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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167화 (1,134/2,000)

1150. 질투는 나의것-5-

아영의 옆자리에 앉은 도훈이 쩍발 자세로 다리를 벌렸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도훈의 무릎과 아영의 무릎이 맞닿았다.

도훈은 반바지를 입고, 아영은 치마를 입었기 때문에 맨살끼리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아영은 살끼리 닿는 촉감에 흠칫 몸을 떨었으나, 도훈이 계속 경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고 고의가 아닌 실수로 착각했다.

‘살이 닿은 것을 모르나 봐. 말해줘야 하나?’

하지만 아영도 도훈과의 스킨십이 싫지는 않았기 때문에 다리를 붙인 채 잠자코 있었다.

만약 모르는 사람이거나 다른 남자였다면 절대 참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싸늘한 표정으로 불쾌한 감정을 있는 대로 드러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영은 이미 도훈에게 마음이 기운 상태였기 때문에, 우연히 살이 부딪히는 것도 마냥 좋기만 했다.

동시에 아영은 그런 스스로가 무척 창피했다. 도훈의 바람기를 경멸하면서도, 그에게서 도저히 헤어나지 못하는 스스로가 자존심도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때였다.

무릎을 붙이고 있던 도훈의 손이 엉덩이 밑과 의자 사이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뱀처럼 틈을 파고든 ‘나쁜 손’이 허벅지 뒤를 슬며시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명백한 고의.

아영은 이번에야말로 깜짝 놀라 도훈을 째려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도훈은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어어, 이번 이닝 클린업 타선이네? 모처럼 득점 기회같은데?"

"클린업이 뭐에요?"

한 자리 띄어 앉은 정음이 궁금해 묻자 도훈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타순을 짤 때 보통 타율도 좋고 득점 생산력도 높은 중심타자들을 3,4,5번에 배치하거든. 이걸 클린업이라고 불리는데 베이스 위의 주자를 싹 쓸어 담는다는 의미야."

"아하! 도훈 오빠도 야구 잘 아시는구나!"

"뭐, 그냥 주워들은 거지."

그때까지 야구 얘기에 빠지지 않던 참여하던 아영은 아무 말도 않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는데, 다름 아닌 도훈이 정음과 얘기하는 척하며 몰래 계속 엉덩이 밑으로 손을 넣어 허벅지 안쪽을 만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찌나 손동작이 집요한지 아무리 몸을 움직여도 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챈 정음이 물었다.

"아영아, 너 어디 불편하니?"

"어, 어? ···아니."

"와! 안타다!"

마침 초구에 안타가 터져 나오며 경기장이 떠들썩해졌다. 정음이 신을 내며 경기에 집중하자, 아영이 도훈을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손을 빼달라는 의미.

하지만 도훈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보였다. 오히려 더 대담하게 안쪽으로 파고 들어가 사타구니 안까지 침범한 상태였다.

"흐, 흠!"

아영이 불편한 듯 헛기침을 해 보았지만, 간만에 나온 선두타자 출루로 분위기가 확 끌어 오르며 누구도 그녀를 신경 쓰지 못했다.

아영은 민망함과 부끄러움, 그리고 비참함을 느꼈다.

‘가, 갑자기 도훈 오빠가 왜 이러는 거지?’

야구장은 공개된 장소였고, 하다못해 옆에 있는 정음이나 복학생인 영철에게라도 얼마든지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다.

이도훈이 지금 성추행을 한다고. 도와 달라면서.

하지만 아영은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를 망신 주고, 과에서 매장 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막상 도훈이 자신의 다리를 허락 없이 주무르는데도 도저히 입을 뗄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를 파멸시키는 행위에 동의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서글펐다. 어느새 그에게 길들여졌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었다.

선두타자가 1루로 진출한 가운데, 팀의 4번 타자가 타석에 서자 백산 홈팬들 분위기가 열광적으로 끌어 올랐다. 사방에서 홈런을 연호하기 시작하더니 몇 명이 일어서서 선수 고유 응원가를 불러댔다.

