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25화 (5/2,000)

────────────────────────────────────

교대생그녀08

나는 작정하고 그녀의 두 손을 포개 쥐었다. 손등 전체를 뒤덮은 내 손의 온기에, 하린이 부끄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안 그러셔도 괜찮은데..."

"손이 왜 이렇게 차? 원래 좀 찬 편인가?"

"네. 원래 제가 손발이 좀 차요."

"가슴이 뜨거워서 그런가 보다."

"뭐, 뭐라구요?"

하린이 커다란 강아지같은 눈을 치켜떴다.

가슴이란 단어를 직접 언급하자 살짝 당황한 눈치다.

나는 시치미를 뚝 때며 대답했다.

"아니, 가슴이 따뜻한 사람일수록 손발이 차단 소리야."

"아...네."

한참 손을 맞잡고 만지작거리자, 자연스레 그녀의 얼굴에 발그레 홍조가 띄워진다. 젊은 남녀가 손만 잡아도 스파크가 튄다는 소리가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스킨쉽은 남녀사이를 급속도로 진전시키는 마법과 같다.

처음엔 손잡고 시작하지만, 어느 샌가 입술을, 은근슬쩍 가슴을, 종래엔 중원까지 내주고 마는 것이 터치의 마법이다.

하지만 무리하게 진도를 뺄 생각은 없다.

시간은 많고, 술도 충분하다.

나는 적당한 순간 손을 때고 빈 잔을 마저 채웠다.

우리는 가볍게 잔을 치며 낮술을 시작했다.

"하린이 대학입학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건 오빠가 사는 기념주야."

"고맙습니다. 오빠."

하린은 어디서 본 건 있는지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리더니 맥주를 한 모금을 들이켰다.

"크-. 생각보다 많이 쓰네요?"

"처음엔 다 그래. 맥주 맛을 알만한 나이가 되면 진짜 어른이 되는 거지."

"그런가요?"

"넌 아직 주량을 모르니 천천히 마시도록 해."

"네."

하린은 쓰다고 투정하면서도 야금야금 술잔을 비워갔다.

분위기가 서서히 달아오른다.

‘로시, 어제 그거 아직 사용횟수 남아 있지?’

[내 귀에 도청장치 아이템이라면 현재 2회분이 남아있습니다.]

‘두 번 다 쓰면 어떻게 되는데?’

[그때는 평범한 이어폰으로 사용이 가능합니다. 사전 테스터에 따르면 음질이 썩 괜찮다는 평입니다.]

‘허, 메이드 인 헤븐인가? 어쨌든 그걸 사용하려면 귀에 꽂아야 하는 거지?’

[네. 웨어러블 계통의 아이템은 착용 시에만 효과가 적용되거든요.]

‘음, 하린이 속마음이 어떤지 궁금하긴 한데, 방에서 이어폰을 끼는 건 좀 이상해 보일 거란 말이지.’

나는 핑계를 생각하다 불쑥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역시 창의력은 아이큐랑은 무관한 모양이다.

"근데 혹시 장기자랑 준비는 했어?"

"장기 자랑요? 그런 것도 해요?"

"얘가 아무것도 모르는 구나. 새터 가면 새내기 필수코스가 장기자랑이야. 내일 떠난다면서 아직까지 준비가 안 돼 있음 어떡해?"

"진짜요? 뭐 해야 되는데요?"

"보통 제일 많이 하는 게 성대모사나 춤, 노래 같은 거야. 혹시 이중에 자신 있는 거 있어?"

"음... 다 못하는데 어쩌지. 그나마 노래가 괜찮을 것 같아요."

"설마 아이돌 노래 부르려는 건 아니지?"

"그건 안 되나요?"

"당연하지. 그런데서 분위기 띄우는 데는 트로트만한 게 없거든. 내가 선곡 좀 골라줄게."

나는 자연스럽게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냈다.

"이어폰은 왜요?"

"내 폰이 스피커가 이상해서 이어폰으로 들어야 할 것 같아."

