신과는 비교도 안되게 강해져 있었다.

지난 수영 캠프때 성수와 씨름을 하던 때와는 전혀 달랐다.

만약 지금 다시 씨름을 붙는다면, 성수가 괴력을 발휘해 들배지기를 시도해도 발가락 하나 꿈쩍 안할 자신이 있었다.

다만 조폭 민수와는 그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그와 불편한 일이 생기질 않게 바랄 뿐이었다.

"또 회장님은 어딜 가시더라도 늘 보디가드를 대동하고 다니십니다."

"보디가드? 니가 말한 도낀가 뭔가 하는 놈이야?"

"그분은 아닙니다."

예명 '도끼'그는 박회장의 조직을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행동대장 격이었다. 국내 대형 조직의 중간 보스 출신으로, 세력 싸움에 밀리면서 폐기처분 당한 그를 박회장이 자기 사람으로 데려왔다고 했다.

힘든 시절 도움을 준 인연 때문인지 박회장에 대한 충성심이 굉장히 강한 편이라고.

"근데 왜 도끼야?"

"모, 모르십니까?"

"모르니까 묻지. 알면 왜 물어 새끼야?"

도끼는 말 그대로 놈의 무기였다.

사시미나 쇠파이프가 아닌 진짜 손도끼를 허리에 차고 다닌다나? 그걸로 자른 손목이 10개 넘는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미친놈이네. 뭣하러 쓸데없이 남의 손목을 잘라?"

"원래 성정이 포악한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일전 조직에서 정리당한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고."

최실장이 은근히 도끼를 추앙하는 투로 치켜세우자 도훈이 기를 죽이기 위해 한 술 더 떴다.

"나라면 바로 대가리를 쪼개버렸을 텐데. 알지? 이마 한가운데 찍으면 뚝배기 반으로 쫙 쪼개지는거. 골깨지는 소리가 존나 일품이거든."

"……."

"뭐해? 계속해. 도끼말고 그럼 보디가드들은 뭔데?"

"아. 넵."

최회장의 보디가드들은 모두 넷.

그 중 특이하게 여자도 한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여자? 여자는 왜? 그냥 기쁨조 아냐?"

"아닙니다. 미인이긴 하지만 진짜로 보디가듭니다. 미군부대에서 사격술 교관을 했다는 소문이 있더라고요."

"사격? 진짜로 총을 쏜다고?"

"네."

[대한민국에서 총기 소지는 불법 아닙니까?]

'불법이긴 하지. 근데 또 맘먹으면 못 할 것도 없긴 해.

예전에 뉴스 보니까 러시아 마피아들이 부산항 통해서 융통한다는 소문이 있더라고. 돈만 있으면 못구하는 게 없는 세상이니까.'

"흐음. 나머지 셋은 뭔데?"

"한분은 체격이 굉장히 큽니다. 키는 2미터 20센티가 넘고 몸무게도 160킬로가 넘게 나갑니다."

"센드백이네."

"네?"

"아냐, 계속 해봐. 다른 놈은?"

"한분은 형님도 아실 수도 있는 분입니다."

"누군데?"

"2000년대 초반 동아시아 미들급 복싱 챔피언이었던 최철우 선수라고."

"몰라 그딴 새끼. 암튼 전직 복서가 사채꾼에 붙었다는 소리군."

"크흠, 네.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은 일본인입니다."

"니혼진?"

"네. 정확하지 않는데 야쿠자 출신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등에는 늘 길죽한 악기가방을 메고 다니는데, 그게 일본도라는 얘기도 있고요."

"미친. 정신나간 총잡이 년에 돈에 영혼을 판 전직 권투선수, 피지컬 떡대 괴물에, 야쿠자 출신 칼잡이까지? 너네 회장 무슨 오락게임하냐?"

"네?"

보디가드의 구성을 들은 도훈은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이 났다. 한편으로는 얼마나 지은 죄가 많고 적이 많았으면, 그렇게까지 호위무사들을 데리고 다니나 싶을 정도였다.

"암튼 그 넷이 전부야?"

"네. 네 사람이 교대로 24시간 옆을 지킨다고 알고 있습니다."

무공을 배우기 전 도훈이라면 굉장히 골치 아팠을 구성이엇다. 하지만 무공을 익힌 지금의 도훈에게는 괜한 호승심이 들었다.

'그냥 쳐들어가서 박회장 멱을 따버려?'

[주인님답지 않으시군요.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으십니까? 일전에 천재 도훈님이 짜둔 계획대로 가시죠.]

'아니지. 그건 이미 상했어.'

[상하다뇨?]

'이미 김양의 내통이 발각되고, 최실장이란 놈이 끼어든 시점부터 계획은 다 틀어진 거라고. 그럴 바에야 그냥 쳐들어가서 뚜까 패는 게 가장 빠른 복수가 아니겠어? 뭐로 가든 미션만 해치우면 되는 거잖아.'

[주인님. 무공을 익히게 되셨다고 너무 흥분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가?'

[불필요한 힘의 사용은 주변의 이목을 끌게 됩니다. 호신 용으로 익힌 무공 때문에 PK단에게 쫓기게 될지도 모르구요. 그것은 미션하나 성사시키려다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꼴이죠.]

'흐음. 거기까지 생각은 못 해봤는데.'

