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5화 〉 걸레들이 후회하며 집착한다(11)
* * *
“어머. 미희 주임님. 다정 차장님. 두 분 다 나이 들어서 주책이다. 우리 시현 오빠는 아줌마들한테 관심 없어요. 저처럼 피부 탱탱 몸매 탱탱한 영계를 좋아하지. 그쳐. 오빠아~”
서유리 사원도 캣 파이트에 참가.
“야! 서유리. 지금 말 다 했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보자보자 하니까! 너, 식당에서 밥 먹을 때도 은근슬쩍 우리 시현이한테 계속 다리로 건드리면서 수작 걸더라?”
“그러는 차장님은요! 식당에서 사람들 다 보는데 가디건은 왜 벗는 건데? 무슨 스트립쇼 하는 것도 아니고. 밥 먹는 데 젖소 같은 가슴이 출렁출렁 거리면, 부담돼서 우리 시현이 오빠 밥이나 제대로 먹었겠어요?”
“둘 다 그만 둬! 하여간 어린 것들이 회사에서 싸우기나 하고. 우리 시현이 스트레스 받으면 어쩌려고 그래. 하여간 우리 시현이 걱정하는 성숙한 여자는 나 밖에 없다니까.”
김미희 주임의 말에 서유리와 최다정 차장이 불여우처럼 눈을 흘긴다.
“지금 뭐라고 했어요! 나이 많은 게 벼슬인가? 틀딱 주제에.”
“그러게 말이에요. 김미희 주임이야 말로 식당에서 왜 자꾸 우리 시현오빠 바라보면서 다리를 꼬는데. 치마가 짧아서 엉덩이 보일까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알아요? 치, 나이 들어서 다 처진 엉덩이 볼 것도 없으면서.”
“뭐! 틀딱? 처진 엉덩이! 너 지금 말 다 했어. 서유리? 이게 미쳤나. 야!!!!!”
“왜요? 내가 틀린 말 했나 뭐. 다른 건 틀딱이라고 양보해도 우리 시현 오빠 관한 건 양보 못해요.”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 계속 틀딱이라고 하네? 스물여섯 살이 틀딱이야? 틀딱이냐고!”
“틀딱이라고 하니까 찔려서 소리치는 것 봐. 틀딱 딱 맞네 뭐.”
“그래. 너 오늘 말 잘했다. 그럼 오늘 틀딱 어르신한테 대들었으니 어디 한번 제대로 참교육 한 번 당해 봐!”
김미희 주임이 소리를 지르며 서유리 사원의 머리를 움켜잡는다.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이 아줌마야!”
점점 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는 캣 파이트!
하아·······
귀찮지만 다른 팀에게 민폐가 될 수 있으니 일단 말리고 본다.
“다들 그만둬요. 사무실에서 이게 무슨 짓이에요!”
하지만 내 말이 들리지 않는지 그녀들의 싸움은 계속된다.
“어린 게 싸가지 없이. 너 오늘 죽었어! 진짜! 나이 어린거 하나 믿고 우리 시현이한테 꼬리치는 거 안 그래도 꼴 뵈기 싫었는데 잘됐다. 오늘 아주 끝장을 보자!”
“씨발. 진짜. 내가 참으려고 했는데, 아줌마는 왜 자꾸 시현오빠한테 냄새나는 엉덩이 들이밀면서 꼬시는 건데! 누군 못해서 안하는 줄 알아! 정정당당하게 시현오빠한테 들이대어야 할 것 아니야! 누군 엉덩이 없는 줄 알아!”
서로 머리끄덩이를 잡고 놓지 않는 서유리와 김미희 주임.
할 수 없이 그녀들에게 다가가서 그녀들의 귀를 한 쪽씩 잡아당긴다.
“아. 아아아!!!!! 시, 시현아!”
“흐윽. 시현 오빠아!”
둘 다 귀를 잡히자 눈물을 찔금 거리며 나를 바라본다.
“둘 다 그만두라고 했죠? 어서 빨리 잡고 있는 머리끄덩이 놓아요.”
그제야 서로 원수 같이 노려보며 잡고 있던 손을 놓는다.
“지금 이게 사무실에서 뭐하는 짓이에요! 둘 다 벽보고 서요.”
“네? 벽이요?”
“시현아. 장난도 참. 내가 무슨 서유리처럼 어린애도 아니고.”
아직 분위기 파악 못하네.
사실 둘이 싸운 건 큰 잘못이 아니다.
내가 말렸을 때 노예주제에 주인님을 무시하고 한 번에 못 알다 먹은 게 잘 못이지.
“장난 아닙니다. 빨리 가서 벽보고 손들고 서요.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안 그러면 유리씨 통계정리, 미희씨 방송통계 보고서 도와주기로 한 거 다 없는 일로 할 테니까. 어디 나 없이 잘들 해보세요.”
“오, 오빠. 잘 못 했어요!”
“시현아. 아, 아니. 팀장님.”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둘 다 벽을 바라보고 뒤로 돌아서서는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뒤에서 구경만 하던 최다정 차장이 내 옆에 딱 붙어서 은근슬쩍 팔짱을 낀다.
그리고는 고소하다는 듯이 말한다.
“잘됐다! 우리 시현오빠가 그만두라고 할 때 그만 둘 것이지. 하여간 나이 많은 틀딱이랑,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는 안 된다니까. 그쳐. 팀장님?”
최다정 차장의 말에 김미희 주임과 서유리 사원이 뒤돌아보며 사납게 눈을 흘긴다.
나도 최다정 차장의 계속되는 젖가슴 비비기 성추행을 피해 옆으로 슬쩍 물러나며 말한다.
