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775화 (743/2,000)

< 757.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7- >

***

웨이터가 추가 주문된 양주를 들고 왔다.

양주를 놓고 나갈 줄 알았던 웨이터는 한참 테이블 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뚜껑을 딴 녹차 캔과 홍차 음료들을 치우는 한편, 녹아서 물위에 둥둥 뜬 얼음통을 치우고 새것으로 교체했다. 맥주잔과 양주잔을 일일이 줄을 세워 정리하는 모습에선 뭔가를 기대하

는 눈빛이 담겨 있었다.

웨이터가 미적대는 모습을 본 김여사가 결국 가방에서 장지갑 하나를 꺼내 들었다.

"나가서 담배 사다줄래?"

김여사의 지갑에는 5만원이 빽빽이 들어 있었다. 5만원권 한 장을 받아든 웨이터가 과도하게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담배 한 갑을 사고 남은 돈이 팁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어떤 걸로 사다드릴까요?"

"언니, 나 담배 한 갑 더 있어. 그냥 내것 펴."

"그래?"

옆에서 정화가 담배 갑을 내밀자 웨이터가 난처한 표정으로 지폐를 들고 서 있었다. 심부름이 날아갔으니 돈을 다시 돌려줘야 하는지 망설였던 것이다.

우물쭈물하는 웨이터를 향해 김여사가 웃었다.

"왜 그래?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그럼 이건···."

"됐어. 그냥 너 해."

"가, 감사합니다!"

웨이터는 연신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돈의 위력 앞에 굴복하는 남자들을 볼 때마다 김여사의 입꼬리가 주체할 수 없이 올라갔다.

평소엔 자신을 거들떠도 보지 않던 남자들.

뚱뚱하고, 못생기고, 심지어 나이까지 많은 아줌마인 그녀를 좋아하는 남자는 거의 없었다. 남편마저 어린 여자와 바람이 나 서로 남보듯하는 상황에서 김여사 역시 돈으로 남자의 마음을 사려는 생각을 했다.

어떤 남자도 김여사의 비대한 몸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돈은 좋아했다.

어떤 남자도 김여사가 괄괄한 목소리와 못생긴 얼굴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돈은 좋아했다.

돈은 위대했다.

돈을 주면 제아무리 잘생기고 어린 남자라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마음껏 가지고 놀다가 버릴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컴플렉스와 남자에게 받은 굴욕과 상처가 씻기는 기분이 들었다.

김여사에게 남자란, 돈이면 뭐든 시킬 수 있는 노예일 뿐이었다.

김여사는 지갑을 열어 보였을 때 파트너인 현성의 눈빛을 봤다. 두툼한 현금다발에 시선이 꽂힌 현성의 간절함을 읽었다. 그녀는 갑자기 짓궂은 장난이 치고 싶어졌다. 일부러 지갑을 테이블 위에 계속 둔 채 도훈과 현성을 향해 말했다.

"너네들도 용돈 좀 줄까?"

"용돈을요?"

현성이 별 관심없다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되물었다.

하지만 김여사의 예리한 눈빛은 현성의 목울대가 꿀렁 넘어가는 것을 읽고 있었다.

‘너도 별수 없는 노예 새끼일 뿐이야. 아닌 척, 초연한 척 연기해 봐야 이미 눈이 돌아간 걸 내가 모를 줄 알고?’

김여사는 그게 웃겼다.

본심이 뻔히 읽히는 데 일부러 아닌 척 하는 태도가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돈 때문에 몸을 파는 남창주제에 자존심까지 챙기려 드는 모습을 뭉개고 싶었다. 저 잘생기고 귀여운 남자애가 돈 몇 푼에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만 싶었다.

"응. 내가 지갑이 무거워서 말이지. 너희 둘에게 좀 비워 주려고."

김여사가 돈뭉치가 든 장지갑으로 테이블을 땅땅 내리쳤다.

묵직한 울림에 도훈도 김여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뭐야 저 씹돼지는 또.’

도훈은 김여사 쪽은 되도록 쳐다도 안보는 중이었다.

