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6.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6- >
***
조동탁.
흔히 ‘탁이’라는 예명으로 불리는 그는, 정마담이 운영하는 <오빠호빠> 부동의 에이스다.
180이 넘는 훤칠한 키에, 아이돌을 연상시키는 외모. 천진난만한 성격과 타고난 사교성으로 호빠계에 입문하면서부터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던 인물.
하지만 화류계 생활이 다 그렇듯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속은 썩어 들어갔다. 특히 하루가 멀다 하고 과음을 한 탓에 젊은 나이임에도 벌써 간이 망가진 상태였다.
그 때문인지 그는 늘 느즈막하게 출근했다.
지명손님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예약이 드문 때에는 가게에 나오지 않은 날도 많았다.
그런 그가 삼선 츄리닝에 스냅백 모자, 양말도 안 신은 쓰레빠 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현성이 뺨을 맞고 대기실로 들어간 시점이었다.
"탁이 형님 오셨습니까!"
"안녕하십니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를 우러러보는 후배들이 깍듯하게 인사를 올렸다. 굳이 정장을 안 입는 선수들도 더러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처럼 동네 백수가 마실 나가는 차림으로 호빠에 출근하는 선수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를 찾는 단골들은 그런 모습마저 소탈하다고 좋아했으니, 마담이나 실장들도 복장을 가지고 그를 터치하지 않았다. 그러잖아도 경쟁업체의 에이스 빼가기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터라, 동탁이 가게에 붙어 있는 것만으로 감지덕지하게 여기는 상황이
었다.
"여여, 오늘은 카드 안 치네?"
바지춤에 손을 넣으며 대기실을 어슬렁거리던 그가 친한 동생에게 물었다. 보통 손님이 없거나 초이스가 되지 않는 선수들은 대기길 구석에서 조그맣게 도박판을 벌이거나 폰을 붙잡고 게임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박 실장님이 적당히 하라고 하셔서···."
후배가 뒤통수를 긁으며 머쓱하게 대답했다.
동탁이 피식 웃었다.
"그러니까 작작 좀 치라니까. 내가 말했지? 도박에 맛들인 놈 치고 잘나가는 선수 한 놈도 없다고."
그는 비록 근태가 엉망이긴 했지만, 도박에 빠지는 것만큼은 극도로 경계하는 편이었다. 그보다 앞서 잘나가던 에이스 선배들이 노름에 빠져 패가망신하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이었다.
"너, 할 일 없으면 내 차 좀 다시 주차해 놓고 와라. 내 자리 누가 대고 있어서 길 가에 세워놨더니 영 찝찝하네."
동탁이 후배에게 차키를 던졌다.
쌍엽기 프로펠러를 모사한 엠블럼을 가진 외제차 키홀더였다.
후배가 멀뚱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자 동탁이 웃으면서 말했다.
"심심하면 드라이브라도 하고 오라고."
"아, 아앗! 감사합니다."
후배는 동탁이 모는 벤츠를 몰수 있다는 생각에 들뜬 표정으로 뛰어나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동탁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딴 똥차가 뭐라고. 쯧쯧."
그가 끌고 다니는 차는 예전에 스폰으로 있던 돈 많은 여자가 선물해준 것이었다. 처음엔 당연히 날 듯이 좋아하던 그도 시간이 흐르며 실증이 났는지 이젠 다른 차를 몰고 싶었다.
"쓰읍, 어디 호구같은 스폰이나 하나 더 구해야 되는데. 요샌 마이바흐나 람보르 같은게 땡긴다야."
"형님은 정말 저희 우상이십니다, 형님."
"형님처럼 되는 게 꿈입니다요."
"까고 있네 새끼들. 아부한다고 담배 값이라도 떨어질 줄 아냐?"
동탁은 자신에게 알라방귀를 끼는 동생들을 보며 피식 웃더니 지갑에서 5만원 짜리를 꺼내 손에 쥐어주었다.
"나 저녁 안 먹어서 출출한데 포장마차 가서 오뎅이랑 떡볶이나 사와. 남은 돈 니들 가지던지 말던지."
"가, 감사합니다. 행님!"
