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97일차 -------------------------
밖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나와 륜은 다시 안드라스의 던전에 진입했다.
일부러 요란스럽게 적습을 알리고 안드라스들이 튀어나오록 유도한 덕분에, 우리는 던전 진입 한 시간만에 제법 많은 양의 안드라스를 잡았다.
52. 이미 2성 안드라스는 확정이었고, 조금만 더 잡으면 3성 안드라스도 가시권에 있었다. 설마 앞으로 9마리가 더 없지는 않을테니, 안드라스 던전을 공략하는 즉시 나는 3성 부하 셋이 확보가 되는 셈이었다.
에일라, 라임, 그리고 안드라스 A.
"생각보다 너 경험치 장난아니게 먹는구나?"
"그거 저 과식한다는 말씀이세요? 제가 많이 먹는 건 주인님이 주시는 것 밖에는 없거든요!"
의외로 륜은 과식이라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화를 내며 덧붙이는 말은 기특하기 짝이 없었으나, 나는 륜이 이해하기 쉽게 말을 바꾸었다.
"너 성장하려면 안드라스들 제법 많이 죽여야 할 것 같다고."
"그런 의미라면 뭐. 죄송해요, 오해했어요."
륜의 레벨은 이제 28. 2성 안드라스들도 제법 많이 죽인 것을 생각하면 성장이 상당히 더뎠다. 던전의 구조가 륜이 활약하기에 적합한 구조가 아니었다면, 아마 륜은 지금쯤 아직도 25레벨 전후에서 정체되어 있었을 것이다.
'계속 직진만 해서 다행이지.'
안드라스의 던전은 생각보다 구조가 상당히 단순했다.
나선형.
오직 일자로 된 긴 통로만 계속 이어졌다. 계속 앞으로만 나아가는 길에 이상을 느껴서 미니맵을 열지 않았다면, 아마 도중에 계속 나아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갈팡질팡했을 것이다.
'더럽게 넓네.'
입구부터 시작하여 들어온 이가 전혀 이상한 기운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통로는 잘 휘어져있었다. 한 시간 가까이 걸었음에도 이제 던전을 두 바퀴 정도 돌았을 정도로 던전은 시간을 끌게 하는 구조였다.
"중간에 비밀 통로 같은 게 있을텐데."
"하지만 그런 거 전혀 못 찾았는 걸요."
륜은 귀를 쫑긋 세웠다. 바람 소리를 듣는다고 하며 동굴 여기 저기를 살폈지만, 발견한 것은 안드라스의 이상한 진흙이 묻은 깃털 뿐이었다. 륜은 기겁하며 그걸 바닥에 내던졌었다.
"이런 던전 만들면 똥겜 소리 듣는데."
"네?"
"그냥 던전 구조가 더럽다고. 이러면 공격을 나갈 때 완전 힘들잖아? 안 그래?"
"뭔가 다른 방법이 있는게 아닐까요. 가령 날개로 날아서 도망친다거나."
"그렇.... 젠장."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내가 던전의 앞뒤로 구멍을 뚫어 탈출구를 만든 것처럼, 안드라스도 빡대가리가 아닌 이상 자신이 도망칠 탈출구를 만들어 놨을 것이다.
대륙에 마구잡이로 열리는 던전의 게이트는 던전의 '입구'로 지정된 곳으로 통한다. 그리고 안드라스는 입구부터 심처까지의 길을 상당히 길게 뚫어놓았다.
"진짜 귀찮네."
"주인님, 동굴 벽을 파고 가는 건 어때요?"
"흙벽이나 마물벽이나 걸리는 시간은 비슷한 것 같아. 륜아."
륜은 내 지시와 함께 활을 들어올렸다. 미니맵상으로는 어느덧 중간까지 온 것 같았고, 통로가 갑자기 좌우로 넓어지는 구역이 생겼다.
"주인님. 이거 그거죠?"
"미로네. 씹쌔끼."
포르네우스도 안하는 짓을 여기다가 하다니. 나는 좌우로 갈라진 통로에 짜증이 치밀었다.
"그리고 함정도 파놨어."
나는 그 짜증을 담아 천장을 향해 프라이팬을 던졌다. 륜이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고, 곧 투척한 프라이팬에 날개를 얻어맞은 마물이 바닥에 풀썩 떨어졌다.
"이, 이 더러운 침입자가!"