그녀가 물주이기는 하나, 어차피 스킬을 사용한 이상 미션 대상에서는 제외한 상황. 굳이 그녀의 환심을 사야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2차를 나가기 전까지만 판을 엎지 않고 잠자코 있어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물주인 김여사는 자기 위주로 돌아가야 직성이 풀이는 모양이었다. 이제껏 도훈과 미숙, 그리고 정화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판이 영 못마땅했다.

"그래, 용돈. 필요하지 않아?"

현성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주시면야 좋죠. 하하."

현성이 미끼를 물자 김여사가 지갑을 다시 활짝 열어 보였다. 5만원 짜리가 어찌나 많이 들었는지, 김여사의 뚱뚱한 배때지처럼 길다란 지갑이 터질 것 같은 지경이었다.

"어디 보자, 우리 귀여운 현성이한테 얼마를 줘야할까?"

그때 미숙이 말했다.

"언니, 파트너만 말고 우리 정우도 좀 챙겨줘."

"그럴까?"

도훈 옆에 찰싹 달라붙은 미숙이 도훈의 귓가에 대고 귓속말을 했다.

"얘, 잘 보여. 저 언니 돈 디따 많거든."

"아, 네."

김여사가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더니 옛날에 장사하던 시절처럼 손에 침을 발라 빠르게 돈을 세어넘겼다.

"···48,49. 웨이터 팁주고 딱 50장이네?"

김여사가 지폐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5만원권이 50장? 250만원이라고? 아니 무슨 현금을 200 넘게 지갑에 넣고 다녀? 미친년인가?’

도훈은 돈에 크게 미련도 없고 관심도 없었다. 두툼하게 쌓인 지폐에 시선을 둔 것은 지갑에서 나왔다기엔 너무나 많은 현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여사는 도훈의 그런 시선마저 오해했다.

‘그럼 그렇지. 너도 노예새끼로구나. 못 생긴게 돈 까지 밝히는 게 최악이네.’

김여사는 도훈이 못생겼다고 처음부터 탐탁하지 않게 여겼다. 그녀에게 몸 좋은 남자란 쉽게 길들일 수 없는 종마같은 느낌이었고, 그녀는 마초적인 남성에게 성적 매력을 크게 느끼는 타입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남자를 가지고 노는 것만큼은 더 짜릿했다.

상남자인척 하던 사내들이 돈 앞에서 자존심이고 뭐가 다 팽개치고 바닥을 설설 기게 할 때면, 자기도 모르게 오르가즘을 느낄 것 같았다.

다들 흥미로운 표정으로 김여사에게 집중한 가운데 김여사가 좌중을 돌아보며 말했다.

"근데 이거 그냥 주면 별로 재미없지 않아?"

"네?"

"언니?"

"혹시 미션같은 거 걸려고요?"

파트너를 잃은 정화가 김여사의 의도를 눈치채고 지원사격했다. 사실 이들은 처음부터 질펀(?)하게 노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파트너가 있건 없건 조만간 게임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그 와중에 김여사가 현금을 꺼내 슬슬 준비하자 미숙이 마음에 들어하는 도훈을 골탕먹이기위해 김여사에게 최대한 호응하는 것이었다.

"할 거면 화끈한 걸로 해봐요. 나 파트너도 없이 심심하니까."

"그럴까?"

현성은 둘이 갑자기 죽을 맞추자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미션이라뇨?"

"응. 용돈 그냥 주면 재미없잖아. 게임으로 돈 따먹는 게 최고지."

"아."

현성은 곧바로 뭔가를 예감했다.

‘이것들 완전 개진상이구나!’

호빠 선수들은 매너 없는 손님들을 흔히 진상이라고 표현한다. 여러 유형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3부류가 있다.

첫째 술진상.

술을 많이 팔아주는 건 좋은데, 계속 술만 먹이는 경우다.

잔이 마르지 않도록 양주를 가득 따라주고, 못 마시면 뺀지를 놓겠다는 식으로 협박을 한다. 본인도 감당 못 할 술을 선수에게 들이 부어서 꽐라가 되는 모습을 즐기는 경우다.

둘째 몸진상.

남자만 여자를 주무르는 게 아니다.

