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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간다-11화 (11/271)

〈 11화 〉 10화

* * *

나는 회중시계의 조명을 켜서 번식굴 안을 밝혔다.

내부에는 아직 매캐한 냄새가 남아있긴 했지만 피비린내와 뭔가가 썩어가는 것 같은 냄새로 가득했다.

난 몇 번이고 구역질을 했지만 라우라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래도 이제 나도 슬슬 적응이 됐고 라우라의 도움을 받을 필요도 없어졌다.

동굴 입구에는 고블린의 시체들이 몇 구 있어서 라우라가 마핵을 채취했지만 그 다음부터는 시체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레베카님!”

뭐야? 갑자기 내 앞에 피가 분수처럼 솟구친다.

정신을 차려보니 머리가 터진 고블린의 시체와 그것에서 마핵을 채취하는 라우라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어디선가 튀어나온 고블린을 바닥에 패대기치고 그대로 머리를 밟아서 죽여 버린 것이다.

“잘했어. 저 놈은 어떻게 살아있었던 거지?”

“방금 전에 태어난 것 같아요. 벌써 죽었지만요. 히힛.”

내 기분 탓인지 모르겠는데 라우라는 뭔가 점점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

전투가 그녀의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주는 건지 아니면 그저 살육으로 즐거움을 얻는 건지 모르겠지만 후자는 이상하리만치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이런 곳에서는 총을 쏘기 불편한 게 문제네. 네 덕분에 편하게 다니고 있어.”

“전 이런 장소가 익숙하니 믿고 맡겨주세요.”

“그래. 그런데 저건... 설마 사람인가?”

난 라우라를 칭찬해주려다 그녀 뒤로 보이는 희생자들을 발견했다.

그 불쌍한 사람들은 발가벗겨진 채로 사지가 잘리고 이상한 살덩어리에 반쯤 흡수당한 상태였다.

그 사람들 밑에 고블린 새끼들의 시체가 널려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저 상태로 계속해서 고블린의 새끼를 임신하고 출산했던 것 같다.

난 서둘러 그쪽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질식해서 죽은 사람들과 겨우 숨이 붙어있지만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들 밖에 없었다.

이 사람들은 죽기 직전까지 혹은 죽어서도 고블린에게 강간을 당했는지 아직도 가랑이 사이에서 놈들의 정액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희생자들 중에서는 모험가도 몇 명 있었는데 나는 그들을 보면서 절대로 같은 최후를 맞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번식용으로 이용당한 사람들이에요. 살아있는 사람들은 제가 해방시켜 드려도 될까요?”

해방이라... 그래 여기는 그런 세상이지.

“아니, 내가 할게.”

나는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총을 쏴서 그들을 깔끔하게 해방시켰다.

라우라에게 맡기느니 직접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생자들을 매장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지만 우리 둘이서 처리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으니 모험가길드에 도움을 요청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레베카님, 여기에 고블린들이 모아둔 물건이 있어요. 한 번 확인해보시겠어요?”

알뜰하게도 고블린 새끼의 시체에서도 마핵을 채취한 라우라는 번식굴 끝에 있는 창고 같은 곳을 발견하고는 나를 불렀다.

그곳에는 희생자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품들과 어디선가 줍거나 훔친 것 같은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나는 분석스킬을 사용해서 쓸 만한 것들과 쓰레기를 구분했다.

우선 마력권총 2자루를 찾았는데 전부 손상되긴 했지만 수리가 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거기에 소구경 일반마력탄 66발은 덤이다.

나머지는 전부 잡동사니이거나 쓰레기에 불과했지만 모험가 펜던트 5개는 빼먹지 않고 챙겼다. 분명 이번 사건의 증거가 되어줄 것이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수확인 것 같지?”

“네, 발견하신 것들을 처분하시거나 수리하시면 도움이 될 거예요.”

“너한테 검을 사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그냥 저기에 있는 걸 수리해서 주셔도 되는데...”