"아, 네."

이어폰을 한 쪽씩 나눠 끼고 유투브에 ‘여자 트로트 노래’를 검색했다. 그러자 수 십개의 동영상이 좌르륵 나열되었다.

"이거 어때? 당돌한 여자."

"첨 듣는 제목인데요?"

"유명한 노래니까 들어보면 알 수도 있을 거야."

‘로시, 지금 아이템 사용.’

[네.]

나는 영상을 재생시켜 놓고 그녀의 속마음을 읽었다.

이어폰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는 와중에 그녀의 생각이 카툰처럼 표시되었다. 나는 동영상에서 슬쩍 눈을 때 말 따옴표의 글귀를 읽었다.

(이러니까 마치 데이트 하는 것 같아. 오빠가 아까 손 잡아줄 때 좋았는데...또 잡아주면 안되나? 나도 당돌한 여자였음 좋겠다. 힝.)

‘요것 봐라? 이 정도면 옆구리만 찔러도 넘어가겠는데?’

그녀의 속마음을 확인하자 부쩍 자신감이 생겼다.

추천 멘트가 확실히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군.

"음. 노래는 들어 본 것 같긴 한데 잘 모르겠어요."

"그래? 그럼 이건 어때?"

다음 곡은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워낙 유명한 곡이다 보니 듣고 있던 하린도 금세 멜로디를 따라 흥얼거렸다.

"아! 이 노랜 알 것 같아요!"

"그래? 잘 됐다. 그럼 이걸로 해."

"근데 정말 트로트가 먹힐까요?"

"당연하지. 장기자랑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냐. 노랠 잘 부를 필욘 없다고. 그냥 웃기고 흥겨운 게 최고지."

"아항~ 그렇구나. 암튼 여기서 하긴 부끄러우니까 집에 가서 연습할 게요. 고마워요, 오빠."

부끄럽기는...

앞으로 우리가 할 짓이 더 부끄러울 텐데.

술도 어느 정도 올랐겠다, 나는 슬슬 분위기를 몰아갔다.

"근데 노래 제목이 살짝 야한 것 같기도 하다."

"제목요? 어디가요?"

"흠, 이거 좀 19금인데..."

"모에요! 저도 이제 성인이라구요! 말해 줘요."

취기가 올랐는지 하린이 귀엽게 투정했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사전 작업을 통해 거리감을 허물어뜨렸기 때문에 가능한 모습이리라.

"궁금하니?"

"네."

"하-. 그래도 고등학교 갓 졸업한 애한테 이런 얘기는 좀..."

나는 한 번 더 뜸을 들였다.

예상대로 그녀가 바짝 조바심을 낸다.

"그르지 말구 알려 주세요용~"

내 팔에 찰싹 붙는 그녀의 가슴이 뭉클 느껴졌다.

취했나? 아니면 취한 척 하는 걸까?

그녀의 속마음이 궁금했지만, 마지막 한 번 남은 아이템을 아끼기로 했다.

실제로 취했든, 연기든 중요한 건 그녀가 나에게 교태를 부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건 볼 필요도 없이 긍정적 싸인이다.

"좋아. 그러면 한 잔 더 받음 알려줄 게"

"칫. 알았어요."

하린이 남은 술을 모두 들이키더니 빈 잔을 내밀었다.

나는 일부러 거품을 줄여 잔을 가득 채웠다.

"자, 원샷."

"나 취하게 할 거에요?"

"두 잔에 취하는 사람이 어딨니?"

"흥! 안 알려 주기만 해요?"

하린은 호기 좋게 글라스 가득 담긴 맥주를 벌컥벌컥 털어 넣었다.

"크! 진짜 쓰다. 으!"

"자, 아~"

나는 안주를 들어 그녀의 입에 가져갔다. 하린은 부끄러워  하면서도 넙죽 받아 먹었다.

"다 마셨으니까 이제 말해줘요오."

