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9화
* * *
프랑카 시의 남쪽에 있는 고블린 서식지로 가는 길은 평지인데도 꽤나 험했다.
숲이 깊어서 한낮에도 어두컴컴했고 온간 괴상한 소리들이 들려서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다행히 내 회중시계 덕분에 주변을 밝게 비출 수 있었다.
한편 라우라는 숲에 들어온 뒤부터 분위기가 변했다.
날카로운 눈매로 쉬지 않고 주변을 경계했고 사소한 소리나 움직임도 놓치지 않았다.
위험한 것이 있다 싶으면 나보다 먼저 가서 직접 확인했다.
배려는 고맙지만 이래서야 내가 돌봄을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미니맵을 쓸 수 있다면 보호대상으로 취급받을 일은 없었을 텐데 아쉽다.
하지만 지도 창이 개방된 걸 보면 미니맵 기능도 분명히 존재할 것 같다.
모험가길드에서 지도를 봤을 때 새로운 기능이 개방된 것처럼 미니맵도 그것과 비슷한 능력을 가진 물건을 보거나 얻게 되면 기능이 개방되지 않을까 싶다.
“라우라, 혹시 주변의 상황이나 움직임 같은 것을 알 수 있는 마법도구가 있을까?”
“죄송하지만 그건 잘 모르겠어요.”
“아니야. 모를 수도 있지.”
이건 라우라도 모르는구나. 이 문제는 내가 스스로 찾아보는 수밖에 없겠어.
마법도구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당연히 마법사겠지만 여태까지 마법공학자라는 말은 들었어도 마법사라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의뢰를 마치고 길드로 돌아가면 그런 사람들을 어디서 만날 수 있는지 물어봐야겠다.
내가 잠깐 생각하는 사이에 라우라가 내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레베카님은 항상 고민이 많으신 것 같아요.”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생각해볼 게 좀 많아서 말이야. 너도 알다시피 내 고향과 제국은 다른 게 많아서 아직 적응이 될 되기도 했고.”
“레베카님도 힘든 일이 있으시다면 부디 제게 말씀해주세요. 노예로서 최선을 다해서 도와드릴게요.”
“그래, 기억하고 있을게.”
나는 날 걱정해주는 라우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주변을 그렇게 경계하는 와중에도 나를 신경써주다니 감동이다.
이런 라우라가 어디 다치거나 아프기라도 하면 정말 마음이 아플 것 같다.
방어구를 사주긴 했지만 그래도 걱정이다.
그래, 마법방어막이 얼마나 강한지, 약점은 뭔지 확실히 알아둘 필요가 있겠어.
나는 내 팔찌에다가 분석스킬을 사용한 뒤에 마법방어막 기능에 대한 설명을 찾아보았다.
일정한 위력 이하의 물리공격을 무효화시킨다고 하는데 그 기준이 뭔지는 알 수 없었다.
‘예를 들자면 화살은 막을 수 있어도 총알은 못 막는다고 보면 되는 걸까? 그리고 물리공격이라고 한정되어 있으니 나머지 위협요소에 대해서는 방어가 안 된다는 거잖아.’
나는 모험가들이 너무 무방비하게 입고 다닌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불이나 독 같은 것을 막을 수 있는 특수재질의 옷을 입거나 다른 마법방어구를 추가로 착용한 게 아닐까 싶다.
우선 일정한 위력이 뭔지 라우라에게 물어봐야겠다.
“라우라, 마법방어구로 전개하는 방어막의 성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니?”
“네, 레베카님. 제 경험상 싼 것은 화살까지 막을 수 있고, 비싼 건 마력소총탄까지 제한적으로 막을 수 있어요.”
“횟수제한 같은 건?”
“마법방어구마다 흡수할 수 있는 충격의 총량이 정해져있는데 누적된 충격이나 한 번에 가해지는 충격이 총량을 넘어서면 방어막이 사라지고 말아요. 방어막은 원래 투명한 색인데 이게 불투명해지면 곧 정해진 총량을 넘어선다는 것을 의미해요.”
역시 마법방어구의 방어막이 무한히 지속되는 건 아니구나.
좋은 물건이지만 확실한 약점이 존재하니 그걸 믿고 나대지는 말아야겠다.
“방어막에 의존하지 말고 최대한 맞지 않는 게 좋겠다. 그렇지?”
“네, 레베카님. 적과의 거리를 적당히 유지해서 피격당할 일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게 좋아요. 어차피 총을 사용하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겠지만요.”