"금방 다녀오겠습니다요."
느즈막히 출근한 동탁이 동생들에게 자주 심부름을 시킨다는 것을 알고 접근했던 그들은, 다른 사람이 혹여 채가기라도 할까 돈을 받자 마자 잽싸게 튀어나갔다. 분식값 이래 봐야, 만원도 안 들 터이니 심부름 값치곤 지나치게 많은 금액이었다.
뚱한 표정으로 구석에 앉아있던 민호가 동탁을 향해 한소리 했다.
"탁이 형. 그렇게 쉽게 애들 용돈 쥐어주면 자립 못 한다니까 그래. 버릇 나빠져."
"짜샤, 이 시간까지 헛물켜고 있는 후배들 불쌍하지도 않냐? 너네 박스만 챙기지 말고 두루두루 챙겨 인마."
"···하여간. 또 나만 나쁜 놈 만들지."
민호가 투덜대더니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동탁이 쪼르르 달려가 그의 맞은편에 앉더니, 장난스럽게 라이터에 불을 붙였다.
"여기 불 있습니다요, 형님!"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에이스 중의 에이스지만, 동생에게 형이라고 부르는 것도 거리낌 없는 털털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어쩌면 잘생긴 외모보다 그런 붙임성과 사교성이 그를 오랜 기간 에이스로 롱런하게 만든 원동력일지도 몰랐다.
불을 붙이던 동탁은 현성의 한쪽 볼에 손자국이 나 있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 물었다.
"얼래? 너 얼굴이 왜 그래? 싸웠냐?"
"아니에요. 무슨 애들도 아니고 싸우기는 무슨."
현성이 고개를 돌리며 맞은 자국을 숨기자 동탁이 고개를 요리저리 돌려가며 계속 추궁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여기 한 대 맞았구만? 뭔 일인데?"
"아이,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민호는 손님한테 뺨 맞고 뺀지 맞았다는 얘기를 차마 꺼낼 수 없었다. 동탁이 대단한 사람이라곤 하지만, 어쨌든 그 역시 한 박스의 에이스였다.
에이스가 초이스 됐다 뺀지를 먹는 일은 굉장히 드문 일로서, 업계에선 수치로 여기는 일이었다.
동탁이 뭔가를 예감했는지 갑자기 주먹을 말아쥐더니 가드를 올렸다. 그리고는 쉐도우 복싱을 하는 것처럼 허공에 주먹을 내질렀다.
"쉭쉭- 이것은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여, 아야, 싸게 말해 보랑께? 형이 소싯적에 복싱 좀 배웠잖여. 내가 꿘투 노란띤거 알지? 슉슉! 누구여? 너 때린놈이."
갑자기 개구쟁이처럼 장난을 치는 동탁을 보며 민호가 실소했다. 그는 늘 이런 식이었다. 언제나 상대를 배려하며 긴장을 푸는 법을 알았다. 결국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민호가 말문을 열었다.
"거 좀 되지도 않는 사투리 흉내 고만해요. 그딴 거 할 때마다 진짜 없어 보인다니까."
"좀 어설펐냐? 하하."
"사실 아까 3번 방에서···."
자초지종을 설명한 민호는 여전히 쪽팔림이 가시지 않는지 얼굴이 시뻘게져 담배를 입에 물었다. 맞은 뺨보다는 에이스라는 타이틀을 달고 방에서 쫓겨났다는 상처가 더 쓰라렸다.
"그 신참 새끼 때문에···. 아니지, 사실 신참은 시키는대로 한 거긴 한데, 암튼 거기 아줌마들 완전 진상이에요. 개진상."
"흠···. 니가 기분이 좀 그렇겠네. 아, 그나저나 민호도 끝났구나. 손님한테 손찌검이나 당하고. 크크큭! 형이 네 나이때는 인마, 더블에 트리플에 그 뭐시냐 쿼드라킬도 하고 다녔잖아."
"형 잘난 거 다 알거든요? 가뜩이나 열받는데 그렇게 염장 지를거에요?"
"가만. 우리가 누구냐? 배다른 민족 아니냐? 동생이 쪽 당하고 왔는데 형이 되어서 손빨고 앉아 있을 순 없지."