"얘는 특이하네?"
나는 바로 마물의 배를 걷어찼다. 마물은 꺽꺽소리를 내었고, 배를 움켜잡으며 쓰러졌다. 나는 마물의 '머리카락을 잡고 일으켜세웠다.
"너 안드라스 맞냐?"
"주인님의 존함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크헉...."
마물은 안드라스의 상위종처럼 보였다. 적어도 새대가리는 아니었고, 오히려 인간에 가까운 얼굴이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등 뒤로 난 날개가 아래를 향하고 있다거나, 아니면 인간의 얼굴을 깃털이 보호하고 있다거나.
2성까지의 안드라스가 그저 새대가리 인간이었다면, 이 안드라스는 수인(獸人)이나 조인(鳥人)으로 불러야 할 것 같았다.
"이건 또 몇 성이야?"
<아인 안드라스> ★★★ Lv.45
"헐."
3성짜리가 이리도 허망하게 잡히다니. 나는 어이가 없었다. 아인 안드라스가 떨어진 바닥에는 구겨진 프라이팬이 나뒹굴고 있었다.
"프라이팬이 너무 강했나?"
"주인님이 강하신 것 같은데요."
"그건 그렇지."
이제는 어엿한 4성인 내가 10kg은 거뜬히 넘을 물건을 전력으로 집어던졌고, 그걸 다른 곳도 아닌 날개에 얻어맞았으니 충격은 보통이 아닐 것이다.
"미안."
"미안하면 당장 목을 내놓고 꺼져라, 이 악독한 괴물들아!"
"너 근데 왜 말 끝에 라스를 안붙이냐라스."
"이, 이 놈!"
아인 안드라스는 얼굴을 붉히며 나를 향해 침을 뱉으려 했다. 나는 바로 그 놈의 가슴을 발로 밟고 지긋이 눌렀다.
"내가 묻잖아."
"라, 라스는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것이다! 진화한 나는 인간의 입을 가졌기에...!"
"아, 대충 알아들었다. 다음 질문."
나는 아인 안드라스의 목을 들어올려 반대편을 가리켰다.
"야,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어디야."
"말할 것 같으냐?!"
"10초 안에 말 안하면 죽는다. 10, 5, 2-"
"주인님?"
륜이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왜?"
"10초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왜-"
"하핫! 잘가라스!"
아인 안드라스는 그사이에 회복한 힘을 짜내어 내게서 벗어났다. 날개를 크게 펄럭이며 나와 륜의 눈을 가렸고, 아인 안드라스는 그 사이에 내 손을 손톱으로 찌르고 구속에서 벗어났다.
"끼에엑!"
검은 날개를 펄럭이고 바닥을 달리며 도망치는 모습이 영락없는 닭둘기였다.
"아, 주인님?! 죄송해요! 제가 말을 거는 바람에!"
"아냐. 잘 말했어."
나는 오히려 륜을 칭찬했다. 륜이 말을 걸어준 덕분에, 나는 수월하게 우리가 가야할 길을 찾았다.
"방금 그 녀석이 어디로 도망쳤냐?"
"오른쪽이요!"
"그럼 오른쪽으로 가자."
"네?"
나는 내 손에 묻은 깃털을 구겨 바닥에 내던졌다.
"설마 살려고 도망친 놈이 막다른 길을 선택했겠냐."
안드라스는 날개가 꺾여있었고, 인간의 다리로 바닥을 달리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그 발자국은 아주 미약하게 땅에 남아있었다.
"막다른 길이어도 괜찮지."
"잡으면 바로 죽이시게요?"
"그래. 네가."
킬카운트는 1이라도 륜의 경험치는 엄청 오르게 되리라. 나는 륜과 함께 안드라스가 도주한 뒤를 쫓았다. 찐드라스를 만나면 꼭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었다.
"쟤 길안내 진짜 잘해준다. 그치?"
우리는 아주 수월하게 갈래길을 하나도 틀리지 않고 돌파했고, 소용돌이 모양을 그리는 던전의 정중앙 바로 앞에 도착했다.
"어우, 드럽게 바글바글하다."
새대가리들이 일제히 우리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까마귀처럼 검은 깃털과 부리, 그리고 마물 특유의 붉은 눈동자는 모두 나와 륜을 가리키고 있었다.
"적이라스."
"침입자라스."
