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021화 (988/2,000)

< 1004. 별이 쏟아 지는-64- >

***

"좀 더 자세히 말해봐, 도훈 오빠가 군대 다녀와서 어떻게 변했다고?"

"아, 아니 나는 뭐 형이 군대 가기 전에 없었으니까 잘은 모르지만…."

"방금 들은 게 있다면서?"

"어. 그러니까 지금 부회장님이 원래 도훈이 형이랑 같이 들어온 동기거든."

태영은 자신이 알고 있는 데로 도훈의 과거를 설명했다.

1학년 때는 숫기가 없어서 지금처럼 인싸 스타일은 아니었다는 둥, 군대 가기 전에 과CC를 하다가 깨지고 도망치듯 입대를 했다는 둥.

"오빠가 과CC였다고?"

"어. 아마 지금 민주 샘이랑 동기였던 분이랑 사귀었을걸?"

"조교 선생님 말이지?"

"그렇지. 근데 그분이 도훈이 형 동기랑 바람이 나가지고…."

"바람? 같은 과에서 다른 애랑 또 사귀었단 말이야?"

"쉽게 말해 양다리 걸친 거지."

"누군데? 3학년 선배 중에 있겠네?"

"아니야. 그 형도 충격먹고 자퇴한 거로 알고 있어. 수능 다시 봐서 다른 대학 갔다더라고."

"아…."

"그니까 1학년 땐 지금이랑 많이 달랐다고 하더라고. 말수도 없고, 운동만 좋아하고, 여자도 그때 처음 사귀고."

"그래? 근데 군대 다녀와서 180도 변한 거야?"

"응. 지금은 완전 인싸잖아. 과에서도 인기 많고, 타과에서도 엄청 눈독 들인다고 하더라고."

"넌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태영은 취조를 받는 느낌이 들었지만, 쌀쌀맞던 아영이 다시 말을 걸어 준 것에 감동해 곧이곧대로 대답했다.

"이런 얘기하기 그렇지만 내가 1학년 중에선 도훈이 형이랑 제일 친할 거야. 교양수업도 많이 겹치고. 형이랑 평소에 점심도 자주 같이 먹었거든."

"아하."

"암튼, 전역한 이후 도훈이 형은 완전히 변했다고 들었어."

"구체적으로 말해봐."

"음…. 예를들어 어제 마지막 술자리에서 노래 들었지? 이등병의 편지 불러준 거."

"어. 잘 부르더라."

"원래 노래 잘 못 불렀데."

"진짜?"

"어. 그래서 누가 물어봤는데, 군대에서 노래방 기계에서 매일 연습했다고 하더라고, 지금은 가수 뺨치게 잘 부르잖아."

"군대에서…."

아영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또 있어."

"또 뭔데?"

"도훈이 형이 운동도 엄청 늘었어."

"늘었다고? 원래 잘했다면서?"

"잘하긴 했지. 원래 만능 스포츠맨 타입이라고 들었어. 막 이것저것 조금씩 다 잘하는 사람 말이야."

"응. 그런데?"

"지금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진짜로 다 잘하잖아. 너 1학기 때 그 소문 못 들었어?"

"무슨 소문?"

"도훈이 형 100M 달리기 비공인 기록 세운 거."

"그게 뭐야?"

입이 촉새처럼 가벼운 태영은 아영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자 흥분해 떠들었다.

"모르는구나. 하긴 학과 소식에 관심이 없으니까."

"쓸데없는 소리 말고."

"그니까, 2학년 육상 실기에서 강사 선생님이 기록을 측정했는데, 엄청난 기록이 나온거야."

"오호."

"그때 고등학교 때까지 육상 선수 했던 형도 있었는데, 도훈이 형한테 상대가 안 됐다더라고."

"그게 가능해?"

"어?"

"달리기 기록이 스무살 이후에 느는 거."

"그, 글쎄…."

"설마 그것도 군대에서 는 거야?"

"음, 뭐 운동 엄청 열심히 했다고 하더라고. 지금도 몸 되게 좋잖아. 군대에서 짬 날때 마다 헬스를 했다더라고."

태영의 설명을 듣던 아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군대에서 노래도 부르고, 헬스도 하고 할 건 다했네? 나라는 언제 지킨 거지?

"결정적인 건 이번에 수석 먹은 거야."

