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117화 (1,084/2,000)

< 1100. 그해, 여름-15- <1100화 이벤트 안내> >

***

"와…."

이건 연기가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뭘 그렇게 놀라니?"

"아, 아니…. 집이 되게 넓어서요."

정정한다.

안소영은 금수저 정도가 아닌 다이아수저임이 틀림없다.

[여기가 그렇게 비싼 집인가요?]

‘거실 크기를 봐. 50평은 그냥 넘겼는데? 이 입지에 50평대 아파트가 얼만 줄은 알아?’

[얼만데요?]

‘최소 30억.’

[30억이요?]

‘그러니까 말이야. 여자 혼자 사는 집에 50평대 아파트라니. 이건 뭐…. 상상을 초월하는 구만.’

집이 단지 크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현관 입구의 중문부터 고급스럽게 인테리어가 되어있었고, 바닥 역시 평범한 재질이 아닌 대리석 타일로 이루어져 있었다.

거실 크기도 어찌나 큰지 미니 축구장으로 쓸 수 있을 정도였다. 벽에 걸린 초대형 TV는 광고에서만 보던 초박형의 얇은 제품이었고, 양 옆에 기둥처럼 세워진 스피커도 하이파이(HIGH-FI)수준의 고가 장비였다.

소파 또한 사람 둘이 가로로 누워도 될 만큼 큼지막한 사이즈였는데, 가죽만 봐도 값비싼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창가에는 헬스장에서나 볼 수 있는 고급 쓰레드밀과, 요가매트가 깔려 있었다.

신기한 것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차가운 기운이 훅 하고 느껴진 것이었다.

"혹시 에어컨 틀어놓고 가셨어요?"

"응?"

"켜져 있는 것 같아서…."

"난 원래 안 끄는데?"

"아!"

세상에.

얼마나 돈이 많으면 한여름에 에어컨을 24시간 가동 시킨단 말인가? 이쯤 되자 방금 얻어 타고 온 외제차가 오히려 검소해 보이려는 위장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근데 뭐해? 안 들어오고. 집이 너무 누추해서 그래?"

소영이 농담을 내뱉으며 씩 웃었다.

이걸 누추하다고 표현한다면 내가 사는 원룸은 개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 혼자 사시는 거 맞으세요?"

"응. 왜?"

"아…. 원래 그럼 미국 가시기 전에 가족들하고…."

"아니? 그 집은 예전에 진작 팔았지. 그땐 주택에 살았었어. 여긴 한국 들어오면서 급하게 구한 거고."

들으면 들을수록 말문이 막혔다. 아마도 가족과 함께 살았다는 집은 애자매급의 대저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잠깐 소파에 앉아서 쉬고 있어. 금방 저녁차려 줄게."

소영이 잔뜩 얼어있는 나를 향해 말했다. 반쯤 연기였지만, 반쯤은 진짜로 놀란 상태였기 때문에 소파에 앉아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대단한데. 차라리 보이는 것이 훨씬 검소한 여자야.’

[정말 그 정돕니까?]

‘아버지란 분이 대체 무슨 일을 하시는지 모르겠어. 막연히 대기업에 다닐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회사 중역일지도….’

[그럼 전생의 주인님보다 더 높은 건가요]

‘난 끽해야 선임 연구원이었지. 대기업 중역이 되면 아예 차원이 다른 세계야. 연봉이 20억을 넘는 사람도 있다고.’

[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군요.]

‘흐음. 아마도 소영이 집으로 나를 부른 건 두 가지 이유같아.’

[어떤 거요?]

‘하나는 병원에서 못 다한 일을 마무리 하려는 거지. 그녀는 직장에서 완벽한 모습으로 위장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집에서 본색을 드러내겠지.’

[또 하나는요?]

‘나를 기죽이려는 거야.’

[기를 죽여요?]

‘정보창에서 본 것처럼 소영은 여성우월주의적 성향을 가진 펨돔이잖아. 남자가 감히 자신에게 기어오르지도 못하게 짓밟는 타입의. 그러니까 일부러 부를 과시해 나를 찍소리도 못하게 만들려는 거야. 자기 집에 초대하면 내가 쫄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주인님이 이런 것에 꿀릴 사람은 아니잖습니까?]

