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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022화 (989/2,000)

< 1005. 별이 쏟아 지는-65- >

***

한편 혼자 바람을 쐬러 나온 도훈은 한결 홀가분해진 기분이었다.

'그래. 기왕하기로 했으니 열심히 하자. 혼자만 하는 것도 아니고, 8선녀 애들과 함께라면야.'

[8선녀면 박아영 양까지 포함인 거죠?]

'가만. 아영이도 그 멤버였던가?'

올해 체육교육과 새내기들 중에 인물이 유독 출중한 여학생이 많았다.

단대톱이라고까지 이름이 오르내리는 육정음, 정음이만 없었어도 과톱은 우습게 먹었을 것 같은 나연과 연두 콤비. 범생이 스타일의 전형적인 미인 서현과 빻녀에서 정변에 성공한 양희주. 그리고 마유미의 뒤를 잇는 스포츠 미녀 강경희가 있었다. 마지막 멤버 둘은 상대적으로 이름이 덜 알려져 있었는데, 소심해 보이면서도 은근히 장난 끼가 많은 효민과, 청순미녀 스타일이지만 과활동에 일체 참여하지 않던 공인 아싸 아영이었다.

사범대 타과 학생들이 우연히 1학년 실기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여덟 명의 여학생을 보고 '선녀처럼 예쁜 애들이 체육과에 있더라.' 라고 소문을 낸 것이 와전되어 8선녀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 중에도 가장 모습을 보기 힘든 사람이 아영이었는데, 과 행사에도 거의 참여하지 않고 전공필수 과목에만 겨우 얼굴을 내비치는 등, 자발적 아싸의 전형이었기 때문.

도훈 역시 새터에서 얼핏 스쳐 지나갔다가 겨우 이번 캠프에서 안면을 텄을 정도였다.

[그렇죠. 주인님이 유일하게 공략 못 한 마지막 8선녀 멤버랄까요?]

'근데 아영이 좀 수상하지 않냐?'

[뭐가 말입니까?]

'이상하게 신경에 거슬린단 말이지. 자꾸 이상한 거나 묻고.'

[스마트 워치 말씀이시죠? 지구에는 없는 디자인이니 호기심을 가질 만도 하죠. 기계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라면요.]

'그뿐만이 아니야. 어젯밤 효민이 팬티 발견해 좋고도, 입 꾹 다물고 있잖아. 무서우리만큼. 보통 그런 일이 벌어지면 학과가 한바탕 뒤집어져야 정상이잖아.'

[어쨌든 주인님 입장에선느 다행인거 아닌가요? 소문이 크게 안 번졌으니까요.]

'그 대가로 아영이가 뭘 요구하느냐가 문제지.'

[주인님을 상대로 협상을 하려한다는 겁니까, 아영양이?]

도훈이 피식 웃었다.

'하긴. 좆막음 한 번이면 꼼짝 못 할텐데 굳이 신경 쓸 것 까진 없겠군.'

[그렇다고 너무 방심해서도 안 됩니다. 어쨌든 속내를 알 수 없는 상대인 건 분명하니까요.]

'걔도 은근히 아싸 기질이 넘친다니까? 그 얼굴에 뭐가 아쉬워서 자발적 왕따 행세를 하는지.'

"오빠, 어디 다녀오셨어요?"

"맞아요. 한참 찾아도 안 보이더니."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도훈은 극성 콤비 둘에게 꼼짝없이 붙잡혔다.

"음, 여긴 어쩐 일이야? 물놀이하라고 시간 줬더니."

"섭섭하게 어쩐 일이냐뇨?"

"맞아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저희랑 오빠 사이에."

나연과 연두가 달라붙어 재잘거리자 도훈은 머리가 지끈 거렸다. 하나를 말하면 둘이 메아리처럼 대답하는 바람에 피로감이 두 배였다.

'아니지. 어쨌든 애들도 후딱 따먹고 치워야지. 캠프 끝날 때까지 미션 해결해야 하니까.'

"근데 너희들 이제 화해했어?"

어제까지만 해도 서로 잡아먹을 것처럼 으르렁 거리던 나연과 연두는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다정하게 손을 잡고 잇었다.

"저희가 언제 싸웠어요? 나연아 그랬어?"

