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841화 (809/2,000)

< 823. 기말 시즌-23- >

***

도훈과 헤어진 태영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도훈이 집까지 태워준다고 했으나, 다섯 정거장 가면 된다면서 한사코 거절했다. 도훈의 집과는 완전 반대 방향이라 얻어타기 미안했던 탓이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태영은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양 핸드폰을 꼭 쥐고 있었다.

‘이만하면 답장 올 때가 됐는데···.’

정란과 헤어지면서도 보낸 깨톡 메시지에선 여전히 숫자 ‘1’이 지워지지 않았다. 태영은 답답한 마음에 한 번 더 톡을 남겼다. 혹시나 정란이 깜빡하고 폰을 못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김태영 : 자니?

톡을 보내고 나자 다시 긴장되었다. 금방이라도 답장이 날아올 것 같았다. 그때 갑자기 "깨톡"하는 알림음이 들렸다.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서 있던 태영은 챔피언스 리그 결승골을 넣은 축구선수마냥 격렬히 환호했다.

"왔업! 요!"

그러다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통에 혼자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기다리던 답장에 두근두근하며 깨톡창을 열었지만 여전히 대화방의 숫자는 지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어라? 뭐야? 분명히 메시지 알림이 왔었는데?"

이상한 마음에 대화방을 뒤진 태영은, 방금 전 알림이 새롭게 초대된 단톡방에서 온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몹시 실망했다.

"아씨, 누구야 대체?"

단톡방을 들어가자 익숙한 멤버들이 보였다. 흔히 롤팟이라고 불리는 과내 남자들 모임이었다.

-박진수 : 태영아, 너만 오면 5인팟 고.

-윤주완 : 뭐하냐? 얼른 안 튀어 오고.

-김시우 : 캐리 머신님만 기다리며 대기타고 있습니다.

태영을 찾는 동기들의 합류 요청이었다. 기대하던 답장이 아니라는 것에 실망한 태영은 대답도 없이 단톡방을 나가버렸다.

"내가 지금 너희들이랑 한가하게 게임이나하게 생겼냐? 하여간 롤창같은 새끼들 같으니라고."

태영이 쯧쯧 혀를 차는데 또다시 알림음이 울렸다.

마침내 정란에게 답장이···.

"아씨, 개새끼들 또 초대했잖아?"

-박진수 : 뭐야 왜 나가는데?

-윤주완 : 웬일로 아직 까지 접속도 안 함?

-김시우 : 야, 오늘 국어과 애들이 내전 한 판 하자더라?

화가 머리끝까지 난 태영은 다시 단톡방을 탈출하려다, 어차피 또 초대하면 도로묵이라는 생각에 단톡방 알림음을 음소거했다. 현재 그의 정신은 온통 정란에게 쏠려있었다.

"많이 바쁜가 보네? 왜 답장이 안 오지? 밤늦게 제사 지낸다고 했으니 아직 잘리는 없는데."

태영은 정란의 태도에 몹시 초조해졌다. 기다리다 지친 태영은 또다시 남자 동기들의 단톡방에 들어갔다. 태영을 기다리며 잡담을 나누던 동기들은 태영이 반응이 없자 자기들끼리 신이 나서 떠드는 중이었다.

-박진수 : 야, 니들 그거 들었냐? 기찬이 오늘 소개팅한 거.

-윤주완 : 진짜? 누구랑?

-김시우 : 예쁘냐?

-박진수 : 무용과라던가?

-윤주완 : 대박! 무용과라니 ㄷㄷㄷ

-김시우 : 예쁘냐?

-박진수 :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까나? 무용과랑 소개팅이라니.

-윤주완 : 100% 까였겠지. 에프터 신청 못 했다에 내 계정 건다.

-김시우 : 아씹, 예쁘냐고!

-박진수 :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 찐따새끼야!

-윤주완 : 무용과면 보나마나 예쁘겠지. 무용과 몰라, 무용과?

-김시우 : 몸매만 좋을 수도 있는 거잖아. 그 왜 양희주처럼.

-박진수 : ㄴㄴ. 요새 희주 욜라 예뻐짐.

-윤주완 : 맞어 희주 요새 물올랐잖아. 나도 저번에 보고 딴 사람인줄?

