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362화 (342/2,000)

< 344. 애자매-44- >

도훈은 자신의 추리가 도저히 말도 안 된다며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마 아무리 막장이라도 그 정돈 아니겠지. 로시, 혹시 시스템에 오류가 난 것은 아닐까?’

[오류라뇨?]

‘업적 시스템이 꼬여서 버그가 났다던가 하는 거 있잖아.’

[절대 그럴 리 없습니다.]

‘왜?’

[주인님이 이해하기 쉽도록 ‘시스템’이라는 말을 차용해 썼지만, 정확히 말하면 이 세상을 설계한 사람은 신입니다. 신께선 결코 실수하지 않으시지요.]

로시의 단호함에 도훈은 말문이 막혔다.

‘아무리 그래도 이해가 잘 안 되는데? 자매 덮밥의 위업 조건이 정확히 어떻게 된다 했지?’

[자매 덮밥은 ‘혈연’으로 연결된 자매 사이에서만 발동됩니다. 주인님이 오해하시는 부분은 ‘금단의 열매’로 인한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이야?’

[금단의 열매 위업의 필수요소는 ‘근친’입니다. 근친이란 오누이 사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주인님과 혈연으로 묶어진 관계, 즉 주인님의 유전자를 25%이상 공유하는 대상까지 모두 바운더리 안에 들어갑니다. 따라서 가까이는 부모자식부터 멀리는 사촌

이나 외사촌, 또 그럴 경우의 거의 없겠지만 조부모, 외조부모, 조손, 외조손 까지 어우르는 포괄의 개념입니다. 이도훈의 여동생인 이혜은 양이 조건 부합되지 않았던 이유는 혈연적으로 전혀 관계가 없는 상대였기 때문이고요.]

‘음, 그럼 로시 네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도훈은 다시 최초의 의심으로 되돌아갔다.

시스템 상 오류는 아니다.

신은 절대 실수하는 법이 없으니까.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단 하나.

외견 상 흡사해 보이는 수애와 미애가 실제론 자매 사이가 아니라는 것. 도훈의 팔에 잔뜩 닭살이 돋아났다.

‘···씨발, 설마 이거 완전 개족보 아니야?’

도훈이 자신의 추리에 확신을 갖는 순간, 띠링-! 하는 알림음이 울렸다.

[주, 주인님!]

‘왜?’

[방금 전 새로운 이벤트가 발생했습니다!]

‘이벤트? 갑자기 왜?’

도훈이 이제껏 수행한 이벤트는 송미나와 조이기 한 판을 벌였던 ‘도전과 응전’ 그리고 육정음의 헌신으로 이루어진 ‘한계 돌파’였다.

두 경우 모두 섹스와 관련이 있던 이벤트였으므로 도훈은 뜬금없이 이벤트가 발생한 연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디스플레이 설명을 참조하는 게 빠를 것 같습니다.]

★EVENT★

-타락의 정화-

"당신은 천륜을 저버린 자와 마주쳤습니다. 신을 대리해 그녀를 정화 하십시오."

[아아, 이런 이벤트가 실제로 발동할 줄이야···.]

‘뭐야? 설명을 봐도 모르겠는데? 갑자기 왜 이벤트가 발생한 건데?’

[타락의 정화 이벤트는 천륜, 말 그대로 인간의 도리를 벗어난 자들을 응징하는 이벤트입니다. 아마도 주인님께서 애자매의 출생과 관련해 천륜을 저버린 자를 찾아내신 것 같습니다. 그 때문에 조건이 충족되면서 이벤트가 발생 했고요.]

‘가만, 설마 내 비약이 사실이란 소리야? 그러니까 수애나 미애 중 한 사람이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낳은 자식이라는?’

[네, 아마도.]

‘······.’

드러나는 충격적인 진실.

도훈은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며느리과 시아버지와 관계해 애를 낳다니.

게다가 남편 몰래 그 자녀를 이십년 동안 한 집에서 키워 오다니···.

천하의 난봉꾼을 자처하는 도훈이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해외토픽에나 나올 것 같은 막장 of 막장 극이 내로라하는 재벌가에서 벌어진 것이었다.