호빠에 오면 남녀의 위치가 역전되며 오히려 여자가 남자를 떡 주르듯 한다. 적당한 터치도 아니고, 아예 지퍼 속으로 손을 넣어 딸딸이 까지 치는 경우도 있다. 공짜로 대딸을 해주니 좋은 게 아니냐고? 그것도 여자 나름이다.

마지막이 바로 개진상이다.

진상 중의 진상으로 불리는 이들은 대체로 유흥업소에 다니는 여자들이 많다. 호빠 손님 중 70% 가까이는 바로 유흥업소의 여성들이다. 룸, 노래방, 보도, 안마, 창녀에 이르기까지 각종 유흥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자신이 당한 그대로 호빠선수들에게 돌려주며 화풀이를 한다. 각종 굴욕적인 게임들은 대부분이 이들이 영업장에서 당했던 방식 그대로다.

현성이 볼 때 이들은 개진상이었다.

가끔 일반 가정주부 중에서도 업소녀 못지 않게 더럽게 노는 부류가 있는데, 하필 그런 손님들에게 딱 걸린 모양이었다.

"무슨 게임으로 해볼까나. 그래, 정화야 판 쫌 깔아봐라."

"어떻게 할까요?"

정화가 쪼르르 일어나더니 충직한 개처럼 김여사의 명령을 따랐다.

"테이블 한 쪽 치워봐."

"알았어요."

정화는 웨이터가 기껏 정리해 놓고 간 테이블 위를 말끔히 비우기 시작했다. 본래 10명이 둘러앉아도 넉넉한 테이블을 5명이 쓰고 있었기에 안주와 빈잔을 구석으로 옮기자 테이블 위가 말끔하게 치워졌다.

사람이 드러누워도 될만큼 널찍한 공간이 생겨나자 김여사가 5만원 권 지폐를 한 움큼 움켜쥐더니 테이블 넓게 펼쳤다. 마치 고스톱이 끝나고 패 섞기를 하는 것처럼 사방으로 흩뿌린 것이었다.

도훈은 쌩판 처음보는 모습에 궁금증을 가지고 쳐다보았다.

‘뭐지? 저것들 지금 뭐하는 수작들이야?’

[그러게요? 돈을 왜 테이블 위에···.]

도훈이 고개를 갸웃하는데 김여사가 설명했다.

"여기 있는 돈 너네가 다 가져도 좋아."

김여사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가 있었다.

"단. 맨몸에 붙인 것만큼 가져갈 수 있어."

"와우, 재밌겠는데? 맨몸이란 말이지?"

정화가 얄미운 시누이처런 김여사를 거들었다.

도훈은 이게 대체 무슨 게임이냐는 눈으로 현성을 쳐다보았다. 현성은 낭패감 어린 표정을 지으면서도 테이블 위에 흩뿌려진 돈에 눈을 떼지 못했다.

이른바 알몸 구르기.

몸에 땀을 내서 홀딱 벗은 상태로 테이블을 뒹굴어야 최대한 많은 돈을 확보할 수 있는 게임이었다. 손님들 앞에서 나체가 되는 수치심과, 개처럼 바닥을 뒹구는 모습이 굴욕 그 자체인 게임이었다.

여기서 한 술 더떠 김여사가 말했다.

"빤쓰까지 다 벗으면 몸에 붙은 것 더블로 쳐줄게."

"더블요? 여사님 오늘 기분 좋으신가 보네. 뭐하니? 용돈 안 받을 거니?"

파트너까지 내보낸 정화는 이렇게 된 거 눈요기나 하자는 마음 뿐이었다. 자기가 메이드가 안되니까 깽판을 치자는 마인드가 참으로 옹졸하기 짝이 없었다.

어처구니없는 게임 설명에 도훈이 주춤하는데 현성이 베테랑답게 먼저 나섰다.

"진짜 다 벗으면 ···더블이죠?"

김여사가 대답했다.

"응, 나는 돈 가지고 장난 안 쳐. 왜? 해보게?"

돈에 눈이 돌아간 현성이 침을 꿀꺽 삼켰다.