“다정차장님. 원래 같은 팀원은 연대 책임입니다. 어서 다정 차장님도 저기 가서 벽보고 손들고 서요!”
“네? 저도요?”
억울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보는 최다정 차장.
그녀의 눈빛을 받으며 최다정 차장의 풍만하게 봉긋 솟은 젖가슴을 보며 말한다.
“왜요? 싫어요? 싫으면 다정차장님 드리려고 특별히 준비한 명품 선물 있는데. 이건 안줘야겠다. 차장님. 말도 안 듣는데 비싼 선물을 왜 줘.”
명품 선물이라는 말에 최다정 차장이 조용히 김미희 주임과 서유리 사원 옆에 나란히 서서 손을 번쩍 들어올린다.
쌤통이라는 듯이 최다정차장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는 두 사람.
하아·······
이건 무슨 초등학생들도 아니고.
사실 알고 보면 나이만 차이 날 뿐이지.
질투심 심하고 별 것 아닌 일에 흥분하는 건 어른이나 아이나 똑같다.
캣파이트를 정리하고 손에 들고 있는 도시락을 들어 올렸다.
맛있는 LA갈비 냄새가 솔솔 풍긴다.
“하아, 아영씨는 어디 간 거야. 아영씨 주려고 갈비 도시락까지 사왔는데. 사무실에서 도통 보이지가 않네. 우리 불쌍한 아영씨 아직 밥도 못 먹고 배고플 텐데.”
일부러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역시나 한 쪽 구석에서 들려오는 꼬르륵! 소리.
서유리 사원의 책상앞자리다.
일부러 아영 사원을 유혹하기 위해 사온 도시락을 흔들며 천천히 그쪽으로 걸어간다.
“아영씨가 있으면 LA갈비 참 좋아했을 텐데. 아쉽다. 진짜.”
도시락 안에 든 잘 구운 LA갈비 냄새가 사무실에 진동을 할 무렵.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
“티, 팀장님. 저 여기 있어요. 팀장님이 그렇게 애타고 찾으시는 아영이.”
“네? 아영씨!"
역시나 LA갈비 유혹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사무실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아영사원이었다.
* * * * *
“팀장님·······”
아영 사원이 촉촉이 젖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숨었던 자리에서 일어난다.
점심시간 동안 내내 바닥에 엎드려 잤는지, 얼굴이 초췌하다.
“아니. 아영씨. 점심은 먹었어요?”
아영 사원이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다.
“아니요. 아직 못 먹었어요. 배고파 죽겠어요. 저 챙겨주는 사람은 우리팀에서 시현 팀장님 밖에 없어요. 진짜. 내가 누구 때문에 오전 내내 그 개고생을 했는데. 팀장님처럼 LA갈비 도시락은 못 챙겨오더라도 편의점에서 김밥이라도 한 줄 사와야 할 거 아니야! 원래 여자들 의리 없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진짜 해도해도 너무 하네!”
일부러 다른 여자팀원들이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소리치는 아영 사원.
그런데 적반하장으로 벽을 보며 손들고 서 있는 여사원들이 궁시렁 거린다.
“아, 진짜.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아영 팀장. 하여간 인내심 없는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어떻게 하루도 못 버티고, 밥 준다고 하니까 시현씨한테 쪼르르 달려 가냐. 달려가길. 창피하지도 않나.”
“에휴. 미희 주임님. 저희가 아영팀장한테 너무 기대를 크게 했나 봐요. 원래 저렇게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인거 알면서. 팀장이라는 사람이 하여간 팀을 위한 희생정신은 1도 없어요. 1도. 시현 오빠 퇴사하면 이거 다 아영팀장 때문이에요. 다들 동의하죠?”
“어머머. 자기들. 설마 진짜 아영팀장한테 기대를 걸기라도 했던 거야? 순진하다. 미희씨. 유리씨. 나는 진작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지. 아영팀장 주제에 어떻게 우리 시현씨한테 도망칠 수 있겠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머리채를 붙잡고 흔들며 진흙탕 싸움을 하던 여자팀원들.
하지만 먹잇감이 주어지자 바로 태도를 돌변해서 아영팀장 돌려 까기를 시작한다.
그러던가말던가 다른 여자팀원들의 궁시렁궁시렁 거리는 소리를 무시하며 아영팀장이 나에게 꼬리를 흔들기 시작한다.
“시현 팀장님. 저런 여우같은 년들이 하는 말은 무시하세요. 그것보다 팀장님. 저는 왜 찾으신 거예요?”
“아영씨랑 은밀히 할 말이 있어서요. 그런데 일단 점심이나 먼저 드세요. 배고플 텐데.”
은밀히 할 말이 있다고 하자, 아영 팀장이 부끄러움이 가득담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시현씨도 참. 그냥 다른 사람들 다 있는 자리에서 말해도 되는데. 무슨 고백을 하려고 은밀한 곳으로 저를 부르시는 거예요.”
고백?
고백이라니.
잘 못 넘겨짚어도 한참 잘 못 짚었다.
나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손에 들고 있던 LA갈비 도시락을 아영사원에게 건넸다.
“하여간 점심 다 먹으면, 내 자리로 오세요. 알겠죠?”
“네. 알겠어요. 팀장님. 잘 먹을게요. 저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시현씨의 마음이 담긴 LA갈비 도시락. 설마 도시락에 하트로 장식이라도 하신 건 아니죠? 너무 그러면 부담되는데.”
하트라니.
아영 사원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나보다.
그런데 더 웃긴 건 다른 여자 팀원들이 아영 사원을 질투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다는 것이다.
“김아영, 저 요사스럽게 웃으면서 우리 시현씨한테 꼬리치는 것 봐. 저 년 저거 레즈 아니었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