‘당연하지. 나에게 여자는 암컷일 뿐. 그래도 솔직히 놀라긴 놀랐어. 사실 의사라고 해도 대단한 부를 축적하는 건 아니거든. 그냥 페이가 높은 월급쟁이일 뿐이지. 근데 소영은 진짜로 부자야. 자본주의 계급의 꼭대기에 있는.’

[호오. 주인님이 그렇게 설명하시니 대단하긴 한 모양이네요. 그럼 소영의 속셈을 아셨으니 이제 어쩌실 겁니까?]

‘일단 업적을 해치우는 게 우선이니 섹스를 하기 위해선 원하는 판타지를 충족시켜 줘야지.’

[계속 찐따 행세를 하시겠다는 건가요?]

‘일단 박기 전까지만.’

[그 뒤는요?]

‘후훗.’

나는 희미하게 웃기만 했다.

내가 무릎 꿇는 건 오로지 추진력이 필요한 순간 뿐이다.

잠깐 굴욕을 참고 업적만 달성하고 나면, 제대로 참교육을 시켜주고 말겠다.

"도훈이 파스타 좋아하니?"

"예?, 아, 예!"

"미안. 나도 모르게 편하게 말해버렸네. 괜찮지? 내가 나이가 더 많으니까."

"네, 편히 말씀 하세요 선생님."

"후훗-. 그래. 그럼 가볍게 파스타로 준비할게."

어느새 앞치마를 입은 소영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요리를 준비했다. 거실에서 주방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한눈에 봐도 굉장히 숙달된 동작으로 움직였다.

[안소영 선생은 요리도 잘하나 보군요.]

‘그러게. 타고난 천재과 같은데.’

[천재요?]

‘타고난 오성이 뛰어난 경우랄까? 저런 사람들이 있어. 뭘 배워도 남보다 빠르게 깨우쳐 쉽게 숙달되는 사람들. 공부만 잘하는 것하곤 차원이 다르지.’

[호오. 마치 주인님하고 흡사한데요?]

‘나? 나는 솔직히 공부만 잘했지. 딱히 재능이 많진 않았어.’

[아뇨. 과거 말고 지금요. 지금은 다 잘하지 않습니까?]

‘그런가?’

[묘하게 두 분이 닮은 느낌입니다만.]

‘그래도 난 안소영처럼 변태는 아니거든.’

"심심하면 집안 구경좀 하고 있어."

"정말요?"

"응, 내 침실만 빼고."

"아, 아 넵."

우두커니 앉아 잇는 내 모습이 불쌍해 보였던지 소영이 집안 구경을 허락했다. 사실 남이 사는 모습에 딱히 관심은 없었지만, 지금은 줏대 없이 끌려다니는 역할을 연기해야 했으므로 벌떡 일어나 집안 구경을 시작했다.

처음 들른 곳은 드레스 룸으로 보이는 공간.

문을 열자마자 의류 매장에 온 것처럼 좌우 벽면 옷걸이에 수백 벌의 옷이 좌르륵 펼쳐졌다.

"와…. 이게 다 뭐야."

얼핏 상표를 보는데 죄다 명품이었다.

스카프 하나, 티셔츠 하나까지 명품이 아닌 게 없었다.

드레스룸 중앙에는 각종 장신구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값비싼 목걸이, 팔찌, 반지에 이르기까지 귀금속점 매대 하나를 가져다 놓은 기분이었다. 마찬가지로 죄다 값비싸 보이는 것들 뿐.

‘기가 막히는 구만. 대체 얼마나 부자인 거야?"

[그러게요. 정말 놀랍군요.]

고개를 쳐들자 가운데 벽면에 또 다른 진열장이 있었는데, 왼쪽에는 구두와 운동화 등이 오른쪽에는 가방이 책꽂이처럼 정돈되어 있었다.

볼 것도 없이 명품들의 향연. 심지어 평범해 보이는 운동화조차 리미티드 에디션이라 불리는 값비싼 한정판들이었다.

‘말도 안 돼. 이건 의사 월급으로 감당할 소비력이 아닌 것 같은데?’

[그 정돕니까?]

‘거의 콜렉터 수준이잖아. 모르긴 몰라도 저 가방 브랜드는 최소 500부터 시작할 걸? 내가 전생에 마누라 사줘봐서 알아. 지금 생각하면 미쳤지.’

[아….]

그런 가방이 위에서 아래까지 최소 서른 개. 어마어마한 부의 과시에 진짜로 주눅이 들 정도였다.