"파워히터! 강두찬!"

정음과 영철도 분위기에 휩쓸려 기립 상태로 응원가를 따라 불렀다. 아영이 기회를 틈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자세를 바꾸면 도훈의 집요한 손길을 피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앉은 자세에선 보이지 않아도, 일어서 있으면 누군가 볼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그칠 거라고 안심했다.

하지만 도훈도 덩달아 일어났다.

"홈런! 홈런!"

도훈은 입으로 홈런을 연발하더니, 뒤로는 몰래 손을 뻗어 일어선 아영의 치마 밑으로 손을 넣어 두툼한 엉덩이를 와락움켜쥐었다.

‘헉!’

아영은 깜짝 놀라 도훈을 간절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하지 마세요. 제발. 누가 보면 어쩌려고요.

하지만 도훈은 아영의 애원 섞인 눈빛을 보고도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기에 정신이 팔린 사람들이 집중하는 틈을 타 엉덩이 골 사이에 중지손가락을 끼워 넣더니 팬티 밑을 슥슥 문지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 하읏!"

기겁한 아영이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으나, 때마침 터진 4번 타자의 타격으로 조용히 묻히고 말았다. 제대로 얻어걸린 안타는 라인 드라이브성으로 담장을 때렸다. 사람들이 미친 듯이 소릴 질러댔다.

"우아아아아아아!"

"달려, 달려! 런!"

"그만, 그만! 안 돼! 3루에서 멈춰!"

"아이씨, 발 더럽게 느리네!"

득점에 성공하진 못했지만, 연이은 안타로 주자는 어느새 무사 2,3루. 경기장을 처음 찾은 정음이 흥분해 펄쩍펄쩍 뛰었다. 명품 투수전으로 지루하던 경기가 점점 달아오르고 있었다.

"아영아! 봤어? 난 완전 넘어가는 줄 알았는데! 아쉽다!"

"으, 으응. 잘하네."

하지만 이제까지 게임에 집중하던 아영은 정신이 딴 대 팔린 사람처럼 무성의하게 대꾸할 뿐이었다. 오히려 그녀는 이마에 식은땀을 흘릴 정도로 잔 머리가 축축히 젖어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도훈의 못된 손가락이 뒤에서 앞으로 뻗어 나오며 그녀의 보짓 구멍을 사정없이 찔러냈기 때문이었다.

도훈은 대범하게도 사람들이 경기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 실컷 아영을 유린했던 것이다. 순식간에 팬티가 축축해진 아영은 다리가 후들거려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그녀는 도훈을 향해 다시 조그맣게 속삭였다.

"···그, 그만해주세요."

"뭘?"

"···제발요."

아영은 이대로 가면 완전히 주저앉을 것 같은 느낌에 도훈에게 통사정을 했다. 도훈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뭐."

치마 밑에서 뺀 도훈의 중지 손가락엔 물기가 촉촉했다.

팬티를 젖혀 찌르는 사이 애액이 흥건히 묻어나온 것이었다.

도훈은 일부러 젖은 손가락을 아영 앞에서 드러내 보이더니 혀로 핥았다.

"앗, 치킨 소스가 묻어버렸네?"

일부러 젖은 손가락을 빨아대는 동작에, 아영은 마치 자신의 봊이가 쪽쪽 빨려나가는 기분이었다. 공공장소에서 마음껏 자신을 희롱하는 도훈의 대범함과, 이에 대해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는 스스로의 무능함에 아영은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하, 아아···."

그때 경합을 벌이던 5번 타자의 외야 플라이가 터졌고, 3루주자의 득점과 아웃카운트 한개가 교환되었다. 내리 3안타를 기대하던 관중들은 맥이 빠졌으나, 처음으로 득점을 올린 것에 만족하며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그래, 잘한다 백산!"

"1점만 더!"

"지금이 기회야! 상대 투수 흔들리고 있다고!"

