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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168화 (1,135/2,000)

1151. 질투는 나의것-6-

여자들에게 연거푸 무시를 받은 영철은 살짝 악에 받친 상태였다. 물론 이렇게 한들 정음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은 알고 있었지만, 괜한 심술을 부리고 싶어진 것이다. 잡은 물고긴 줄 알았다가, 임자가 있다는 사실에 질투를 느끼는 것과 비슷했다.

"갑자기 무슨 소리에요?"

"아니, 그렇잖아. 같은 관데 선배면 선배고 오빠면 오빠지.

누구는 선배고 누구는 오빠야? 그래서 한 번 물어보는 거야. 내가 모르는 둘만의 사연이 있나 하고. 뭐, 비밀 애인같은?"

정음이 인상을 팍 쓰면서 대꾸했다.

"제가 왜 그걸 선배한테 답해야 하는데요?"

정음은 본래부터 직설적이고 겁이 없는 성격이었다.

도훈 앞에서는 천상여자지만, 다른 남자들 사이에선 선머슴취급을 받는 이유기도 했다. 당돌하게 대드는 정음을 보자 영철은 기가 막혔다.

‘와, 체육과 군기 봐라? 선배가 묻는데 후배가 눈 부릅뜨고 버럭버럭 대드는 거 보소? 도훈이 형이 너무 애들 오냐오냐 키운 거 아냐?’

정음의 태도를 본 영철은 현 회장인 도훈의 잘못이라고 여겼다. 사실 자신도 군대 가기 전 선배들한테 버릇없다고 한소리들은 적이 있지만, 어느덧 예비역 병장을 앞두고 보니 꼰대처럼 변해버린 것이다.

"하-. 이건 좀 실망스럽네. 회장님이 후배들 관리를 어떻게 하면···."

"뭐라고요?"

"아니다, 됐다. 내가 어린 애랑 무슨 얘길 하겠냐? 복학하면 언제 한 번 날 잡아서 한 따까리···."

영철은 말을 잇지 못했다. 정음이 무서운 눈으로 자신을 때릴 것처럼 노려보고 있었던 것.

"너 다시 말해봐."

"···뭐?"

영철이 황당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누가 실망이라고?"

"너 지금 나랑 말 튼 거야? 나 어려 보여도 스물 두 살이라고 알려주지 않았냐?"

영철은 하도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나왔다. 주변에서 얼마나 떠받들어 줬으면 새파랗게 어린 1학년 후배가 두 학번 위의 선배에게 말을 놓는단 말인가. 그것도 버럭버럭 대들면서.

"이 싸가지 없는! 컥!"

영철도 사실 때릴 생각까진 아니었다.

아무리 그가 양아치라도 여자를 때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단지 손을 높이 쳐들어 위협을 주려는 생각뿐이었다. 가끔 어떤 여자들은 맞아본적이 없어서 남자 무서운 줄 모를 때가 있으니까.

그러나 정음은 그것을 공격시도로 오해했고, 그 순간 정권지르기로 명치를 짧게 끊어 쳤다.

퍽!

"어억!!"

명치를 얻어맞은 영철은 순간 눈앞이 노래지며 숨쉬기가 힘들었다. 정음이 사정을 봐줘 전력을 다하진 않았지만, 급소를 정확히 가격한 이상 엄청난 고통이 수반될 수 밖에 없었다.

다만 두 사람이 서로 의자에 앉아있는 상태였고, 정음의 정권지르기가 워낙 짧고 간결했기 때문에 폭행 장면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영철이 혼자 흥분하다 갑자기 픽 쓰러진 것처럼 보였다.

"끄어어어!"

정음은 관중석에서 허리를 숙인 채 숨을 헐떡이는 영철을 향해 말했다.

"엄살 피우지 말고 똑바로 들어. 한번만 더 내 앞에서 도훈오빠 흉보면, 그 땐 진짜 뒤지게 쳐맞는줄 알아. 알겠어?"

"크헉! 수, 숨이···."

"대답 안 해?"

호흡이 가쁜 영철이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을 안했다간 다시 한번 팰 기세였다.

그때 계단에서 내려오는 아영의 모습이 보이자 정음의 표정이 싹 바뀌더니 걱정스러운 눈으로 영철의 등을 토닥였다.