이어서 들어간 방들도 마찬가지. 게스트 룸처럼 보이는 방에 들어간 가구들도 상상을 초월했다. 한참 그렇게 방을 구경하고 있는데, 주방 쪽에서 소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들어간 방들도 마찬가지. 게스트 룸처럼 보이는 방에 들어간 가구들도 상상을 초월했다. 한참 그렇게 방을 구경하고 있는데, 주방 쪽에서 소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훈아, 어딨어? 식사 다 준비됐는데."

"아, 넵!"

허둥대며 주방으로 달려가자 소영이 요리를 내고 있었다. 짧은 시간에 만든 요리치곤 플레이팅까지 완벽하게 되어 있어 고급 레스토랑에 온 기분이었다.

"흐음, 평소에 잘 해먹지 않아서 차린 게 이것뿐이라 미안."

"아, 아니에요. 엄청 맛있어 보이는데요?"

"그래? 후훗. 고마워."

소영이 턱을 괴더니 나를 보고 있었다. 마치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노려보는 모습이라 살짝 소름이 돋았다.

‘설마 약이라도 탄 건가?’

[약이요?]

‘안소영은 의사잖아. 일반인이 구할 수 없는 약도 쉽게 빼돌릴 수 있는 직업이니까.’

[아…. 조심하셔야겠는데요.]

다행히 소영이 먼저 음식을 들기 시작했다. 이에 안심하고 파스타를 입에 넣는데,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맛이 있었다.

"이, 이거 직접하신거예요?"

"어. 왜? 맛 이상하니?"

"아, 아니 파는 것보다 훨씬 맛있어서요."

"다행이네. 입맛에 맞다니. 실은 미국에서 공부할 때 자주 해먹었거든. 생각보다 금방 만들 수 있어서 시간 절약되고 좋더라고."

"아…. 선생님은 요리사 하셨어도 잘하셨을 거 같아요."

"에이, 너무 띄워준다. 원랜 요리도 잘 안 해."

"왜요?"

"혼자 먹는 건 아무리 해도 기분이 안 나더라고. 누가 먹어줘야 맛있지."

"아…."

"도훈 학생처럼 맛있게 먹어주면 더 기분 좋고."

"정말로 맛있어요."

"응. 많이 먹어."

시장기가 돌았기에 허겁지겁 파스타를 먹기 시작했다. 소영은 그런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너무 뚫어져라 주인님을 보는데요?]

‘그러게. 왠지 애완동물에게 먹이 주는 눈빛 같지 않아?’

[애완동물요?]

‘소영은 남자친구가 필요한 게 아니라 머슴이 필요한 거거든. 내가 맛있게 먹고 자신을 위해 봉사하길 기다리는 거겠지.’

[으으. 그렇게 생각하면 무서운데요.]

‘이제 어떻게 수작을 부리나 보자고.’

"정말 잘 먹는구나."

"네? 아, 죄송해요 제가 정신없이 먹기만 했죠?"

"아니야. 보기 좋아서 그래. 너 나이 때 남자들은 쇠도 씹어 먹는다고 하잖아. 일은 힘들지 않아?"

"아직까진 할만해요."

"그렇겠다. 어디서 보니까 택배 상하차가 그렇게 고되다고 하는데…."

"계속하다보니 버틸 만은 한데, 요샌 날이 더워서 더 힘든 것 같아요."

"그치. 날도 더운데 땀도 많이 흘리겠네."

"네."

"참, 너 오늘 일하다 왔다고 했나?"

"네?"

"아니 아까 일하다 중간에 나온 거라며. 병원 올 때."

"아…. 네. 갑자기 빠지면 현장에서 곤란할 것 같아서, 같다가 현장소장님께 말하고 들렀어요."

"그럼 오늘 땀 많이 흘렸겠네?"

"땀이야 뭐…."

"찝찝하지 않아?"

"어…. 그게…."

"저녁 다 먹었으면 씻고 갈래"

"여, 여기서요?"

"왜? 아직도 내가 무서워?"

"아, 아뇨. 제가 너무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그냥 집에서 씻을게요."

"흐음. 그렇게 말하면 내가 민망하잖니. 나는 호의로 말한 건데…."

소영이 은근히 고집을 부렸다.

슬슬 남자를 휘두르려는 본색이 나오고 있었다.

"그, 그래도. 혼자 사시는 데 너무…."