라우라는 내가 무심코 지나쳤던 검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무슨 막대기처럼 생겨서 별 것 아닌 줄 알았더니 검일 줄이야.

일단 분석스킬을 써보자.

명칭 : 프랑카의 한손장검

품질 : C등급(녹슮)

기능 : 단거리 화염방사

화염방사라고? 그러니까 이걸로 불을 쏠 수 있단 말이잖아.

그런데 녹이 슬어서 지금은 사용할 수 없다.

아, 진짜! 제대로 판타지다운 걸 쓸 수 있나 싶었는데 당장은 불가능하다니 답답해죽겠다.

“라우라, 좋은 소식이 있어. 이건 그냥 검이 아니라 마법무기야.”

“정말요? 세상에 저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은 아닌 줄 알았어요.”

“네가 발견했으니까 수리가 끝나면 너한테 선물로 줄게.”

“감사합니다!”

라우라는 폴짝 뛰더니 나와 팔짱을 끼며 기뻐했다.

그녀의 눈표범 귀가 열심히 쫑긋거리고 길고 복슬복슬한 꼬리가 살랑살랑 움직이는 게 너무 귀엽다.

“이제 나가자. 더 이상 여기에 있고 싶지 않아.”

“네!”

나는 라우라와 함께 서둘러 번식굴에서 나왔다.

밖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니 불쾌했던 기분이 단번에 상쾌해졌다.

거기다 라우라가 계속 나와 팔짱을 낀 상태로 즐거워하고 있어서 정말 기분이 좋다.

“고블린 마핵을 41개 채취했으니까 이 정도면 의뢰를 완수하기 충분하겠지?”

“네, 기준보다 4배 많이 채취했으니까요. 거기다 죽은 모험가의 펜던트를 회수했으니 보상금도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보상금도 나와?”

“네, 정확한 금액은 모르겠지만 E급 모험가 기준으로 1천 라기르 씩은 받으실 수 있지 싶어요.”

나 같은 하급 길드원은 목숨 값이 야수족 한 마리 수준이구나...

아무튼 죽은 사람들 덕분에 내 살림살이가 나아진다고 생각하니 조금 씁쓸하다.

그래도 좋은 일로 받는 보상금이니까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이 사람은 D급이네. 세상에 D급도 고블린 같은 놈들에게 당할 줄은 몰랐어.”

“독에 당했거나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기습공격을 받은 경우라고 보시면 돼요. 그게 아니라면...”

“그게 아니라면?”

“동료에게 배신을 당한 경우죠.”

라루아는 내 팔을 꽉 잡으며 말했다. 마치 당해본 사람처럼 표정이 굳었다.

내 사랑스러운 노예에게 대체 어떤 불행한 과거 있었는지 궁금하다.

“최악이네 그거.”

“네, 그래서 아마 이걸 제출하시면 길드차원에서 진상조사가 이루어질거예요.”

“내가 휘말리지는 않겠지?”

“오늘 막 가입하셨잖아요. 안심하세요.”

라우라의 미소를 보니 안심이 된다. 괜한 걱정을 했던 것 같다.

나는 라우라와 함께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원래 목적지로 삼았던 곳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서 의뢰를 해결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금방 숲을 빠져나왔다.

갑자기 인간문명의 흔적이 눈앞에 나타나니 정말 반갑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직 피곤함 몸을 이끌고 제법 많이 걸어야 푹신한 침대에서 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도로를 따라서 열심히 걸어서 해가 지기 전에 프랑카 성문에 도착했다.

다행히 내 모험가 펜던트 덕분에 검문은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모험가길드에 등록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검문소를 지나서 모험가길드 건물에 도착한 우리는 당당하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늦어서 그런지 1층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지만 접수원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또 한 번 그 드워프 접수원과 마주했다.

“생각보다 일찍 오셨네요?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이에요. 첫 의뢰로 돌아오지 못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걱정하고 있었어요.”