"선배, 괜찮으세요? 선배!"

아영이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

"왜 그래, 정음아? 무슨 일이야?"

"아니, 선배가 뭘 잘못 먹었나봐.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다면서···."

"진짜? 혹시 통닭 뼈 목에 걸린 거 아니야?"

기도 폐쇄라면 무척 심각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침착한 아영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때 등을 두드리던 정음이 영철의 상의를 꽉 움켜쥐더니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선배, 혹시 목에 뭐가 걸린 거예요?"

강제로 허리가 펴진 영철은 정음에게 완전히 겁을 먹고는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쯤 통증이 가시며 어느 정도 호흡이 돌아온 영철은 아영을 향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억, 죽을 뻔 했네. 목에 뭔가 걸릴 뻔했는데 겨우 넘어간 것 같아."

"저런, 조심 하시지."

"나, 난 잠깐 화장실 좀."

정음에게 호되게 당한 영철이 겁먹은 표정으로 후다닥 계단으로 뛰어 올랐다. 아영은 도망치듯 뛰어가는 영철을 보며 고개를 갸웃 거렸다.

"배라도 아팠던 걸까?"

"글쎄? 난 잘···.

정음이 시치미를 떼며 대답했다.

* * *

"야, 걔 뭐야."

-어?

"아씨 있잖아, 오늘 같이 야구장 간다던."

-정음이? 어.

"걔 뭐냐고 대체!"

-왜? 무슨 일 있었어?

정음에게 급소를 얻어맞은 영철은 놀란 마음에 과 동기에게 곧바로 전화를 건 것이다. 그는 방금 전 일을 모두 까발릴까 하다가 갑자기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니지. 아무리 방심했다곤 해도 여자애한테 한 방 맞고 쓰러졌다는 얘길 어떻게 해? 괜히 가오만 떨어지게.’

"아, 아니···. 제법 몸이 날래더라고. 혹시 운동했어?"

-아아, 그치? 걔 완전 운동 잘하잖아. 태권도 국대 상비군 출신일걸?

"사, 상비군?"

-어, 고등학교 때까지 대표하다가 부상 때문에 출전 못 한 걸로 알고 있어. 입학도 아마 특기생으로 왔을 걸?

"아니 씹-. 그런 거면 진작 말을 해줘야지!"

-미친 새끼가 왜 급발진하고 지랄이야?

영철은 자기가 생각해도 가만있는 동기에게 화를 낸 것이 이상했는지 바로 말을 돌렸다.

"아니 나 운동하는 애들 싫어하잖아. 무식해서."

-병신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야, 우리 과에 운동 안 배운 여자들도 있냐?

"그런 거 말고 막 전문적으로 배운 애들 말이야. 그, 그래. 특기생 같은."

-몰라 새끼야. 지가 궁금하다고 물어볼 땐 언제고. 왜? 설마 까였냐?

"까이긴 무슨."

-왜? 야구장에서 데이트 한다고 좋아할 땐 언제고.

"야, 시끄러워서 얘기도 몇 마디 못했어. 근데 운동했다는 소리 들으니까 갑자기 정떨어진다야."

-염병. 하여간 바람둥이 새끼가 오지게 골라요. 너 인마 괜히 우리 과 후배들 건들지 말고 그냥 딴 과가서 작업해. 너 소문 안 좋은 건 알지?

"알아."

-괜히 복학하자마자 과씨씨 한다고 설치고 다니면, 학과 사람들이 좋아라 하겠다 인마. 나야 뭐 동기니까 그렇다 쳐도.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끄고."

-하여간 난봉꾼 새끼. 군대 다녀와도 바뀐 게 없네.

"닥치고, 혹시 너 아영이라는 애는 좀 알아?"

-아영이? 1학년이야?

"넌 새끼가 후배들 이름도 하나 모르냐?"

-야. 난 학과에서 완전 왕따잖아. 대면식도 안 나갔는데 내가 알게 뭐야. 아 잠깐, 아영이? 박아영이?

"어. 알아?"

-막 생머리에 머리 길고 청순하게 생긴애 말이지? 약간 말수 없고.

"어, 어!"