-김시우 : 희주도 예쁘냐?

한참 바보 같은 단톡방을 구경하던 태영은 속으로 쯧쯧 혀를 찼다.

‘멍청한 놈들. 나도 오늘 엄청 퀸카랑 데이트 한 것도 모르고.’

태영은 당장이라도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입이 근질거렸다.

무용과랑 소개팅했다는 기찬이 조금도 부럽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미인과 만나고 왔노라고 단톡방에 으스대고 싶었다.

하지만 몇 번을 확인해도 숫자 ‘1’은 지워지지 않았다.

불러도 대답없는 메아리였다. 답신도 안오는 데 자랑을 하긴 민망했다.

참고 참은 태영은 다시 정란의 톡에다 글을 썼다.

-김태영 : 하하, 피곤해서 먼저 자나 보네?

전송 버튼을 누르기 직전 태영은 이건 아닌 거 같다는 생각에 급히 문자를 지웠다. 앞서 보낸 메시지가 4개나 남아있는데 거기에 또 보내면, 정란이 안 좋게 볼 것 같았다.

"아으, 짜증 나 진짜. 전화를 걸수도 없고."

태영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렸다. 남자 동기들 겜톡 방에는 아직까지 동기인 양희주의 얘기가 오가고 있었다.

빻녀가 훈녀가 됐다느니, 원래부터 몸매가 좋았는데 얼굴까지 예뻐지면서 완전 용됐다느니 달라진 희주에 대한 칭찬이 줄을 잇고 이어졌다. 태영은 자기도 한마디 거들까 하다 냅뒀다. 괜히 말을 시작했다간 또 친구들이 게임에 들어오라고 성화일 텐데, 지금

은 전혀 게임을 하고 싶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박진수 : 예쁘면 뭐해? 어차피 남친도 있는 애를.

-윤주완 : 희주가 희한하게 옛날부터 남친이 끊이질 않았단 말이지?

-김시우 : 남친은 잘생겼데?

-박진수 : 넌 왜 새끼가 묻기만 하는 거야. 니가 직접 물어보던가.

-윤주완 : 그러게 앵무새도 아니고 여자만 나오면 예쁘냐고 묻고, 남자만 나오면 잘생겼다고 묻냐?

-김시우 : 난 희주랑 안친하단 말이야.

-박진수 : 누군 친하냐? 남자 동기중에 희주랑 친한 애가 얼마나 있다고?

-윤주완 : 그렇긴 하지. 솔직히 말해서 학기 초엔 희주가 잘나가지 못해서 인기가 없었으니까. 8선녀에도 못 들고.

-김시우 : 그나마 태영이가 제일 친하지 않았나? 근데 이 새낀 왜 아까부터 잠수야? 눈팅중인가?

-박진수 : 야, 김태영. 얼른 튀어와라.

-윤주완 : 기남이도 아까부터 말이 없는데?

-김시우 : 기남이 나랑 피씨방 같이 있어. 지금 레이드 뛰는 중.

-박진수 : 아하. 둘이 피방이었어?

-윤주완 : 태영이만 오면 되는데···.

-김시우 : 근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말이 없지?

동기들의 대화를 눈팅하던 태영은 단톡방에서 거론된 희주의 이름을 보고 문득 생각했다.

‘그렇지. 1학년 동기 중 그나마 내가 희주랑 친한 편이었지?’

미모로 유명한 체육과 1학년 틈바구니에 치여 유난히 인기가 없던 희주. 몸매로는 알아줬지만, 얼굴이 영 아니었기 때문에 동기들 사이에서도 딱히 친한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태영이 유일하게 말을 걸고 인사를 나누는 편이었다.

‘그래. 맞어. 희주한테 물어보면 되겠다.’

정란의 태도에 답답해하던 태영은 문득 희주에게 연애상담을 받아보기로 결심했다. 여자 마음은 여자가 가장 잘 아는 데다, 희주가 생긴 것과 달리 남자를 자주 만나고 다닌다는 사실이 떠오른 것이다.

‘희주는 연애 경력이 많으니까 말이야.’

태영은 희주에게 개인톡을 남겼다.

-김태영 : 양희주. 뭐해?

대답이 순식간에 날아왔다.

