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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24화 (4/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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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대생그녀07

취향이라는 게 있다.

담백한 아메리카노를 마실지, 혹은 달달한 마끼아또를 마실지.

국물 있는 얼큰한 짬뽕을 먹을지, 계란 후라이 얹어진 고소한 간짜장을 먹을지.

차를 살 땐 듬직한 SUV로 고를지, 아니면 승차감 좋은 세단을 고를지.

여자의 경우도 그렇다.

누군가는 얼굴보단 성격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성격이 좀 모나도 얼굴이 최고라고 한다.

누군가는 골반보단 가슴에 점수를 주며, 어떤 이는 그래도 골반이 가슴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누군가는 여자는 어릴수록 상큼한 맛이 있어 좋다고 하지만, 어떤 이는 능숙한 미시 쪽을 선호하기도 한다.

이처럼 사람의 취향은 모두 제각각이다.

예쁘고, 가슴 크고, 어린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성격 시원시원하고, 엉덩이 빵빵한 미시 쪽에 끌리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단지 이것보다 저것이 더 좋은 선호의 문제다.

나는 지금껏 내 취향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고 살아왔다. 말로는 무엇이 더 좋다, 하고 쉽게 떠들지만 상황에 직면하기 전까지 어렴풋 짐작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그녀를 보는 순간 나의 취향이 무엇인지 정확히 깨달았다.

"왔...어?"

박하린.

어리고, 가슴 크며, 어딘지 모르게 백치미가 느껴지는 얼굴.

그녀는 나의 취향을 완벽하게 저격하고 말았다. 예쁘게 차려입은 그녀의 모습은 어젯밤 봤을 때와는 또 달랐다.

스무 살 특유의 풋풋함과 순수함이 가득 찬, 그러면서도 스웨터 안에 폭탄같은 젖가슴 두 개를 꽁꽁 숨기고 있는.

"안녕하세요, 도훈 오빠."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나는 로또에 당첨된 기분이었다. 삼보일배로 마중가도 부족할 판국에, 이런 귀여운 아이가 제 발로 나를 찾아오다니.

오, 신이시여. 다시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너무 넋 나간 채 쳐다 봤던 것일까?

하린은 아직 현관 문턱도 밟지 못한 상태였다.

"아, 아니야. 어서와. 찾아오느라 힘들었지?"

"아니에요. 금방 찾겠던데요?"

하린은 앙증맞은 슬립온을 벗고 거실로 입성했다. 치마를 입고 온 턱에 다리를 뒤로 구부려 신발을 벗는 모습마저 너무 사랑스럽다. 아아, 이래서 산삼보다 좋다고들 하는 구나.

"와, 집 깨끗하네요."

하린이 안방을 쓰윽 훑어보더니 소감을 말했다.

당연히 깨끗할 수밖에. 너 오기 전에 처음으로 청소를 했거든.

"혼자 살아서 뭐가 없어서 그래."

사실 도훈의 원룸은 심하게 뭐가 없긴 했다.

컴퓨터용 책상 하나, 그 위에 노트북 달랑. 그리고 구석에 설치된 행거가 전부였다. 심플을 넘어 단촐한 수준이다.

"저도 어제 충주가서 자취방 알아보고 왔는데..."

"대학 때문에? 기숙사가 좋지 않겠어?"

"엄마도 기숙사를 더 좋아하는데, 추가 합격이라 기숙사 붙긴 힘들 것 같아서요. 정원이 얼마 안 돼가지고 절반도 못 들어간다나 봐요."

캬!

옛 말에 이르기를 인기녀의 조건 중 으뜸이 ‘자취하는 여자’랬거늘... 그녀가 앞으로 ‘자취’라는 옵션까지 갖추게 된다면 정말 군계일학으로 군림하리라.

"참, 나중에 밥 먹고 먹으려고 귤 좀 사왔어요."

하린이 손에 든 검은 봉지를 내밀었다. 그래도 남의 집 방문한다고 빈손으로 오긴 그랬나 보지?

이런 개념 박힌 아가씨를 봤나.

너는 맨몸으로 와도 상관없다고. 아니, 기왕이면 알몸으로.

"뭘 이런 것까지 사왔어. 학생이 돈이 어딨다구."

"왜요, 저도 알바 땜빵하면 시급 받거든요? 엄마한테."

"아무튼 고마워. 너가 기본이 됐네."

"그래요?"

"그럼. 그런 게 중요한 거야. 사소해 보이지만 기본을 지키는 거. 너 대학가면 선배들한테 사랑받겠다."

"그거 칭찬이죠? 감사합니다."

"저기 앉아 TV라도 보고 있어. 금방 밥해줄 게."

"근데 우리 뭐 먹어요?"

"응, 볶음밥."

볶음밥은 이정우로 살면서 즐겨 했던 요리다.

금방 만들 수 있고, 생각 외로 맛있다.

하린이 오기 전 냉장고를 뒤져보니 재료랄 게 딱히 없었다.  밑반찬 몇 개와 스팸 통조림 정도? 하지만 볶음밥이면 이것으로도 충분히 맛을 낼 수 있다.

나는 채 썬 파로 파기름을 낸 뒤, 그 위에 잘게 다진 김치를 섞어 볶았다. 이어 미리 준비한 스팸을 얹고 곧바로 밥을 투하했다. 고추장을 반 스푼 넣고 주걱으로 휘휘 젖자 금세 먹음직스런 스팸김치 볶음밥이 만들어졌다.

"우앙, 오빠 요리 되게 잘하시네요?"