동탁이 벌떡 일어섰다.
민호가 놀라며 물었다.
"뭐 하려고요?"
"너 뺀지 놨으니 거기 재초이스 할 거 아냐? 내가 가서 복수해 주려고. 그 잘난 신참 얼굴도 구경 좀 할 겸."
"형이 초이스를 나간다고요?"
에이스 중의 에이스.
그런 동탁이 초이스를 나서는 일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는 오빠호빠의 간판 같은 인물이었고, 줄줄이 사탕처럼 앞으로 불려가 손님의 간택을 기다릴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매일 잡혀 있는 지명 손님들만 상대해도 벅차게 되면서부터는 아예 지명조차 나가지 않는 것이 당연한 관례였다.
"왜? 오랜만에 사랑의 작대기 좀 맞아보고 싶구만. 그래도 초이스 안되면 쪽팔리니까 와꾸 후달리는 애들로 섭외 부탁한다. 알았지? 아니 이럴게아니라 실장 행님한테 말하고 와야겠군."
"아니 혀, 형! 탁이 형!"
"부탁한다잉!"
동탁이 대기실을 빠져나가자 민호가 입장이 난처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라 생각하니 괜히 가슴이 뭉클해 졌다. 그는 호빠 선수로서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무척이나 의리있는 사람이었다.
대기실을 나온 동탁은 박실장을 찾아갔다.
"아이고 행님! 인사 오지게 박겠습니다요!"
동탁이 과장되게 폴더로 허리를 숙이자 박실장이 피식 웃었다.
"뭐하냐? 이 뺀질이 같은 자슥. 최사장님이 복장 준수하라고 신신당부 했는데 허구헌 날 츄리닝에 쓰레빠여 이 넘은."
박실장이 나무라듯 말했지만, 엄연히 가게 최고의 에이스인 그에게는 부질 없는 소리였다. 못생긴 선수가 아무리 빼입어도 동네 마실 나가는 차림인 그의 발끝에도 못 미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넵, 유념하겠습니다."
"하여간 대답은. 근데 뭐 할라고 이렇게 징그럽게 달라붙으실까나?"
박 실장은 30대에 훌쩍 넘었기에 다른 선수들은 그의 앞에서 바짝 긴장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박실장이 막 실장을 달았을 때부터 선수 생활을 함께한 동탁은, 그를 형처럼 편하게 대했다.
"오랜만에 필드 한번 뛰어볼라고요."
"필드? 너 요새 골프 배우냐?"
"아니아니. 초이스요."
"무슨 초이스? 오늘은 지명 없어?"
"아, 씨. 짱나게 가게 앞에 딱 차를 대는데, 연락오지 뭐예요? 갑자기 일 생겨서 예약 취소하게 됐다면서. 미안하다고 다음에 구찌 하나 챙겨준데요. 짝퉁이기만 해 봐."
"그랬어? 근데 네가 무슨 초이스야, 격 떨어지게. 인마 우리 가게가 요새 좀 주춤한다고 간판까지 흥정에 붙이겠냐. 됐어 인마. 회사를 향한 애사심만 받을 게. 할 일 없은 나랑 당구나 치러 가던지."
다른 선수들이라면 업무시간에 멋대로 외출을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으나 동탁 정도의 레벨에선 관계없는 이야기였다. 그는 근태도 마음대로였지만, 내키지 않으면 pc방이나 사우나를 가는 것도 자유였다.
"아니 진짜로요. 초이스 시켜달라니까?"
"어? 너 갑자기 왜 그래? 사채 땡겼어?"
"내가 아는 사채는 베르사체 뿐이거던요?"
"근데 왜 갑자기 부킹을 시켜달래? 막말로 네가 면접 볼 레벨이냐. 라인에 서기만 해도 1픽으로 빠질텐데."
"형 민호 뺨다구 맞은 거 못 들었어요?"
"아···. 너 그 방 들어가게?"
박실장은 이제야 동탁의 뜻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가서 복수해 줘야지. 어떤 년이 감히 우리 동생 뺨을 쳐?"
"됐어 인마. 텃어."