-걔도 아마 팔선녀인가 뭔가 하는 앨 걸? 나도 지나가다 얼굴만 한 번 봤어. 예쁘던데. 걔는 왜?

"야구장에 같이 왔거든."

-그래? 정음이랑 단둘이 아니고?

"뭔 소리야. 여기 과 회장님도 같이 있는데."

-도훈이형까지? 오···. 데이트가 아니라 그냥 야구보러 간 거네.

"암튼 박아영에 대해선 아는 거 없어? 남자친구 있다던지.

얼굴 봐선 얼굴값 할 거 같이 생겼는데."

-난 잘 몰라. 정음이야 워낙 유명한 애니까 남친 없는 건 알고 있지만···. 그럼 너 정음이에서 아영이로 갈아타는 거?

"갈아타긴 뭘 갈아타. 운동배운 애 싫다니까."

-이 새끼 까인 거 같은데···.

"니 좆이나 까, 이 새끼야."

-야, 그러지 말고 내가 친한 1학년 남자 후배 하나 있는데 대신 물어봐 줄게.

"왕따라면서 아는 후배도 있어?"

-과에서 알게 된 건 아니고, 동아리에서 만났어. 3개월만에 과를 물어봤는데 우리과라더라고.

"아···."

-암튼 괜히 임자 있는 애들 건드렸다가 줘터지지 말고 처신 똑바로 해라.

"줘터지긴 누가 터져?"

-너 쌈 못하잖아. 크크크

"야. 내가 군대 가서 얼마나 몸이 좋아 졌는데?"

-너 그 소리 도훈이 형 앞에서 하면 존나 쫄릴 걸?

"맞다. 회장 형은 뭔 운동을 배웠길래 몸이 그렇게 좋아? 무슨 격투기 하다 온건 아니지?"

-아닐걸? 배구던가? 아무튼 도훈이형 몸 겁나 좋아. 전임 회장했던 성수형 알지?

"어, 니가 휴가 나올 때마다 말해 줬잖아. 유도 배웠다는 등 빨 좋은 형."

-이번에 여름 캠프 가서 도훈이형이 씨름으로 성수형 넘겨 버렸다더라고. 으으, 성수형 진짜 인간 같지도 않았는데 그 괴물을 이길줄이야.

"그 정도야?"

-어. 도훈이형 진짜 힘 존나 세다더라. 운동도 못하는 게 없고.

"근데 왜 여자친구가 없어?"

-응?

"아니 오늘 직접 보니까 엄청 잘생겼던데? 키도 크고. 혹시 성격이 좀 이상한가?"

-몰라 나도 잘. 여자친구 있다는 얘긴 한 번도 못 들었어. 공부하느라 바쁜가 보던데.

"공부? 무슨 공부?"

-그 형이 지금 2학년 수석이잖아. 아니 단대 수석이라던가?

전액장학금이란 소문이 도는 거 보니.

통화를 하던 영철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다, 단대 수석? 전액 장학?"

-어. 나도 어디서 들었는데 공부도 잘한다더라고. 완전 엄친 아야 엄친아. 무슨 인생 2회차 처럼 산다니까?

"······."

-뭐야. 왜 말이 없어. 영철이 쫄리냐?

"쫄긴 누가?"

-하긴 천하의 너라도 도훈이 형에 비비긴 좀 그렇지.

"뭐래 새끼가. 야, 잘생기고 몸 좋고 공부도 잘하는 남자가 여자가 없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아?"

-무슨 뜻인데?

"좆이 좆나 작다는 거야."

-어?

"아니 그렇잖아. 겉으론 멀쩡하고 성격도 괴팍한 게 아닌데 여자가 안 따른다? 그럼 뻔 한 거지."

-그런가? 작아 보이진 않던데? 그래도 키가 있는데.

"야, 키랑 좆이랑 무슨 상관인데? 그리고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여자들 자빠뜨리는데 선수잖아. 나 못 믿어?"

-이 새낀 진짜 군대 다녀와서도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일주일 뒤면 예비역인데 공익따위 한테 그런 소리 들을 군번 아니거든?"

-야. 그건 시력이 너무 낮아서 그런···.

"됐고. 암튼 알았어. 아영이 만나는 남자 있는지만 알아봐줘."

-하-. 새끼. 진짜 좆나 귀찮게 구네.