하지만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으며 기립해 있던 관중들이 하나 둘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아영이 정음에게 양해를 구했다.

"정음아, 나 잠깐 화장실."

"응? 지금? 아직 한창 공격 중인데?"

정음은 아영이 자길 따라오라고 하는 줄 알고 망설였다. 2루베이스엔 여전히 주자가 살아있는 스코어링 포지션. 추가 득점을 바랄 수 있는 상황이다 보니 쉽사리 자리를 뜰수가 없었다.

"혼자 다녀올게. 보고 있어."

"아니야, 같이 가."

정음은 아영이 급해 보인다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경기 관람을 포기하려 했다. 아영이 그런 정음을 말렸다.

"화장실 정돈 혼자 다녀와도 돼. 오히려 지금은 사람 많이 없을 거야."

"아···."

여자화장실은 항상 줄이 바깥까지 늘어져 있었다. 하지만 경기가 하이라이트에 접어든 상황이다 보니 유동인구가 적을게 분명했다.

정음이 주춤하는 사이 아영은 도훈과 영철에게 양해를 구한 뒤 스타디움 계단을 통해 빠져나갔다. 전후 사정을 모르는 영철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정음에게 물었다.

"쟤 혼자 어디가?"

"화장실 간데요."

"아하."

잠시 후 도훈도 따라 일어섰다.

"곧 점수가 날 것 같긴 한데···."

다음 타자와의 승부는 생각보다 길었다.

제구가 흔들린 상대팀 선발 투수가 볼을 남발했고, 간신히 스트라잌 존으로 들어가는 공마저 아슬아슬 커트를 당하며 10구 넘게 승부가 이어지고 있었다.

도훈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말했다.

"안 되겠다. 나도 화장실 좀 다녀올게. 지금 가면 사람 별로 없을 거야."

"네, 그러세요 형."

경기에 집중하는 정음과 영철을 두고 도훈이 급히 계단을 뛰어 올랐다.

* * *

예상대로 여자 화장실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아영은 칸막이에 들어가자마자 문에 등을 기대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 진짜, 도훈 오빠는 도대체가…."

설마하니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공간에서 대놓고 성추행을 당할 거라곤 상상도 못해본 아영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느낌이 너무 생소해서 아직까지 심장이 쿵쾅거렸다.

무서움이나 괴로움 같은 감정이 아니었다.

팬티가 축축해진 것으로 보아, 그녀 또한 몹시 흥분했다는 것을 반증했다.

"진짜 내가 어떻게 돼버린 거지…."

아영은 젖은 팬티를 허벅지 사이에 걸친 뒤 가랑이 사이를 티슈로 훔쳤다. 그리고는 다시 휴지를 이용해 젖어 있는 팬티면까지 싹 닦아냈다.

축축해진 휴지를 보며 그녀는 너무 많은 물을 흘렸다고 자책했다.

‘미쳤어 진짜. 이렇게 질질 흘려버리니까 도훈 오빠가 오해한 거 아냐.’

좋아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은연중에 즐기고 있다고.

왜 거부하지 못했을까?

언제든 도움을 청할 수 있었다.

하다못해 옆에 있는 정음이한테만 알렸어도 도훈은 그 자리에서 파렴치범으로 매장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겁먹어서?

아니다. 아영은 누군가에게 절대 주눅드는 타입이 아니었다.

상대가 도훈보다 훨씬 악당이라도 얼마든지 덤빌 배짱이 있었다.

하지만 도훈에게는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그녀는 도훈 앞에서 이미 약자였다.

"…싫다, 진짜."

아영이 무력감에 고개를 떨구고 화장실은 나오는데 도훈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 오빠."

"뭐했어?"

"뭐하긴요. 화장실 다녀왔지."

아영은 부끄러운 행동을 감추려는 듯 다시 무표정하게 대꾸했다. 하지만 왠지 도훈 앞에선 점점 위축되는 느낌이었다.

"그래. 나도 화장실 다녀왔어. 가자."