"무슨 소리야? 우리가 언제?'

두 사람이 시치미를 떼자 도훈이 고개를 절래 절래 저었다.

'무슨 부부싸움도 아니고, 칼로 물 베기네.'

[두 사람의 우정이 그만큼 진하다는 거겠죠.]

"실은 저희가 아까 곰곰이 얘기를 해봤어요."

"무슨?"

"오빠를 사이에 두고 우리끼리 질투할 필요가 있느냐고."

"맞아요. 오빠는 우리 모두의 것이니까요."

듣고 있던 도훈이 어처구니가 없어 대뜸 따졌다.

"뭐야? 내가 무슨 공공재야?"

"왜요. 오빠 저희랑 쓰리ㅆ…."

"야야!"

대로변에서 당당하게 쓰리썸을 외치는 연두의 입을 도훈이 급히 틀어막았다.

"무슨 짓이야?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읍읍!"

연두가 입이 막히자 이번엔 나연이 말했다.

"제 입도 있거든요? 쓰리…."

"야! 너 진짜."

이번엔 도훈이 황급히 나연의 입을 막았다. 한쪽을 막으면 나머지 한 쪽이 설쳐대니 도저히 당해낼 게재가 없었다.

"알았어. 무슨 말인지 알겠으니까 어디 조용한데 가서 얘기하자."

"조용한데요?"

"왜요?"

"우리 덮치시려고요?"

"동시에?"

'아오! 이것들을 진짜.'

[주인님. 명심하십시오. 이번 미션은 원 바이 원입니다. 동시 공략은 인정되지 않습니다.]

도훈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을 동동 구리자 연두가 얄밉게 말했다.

"저희가 입이 두개니까 상대하기 버거우시죠?"

"무슨 소리야? 우리 네 개 아니야?"

"왜 네 개야? 아…. 맞네."

"오빠가 다 막을 수 있을까 몰라?"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한바탕 싸운 뒤에 더욱 단단해진 두 사람의 결합은 도훈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평소에도 엉뚱한 행동을 많이 하는 나연두 콤비였지만, 지금은 햇볕 쨍한 대낮의 해변에서 아무렇지 않게 음담패설을 쏟아내고 있었다.

도훈은 이대로 두어선 큰일이라는 생각에 두 사람에게 급히 말했다.

"좋아. 알았어. 내가졌어. 원하는 데로 해줄게."

"히히, 들었지 연두야?"

"정말이죠? 너희 어제 엄청 힘들었다는 것만 기억하세요."

"오빠 오늘 배구 우승한 것도 저희가 열심히 응원해서 인거 아시죠?"

"맞아 맞아. 우리가 얼마나 목이 터져라 응원했는데."

응원 얘기가 나오자 도훈은 두 사람이 비치발리볼 결승에서 체육교육과 대표로 나와 응원전을 펼친 기억이 떠올랐다.

'아아, 그때구나.'

[뭐가요?]

'관계가 안 좋았던 두 사람이 아까 그 응원을 계기로 다시 똘똘 뭉친 거라고. 차라리 혼자일 때가 상대하기 편했는데….'

비치발리볼 덕에 다시 굳건한 동맹을 구축한 두 사람이 도훈의 양팔을 붙잡고 매달렸다. 위에 겉옷을 걸치긴 했지만, 안에는 수영복을 입은 두 사람이 팔꿈치에 서로 젖가슴을 문질러 오자 도훈은 난감해 죽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이런 젠장, 이 구도는 위험한데.'

[들키면 큰일입니다. 국성대 학생들이 도처에 깔려있을 겁니다.]

도훈이 힘을 주어 두 사람을 떨쳐내며 경고했다.

"원하는 데호 해줄 수 있는데, 딱 한 가지 조건이 있어."

"뭔데요?"

"들어보고요."

"공공장소에서 티내지 말기. 다른 학생들에게 괜히 이상하게 찍히면 우리 사이도 파탄이야."

"아…."

"오케이. 접수요."

도훈의 협박에 가까운 경고를 두 사람이 수긍했다.

어찌됐건 학과에 안 좋은 소문이 났다가 서로에게 좋을 것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숙소로 가자"

"숙소요?"

"거긴 왜요?"