라우라에게서 여러 가지 설명을 듣고 나니 문득 기사가 모험가와 달리 마법갑옷을 입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마법방어구는 일반적인 갑옷보다는 효율적이지만 경우에 따라 순식간에 무방비상태가 될 수도 있으니 모든 상황을 대비해야하는 기사들은 마법갑옷을 착용하는 게 아닐까?
나중에 마법갑옷이 정확히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아봐야겠다.
분명히 언젠가 나에게 반드시 필요할 날이 올 것 같으니 미리 대비해야지.
그나저나 라우라가 나에게 도움이 많이 되네. 칭찬을 해줘야겠다.
“라우라, 넌 정말 대단해. 내가 물어보는 건 거의 다 대답해주잖아.”
“아, 아니에요. 저도 부모님 밑에서 일을 하면서 배운 것 말고는 잘 몰라요.”
“너희 가족도 모험가였니?”
“아니요. 대대로 현상금사냥꾼이었어요.”
“그, 그렇구나.”
난 라우라가 당연히 전직 모험가인 줄 알았더니 무려 현상금사냥꾼이란다.
그냥 죽이면 그만인 마족이나 괴물 같은 것들뿐만 아니라 까다롭기 짝이 없는 사람을 다루는 직업을 대대로 이어왔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라우라가 노예가 된 이유가 현상금사냥꾼이라는 직업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현상금사냥꾼은 모험가보다 위험한 편이지?”
“아무래도 범죄자들을 적으로 만드니까요.”
“다시 그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은 있니?”
“아니요.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아요. 그것보다 레베카님의 노예로 사는 게 더 좋아요.”
라우라는 세상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체 무슨 일을 당했기에 내 성노예로 사는 게 좋다는 말을 할까?
부모님의 유품이라는 말을 했던 걸 생각하면 아마 현상금사냥꾼으로 일하다가 부모님이 모두 죽고 홀로 죄를 다 뒤집어쓴 게 아닐까 싶다.
“이리 와, 라우라.”
나는 눈가가 촉촉해진 라우라를 내 품에 안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녀를 노예로 산 주제에 위로할 자격이나 있나 싶었지만 그래도 안아주고 싶었다.
“감사합니다. 흐윽, 흑.”
라우라는 내 품에서 숨죽여 울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라우라의 호감도가 올랐다는 알림을 받았다.
라우라가 그동안 얼마나 많이 힘들었으면 겨우 위로를 받은 것만으로 자기를 성노예로 만든 사람에 대한 호감도가 오르는 걸까?
아직 라우라가 훌쩍이는 모습을 보니 호감도가 올라도 마냥 신나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레베카님. 노예 주제에 감히 신세를 졌습니다.”
“괜찮아. 내가 힘들면 숨기지 말라고 했었잖아. 오히려 내 명령을 잘 들어줘서 기쁜 걸.”
나는 라우라가 기특해서 그녀의 볼에다 뽀뽀를 해주었다.
그러자 라우라의 얼굴이 발그레 져서는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난 그게 너무너무 귀여워서 몇 번 더 뽀뽀를 했고 라우라도 웃으면서 받아주었다.
“자, 그럼 계속 가보자! 성과는 내고 돌아가야지.”
나는 라우라의 손을 꼭 잡고서 다시 길을 나섰다.
라우라는 여전히 주변을 경계했지만 가끔 콧노래를 부르며 여유를 가지기도 했다.
그녀의 콧노래를 감상하는 와중에 지도 창을 보던 나는 마침 가까이에 있는 물음표 지역으로 가보기로 결정하고 라우라를 그쪽으로 이끌었다.
우리가 길도 없는 숲을 헤치고 들어가 물음표 지역에 도착하자 지도 창에서 물음표가 지워지고 동굴모양의 그림이 생기면서 이름이 떴다.
‘고블린 번식굴?’
나는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여기는 분명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는 곳이다.
이런 위험천만한 곳으로 라우라를 데리고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여길 방치한다면 더 많은 고블린들이 생겨나서 사람들을 괴롭힐 것이다.
어차피 고블린을 죽여서 돈을 벌 작정이었으니까 여기를 공략해보자.
“라우라, 네 생각은 어때? 여기를 공격해도 좋을까?”
“보초가 없는 걸보면 버려졌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 발자국들과 핏자국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분명 여기에 고블린들이 살고 있어요.”