‘이거 실화냐? 진짜 해도 너무 한데 이것들···. 가족끼리 붙어먹으면 금수랑 다를 게 뭐야?’

도훈 역시 근친 비슷한 것을 행하긴 했지만, 혜은은 적어도 피가 섞인 친동생은 아니었다. 또 자신은 영혼마저 뒤바뀐 상태기 때문에 실제론 전혀 모르는 남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최 회장과 정선희는 진짜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다.

매일 같이 얼굴을 마주치는 식구. 그 식구끼리 그런 일을 벌인 것이다. 자식이자 남편인 최민식을 속인 채.

도훈은 분노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무리 남 일이라지만 역겨워 눈뜨고 볼 수가 없군. 로시, 정화라는 건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정화의 개념은 플레이어마다 다릅니다. 가령 성직자와 같은 클래스의 경우 상대를 회개를 시키기도 하고, 전사나 암살자에게 정화란 죽음으로써 응징하게 됩니다.]

‘주, 죽음이라니?’

[물론 현 시스템에선 허용되지 않는 방법입니다. 다행히 주인님 클래스도 전사 계열과는 거리가 멀고요.]

‘그럼 나의 경우엔···.’

도훈은 자신의 클래스가 무엇인지 떠올렸다.

대물.

지구상에선 카사노바 이후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희귀 클래스.

[생각하신 대롭니다. 아랫도리를 잘못 놀린 죗값을 물어, 대물로 정화를 시켜야 하지요.]

도훈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 대물을 꽂아 주는 건 선희가 바라는 일이잖아? 어떻게 이게 정화가 될 수 있지? 이건 응징이라고 할 수 없는데?’

[아직 설명을 다 안 읽으셨군요. 계속 스크롤을 올려 보십시오]

도훈이 스크롤을 올리자 이어진 내용이 나타났다.

정화 방법

-당신의 능력에 신비한 힘이 깃듭니다. 타락을 잉태한 죄악의 상징에 구원을 행하십시오.

‘이건 또 뭔 소리야? 신비한 힘? 구원이라고?’

[좀 더 알기 쉽게 바꿔드리겠습니다.]

디스플레이 글귀가 점멸하더니 잠시 후 새로운 텍스트로 치환되었다.

-당신의 ‘좆’에 신비한 힘이 깃듭니다. 타락을 잉태한 죄악의 구멍에 ‘삽입’을 행하십시오.

[본 이벤트 설명이 범용으로 되어 있어 편의대로 수정해 보았습니다. 이제 이해가 가시나요?]

‘이건 무슨 좆같은 소리야? 한마디로 선희를 따먹으면 된다는 거야? 그게 정화라고?’

[그렇습니다. 정화를 행하면 상대는 구원을 받게 됩니다. 구원의 구체적인 방법은 신께서 정하실 겁니다. 또한 본 능력은 1회성으로 국한되므로, 이벤트가 끝나는 즉시 소멸됩니다.]

‘하-. 무슨 이딴···. 이걸 진짜로 해야 돼?’

[본 이벤트는 쉽게 찾아오는 기회가 아닙니다. 특전 또한 엄청 나고요.]

‘특전은 뭔데? 일단 들어나 보자.’

특전(아이템)

「인연의 붉은 실 가위」

-인연의 붉은 실을 자를 수 있는 가위.

-붉은 실이 잘린 대상과는 호감도60으로 초기화 됩니다.

-잘린 대상은 주인공과의 기억이 소실되는 것은 아니나, 자연스럽게 감정이 정리됩니다.

-쿨 타임 : 일주일

‘가위?’

[넵. 모양은 평범한 가위지만 실로 엄청난 능력을 자랑하는 최상급 티어의 아이템입니다.]

‘오호.’

[아키식레코드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서, 주인님의 복잡한 여자관계를 편의대로 초기화할 수 있게 됩니다.]

‘가만, 그러니까 나한테 감정을 가진 여자들을 입맛대로 쳐낼 수 있다는 소리야?’

[네. 따라서 난봉꾼인 주인님에겐 꼭 필요한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아무리 문어다리 어플의 도움을 받는다 한들, 현실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여자의 숫자는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대학이라는 좁은 커뮤니티 안에서 주인님의 행동반경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죠. 하지만 본 아이템만 있다면 인연을 얼마든지 재조정할 수 있습니다. 솔깃하지 않으십니까?]