"성수 형이 자유시간 길게 줬잖아. 지금 숙소가면 사람 없을 거야."

"아예 없진 않을 걸요?"

"그러게. 아까 몇 명은 쉬러 간다면서 숙소로 가던데요."

"일단 따라와봐."

도훈이 앞장서서 숙소로 돌아갔다.

나연과 연두는 영문도 모른 체 숙소로 따라갔다.

과연 두 사람의 말대로 민박집에는 먼저 들어와 쉬는 학생들이 몇몇 있었다.

"거봐요. 내가 누구 있다니까."

"설마 여기가 오빠가 말한 장소예요?"

"아니지. 한군데 있긴 해."

"어디요?"

"설마…."

도훈이 독채로 떨어져 있는 조그만 방을 가리켰다.

"조교 선생님방."

"헉!"

"세상에, 오빠 어쩌려고 그래요?"

나연과 연두가 제법 대범하긴 했지만, 아직 1학년 이었기에 조교 강민주를 어려워하는 편이었다. 특히 여자들끼리의 서열과 위계가 더 빡쎈 특성상, 민주는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할 대선배 중의 한명이었다.

"아무도 없는 방이 이방밖에 업잖아. 배구 대회 끝나고 교수님 모시고 어디 다녀온다고 하기도 했고."

도훈은 미주가 지금 부재중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현재 독방이 텅 비어있다는 것도.

"문 잠겨있지 않아요?"

"따면 돼."

도훈에겐 아이템이 있었다. 이른바 만능열쇠라 불리는 아이템으로 구식 자물쇠 형 잠금장치는 무엇이든 해제할 수 있었다. 경첩이 너덜거리는 시골 민박집의 방문 정도는 우스웠다.

"으으. 그래도 갑자기 누가 들어오기라도 하면…."

먼저 열을 올리던 두 사람은 갑작스러운 도훈의 제안에 발을 동동 굴렀다. 마땅한 장소는 없고, 하고는 싶고…. 마치 크리스마스 날 빈 방을 찾아 모텔을 전전하는 커플과 같은 심정이었다.

'좋아. 지금 제안을 걸어야 겠군.'

[무슨 제안요?]

'미션이 원 바이 원이라면서. 저 둘은 2대 1로 덤빌 계획이었겠지만, 그러면 내 미션이 날아가거든. 따라서 둘을 각개격파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냈어.'

뭔가 아이디어를 떠올린 도훈이 망설이는 나연과 연두를 향해 제안했다.

"저, 그럼 말이야.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

도훈이 한참을 설명하자 연두와 나연이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망을 보라고요?"

"둘 중 한사람이요?"

"어. 그러면 혹시나 누가 오려고 해도 미리 알 수 있고, 만에 하나 잘못 되도 시간을 끌어줄 수도 있잖아."

"아니 그래도!"

"이건 너무 불공평해요."

"어떤 점에서?"

"왜 저희 둘 중 한명만 망을 봐야 하죠?"

도훈이 어이가 없다는 듯 반문했다.

"그럼 내가 망볼테니 둘이 들어가서 할래?"

"……."

"아니, 그건…."

잦이는 하나.

하지만 박혀야할 봊이는 둘인 게 문제였다.

레즈비언인 연두마저도 여자랑 하려고 이번 캠프를 버렸던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둘이서 하는 것들은 이곳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도훈이 있는 이상, 어떻게든 그와 관계를 맺고 싶었다.

나연이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

"좋아요. 오빠 말은 이해는 가는데, 한 가지 문제점이 있어요."

"무슨 문제?"

"망을 봐야 하는 나머지 한명이 너무 불쌍하잖아요."

"맞아요. 서럽게 끼지도 못하고."

도훈이 고개를 단호히 가로 저었다.

"교대할거야."

"네?"

"교대요?"

"어. 한명 끝나는 대로 바로 다음 사람."

"오빠 무슨 손님 받아요, 지금?"

"맞아요. 우리가 무슨… 순서표 받아놓고 대기하는 것도 아니고."

말은 돌려 했지만 결국엔 줄을 세운다는 소리였다.

이를 눈치 챈 연두와 나연이 반발하자 도훈이 결정적인 수를 내밀었다.