살짝 비음 섞인 말투. 그녀의 술버릇은 취하면 애교부리는 스타일인 걸까? 어쨌든 귀엽다.

"그러니까 말이지, 사실 이건 굉장히 직설적인 비유야."

"비유요?"

"남자는 배라고 하잖아."

"네."

"여자는 항구고."

"네."

"배가 어디로 들어가니?"

"항구요?"

"그렇지. 그러니까 남자가 여자한테 ...들어간다는 뜻이지."

"들어가...?"

하린은 잠시 모호한 표정을 짓다가 말뜻을 알아 차리곤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진짜로 그게 그 뜻이에요?"

"알아들었니?"

"...네."

"요거 요거, 순진한 줄 알았더니 알 건 다 아는 구나?"

나의 도발에 하린이 귀엽게 발끈한다.

"요샌 고등학생만 되도 다 알거든요?"

"하긴 뭐... 고딩이면 몸은 다 컸다고 봐야지.

나는 노골적으로 시선을 내리깔아 그녀의 가슴을 쳐다보았다. 이쯤 진행됐으면 간보는 것도 끝이다.

이제 부턴 직구 승부다.

"너 근데 원래부터 그렇게 컸어?"

"머가요?"

"가슴말이야."

"뭐야~ 오빠 쫌 응큼한데?"

말은 그렇게 하지만 이미 발그레 달아오른 볼을 보니 술기운이 상당히 오른 상태다. 방금 전 들이킨 원샷의 영향인 것 같다.

"초등학교 때부터 반에서 제일 컸어요. 그땐 창피해서 허리도 잘 못 펴고 다녔어요."

"우아, 초딩 때부터?"

"네."

넌 역시 발육이 남다른 아이였구나.

"어머니도 큰 걸 봐선 유전인가?"

"맞아요. 이모들도 다 크거든요. 외가 쪽 식구들 중에 작은 사람 없어요."

"사이즈가 얼마나 되는데?"

"부끄럽게 그런 걸 왜 물어요, D컵요."

부끄럽다면서 대답만 잘하네.

"D컵? 한국인이 그렇게 클 수도 있어?"

"저도 몰라요. 속옷 매장가도 사이즈 없어서 수입브랜드만 사야 돼요. 돈만 비싸구, 예쁘지도 않고... 진짜 짜증나 죽겠어요."

왠지 큰 가슴에 콤플렉스가 있는 발언 같군.

이래선 안 된다. 그녀는 자신의 가슴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고 있다.

"하린아. 아직 어려서 잘 모르나 본데 넌 축복받은 거야."

"축복요? 가슴 커봐야 어디다 써요. 맨날 어깨만 아프지, 친구들한테 놀림이나 받지. 어렸을 때 남자 애들이 젖소라고 놀려서 얼마나 상처 받았는데요."

감정이 복받쳤는지 하린의 목소리가 고조되었다.

나는 그녀를 다독여줄 필요를 느꼈다.

그녀의 상처받은 가슴을 어루만져 주고 싶다. 물론 맨손으로.

"어린 것들이 뭘 알겠니. 혹시 거거익선이란 말 들어봤어?"

"거거익선?"

"크면 클수록 좋다는 뜻이야. 여자 가슴이 그래. 작아서 수술하는 사람은 많아도 크다고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거든."

"힝...전 진짜 별룬데."

"아냐. 나도 솔직히 여자 볼 때 가슴 작으면 별로더라고. 여성미가 하나도 없잖아. 앞뒤가 똑같은 전화번호도 아니고."

"진짜요?"

"응."

하린이 살짝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오빠도 그럼 가슴 큰 거 좋아하세요?"

"물론이지. D컵 가슴 실제로 볼 수 있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에이, 무슨 말이 그래요."

"진심인데?"

내 진지한 표정을 본 하린은 한참 쭈뼛거리더니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그럼 제꺼 보여 드릴까요?"

오우, 지져스.

산삼이 내게로 왔다.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