당연히 솔깃했다.

그러잖아도 지난 번 MT에서 학과 내의 관계했던 여자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도훈은 상당히 답답한 상황을 직면했다.

좋게 말해 파트너지, 달리 말하면 한명 한명이 질투에 불타는 감시자나 마찬가지. 업적 달성을 위해 인연을 늘려갈수록, 호이혀 그의 행동반경은 축소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고리였다.

이미 오를 데로 오른 호감도 때문에 여자들은 점차 도훈에게 집착했고, 개 중에서 정도가 심한 여자들의 경우 그를 독차지 하려고 호시탐탐 욕심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아이템만 있으면 최소 일주일에 한 명씩은 호감도를 초기화 할 수 있었다. 지금껏 관계한 여자들을 모두 정리하는 데도 한 학기면 충분할 것이다.

‘이거 엄청난 특전인데?’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어쩌면 신께서 주인님을 위해 가장 필요한 선물을 내리신 게 아닌가 싶군요.]

갑작스레 발동한 이벤트로 도훈은 고민에 잠겼다.

사실 자매 덮밥만 완료하고 나면 모든 걸 정리하고 튈 생각이었다.

그러나 뜬금없이 새로운 임무가 부여되었다.

차후 꼭 필요한 아이템을 특전으로 제공하는 이벤트.

이는 그가 가진 불륜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겨누고 있었다.

아이템을 얻기 위해선 스스로에게 걸었던 제약을 해제해야 한다. 그것이 해제되는 순간 도훈은 자신이 저주하던 사람과 똑같은 길을 가게 될 것이다.

그는 한참을 고심하고, 갈등했다.

실제론 짧은 시간이었더라도 그에겐 억겁과 같았다.

마침내 결심을 마친 그가 분연히 일어섰다.

‘···해보자, 까짓 거. 다른 것도 아니고 타락한 영혼을 구제하는 일인데 언제까지 비겁하게 전생을 핑계 삼아 도망칠 순 없지. 이 더러운 집안의 피를 내가 정화시켜 주지. 신의 뜻대로.’

[아아, 주인님 드디어 각성을!]

‘변명하지 않겠어. 내로남불이라고 욕해도 좋아. 하지만 적어도 나는 남에게 상처 주는 일은 절대 안 해. 그것만은 꼭 지켜.’

[불륜이라니요? 주인님이 하면 무조건 로맨습니다! 그렇고 말구요!]

로시가 유난히 기뻐했다.

"···샘? 괜찮아요?"

결단을 마친 도훈이 알몸으로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에 미애가 물었다. 바닥에 시체처럼 널 부러져 있던 그녀들도 슬슬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어, 잠깐 현자타임이 와서. 나 먼저 씻고 올게."

도훈은 알몸으로 밖에 나갔다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도로 뛰어 들어왔다.

"아, 맞다. 여기 너희 집이지?"

***

정선희는 한 시간 뒤 집으로 희애와 함께 돌아왔다.

그녀가 보여준 재벌가 며느리의 위상은 정말이지 놀라운 것이었다. 오죽하면 평소 관계가 소원한 희애 마저 그녀를 다시 볼 정도.

"···또 지껄여봐. 우리 딸보고 뭐라고?"

딱 한마디였다.

난동을 부리던 중년 사내는 아무 말도 못하고 얼어붙었다. 냉기가 풀풀 풍기는 그녀의 눈빛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내뿜고 있었다.

경찰서 입구에서부터 선희를 배웅한 서장은 노발대발 날뛰며 교통계를 뒤집어 놓았고, 법무법인 직원들을 통째로 대동해 온 김 변호사는 지엄한 목소리로 상대의 잘못을 따졌다.

군부대에서 사단장이 떴을 때나 볼 수 있는 화려한 등장에 상대는 찍소리도 못하고 기가 죽었다.

평소 다져놓은 정·재계 인맥과, 대규모 변호인단 등으로 상대를 압박한 선희는 중년 사내에게서 끝내 사과를 받아냈다.