현재 TC는 시간당 3만원. 몇 시간 아양을 떨며 술시중을 든다고 한들 10장 벌기도 힘들다. 그런데 다 벗고 뒹굴기만 하면 몇 배, 몇 십 배도 벌 수 있는데 그걸 마다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그래. 신입 앞에서 쪽팔리지만, 어쨌든 이짓도 다 돈 벌려고 하는 거잖아. 정우도 이해해 줄 거야.’

"누님이 용돈 주신다는데, 마다하면 예의가 아니죠."

현성이 입고 있던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다. 도훈은 그 모습에 기가 막혀 할말을 잃고 말았다.

‘와, 저걸 하란다고 또 하냐?’

[주인님은 어쩌실 겁니까?]

‘내가 왜 해? 미쳤어? 내가 돈이 없냐? 가오가 없냐? 대가리 총맞았어? 저딴 걸 하게.’

도훈은 불편은 표정으로 현성이 탈의하는 모습을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물론 티는 내지 않았지만.

‘현성이도 참···.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나름 사정이 있지 않겠습니까? 주인님이야 미션 때문에 하는 거라도 그들에겐 이게 직업인 걸요.]

‘진짜 미션 끝나면 이딴 일은 쳐다도 안 봐야 겠어.’

결국 팬티만 남기게 된 현성이 두 손으로 팬티를 가리며 재차 물었다.

"다 벗으면 두배로 주신다는 거 정말이죠?"

"그렇다니까? 얼른 벗어봐. 다들 궁금해 하잖아."

김여사가 마른 현성의 몸매에 입맛을 다셨다. 피부결이 하얗고 살집이 전혀 없는 현성의 몸은 딱 자신의 취향이었다.

‘거기도 쬐끔했으면 더 귀여울 것 같은데.’

김여사는 대물 취향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덜 익은(?) 미성년같은 사이즈가 그녀의 취향이었다. 지배적인 욕구 때문에 남성성이 거세된 남자를 더 선호하는 그녀의 이상성욕이 반영된 결과였다.

"혀, 형."

도훈이 만류했지만 현성이 결국 마지막 자존심을 내려놓았다. 그는 완전히 탈의한 상태로 테이블 위에 드러눕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깔깔 거리며 그를 놀려댔다.

"뒤집어 뒤집어!"

"돈 떨어진다, 더 굴러."

"꺄하하하!"

도훈은 여자들의 모습에 역겨움이 밀려왔지만, 미션만을 생각하며 꾹 참았다. 다들 현성이 뒹구는 모습을 구경하는데 반대편에 있던 정화가 도훈쪽으로 다가왔다.

"야, 너도 준비해."

"저요?"

"너도 용돈 벌어야지."

도훈은 그럴 생각이 없다고 말하려고 했으나 이어지는 정화의 말에 귀가 번쩍 트였다.

"쟤보다 더 많이 벌면, 내가 오늘 너랑 2차 나가줄게."

"2차요?"

도훈의 파트너인 미숙은 현성이 나체로 뒹구는 모습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으므로 둘이 무슨 얘기를 주고 받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정화가 계속 말했다.

"왜? 나는 별로 안 땡기니? 누나 맛있을 걸?"

정화의 도발에 도훈이 갈등했다. 파트너를 내보낸 후 그녀는 노골적으로 도훈에게 시선을 던져왔다. 도훈은 그것이 아마도 자신에게 매력을 느껴서라기보다, 미숙에게 앙심을 품고 자신을 빼앗으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의 제안 역시 그것의 연장선에 있었다.

‘이런 젠장, 이걸 어쩌지?’

이미 미숙은 도훈의 머리를 올려주기로 약속을 한 상태였다. 거기에 정화까지 똑같은 제안을 해오자 도훈이 선택 장애에 빠졌다.

‘잘하면 첫코에 일타이피 각인건가?’

[어쩌시려고요?]

도훈은 현성이 굴욕을 당하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무시하려고 했는데, 정화의 제안이 솔깃하게 느껴졌다.

‘한방에 두명을 노릴까, 자존심을 지키는 게 나을까?’

도훈이 고심에 빠졌다.

< 757.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7-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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