"대장이 말한 괴물들이라스."
저벅. 저벅.
안드라스들은 손톱을 날카롭게 세우고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고, 륜은 다시 활을 들어올렸다.
"너한테는 딱 좋은 사냥터네."
"적이 일직선으로 와서요?"
"어. 조준안하고 앞으로만 쏘면 되잖아."
"그건 그렇죠...."
륜은 영혼없이 웃으며 활의 시위를 당겼다. 조준따위는 필요 없었고, 통로의 맞은 편 공동을 향해 아무렇게나 대충 화살을 쏘았다.
"뜨하악!"
바글바글하던 안드라스 하나가 화살을 맞고 쓰러졌다. 아무렇게나 쏴서 아무 곳에나 맞겠다 싶기는 했지만, 설마 화살이 하필이면 영 좋지 못한 곳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도 모자라서 뒤의 안드라스의 것을 꿰뚫어버렸다.
"더블, 아니 쿼드라킬이네."
륜은 동시에 안드라스 두 마리와 그들의 아들까지 없애버렸다. 륜은 허탈하게 웃으며 다시 활의 시위를 당겼다.
"하하, 편하네요. 하하."
피슝, 피슝, 피슝.
륜은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활을 쏘는 걸 반복했다. 손가락이 저려오기 전까지 연이어 화살을 쏘았고, 안드라스들은 화살을 피할 틈도 없이 몸 여기저기에 바람구멍이 생겼다.
"이, 이 망할 놈들이!!"
"아, 저 새끼 숨어있는 거 봐라?"
나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대장이라는 3성 안드라스가 일반병 사이에 숨어있음을 직감했다. 륜은 바로 시위를 겨눴지만, 대장 안드라스는 금세 위치를 바꿨다.
"모두 잘 들어랏! 주인님께서 준비가 끝나기 전까지 저것들이 주인님의 침소에 들어가게 둬서는 안 된다!"
"""우오오오오!!!"""
대장 안드라스의 사기진작에 안드라스들은 고무되었다. 륜은 기가 살짝 죽었지만, 나는 안드라스들의 환호에 편승하여 소리를 질렀다.
"우오오오오!!"
"주인님?"
"륜아, 너는 절대로 저러면 안 된다. 알았지?"
누가 새대가리가 진화한 놈 아니랄까봐 주인의 신상에 대해 함부로 언급하는게 멍청하기 짝이없다. 나는 륜을 번쩍 들어올려 내 어깨 위에 올렸다.
"륜아, 혹시 저 반대편에 문 같은게 보이냐?"
"네. 철문이 하나 있어요. 안쪽에서 닫는 것 같은데, 지금은 굳게 닫혀있는 것 같아요."
륜은 엘프 특유의 눈썰미로 공동 너머의 심처를 확인했다. 안드라스들은 주먹을 불끈 쥐며 저곳만큼은 사수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륜. 여기서는 두 가지 공략방법이 있다."
나는 륜을 어깨에서 내려 내 앞에 끌어안았다. 한 팔에 목덜미부터 엉덩이까지 걸쳐진 륜은 내가 륜의 뒤를 개발하던 자세 그대로 내려갔지만, 지금은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이 자세, 생각해보니 사격하기 딱 좋네요."
"원래 이런 의도지만 말이다."
"주인님, 끝나면 저 드디어 하시는 건가요?"
"물론."
발그레해진 륜은 활을 쏠 자세를 취했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서 하던 얘기를 마저 하자면, 던전 공략 방법은 하나는 일일이 다 때려잡고 가는 방법이지. 원래 보스방 전에 레벨링 하는 건 국룰이거든?"
"안드라스들 다 죽이겠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래. 그게 원래 공략방법일 거야. 아마 딱 666마리 있는게 아닐까 싶은데."
어지간한 운동장을 꽉 채우고 있는 새대가리의 향연은 정말 눈뜨고 못볼 광경이었다. 옷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신의 새대가리 남녀들이 뭐가 잘났다고 저리 흔들어대는지, 나는 차마 저들과 드잡이질을 할 의욕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참 특이하네. 던전 구성도 그렇고, 막판에 이렇게 부하들을 엄청 많이 몰아둔 것도 그렇고. 륜아, 무슨 의도인 것 같니?"
"글쎄요. 공략하는데 엄청 시간은 걸리겠다 싶은, 아."