"과 수석?"

"아니 단대 수석이라던데."

"단대 수석이면 사범대 전체?"

"어."

"그게 왜?"

"원래는 낙제 급이라고 들었거든. 이건 성수형이 말해준 건데, 1학년 때도 하도 놀아서 학고 겨우 면했다고 들었어."

"한마디로 학고 수준이던 실력이었는데, 제대 이후로 단대 수석을 차지할 만큼 똑똑해졌다는 거야?"

"연등 시간에 공부를 꾸준히 했다더라고."

"연등?"

"아니 나도 잘은 모르는데 군대 가면 야간자율 시간에 공부할 시간을 따로 주는가 보더라고. 자격증 시험 같은 거 준비할 수 있도록."

"네 말만 들으면 도훈 오빠는 군대 다녀와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서 왔네?"

"그지? 나도 그래서 군대 가려는 거야. 나도 군대가면…."

태영이 희망에 부풀어 군 입대의 계획을 설명했지만, 아영은 이미 한 귀로 듣고 흘리고 있었다. 어차피 필요한 정보는 다 얻었기 때문에 뒷이야기는 모두 사족이나 마찬가지였다. 태영이 혼자 열심히 씨불이는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아영이 생각에 잠겼다.

'군대 2년 동안 사람이 그 정도로 변하는 게 가능하단 말이야? 혹시 뭔가 다른 계기가 있는 건 아닐까?

아영은 태영이 제대로 말해주지 않은 또 다른 비밀도 알고 있었다. 도훈이 겉으로는 신사인 척하면서, 뒤로 학과 여자애들을 몰래 따먹고 다닌다는 것.

'첫 연애에서 충격적으로 결별하고 바람둥이가 되는 사례가 없는 건 아니야. 여자에 대한 불신의 감정으로 완전히 타락해 버리는 경우는 흔히 있으니까. 하지만 나머지는 뭔데? 군대 다녀와서 노래도 늘고, 운동 실력도 늘고, 공부도 더 늘었다고? 이건 좀 연구해 볼 가치가 있겠는 걸?'

데이터를 분석하기 좋아하는 아영에게 도훈은 흥미로운 관찰 대상이었다. 해가 갈수록 대기만성으로 발전하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지만, 도훈처럼 극적인 괄목상대를 이루는 경우는 무척이나 드문 케이스였다.

'수상해. 확실히 정상의 범주는 아니야. 분명 뭔가 숨겨진 비밀이 있는 거 같아. 캐볼 여지가 있겠어.'

"그니까 나도 군대 가면 먼저…."

"태영아. 잘 들었어. 몸 조심히 다녀와."

"어? 나 아직 얘기 안 끝났는데."

"아니. 내가 끝났어. 그럼 이만."

볼일 다 봤다는 듯 아영이 벌떡 일어서더니 다른 곳으로 훌쩍 사라져 버렸다. 태영은 벙찐 표정으로 아영이 사라진 곳을 쳐다보았다.

"또… 뭐 내가 말실수한 건 아니겠지? 아니야 이번엔 그래도 도훈이 형 얼마나 많이 칭찬했으니까."

***

"근데 부회장을 2학년에서 맡은 사례가 있었어요?"

"어. 그럴걸. 왜, 나 1학년 때 부회장 누나가 2학년이었거든."

"그래요?"

"어. 삼수해서 들어온 누난데, 사교성이 워낙에 좋고 일도 잘했어."

"그러면 문제는 없겠네요. 그러니까 도훈 오빠 말은 지금 1학년들이 2학년 되었을 때 집단 지도 체제로 간다는 거죠?"

"그렇지."

"누굴 생각하시는 건데요? 정음이?"

"정음이 좋네. 걔 엄청 성실하잖아."

도훈이 자신의 구상을 설명했다.

"일단 정음이도 포함이고요. 지금 1학년 여자애들이 꽤 괜찮더라고요. 서현이도 똘똘하고, 희주나 나연이 연두도 텐션이 높으니까 대외적인 행사 동원하기 딱 좋고요."

"오, 듣고 보니 그럴싸한데? 지금 2학년 애들보다 1학년 애들이 인재풀이 좋긴 하지."

성수가 맞장구를 쳤지만, 멤버의 이름을 듣던 유미가 곧바로 반발했다.