"내가 술 샀잖아 그저깨!"

-알았어, 새끼야. 나중에 톡할게.

절친과 통화를 마친 영철은 흡연실에서 담배를 꼬나 물었다.

연기를 들이쉬는데 명치가 아릿아릿한 게 아직도 아팠다.

‘씨발, 여자애한테 쳐 맞는 날이 올 줄이야.’

하지만 상대는 무려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

아무리 여자라도 자신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다시 붙으라고 해도 그 빠른 주먹을 피할 자신은 없어보였다.

‘손은 또 좆나게 맵네. 내가 뭐라고 했다고···.’

정확히는 모르지만 정음이 도훈을 좋아하는 건 분명했다. 뒤에서 흉 좀 봤다고 사람을 그렇게 털어버린다는 것은 보통 애정이 아니란 반증이었다.

‘됐고, 어차피 그렇게 폭력적인 앤 줄 알았으면 꼬실 생각도안했을 거야. 이제 아영이한테만 집중하자.’

그때 친구에게서 톡이 도착했다.

-왕희준 : 야, 없을 거래.

-김영철 : 뭔 소리야? 없으면 없고 있으면 있는 거지, 없을 거라는 건 또 뭐야? 슈뢰딩거의 고양이도 아니고.

-왕희준 : 알려줘도 지랄이네. 야, 1학년 남자후배한테 물어보니까 걔 학과생활 거의 안했데.

-김영철 : 희준이 너처럼 왕따라고?

-왕희준 : 뭐래 미친 새끼가. 나는 그냥 동아리가 더 좋아서 그런거고. 암튼, 그래서 친한 애들이 거의 없다나봐. 정음이랑 제일 친하고.

-김영철 : 그래서 남친이 있다고 없다고?

-왕희준 : 확실치는 않는데 없을 거라 더라고. 최소한 학교에서 남자랑 다니는 걸 본 사람은 없대. 근데 물어보지 않는 이상 모르지.

-김영철 : 알았어. 알아봐줘서 고맙다.

-왕희준 : 야, 됐고 복귀날짜 얼마 안 남았는데 괜히 사고 치지 말고 복학하고 뭘 해라. 요즘 너 보면 내가 다 불안하다.

-김영철 : 즐, 정공새끼.

-왕희준 : 푸핫, 때가 어느 땐데 즐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군대 2년의 문화지체가 상당하구나?

-김영철 : 좆이나 까세요.

-왕희준 : 너나 까시고요.

영철은 깨톡으로 대화를 주고받다 이내 담배를 비벼 끄고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정음과는 다소 트러블이 있었지만, 어차피 서로 모른 척 하면 끝날 일이었다.

그는 사소한 일을 마음에 꼭꼭 담아두는 성격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래서 쉽게 여자들을 만나고 헤어질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래, 어차피 이제 내 목표는 박아영이니까.’

영철이 좌석으로 돌아갔을 때 경기가 다시 팽팽히 진행 중이었다. 그는 천연덕스럽게 도훈에게 물었다.

"어떻게 되고 있어요?"

"어디 갔다 왔어?"

"헤헤, 담배 좀."

"아까 4:0이었는데 지금 4:3이야. 바짝 추격받고 있어."

"오, 난타전 시작인가요?"

"내 생각에는 선발들 다 내려가고 곧 불팬 싸움 시작될 것 같은데."

도훈과 대화를 나누던 영철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영에게 물었다. 야구 쪽으로 질문을 하면 손쉽게 대화를 유도해 낼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아영아, 양팀 불팬은 어디가 더 좋아? 왠지 넌 알 것 같은데."

영철이 질문을 하는데 아영은 망연한 표정으로 듣는 둥 마는 둥이었다. 그녀는 화장실에서 도훈에게 기습키스를 당한 탓에 아직까지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

"아영아, 불팬은 어느 팀이···."

"잘 던지는 팀이 잘하겠죠. 왜 자꾸 물어요? 경기 보면 되지."

아영은 자꾸 귀찮게 구는 영철을 일축하더니 다시 입을 다물었다. 사이에 낀 도훈이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었고, 영철은 똥씹은 표정이 되고 말았다.

‘씨발, 나한테만 왜 이러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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