륜은 찐드라스의 의도를 깨달은 듯 했다.
"뭔가 시간을 벌려는 속셈이군요!"
"그래. 근데 역시 빡대가리야. 시간을 벌려고 했으면 600마리 일렬로 기차놀이하듯 쭉 세웠어야지. 중간에 잡기 귀찮아서 돌아가게."
한 곳에 몰아두면 '여기만 다 쓸어버리면'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메어리가 있었다면 화염마법으로 전부다 불질러버리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유감스럽게도 내 옆에 있는 부하는 륜밖에 없었다.
"그럼 저 열심히 쏠게요! 주인님, 내려주세요!"
"그래. 근데 륜아. 서브 퀘스트 굳이 안 깨도 던전은 빼앗을 수 있어."
나는 내 목을 가리키고 손날로 그었다. 그리고 손가락 위를 모두 한 번씩 쓸었다.
<근력강화>.
<지구력강화>.
<인내심강화>.
<혈류가속>.
...그리고
<광폭화>.
"쿠후으, 쿠흡."
점차 내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안그래도 부풀어있던 몸이 점점 더 부풀어오르기 시작했고, 심장은 터지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뜨거워졌다.
우우우웅--!!
손가락에서부터 이어진 문신이 팔 전체를 휘감으며 붉은 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손과 팔에서 시작한 문신은 내 가슴과 목 아래까지 붉게 달아올랐고, 내 시야는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했다.
"끄워어어-----!!"
나는 전방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막 통로 안쪽으로 들어올려던 안드라스들이 기겁하며 뒷걸음질쳤고, 나는 륜을 꽉 붙잡고 전방을 향해 내달렸다.
쿵쿵쿵쿵!!
한 걸음 내딛을때마다 던전이 크게 흔들렸다. 나는 투우장의 황소처럼 내달렸고, 안드라스들의 일부가 갈라졌다.
"이 멍청이들아! 겁먹지 마랏!"
적 대장 안드라스가 호통을 쳤다. 안드라스들은 고개를 도리질 치고는 나를 막아세우려 팔을 들었다.
"주인님?!"
"꽉 잡아라!!"
륜은 내 목덜미를 끌어안았고, 나는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뛰어올랐다. 바닥을.
"히이익?!"
안드라스들이 비명을 질렀다. 나는 전방으로 돌진하던 추진력 그대로 안드라스들을 뛰어넘었고, 곧 무게 때문에 금방 추락했다.
그리고 내 아래에는 발판이 넘쳐났다.
쿵!
나는 발을 뻗어 새대가리를 짓밟았다. 그리고 그 반탄력을 이용해 다시 앞으로 뛰었다.
"끄에엑!"
짓밟힌 안드라스는 괴성을 지르며 쓰러졌다. 나는 혈류가속으로 안드라스들의 대가리 위를 달렸다.
쿵쿵쿵쿵퍽쿵쿵!
중간에 실수로 미간을 밟은 놈이 하나 있기는 했지만, 나는 불과 30걸음 만에 철문에 도착했다.
"륜, 뛰어!"
나는 륜을 내 위로 집어던졌다. 륜은 그대로 공중제비를 돌며 빈 공간에 낙하하려고 낙법을 취하고 있었고, 나는 다리를 배쪽으로 모았다.
"주인님?!"
나는 전신의 힘을 다리에 모아 뻗었다. 노리는 곳은 철문.
어차피 부수어 열어야 할 철문이라면, 전력으로 달려서 몸을 날릴뿐!
콰------앙!!
철문은 벌컥 좌우로 열렸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통짜로 된 걸쇠가 고리와 함께 박살이 났다. 나는 그 위를 피해 몸을 둥글게 말며 굴렀다.
"푸흐, 흐읍."
나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젓고는 전방을 주시했다. 소환진의 위, 다리를 활짝 벌린 채 홍조가 가득한 얼굴로 눈물을 글썽이는 여인이 몽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히야, 바로 밥상을 차려놓으셨네. 개꿀."
검은 깃털옷의 여인, 안드라스는 품에 검은 광택의 알을 가지고 있었다. 방금 낳기라도 한듯 따끈따끈한 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누...구?"
"잘 먹겠습니다."
나는 바로 바지를 내렸다.
밥상은 차려졌고, 나는 숟가락을 들어올렸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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