접수원은 진심으로 우리의 귀환을 반겨주었고 내가 내미는 자루에 들어있는 마핵의 확인한 뒤에 의뢰완수금과 더불어 마핵의 가격도 쳐주었다.

개당 2백 라기르인 성체 고블린 마핵 30개, 개당 1백 라기르인 새끼 고블린 마핵 11개로 7천1백 라기르를 받았고 거기에 의뢰완수금 1천 라기르를 합쳐서 총 8천1백 라기르를 벌었다.

예상보다 고블린의 마핵은 가격이 낮아서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나에겐 아직 죽은 모험가들의 펜던트와 전리품들이 남아있다.

“전리품은 사적으로 처리하셔야 해요. 그리고 돌아가신 길드원 분들의 펜던트를 챙겨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 약도에 번식굴의 위치를 표기해두었어요. 시신을 수습해주세요. 10명 정도 있었어요. 그 중에 두 명은 제가 해방시켜드렸고요.”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들 드립니다. 새로 가입하신 분이 당신처럼 선하신 분이라서 정말 기뻐요. 보상금은 조사가 끝나면 바로 지급될 거예요. 남은 일은 제가 잘 처리할 테니 안심하고 들어가세요.”

선한 사람이라? 난 방금 보상금이 바로 나오지 않아서 조금 실망했는데 말이다.

난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도 칭찬을 듣고 주변에서 박수를 쳐주니 기분은 좋았다.

“라우라, 2층으로 가자. 전리품을 처리해야지.”

“네, 레베카님.”

다행히 2층은 아직 영업을 하고 있었다.

나는 총포상에 먼저 들렀다.

엘프족 아저씨는 오늘 영업을 끝내려다가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한숨을 쉬었다.

미안해요. 퇴근시간을 늦춰버려서.

“의뢰를 하다가 이것들을 발견했는데 한 번 봐주세요.”

나는 아저씨에게 부서진 마력권총 2개를 보여주었다.

이미 분석스킬을 써서 평범한 물건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었다.

“둘 다 상태가 나쁘지 않아서 수리만 하면 바로 쓸 수 있소. 팔면 제가격의 4분의 1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거요.”

“혹시 매입도 하시나요?”

“어떤 물건이든 팔아넘기려면 저기에 있는 매입처로 가시오. 그나저나 첫 의뢰는 어땠소?”

아저씨는 저 반대편에 있는 큰 상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수리비를 벌 기회가 없어지니 잡담이 하고 싶어진 모양이다.

“나쁘지 않았어요. 모험가 펜던트도 몇 개 회수했고요.”

“좋은 일을 했구려. 남은 할부금을 절반으로 깎아주겠소.”

“진심이죠?”

“혹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니요! 지금 당장 할부금을 다 낼게요.”

나는 서둘러 주머니에서 1천 라기르를 꺼내서 아저씨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잘 받았소. 이제 얼른 매입처로 가보시오. 곧 2층에 있는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을 거요.”

나와 라우라는 또 등을 떠밀려서 상점 밖으로 나왔다.

아저씨가 은근히 수줍음이 많은 것 같다.

우리는 아저씨가 가르쳐준 매입처로 가서 전리품으로 얻은 마력권총 2자루를 처리하고 총포상 아저씨 말대로 1자루 당 4분의 1의 가격을 인정받아 총 1만 2천 라기르를 받았다.

오늘의 의뢰로 얻은 총수입은 약 2만 라기르다. 제법 많은 흑자를 거둔 것이다.

“라우라,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대장간은 내일 찾아가보자.”

“네, 레베카님.”

“일단 숙소로 돌아가서 몸을 씻고 저녁 먹으러 가자. 먹고 싶은 거 있니?”

“채식만 아니면 뭐든 좋아요.”

역시 눈표범족이라서 풀을 먹기 싫은가보다. 나는 나름 좋아하는 편인데 말이다.

아무튼 오늘 저녁은 고기파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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