-양희주 : 술 마시는데? 웬일?

태영은 너무나 빠른 답장에 감동했다. 정란은 메시지를 4개째 읽지도 않는 마당에 희주는 곧바로 반응을 해온 것이었다.

‘역시, 동기 사랑, 나라 사랑이구나. 희주밖에 없네.’

-김태영 : 남친이랑 술마시는 거?

-양희주 : 니가 알 거 없고.

-김태영 : 주종은 분명 양주렸다? 양‘희’주니까. 하하핳

-양희주 : ···니가 그러니까 여친이 없는 거야. 아재도 아니고. 농담하려고 불렀니? 나 바뻐.

-김태영 : 아니아니. 잠깐만 뭐 좀 물어보려고.

-양희주 : 말해.

-김태영 : 여자한테 톡을 보냈는데 30분 넘게 답장이 없는 무슨 경우야?

-양희주 : 읽씹했어?

-김태영 : 아니 아직 읽진 않았는데.

-양희주 : 바쁜가 보지. 아님 다른 거 하느라 못 봤을 수도 있고.

태영은 희주의 긍정적인 대답에 적잖이 마음이 놓였다.

생각해보면 자신도 게임에 푹 빠져있을 땐 연락이 와도 못 보고 1시간 넘어 답장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양희주 : 근데 읽었는데도 쌩까거나 다음날 까지 답이 없으면 너한테 그냥 마음이 없는 거야.

-김태영 : 오키. 고마워.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어. 물어볼 여자가 없어가지고.

-양희주 : 너 여자 생겼어? ㅋㅋ축하해. 누군데? 우리과야?

-김태영 : 우리 과 아님. 그냥 조모임에서 알게 된 애야.

-양희주 : 조모임?

-김태영 : 응 도훈이형이랑 같이 듣는 교양수업.

빠른 속도로 답장을 보내던 희주가 잠시 딜레이가 걸린 것처럼 멈칫했다. 목적역에 도착한 태영이 지하철에서 내리는데 다시 희주에게서 톡이 왔다.

-양희주 : 도훈 오빠랑 같은 조모임?

-김태영 : 응. 오늘도 같이 조모임 끝내고 가는 길인데?

-양희주 : 도훈 오빠랑 지금 같이 있어?

-김태영 : 아니 집에 간다고 헤어졌어.

-양희주 : 그럼 그 조에 썸녀가 있는 거?

-김태영 : 어.

-양희주 : 예뻐?

-김태영 : 예쁘지. 예쁜데 심지어 쌍둥이임.

-양희주 : 쌍둥이라고?

-김태영 : 그니까 나랑 도훈이형이랑 쌍둥이 자매 둘이 같은 조라고. 쌍둥인데 심지어 예쁘기까지함.

-양희주 : 아아, 이해했어.

-김태영 : 담주에 기말대체로 발표가 있어서. 당분간 매일 봐야 할 것 같아.

-양희주 : 그렇구나. 알았어. 암튼 난 계속 술 마신다.

희주와의 톡을 마친 태영은 다시 한번 정란의 톡을 확인했다.

"어? 읽었다!"

마침내 숫자 ‘1’이 마침내 지워져 있었다.

"···근데 왜 답장이 없니? 제사 지내느라 바쁜가?"

여전히 대답이 없는 모습에 태영이 마음이 졸였다. 불쑥 희주가 했던 말이 스치고 지나갔다.

-양희주 : 근데 읽었는데 쌩까거나 다음날 까지도 답이 없으면 너한테 마음이 없는 거야.

"아씨, 괜히 불안하게. 나중에 답장 하겠지?"

태영은 애써 불안한 마음을 감추며 집으로 돌아갔다.

***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먹고 있던 희주는 갑자기 표정이 심각해졌다.

"야, 양희주. 뭐해? 톡만 보고."

"잠깐만. 나 화장실 좀."

희주는 사실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 술을 마시는 중이었다. 학창시절 단짝들로 희주와 가끔 나이트를 가거나 유흥을 즐기는 모임이었다.

학과 동기들과는 같이 가기 민망하지만, 원래부터 알던 사이니 만큼 마음껏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심지어 희주가 남자친구가 있든 없든 눈감고 신경 안쓰는 부류들이었다.