"다 여자애들로만 구상한다고요?"

"어."

"걔들 뭐 8선녀인가 뭔가 하는 애들 아니에요?"

"그런가? 그런 별명이 있긴 하지."

유미는 도훈이 여자 후배들에게 둘러싸이는 게 상당히 불만이었는지 곧바로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물론 반대의 명분은 다른 점을 지적했다.

"아니, 여자애들은 힘도 없잖아요. 이런 캠프 같은 거 열면 얼마나 짐을 날라야 하는데…."

도훈이 곧바로 받아쳤다.

"조금 차별적인 거 같은데."

"차별이요?"

"유미 너도 충분히 힘세잖아. 여자라고 힘이 약할 거로 생각하면 편견이지."

"아니죠. 이건 차이죠."

"경희같은 애들은 힘도 세. 나머지도 그렇게 비실비실하진 않고."

"그, 그건 그렇지만…."

유미가 말끝을 흐리자 성수가 도훈의 제안에 동조했다.

"유미야. 들어보니까 괜찮을 거 같아. 일단 여자애들이 도훈이를 많이 따르잖아. 솔직히 행사 같은 거 하나 주최하려면 일손이 달리는데, 도훈이 말대로 부회장 없이 집단 지도 뭐시긴가로 가면 집행부로 참여할 인원도 많아지니까."

"그래도 여자애들만 하는 게 어딨어요?"

"응?"

성수도 그제야 유미가 필요 이상으로 감정적인 대응을 한다는 것을 의식했다.

'왜 저러지? 도훈이가 회장직을 받는 조건치고는 나름 괜찮은 해법 같은데….'

도훈이 차분히 유미를 설득했다.

"물론 집행부에 남자가 많으면 좋겠지. 대신 그건 내가 필요할 때만다 도움을 요청하면 해결될 일이야. 아무튼, 나는 이 조건이면 수락할 수 있어."

"난 콜."

"전 반대에요."

"유미야."

"너 왜 그래?"

"……."

유미가 마시고 있던 커피를 테이블에 쾅 내려놓더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성수가 어안이 벙벙해 있자, 도훈이 성수에게 말했다.

"형, 저 잠깐 유미랑 얘기하고 올게요."

"어, 그래. 왜 갑자기 저러는지 모르겠네."

도훈이 커피숍 밖으로 나오자 유미가 씩씩거리며 서 있었다.

"유미야."

"됐어요. 맘대로 하세요. 여자 후배들 끼고 놀고 싶으면 그렇게 하시라고요."

'어휴. 저 성질머리.'

[유미 양이 상처받은 거 같은데요?]

'아니 내가 무슨 여자 후배들 끼고 의자왕 놀이할까 봐 그러나?'

[정확한 팩트잖습니까. 유미 양이 바로 봤고요.]

'그걸 떠나서 그게 반대의 명분이 될 순  없잖아. 나도 최대한 회장직을 맡아보려고 대안을 내놓은 건데.'

[유미 양은 그냥 주인님 주변에 여자가 많은 게 싫은 겁니다. 사람인 이상 질투심이 안들 수 있을까요?]

'음….'

도훈이 난처해하는데 흥분을 가라앉힌 유미가 물었다.

"솔직히 목적이 뭐예요?"

"무슨 목적?"

"1학년 여자애들을 끌고 가려는 목적이요."

"목적은 무슨 목적? 너도 알디시피 집행부 일이 쉬운 건 아니잖아. 나도 그래서 망설였단 말이야. 너한테는 성수형이 있었지만, 나는 아무도 없으니까."

"……."

"난자애 중에서 쓸만한 애는 우선이 뿐이었는데, 우선이가 군대에 가잖아. 우선이가 입대를 안했으면 나도 그냥 우선이 부회장 맡겨서 같이 했을 거야. 그런데 상황이 상황이니까…."

"……."

"네가 이렇게 반응하면 성수형이 우릴 어떻게 생각하겠어?"

"정말 다른 의도는 없는 거죠?"

"없어. 나는 일 잘하는 기준으로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뽑은 거야."

도훈의 차분한 설득에 유미도 조금씩 납득하기 시작했다.

"미안해요. 화내려던 건 아닌데 감정이 주체가 안 됐어요."