"왜? 내가 너 덮치기라도 할까봐?"

"아, 아니요!"

"그럼 씻고 가."

"네, 넵."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탓에 어쩔 수 없이 씻고 가겠노라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뻔히 보이는 수작에 당해주는 입장에선 땡큐일 뿐이었다.

[주인님이 노력할 필요가 없겠는데요. 이건 거저 먹기 아닙니까?]

‘그러게. 이렇게 쉽게 가는 것도 너무 불안한데.’

어느새 식사를 마치자 소영이 그릇을 빼앗아 들며 다시 보챘다.

"나는 설거지하고 있을 테니 우선 씻고 있어. 한결 개운할 거야."

"아, 네, 넵. 저 근데 어디서…."

나는 찐따처럼 대꾸도 못 하고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소영은 안방의 샤워실을 알려줬다.

"내 방에서 샤워해도 돼."

"아…."

"괜찮아. 설마 내가 한참 어린 너한테 뭐라고 할까봐서?"

"가, 감사합니다."

나는 소영이 시키는 대로 안방으로 들어갔다.

침실은 집안 전체의 분위기에 맞춰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이 있었다. 놀라운 것은 침대 위에 걸린 한 폭의 대형 브로마이드였다.

수영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었는데, 외국으로 보이는 해변에서 소영이 야한 수영복을 입고 옆구리엔 서핑보드를 들고 있었다.

"헐, 몸매 보소."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지금보다 3~4년은 어렸을 때의 사진 같은데, 소영의 얼굴을 몰랐다면 유명한 모델의 사진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젊었을 적 몸매가 대단했군요.]

‘지금도 비슷할 걸?’

[샤워실이 여러군데 있던데, 굳이 안방을 쓰라고 한 것은 이걸 보여주기 위해서였을까요?]

‘그렇겠지. 의사 가운을 걸치고 있을 땐 몸매를 부각하기 힘드니까.’

[갖은 방법으로 주인님을 유혹하는 군요.]

‘그나저나 자기애가 되게 강한 타입같아.’

[자기애요?]

‘저렇게 크게 인화해서 침실에 걸어두는 것 자체가 일종의 나르시시즘의 형태거든. 자신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을 추억하기 위해서.’

[호오-. 과연.]

‘일단 시키는 대로 해보자. 과연 뭘 준비하고 있을지 기대 되는군.’

나는 곧바로 화장실 입구에 옷을 훌훌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벽면에 샤워부스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말이 부스지 내부가 어지간한 화장실 크기였다.

밖을 돌아디니느라 땀을 많이 흘렸는지 몸에 물을 뿌리고 비누칠을 시작하자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한창 기분 좋게 샤워를 하고 있는데 불쑥 화장실문이 열렸다.

"어, 어?!"‘

나도 모르게 등을 돌린 채 소리쳤다.

"서, 선생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당연히 안소영이었다.

심지어 그녀는 브래지어와 팬티만 입은 차림으로 당당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도훈이 씻고 있었니?"

"아, 아니 저 아직…."

"응, 다름이 아니라 아까 진찰하다 좀 이상한게 생각나서."

"예, 예?"

소영이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였다.

"마침 옷을 다 벗고 잇을 것 같아서 잠깐만 확인하려고 왔어. 나 들어가도 되지?"

이미 들어와 놓고 하는 소리치곤 너무나 뻔뻔한 태도였다.

소영이 속옷 차림으로 샤워부스로 난입했다.

< 1100. 그해, 여름-15- <1100화 이벤트 안내> 끝.

ⓒ 성난불기둥

작가의 말

1100화 이벤트에 많은 의견을 주셔사 감사합니다.

여러 고민 끝에 이번 이벤트는 독자님들이 보고 싶은 인물 외전 만들기로 준비했습니다.

이름하여

<다시 보고 싶은 사람들>

대물이 1100편에 오기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했지만

여러이유로 모습을 감춘 사람들이 많습니다.

해서, 이번엔 10편 내외의 외전으로 나갈 인물을 추천해 주시면

중간에 외전을 쓸데 등장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댓글 Ex) 군대 간 태영이의 군생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이런식으로 남겨주시면

제가 마음에 드는 인물을 뽑아 3명 내외로 추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추첨이 애매하여 상금은 없습니다.

대신 이거 1200화 이벤트로 이월시켜

다음 이벤트는 총액 50만원으로 진행토록 하겠습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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