"네?"
"방금 재초이스 할거냐고 물어봤는데, 선수 안 받는다더라."
"엥?"
박실장이 설명했다.
"아니 나도 민호 나가고 재초이스 바로 할 줄 알고 의사를 타진했단 말이야. 첨에 날개로 끊은데서 테이블 티로 안하고 인당으로 계산 때렸거든."
"혹시 돈 아까워서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니야. 돈 존나 많은 복부인이야. 선수 필요 없다고 바로 20만원짜리 양주 넣어달라던데?"
"엥?"
동탁도 잘 이해가 안가는 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듣기론 3명이 놀러와서 첨엔 날개로 붙여 달라고 했던 걸 보면 씀씀이가 해픈 부류가 분명했다.
그런데 나중에는 짝수 맞춰 3명만 넣더니, 이제는 한 명을 뺀지 시키고 여초가 되고 말았다는 소리. 남자가 여자보다 적은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결론은 하나였다.
"혹시 그 방에 누구 들어갔다고 그랬죠?"
"현성이. 알지? 5조 임시 팀장."
"알죠. 근성좋은 현성이. 그 자식은 여자가 돈준다면 똥이라도 퍼먹을 걸요?"
"새끼야 말은."
"아니 그만큼 프로 정신이 있다는 소리죠. 근데 현성이가 두명을 커버할 사이즈는 아닌데?"
동탁은 친절하긴 했지만 겸손한 편은 아니었다.
특히 이쪽 업계에는 구를만큼 구른 베타랑이기 때문에 선수 와꾸나 사이즈에 대한 평가는 누구보다 정확한 편이었다.
현성이 분명 괜찮은 선수긴 하지만, 아직까지 메인이 못되고 쩜오로 남은 것은 그 한계 또한 명확했기 때문이었다. 단골을 잘 구워 삶아 지명으로 크면 모를까, 날고기는 선수들을 재치고 에이스에 오르기엔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러게? 아니면 그 신참 때문인가?"
"신참요? 정운가 뭐시긴가?"
"어. 현성이 말고 새로온 신참이 들어갔거든."
"걔 좀 사이즈 나와요? 어떻게 처녀 출전에 초이스 됐데요?"
"아, 너 모르는구나. 와꾸 완전 씹창이야 걔. 몸은 좋은데 비대칭이 너무 심해서. 아 맞다. 저번에 정마담이 안면마비 선수가 하나 면접봤다고 했는데 걔가 걘가?"
"정마담요?"
"어. 정마담이 발탁했어. 드러눕기 전에. 암튼 와꾸는 와···. 나는 진짜 존경스럽더라야. 그 얼굴로 호빠 선수를 하겠다고 달려드는 용기가."
"흐음."
동탁이 팔짱을 끼운 채 생각에 잠겼다.
‘희한하네. 진짜 뭔가 특별한 게 있는 놈인가? 초짜가 혼자 2 vs 1을 상대한다고?’
"너무 신경 쓰지 마. 초심자의 행운 같은 거지. 원래 첫 끝빨이 개끝발이란 말도 있잖냐. 그냥 오늘 평생의 운을 다 끌어쓰는 걸거야."
"아니 뭐, 신경쓰는 건 아니고요."
동탁이 피식 웃었다.
무척이나 여유로운 웃음이었다.
그는 호빠선수로서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이었고, 최소한 이 바닥에서 자신이 꿀릴 사람은 결코 없을 거라고 보았다.
실제로 청담쪽에 유명한 정빠에서 몇 번이고 섭외 요청이 올만큼 그의 명성은 알아주는 편이었다.
다만 그는 돈보다는 의리를 택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함께한 이곳을 떠나지 않는 것 뿐이었다. 그때 동탁의 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메시지를 확인한 동탁이 박실장에게 말했다.
"단골 온다네요. 형, 룸 하나만 잡아줘요."
동탁은 손님 맞을 준비로 도훈에 대한 생각을 이내 지워버렸다. 아직 자신에게 있어 도훈은 한참 더 커야할 피라미일 뿐이었다.
‘초심자의 행운이겠지, 뭐.’
< 756.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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