라우라는 내가 고블린이라는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바로 고블린의 소굴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는 주변을 살펴보며 다른 고블린의 흔적이나 찾거나 덫을 부수면서 안전을 확보했다.
“직접 들어가는 것은 위험하니 불을 피워서 연기를 굴 안으로 들여보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안에 사람이 있으면 어쩌려고?”
“이미 늦었어요. 마족에게 잡혀가 번식도구로 이용된 사람들은 죽여주는 게 예의입니다.”
역시 그렇게 되는 건가? 이 세상의 예의라니 지킬 수밖에 없지.
“그래. 네 말대로 하자.”
나는 라우라와 함께 신속하게 마른 장작을 모아다가 불을 피우고 그 위에 젖은 나뭇가지를 올려두었다.
그러자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고 라우라가 담요를 이용해서 동굴 안으로 연기를 밀어 넣었다.
“이제 뒤로 물러나자.”
“네, 레베카님.”
나는 라우라를 데리고 뒤로 물러나 덤불 뒤로 몸을 숨기고 마력권총을 꺼내들었다.
고블린 번식굴 입구를 조준한 채로 10초 정도를 기다리자 한 무리의 고블린들이 켁켁 거리면서 밖으로 뛰쳐나왔다.
초록색 피부에 코와 귀가 길쭉한 기분 나쁘게 생긴 사악한 유인원들은 눈물, 콧물, 침을 질질 흘렸고 아랫도리에는 좆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정말 꼴 보기 싫었다.
나는 놈들에게 분석스킬을 쓰려다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바로 방아쇠를 당겼고 라우라도 내 공격에 보조를 맞췄다.
그렇지 않아도 정신이 없던 고블린들은 대가리와 몸통에 구멍이 뻥뻥 뚫리면서 죽어나자빠졌다.
놈들의 동족의 피와 뇌수가 사방으로 튀고 배에서 내장을 질질 흘리는 와중에도 무기를 들고 괴성을 내질렀다.
제법 화가 많이 난 모양이지만 곧 우리 손에 전부 죽을 것이다.
“적들이 우리들을 포위하고 있어요. 어떻게 할까요?”
“양쪽으로 나뉘어서 각개격파하자. 어차피 저쪽은 숫자가 그렇게 많지 않아.”
“알겠어요. 조심하세요.”
라우라는 내 손짓에 따라 왼쪽으로 향했고 나는 오른쪽으로 달려갔다.
고블린들은 뭐라고 알아듣기도 힘든 소리를 지르면서 나에게 화살, 창, 돌멩이를 마구 던졌다. 놈들도 근접전은 별로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대부분의 공격을 피해냈지만 간혹 방어막이 작동하면서 공격을 막아냈다.
꼭 내가 마법을 써서 막아내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뭔가 뿌듯했다.
나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놈의 가슴팍에 총알을 박아 넣었고 순서대로 나머지 4마리를 순식간에 정리했다.
“역겨운 놈들.”
나는 남은 한 발을 아직 숨이 붙어있는 고블린의 머리를 날려버리고 재장전을 하면서 주변을 경계했다.
더 이상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고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니까 방금 내가 죽인 게 전부인 것 같다.
고블린은 야수족에 비하면 아무런 위협도 느껴지지 않아서 너무 싱겁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렇게 약한 놈들도 평범한 사람들에겐 충분히 위험한 존재다.
이런 괴물을 이 세상에 집어넣은 장본인이 바로 나라고 생각하니 할 말이 없긴 하다.
“레베카님!”
라우라가 나에게 달려오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된다.
아무래도 나보다 훨씬 빨리 고블린들을 모조리 쓸어버린 모양이다.
“다 끝냈어?”
“전부 처리했어요. 도망친 놈들은 하나도 없고요.”
“잘했어. 이제 연기가 다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안으로 들어가자.”
“네, 레베카님.”
나는 라우라와 함께 우리가 피웠던 모닥불을 끄고 번식굴 앞에서 연기가 모두 빠져나가는 시간 동안 고블린의 마핵을 채취했다.
정말 역겨운 작업인데도 라우라의 표정은 마치 갯벌에서 조개를 캐는 사람들처럼 보람차보였다. 역시 전직 현상금사냥꾼은 다르구나.
총 34개의 마핵을 채취했고 훼손이 심해서 값을 받을 수 없는 4개는 그냥 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역한 냄새가 풀풀 풍기는 고블린 번식굴 안으로 들어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