도훈이 방금 전 일에 대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넘어가자 아영이 그를 향해 말했다.

"잠깐만요. 우리 한 가지만 확실히 해두죠."

"뭐?"

"오빠랑 제가 한 번 잤다고, 아무 때나 제 몸을 만질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건 아니에요. 다음에도 또 이러면…."

"이러면?"

"네, 네?"

도훈이 도리어 뻔뻔하게 나오자 아영이 당황했다.

"계속 만지면 어쩔건데?"

"지, 지금 그게 무슨…."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불만 있으면 그 자리에서 말해. 뒤에서 이러지 말고."

"진심이세요?"

"응."

"제가 못 할 줄 알아요?"

"어디 해봐."

"……."

"질질 싸지나 말고."

"이익!"

"왜 불렀어?"

도훈이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

"뭘요?"

"나 왜불렀냐고요. 여기."

"저번에 오빠가 시간되면 같이 야구 보러가자고…."

"아니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 정음이까지 불렀잖아. 저 눈치없는 복학생은 뭐고?"

"그, 그야…. 기왕이면 같이…."

"그래. 근데 굳이 딱 정음이만 찍어서 데려왔네. 왜? 내가 정음이랑 무슨 사이인지 궁금해서?"

"……."

"대답이 듣고 싶어?"

"…잤죠?"

"뭐?"

"정음이랑요…. 저한테 그랬던 것처럼."

그때 안쪽 스타디움에선 함성이 터져 나왔다. 아마도 또 다시 추가득점이 이루어진 모양이었다. 열광적인 분위기에 사람들은 모두 관전에 집중했다. 화장실 밖 통로에는 오로지 두 사람 뿐이었다.

도훈이 팔짱을 끼우더니 말했다.

"박아영."

"네."

"사람 시험하려고 하지마."

"……."

"차라리 그냥 감정에 솔직해져. 그럼 내가 더 예뻐해 줄지도 모르지."

"누가 오빠한테 예쁨받고 싶데요?"

감정을 들킨 아영이 발끈하자 도훈이 피식 웃었다.

"싫음 말던가."

도훈이 말없이 돌아서자 아영이 그의 팔을 잡고 돌려 세웠다.

"뭐에요? 왜 말을 하다 말고 가욧? 내가 무슨 오빠를 좋아하는…. 흡!"

돌아선 도훈이 갑자기 아영에게 키스했다.

순식간에 당한 아영은 얼음이 된 것처럼 굳어버렸다.

기습적으로 입술을 훔친 도훈이 아영을 놀리듯 말했다.

"너 나 좋아하잖아."

"이, 이게… 무슨…."

도훈이 다시 돌아섰다.

"나 먼저 내려간다. 처신 잘해라. 예쁨 받고 싶으면."

"……."

아영이 주먹을 불끈 쥐고 부들부들 거렸다. 그녀의 눈은 욕망과 애증으로 도훈의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 * *

"와, 야구가 이렇게 재밌는 줄 몰랐어요!"

"그러네. 4회 말에 완전 폭격해 버리네!"

선두 타자 출루로 시작한 4회 말 공격은 어느새 4:0까지 벌어져 있었다. 철옹성처럼 버티던 상대팀의 에이스가 제구난조로 흔들리더니 2연속 볼넷으로 만루를 채운 뒤 적시타를 연거푸 두들겨 맞은 것이다.

결국 선발투수 강판으로 이닝이 잠시 중단되었다.

불팬 교체 타이밍이 되자 사람들이 기회를 틈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음이 가운데 비어있는 두 자리를 보고 말했다.

"아영이랑 도훈오빠는 왜 안 오지?"

"어? 뭐야 정음이 너."

"네?"

"나한테는 선배라더니 왜 도훈이 형은 오빤데?"

"…네?"

정음이 당황하자 영철이 빈자리를 꿰차며 바짝 정음에게 붙었다.

"둘이 혹시 무슨 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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