잠시 TV를 보고 있던 하린은 심심했는지 어느 틈에 내 뒤로 다가와 음식이 조리되는 걸 구경했다. 나는 일부러 손목 스냅을 이용한 웍질을 선보였다. 커다란 웍 위에서 잘 뒤섞인 볶음밥이 고슬고슬 익어간다.

"그냥 자취하면서 익힌 거야."

거짓말이다. 실은 못된 마누라 때문에 먹고 살려고 배운거다.

볶음밥이 적당히 익어갈 때쯤, 작은 후라이팬 하나를 더 꺼내 후라이도 익혔다. 마지막으로 접시에 볶음밥을 덜고 위에 김가루를 뿌린 뒤 계란을 얹자 요리가 완성되었다.

"우앙! 짱 맛있겠다."

하린이 아이처럼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너도 짱 맛있어 보인다.

아니지. 아직은 본색을 드러낼 때가 아니다.

음식도 날 것을 먹으면 탈이 나듯이, 여자와의 관계도 무르익기를 기다려야 한다. 집으로 찾아왔다고 얼씨구나 하고 벗기려 들었다간, 이제껏 쌓아온 좋은 관계가 한순간에 깨질 수도 있다.

서서히. 그녀가 스스로 동하도록, 분위기만 잡아 준다.

"잘 먹겠습니다!"

하린과 나는 조그만 밥상 앞에 둘러 앉아 볶음밥을 먹었다. 제대로 된 식탁하나 없는 조그만 원룸이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하린은 볶음밥을 먹으며 연신 감탄을 연발했다.

"오빠 거짓말 아니고 진짜로 맛있어요."

"정말?"

"네. 우리 엄마보다 요리 잘하시는 것 같아요."

"에이, 너무 띄워주는데..."

실제로 그렇다. 굳이 따지면 나는 요리를 잘하는 축이다. 솔직히 예전 마누라보다 내가 더 손맛이 좋았다.

"그래도 너가 맛있게 먹어주니 기분은 좋다."

"아닌데, 진짜 맛있어서 그런건데..."

‘쿨타임 찬 거 같은데 정보창 좀 확인해 볼까? 로시.’

[네. 띄워 놨습니다.]

잠시 시계를 보는 척 그녀의 정보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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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박하린

나이 : 20

호감도 : 78/100

개방성 : A

성감대 : 가슴, 등허리, 목덜미

성욕지수 : 중간

공략팁

*위 대상을 공략하시면 '모녀덮밥'위업을 달성하실 수 있습니다.

-그녀는 당신을 좋아합니다.

-그녀는 당신이 보여준 자상한 모습에 반했습니다. 적당한 스킨쉽으로 호감도를 더욱 높여 보세요.

-추천멘트 : "손이 좀 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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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감도 78?’

[축하드립니다. 어제의 진학상담과 오늘의 요리로 인해 호감도가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80이면 덮쳐도 되는 수준이랬나?’

[성욕지수가 중간이므로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근데 어제는 성욕지수가 낮음 아니었어?’

[성욕지수는 컨디션에 따라 달라집니다. 몸이 피곤하거나,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높아지거나 낮아질 수 있습니다. 물론 선천적으로 매우 높거나 낮은 사람도 간혹 있습니다.]

어쨌든 이제 반쯤 익은 거나 마찬가지란 뜻이군.

"오빠.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안 그래도 돼."

"아니에요. 맛있는 밥까지 얻어먹었는데 어떻게 그래요. 그리고 저 설거지 잘해요. 집에선 제가 주로 하거든요."

하린은 후다닥 일어서더니 설거지를 시작했다.

말려봐야 들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이 나는 맥주와 술안주를 챙겼다. 안주는 하린이가 사온 귤과, 땅콩믹스 정도였다.

설거지를 마친 하린은 술상을 보더니 베시시 웃었다.

"이제 주도를 배울 시간인가요?"

"그렇지. 여기 앉아."

나는 하린을 옆자리에 앉혔다. 사각진 반상을 사이에 두고 ‘ㄱ’자로 앉은 모양새다.

"술 한 번도 안 마셔 봤댔지?"

"네. 한 번두요."

"그럼 술 따르고 받는 법부터 배워야 겠네."

나는 유리잔을 준비해 뚜껑 딴 맥주를 따랐다.

"지금 잔을 45도 기울여서 받는 거 보여?"

"네. 이건 왜 그런 거에요?"

"맥주는 거품이 많아서 그냥 부었다간 절반이 거품이거든. 그래서 거품을 최대한 덜 생기게 하려고 그러는 거야."

"아항."

잔을 한 잔 채운 나는 다른 빈 잔을 하린에게 내밀었다.

"자, 이번엔 너가 한 번 따라봐."

"네."

하린이 맥주캔을 들고 잔을 따르려 할 때,

"잠깐."

"왜요?"

"원래 이건 병맥주로 따를 때 하는 거긴 한데, 알려줘야 할 것 같아서. 술병에 보면 맥주 상표가 붙어 있잖아."

"네."

"술을 따를 때는 상표를 가리듯 감싸면서 쥐는 거야. 이렇게."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등을 잡고 위치를 잡아주었다. 내 손이 닿자 하린의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

좋아, 분위기 좋고. 이제 추천멘트를 던질 차례다.

"너 근데 손이 좀 차네?"

"네? 아...아까 찬물에 설거지를 해가지고요."

"아이고, 말을 하지. 보일러라도 틀어줄 걸. 우리집은 온수로 안하면 뜨거운 물 안 나오거든."

"괜찮아요."

"그래도 너무 차다. 오빠가 좀 녹여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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