"와, 오늘 엄마 엄청 멋있더라. 마지막에 그건 준비한 거였어요?"

"응?"

"그 자식한테 수표 뿌린 거요."

사과를 받아낸 선희는 차 고치는 데나 쓰라며 수표를 집어 던졌다. 수표에 적힌 어마어마한 금액에 놀란 중년 사내는 자존심도 버리고 바닥을 기며 돈을 주워 담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희애는 통쾌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돈을 줍기 위해 자연스럽게 자신

에게 무릎 꿇은 포즈가 되었기 때문이다.

"희애야."

"네."

"정말 다친 덴 없는 거지?"

"네, 큰 사고는 아니었어요. 괜히 시비가 붙어가지고···. 아무튼 이런 일로 불러내서 죄송해요."

"아니야. 그래도 몸 안 다쳤으니 다행이구나."

두 모녀는 오랜만에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집으로 돌아왔다. 갑작스레 사고에 휘말린 덕분인지 희애는 도훈 생각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한바탕 하고 났더니 배고프네요. 아줌마들한테 맛있는 것 좀 해 달래야겠어요."

"오늘은 아줌마들 일찍 퇴근시켰어."

"네?"

"아버님께서 모임 있다고 했거든. 네 아버지도 회식으로 늦게 온데서. 오랜만에 가족들하고 식사하라고 먼저 보냈어."

"아···. 그럼 우리 저녁은요?"

"오랜만에 엄마가 실력발휘 해줄까?"

"정말요? 나 그럼 스테이크 해줘요. 오랜만에 고기 먹고 싶어."

"미애 집에 있으니 미리 고기 좀 재어놓으라 하렴."

"네."

선희는 운전 중이었으므로 희애가 핸드폰을 꺼냈다. 전화를 걸려던 그녀는 둘째 수애가 떠올라 단톡방에 문자를 남겼다.

-희애 : 막내야. 엄마가 고기 먹자니까 냉장실에서 고기 좀 꺼내 재워놔. 그리고 수애 너 언제 올 거야?

-수애 : 나 지금 집인데?

-미애 : 언니, 오늘 저녁은 스테이크야?

‘수애가 집이라고? 맞다. 오늘 일찍 들어간댔지? 막내 속옷 사다준다고···.’

희애는 그제야 자신이 뭐하다 사고가 났는지 떠올렸다.

이도훈, 바로 막내의 과외 선생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희애 : 미애야, 과외 다 끝난 거야?

-미애 : 응. 언니. 도훈 오빠도 옆에 있는데 같이 밥 먹으면 안 돼?

‘도훈이 아직도 있다고?’

뜻밖의 소식에 희애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자신이 과외 시간을 착각했는지, 아니면 어쩌다보니 시간이 길어졌는지 모르지만 도훈은 여전히 집에 있는 상태였다.

‘도훈이가 혹시 날 기다리고 있는 건가? 귀여운 녀석 같으니···. 어제 좋았나 보구나. 많이 예뻐해 줘야겠는데?’

"엄마. 미애가 수학 선생님도 있다고 같이 밥 먹자는데?"

"···도훈군?"

"응. 그리고 수애도 집에 와있데. 오늘은 스터디 안하고 일찍 왔나 보더라고."

"수애도?"

"어, 아까 미애가 뭐 좀 사달라고 징징댔거든. 엄마 집에 있을 때는 안 왔었나?"

운전대를 잡고 있던 선희는 딸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오는 길에 수애랑 엇갈렸나 보구나. 2층에 수애가 같이 있었으면 도훈이 그 놈도 딴 짓 못 했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확인해 볼까?’

"셋이 같이 있나 보구나. 별일 없대 지?"

"별 일은 무슨. 배고프다고 얼른 오래. 얘 또 징징거린다."

‘휴-. 괜한 걱정이었네. 수애가 때마침 도착해서 다행이야. 도훈이도 아직 있다니 오늘 밤 민서랑 합방 계획도 차질 없을 거고.’

"···그래, 그러자꾸나."

차를 타고 가는 모녀의 머릿속엔 다른 생각이 오고갔다.

그러나 그 대상은 공교롭게도 똑같은 사람이었다.

< 344. 애자매-44-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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