"왜? 따로 따로 하면 비교 당할까봐 그래?"

"네?"

"뭐라고요?"

도훈이 뻔뻔하게 말했다.

"솔직히 너희들 어제 싸운 이유도 그것 때문이잖아. 혼자만 나랑 하면 누군가는 비교당할 테니까. 아니야?"

도훈이 은근슬쩍 두 사람의 심리적 기저에 깔린 경쟁심을 돋웠다. 나연과 연두는 자매라고 불릴 정도로 절친이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동성사이에 품을 수밖에 없는 원초적인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내가 연두보다는 낫지.

나연이 정도는 뭐….

하지만 서로의 관계에 금이 가지 않기 위해 그러한 말을 삼갔을 뿐이었다. 어차피 도훈을 고유하기로 한 이상, 같이 즐기기만 하면 문제가 없기 때문이었다.

"너희들…. 1대 1로는 자신 없어?"

"무, 무슨 말을!"

"장난해요?"

"그럼 한 명씩 덤벼봐. 내가 솔직하게 평가해 줄게."

도훈이 서로를 노려보는 나연과 연두를 향해 또박또박 말했다.

"둘 중에 누가 더 '맛있는' 지를."

"으!"

"진짜로 할 거야?"

나연의 별 뜻 없는 물음에 연두가 지레 어그로가 끌렸다.

"왜? 넌 자신있다는 거야?"

"아니 누가 뭐래? 할 거냐고 그냥 물은 거잖아."

"얼마든지.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잘 됐네. 오늘 누가 도훈 오빠한테 더 어울리는 사람인지 한 번 보자고."

"뭐?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막막 쩐다 너? 솔직히 너보단 내가 더 낫지."

"웃기시네. 빈유 주제에. 야. 절벽에 떨어진 사람이 니 가슴 잡았다간 추락사해 이년아."

"어이가 없어서 진짜. 넌 여자나 계속 좋아하지 뭐하러 도훈 오빠한테 들이대니?"

"말 다했어?"

"아직 남았거든?"

살짝 분위기만 띄우려고 했던 도훈은 말싸움이 격화되자 중재에 나섰다.

"워워. 싸우지 말고. 분위기 좋다가 갑자기 왜 이래? 화해한 거 아니었어?"

"얘가 가슴 작다고 놀리잖아요!"

"너도 나보고 여자 좋아한다고 깠잖아!"

"자자, 그만. 진정들 하고. 말로 싸워봐야 무슨 소용이야. 몸으로 증명하는 게 진짜 승부야."

"흥. 얼마든지요. 연두 정도는 껌이지."

"어, 그래. 니 가슴에 씹던 껌 붙였다."

"이게 진짜 씨!"

"한 번 해"?"

"다들 그만!"

도훈이 결국 역정을 냈다.

"아니 이렇게 싸울 거면 뭐하러 날 불렀어?"

"……."

"오, 오빠."

"가운데 낀 내가 뭐가 되냐? 너무 불편하다."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져서…."

버럭 화를 낸 도훈이 다시 조곤조곤하게 타일렀다.

이른바 어르고 달래기 수법이었다.

"그러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누군가는 망을 봐야 하는 상황이잖아. 맞지?"

"네."

"그래서 한명씩 순서를 정해서 하자는 것뿐이야. 난 두 번 해도 끄떡없으니까."

"그건 인정."

"근데 누가 먼저 해요?"

두 사람이 선수와 후수를 놓고 유불리를 따지는 사이 도훈이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가위바위보지 해."

"네?"

"마지막에 좀 이상한데요?"

"암튼 하라고. 그래서 이긴 사람이 먼저 방으로 들어오고, 나머진 망보고 있어. 그 다음 교대하고. 오케이?"

도훈은 선언하듯 외치고는 만능열쇠롤 문을 따 민주의 독방으로 먼저 들어갔다. 이제 밖에 둘만 남은 연두와 나연은 한참을 서로 노려보았다.

자매 같은 우애를 자랑하는 절친 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누가 더 도훈에게 인정받느냐에 자존심을 걸 두 사람의 한판이었다.

"가위바위보!"

승부가 났는지 잠시 후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빠, 저 부터예요."

< 1005. 별이 쏟아지는-65-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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