도훈은 PK단 이야기가 나오자 다시 주춤했다. 아무래도 혼자 판단하는 것보다 현자 도훈의 조언이 필요한 시점 같았다.

박회장 조직에 대해 어느정도 파악한 도훈이 최실장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너 이쪽으로 와봐."

"네?"

"얼굴 가까이 가져와 보라고."

최실장은 하도 심하게 맞은 상태였기 때문에 도훈이 손만 들어도 반사적으로 고개를 수그렸다. 바짝 쫄아있는 최실장을 가까이 부른 도훈이 갑자기 목에 걸린 목걸이를 손에 움켜쥐었다.

동시에 싸이코메트리 스킬을 이용해 목걸이 안에 기억을 읽어냈다. 잠시후 도훈이 말했다.

"뭐야? 이 어울리지도 않는 목걸이는."

"으읏."

목걸이의 기억을 읽어낸 도훈이 최실장을 쳐다보았다.

"부모님 다 살아계시고 밑으로 여동생 하나 있지?"

"……네, 네?"

"여동생이 올해 고등학생인가? 늦둥이였나봐? 너랑은 나이차 좀 나고."

"아니 어떻게 그걸!"

최실장이 경악에 찬 목소리로 되물었다. 설마 도훈이 자신의 가족관계까지 뒷조사 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더 이상은 말은 안할게. 근데 하나만 기억해."

"네."

"오늘 일 다른 사람한테 발설했다간, 너는 물론 너네 가족들 모두 무사하기 힘들거라는 거야."

"며, 명심하겠습니다. 절대 배신 안하겠습니다."

"앞으로 내가 필요한 일 생기면 너한테 직접 연락할 거야. 전화 꼭 받어라."

"네, 넵."

도훈이 의자에서 일어서다 한마디 덧붙였다.

"아, 그리고 김양 말인데."

"넵."

"한번만 더 손댔다간 내손에 진짜 뒤진다. 알았어? 이번 주 내로 퇴사할테니까 퇴직금이나 두둑히 준비해둬."

"아, 알겠습니다."

"넌 내가 쓸모가 있어서 살려주는 거야."

"감사합니다."

"그러니 쓸모 없어지지 않도록 잘해. 안 그럼…."

도훈이 콘크리트 벽에 박힌 단검 손잡이를 붙잡았다.

힘을 주어 당기자 칼이 쑥 뽑혀 나왔다.

칼을 본 최실장이 놀라 뒤로 물러서는데 도훈이 한손으로 칼을 잡더니 엄지손가락으로 칼날 부분을 짓 누르기 시작했다. 칼날은 휘어지는 가 싶더니 어느순간 쨍- 하는 소리와 함께 날이 반토막으로 부러졌다.

무쇠로 된 칼날을 손가락 하나로 부러뜨리는 차력쇼에 최실장이 기겁했다.

"흐익!"

"이렇게 똑 부러뜨려 버릴테니까. 알겠어?"

"아, 알겠습니다!"

"먼저 갈테니 넌 여기 정리해놓고 가라. 남의 인테리어 망치지 말고."

"알겠습니다."

도훈은 최 실장에게 신신당부를 하고는 건물을 빠져나왔다.

차에 오르자마자 그는 김양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집에 가 있으라고 해서 막 도착했어요. 괜찮으신 거죠?

"당연한 소릴. 집으로 찾아갈 테니 주소 문자로 남겨."

―저, 저희 집에 오신다고요?

"그래."

도훈은 할 말만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문자를 확인한 도훈이 곧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 * *

―회식이요?

"어. 너네 사장님이 새 알바생도 왔으니 언제 같이 식사나 하자는데?"

―별일이네. 회식한 적 한 번도 없었는데. 근데 왜 오빠가 전화를 걸어요?

"으, 응?"

―아니 오빠는 솔직히 우리 직원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제 번호는 어떻게 아셨어요?

"아…. 그게. 사장님이 바쁘다고 나한테 전화하라지 뭐야. 번호 알려 주면서."

―흐응. 그래요? 그리 급한 일도 아닌 것 같은데 굳이.

창범은 당황했는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괜한 짓 하지 말라는 대근을 졸라 번호를 받아 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창범은 자신의 마음을 들킬까 봐 괜한 소리를 했다.

"아아! 다른 게 아니라 오늘 바로 할 수도 있다고 해서 물어보라더라고. 그거 아니었으면 전화 안 했지."

―오늘요? 퇴근해서 벌써 집에 왔는데요?

"너 집 가깝지 않아?"

―아니 그건 그런데…. 너무 갑작스럽네요."

"그럼 다음에 날 잡지 뭐."

그때 소연이 마음이 바뀌었는지 다시 말했다.

―아니에요. 그럼 오늘 먹자고 해요. 어차피 오늘은 할 일도 없으니까요.

"억? 진짜?"

―뭘 그렇게 놀래요? 오빠가 오늘 회식하자면서요?

위기를 모면키 위해 거짓말을 했던 창범은 더욱 곤란해 지고 말았다. 여기서 식언을 했다간 실없는 사람이 될까 두려웠던 창범은 결국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내질렀다.

"그래. 지금 와. 너 오면 바로 출발하게."

창범이 통화를 마치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는데 어느새 그의 뒤로 다가온 대근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너, 미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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