"알지. 충분기 기분 상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근데 뭐, 내가 설마 이상한 의도를 가지고 집행부를 구성하려는 건 아니잖아. 나를 그런 쓰레기로 본 거야?"

[놀라운 안목 같은데요? 정확히 주인님을 간파하고 있지 않습니까?]

'닥쳐!'

"아, 아니 나는…. 모르겠어요. 제가 오빠를 구속할 권리는 없지만, 그냥 기분이 안 좋았어요. 오빠가 워낙에 후배들한테 인기가 많으니까 신경도 쓰이고."

"알지. 충분히 이해해. 나도 아까 비치발리볼 할 때 사람들이 너 수영복 입은 거 훔쳐보는 거 기분 나쁘더라."

"정말요?"

"당연하지. 그게 기분 좋으면 변태지."

"오빠 변태 맞잖아."

"누가 누구보고 하는 소리야?"

"치."

"유미 너 쿨한 줄 알았는데, 은근히 질투도 하는구나?"

"저도 여자라고요…. 오빠."

'아…. 것 참 맘 약해지게 만드네.'

[그냥 손절 하시죠, 이 기회에.]

'그럴 거야. 근데 지금은 좀 타이밍이 아닌 것 같아서.'

도훈은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유미를 보고 인간적인 미안함을 느꼈다. 섹스할 때만 제외하면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은 후배기도 했다. 특히 배구를 할 때 열정적인 모습은 누가봐도 매력이 넘쳤다.

'아직은…. 캠프 끝나면.'

[거참, 주인님도 은근히 이런 점에서 너무 우유부단하시니 원.]

"일단 들어가자. 성형이 진짜로 오해하겠다."

"네."

유미와 도훈이 다시 커피숍으로 들어가자 성수가 물었다.

"잘 얘기했어?"

"네. 유미가 약간 오해가 있었나 보더라고요."

"무슨 오해?"

"제가 혹시나 엉큼한 목적으로 여자 후배들 끌어들인 건가 하고."

"푸하하!"

성수가 호탕하게 웃었다.

"유미야, 그건 전혀 걱정하지마. 이 새끼 거의 고자잖아."

"아, 아니 형."

"무슨 소리예요?"

"여자를 소개해줘도 마다해, 떠밀어 주도 싫다고 해. 여자 문제로는 걱정할 게 없는 놈이야."

"아니 그 얘기가 지금 왜 나와요?"

"도훈 오빠가 그랬다고요?"

유미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그렇다니까? 내가 진짜 대놓고 밀어줘도 싫다고 하는데, 난 조만간 도훈이 이놈 스님이 되거나 신부가 될 거라고 본다."

도훈의 여성 편력을 우려하던 유미로선 안심이 되는 이야기였다. 그제야 웃음을 찾은 유미가 농담하듯 말했다.

"에이, 그래도 도훈 오빠가 설마 고자겠어요."

"모르지. 원래 완벽한 놈들에겐 약점이 하나씩 있잖아. 이 새끼 고잘 거야."

"아, 형. 쫌."

"고자 새끼."

"하지 말라고요. 그리고 이거 성희롱이예요. 유미도 있는데."

"유미는 신경 안 쓸걸?"

"성인들끼리 뭐 그 정도는."

유미가 받아주자 성수가 계속 골렸다.

"고자 새끼. 줘도 못 먹는 새끼."

"그만 해요. 암튼 얘기 끝났죠?"

"저 새끼 저거 오늘 자고 있을 때 여자방에 몰래 던져놓고 와야지. 어떻게 하나 보게."

"오빠, 그건 좀…."

"에이, 몰라. 암튼 얘기 끝났으니까 난 이만 갑니다?"

도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 가게?"

"바람 좀 쐬려고요. 자유시간이라면서."

"오빠, 같이 갈까요?"

"아냐. 그냥 좀 혼자 있고 싶어."

"그래. 막중한 자리를 물려받으니 심적으로 부담이 크겠지. 난 유미랑 더 마시다 갈 테니까 먼저 가라."

도훈이 커피숍을 나가자 유미가 기다렸다는 듯이 성숙에게 물었다.

"근데 여자를 소개해줬다는 게 무슨 소리예요? 오빠가 소개팅 시켜줬어요?"

"아 그거? 그러니까…."

< 1004. 별이 쏟아지는-64- > 끝.

ⓒ 성난불기둥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