"···태영이가 예쁘다고 하니까 괜히 불안하네."

화장실로 간 희주는 거울을 보며 옷매무세를 다듬었다.

스키진 진에 흰 티를 입은 몸매가 모델처럼 잘 어울렸다.

특히 최근들어 물오른 미모 덕에 거울을 볼때마다 깜짝 놀랄 정도였다.

"이만하면 나도 어디가서 꿀리지 않는데 말이야."

예뻐지고 남자들을 여럿 만났다. 남친이라고 있어봐야 어차피 섹파에 가까웠다. 그녀의 바람기는 여전했고, 예뻐지고 나선 더 심해졌다.

그러나 아직까지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도훈이었다.

‘쭉정이 같은 새끼들 꼬셔봐야 뭐해. 어차피 도훈 오빠 한명만 못 한걸.’

남자들 트럭으로 가져다 줘도 도훈 하나만 못했다.

만나면 만날수록 갈증은 더 심해졌다. 최근들어 달라진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다.

되도록 연락을 안하는 주의였지만, 모처럼 희주가 도훈에게 연락했다.

-양희주 : 오빠, 뭐해여?

-이도훈 : 응? 희주 무슨 일이야?

-양희주 : 꼭 무슨 일이 있어야 연락하는 사이에요, 우리가? ㅋㅋㅋ

희주는 도훈에게 씹힐까봐 두려웠지만 막상 답장이 바로 오자 조금은 대범해졌다.

-이도훈 : 아니 뭐 그건 아닌데.

-양희주 : 오빠 방금 조모임 끝내셨죠?

-이도훈 : 네가 그걸 어떻게 알어?

-양희주 : 태영이가 말해주더라고요.

-이도훈 : 하여간 이 자식 촉새같이 다 말하고 다니네. 너 태영이랑 친해?

-양희주 : 그럭저럭? 아니 걔가 갑자기 썸녀가 깨톡을 안본다고 물어보더라고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이도훈 : 썸녀? 조모임에서?

-양희주 : 거기 예쁜이 있다면서요. 쌍둥이.

-이도훈 : 그런 것 까지 다 말했어? 이 새끼 진짜 안되겠네.

-양희주 : 오빠도 혹시 관심있는 거 아니에요?

-이도훈 : 내가? 내가 왜?

변기에 앉아 톡을 보내던 희주가 피식 웃었다.

-양희주 : 내가 오빠를 모를까봐.

-이도훈 : 웃기네. 야, 너 예뻐졌다며?

-양희주 : 빨리도 말하네요.

-이도훈 : 축하한다. 이제 인기 많겠네?

-양희주 : 인기는 예전에도 많았어요. 내 별명이 신내바인거 몰라요?

-이도훈 : 뭔내바?

-양희주 : 신이 내린 바디. 몸매가 워낙에 잘 빠졌다고.

-이도훈 : 자기 입으로 그런 말하면 안쪽팔리나?

-양희주 : 내가 오빠한테 쪽팔리게 뭐있다고.

-이도훈 : 사진 보내봐. 얼마나 예뻐졌는지 보게.

-양희주 : 지금요? 깨톡 프로필에 있을텐데.

-이도훈 : 아니 그거 말고. 너무 얼굴이 작게 나왔어. 자세히 보고 싶어.

-양희주 : 자세히요? 잠시만.

희주는 폰을 들더니 셀카를 찍었다.

오늘 친구들과 클럽을 가기로 했기 때문에 가슴골이 훤히 비추는 옷이었다. 그녀는 일부러 위에서 얼짱각도로 내리찍으며 가슴골도 보이게 찍었다.

-양희주 : (사진)

-양희주 : 됐죠?

-이도훈 : 오, 진짜 예뻐졌네?

-양희주 : 뭘요. 화장이 잘먹어서 그런가 봐요.

-이도훈 : 가슴골은 좀 에반데.

-양희주 : 오빠한텐 꺼내서 보여 줄 수도 있는데.

희주가 씩 웃더니 이번엔 아예 상체를 들어 브라가 훤히 보이게 가슴을 찍어 사진을 전송했다.

< 823. 기말 시즌-23- > 끝

ⓒ 성난불기둥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