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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37화 (37/800)

000373일차 -------------------------

엘프와 조우한 순간, 촌장을 위시한 구조단은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프가 왜?

여기는 던전이 아니었던가?

귀를 보면 하이엘프인데? 여기는 엘프의 영역인가?

모두가 혼란에 빠졌고, 하이 엘프는 활을 내려놓으며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륜. 너희들은 무슨 의도로 여기에 온 거지?"

"......사람을 구하러 왔소!"

촌장이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섰다. 그나마 그가 가장 강하기도 했고, 엘프와 마주한 경험이 있는 자였다.

'시발, 숲에 있어야 할 놈들이 여기는 왜 와!'

촌장은 뭔가 꼬여도 제대로 꼬였다는 생각에 눈앞이 아뜩해졌다.

행여나 이 동굴이 엘프들의 영역이라고 한다면, 리처드의 소꿉놀이 기사단이나 마법사인 메이가 실종된 것도 당연지사였다.

'엘프만큼 자기 영역에 집착하는 것들도 드물어.'

그래도 최소한의 인정머리는 있고, 동족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다. 촌장은 빠르게 머리를 굴려 손사레를 쳤다.

"아이들을 혹시 못보셨습니까?! 저희는 어린 아이들을 구하러 왔습니다!"

"아이?"

륜이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는 활을 내리며 엄지로 나무로 된 감옥을 가리켰다.

"어린 아이들은 없었어. 지금 여기에 있던 인간은 이 둘이 다였을 걸."

륜은 옆으로 물러서며 바닥에 눕혀놓은 여인들을 가리켰다. 나무 줄기로 칭칭 휘감긴 두 여인 중 한 명은 촌장과 구조단이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메이!!"

마법사 메이는 나신이 된 채 꽁꽁 묶여있었다. 촌장이 가장 먼저 나서서 메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

메이는 흐리멍텅한 얼굴로 눈을 떴다. 입에는 나무줄기로 된 재갈이 물려있었고, 메이는 촌장의 얼굴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으읍?"

"그래, 나다! 젠장!"

촌장은 메이의 입을 묶은 줄기를 뜯어내려했다. 하지만 줄기는 워낙에 단단했고, 손으로 쉽게 뜯어지지가 않았다.

"읍, 으읍?"

입이 봉인되어 말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고개는 움직일 수 있다. 구조단이 메이에게 이것저것을 물으며 아이들의 행방을 찾는 사이, 륜은 금발의 여인을 어깨에 둘러멨다.

"으.... 무거워."

"그건 누구죠?"

"...그건 네가 알 바가 아니야."

륜은 차가운 눈으로 촌장을 쏘아붙였다. 촌장은 행여나 엘프가 자신을 공격할까 두 손을 들어올렸다.

"미안합니다."

"흥, 됐어."

륜은 공동을 둘러보더니 몸을 돌려 구조단이 들어온 반대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말입니다."

촌장은 기시감을 느끼고 륜을 불러세웠다.

"혹시 이쪽으로 오던 이상한 괴물들을 보지 못했습니까?"

"괴물?"

"예, 그 왜, 팔이 엄청 길어가지고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 놈들인데."

촌장은 이름도 모를 괴물-구울의 행동을 따라하며 묘사했다. 륜은 그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글쎄. 모르겠는 걸. 나는 저쪽으로 들어왔을 뿐이야. 오는 길에 괴물은 못 봤는 걸?"

륜은 자신이 등지고 선 반대편 통로를 가리켰다.

"어쨌든 인간들, 숲에는 올 생각 하지마. 여기서 본 것 만으로도 쏴버리려다가 참았으니까."

"...선처에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륜이 몸을 돌려 금발의 여인을 데리고 뒤돌아섰다. 촌장은 곳곳이 녹아내린 엘프의 옷을 보며 침을 꼴깍 삼켰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엘프도 여기 들어오다가 혼쭐이 났구나.'

엘프마저 옷이 넝마가 될 정도로 위험한 던전이라니. 촌장은 침을 꿀꺽 삼켰다.

'빨리 도망쳐야 해.'

메이라도 산게 다행이다. 촌장은 메이를 깨웠고, 메이는 곧 정신을 되찾았다.

"...?"

"어, 그래. 저 엘프 님 덕분에 살았다."

촌장은 반대편 통로로 사라지는 륜을 가리켰고, 구조단에 시달리던 메이가 륜의 뒷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읍! 읍읍읍!"

메이는 다리를 휘적거리며 온몸으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바람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하반신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몇몇 이들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일단 마을로 돌아갑시다."

"누구 단검없어? 잘라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사각, 사각. 촌장은 대번에 작은 단검을 꺼내 재갈처럼 묶인 줄기를 잘라냈다. 입의 자유를 되찾은 메이는 턱으로 사라지는 엘프의 뒤를 가리키며 비명을 질렀다.

"저 년도 괴물이야! 괴물이라고!!"

분노어린 절규가 공동을 가득 메웠다. 금발의 여인-에일라를 반대편 통로까지 들고간 륜은 에일라를 어둠 속으로 건넸다.

크르르.

붉은 구울이 에일라를 받아들고 어둠속으로 다시 사라졌다.

"이런 미친...!"

엘프가 괴물과 손을 잡았다? 이건 단순히 화전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인류 연합 전체에 알려야할 문제였으며, 사냥꾼들은 저마다 무기를 빼들었다.

"함정이다...!"

"너, 도대체 누구야아!!"

촌장은 공포에 질린 자신의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륜은 한 번 어깨를 으쓱인 뒤, 검은 활을 들어올리며 시위를 당겼다.

"륜. 주인님의 것."

파--앙!!

륜은 화살도 없이 당긴 시위를 놓았다. 그와 동시에 날카로운 파공성이 울렸고, 촌장의 볼을 무언가가 스쳤다.

"바람화살...?"

하이 엘프들만의 권능. 바람 정령의 힘을 빌어 바람을 화살로 만들어 쏘는 기술은 명백히 인간을 죽이려는 살의가 깃들어있었다.

"칫, 맞을 줄 알았는데."

륜은 입꼬리를 비틀었고, 다시 활을 들어 시위를 당겼다.

"젠장! 엘프가 미쳤다! 모두 도망을-"

"저 년은 부하야! 따까리라고! 진짜는-"

쿠흡.

어디선가 거친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울렸다. 그들은 소리가 들려온 곳-수 미터 높이의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곳에는-

"끄어어어어!!"

괴성을 지르는 녹색의 돼지 괴물이 있었고, 괴물은 천장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고 바닥에 떨어졌다.

쿵!

하늘에서 오크가 떨어졌다.

"어...."

오크가 떨어진 지점은 촌장의 바로 앞. 메이는 비명을 지르며 다리를 일으켰지만, 상체가 꽁꽁 묶인 탓에 금방 바닥에 엎어졌다.

"이거, 무슨...."

"아아. 이것은 말이다."

쿠흡. 코를 먹는 소리와 함께 오크는 촌장의 멱살을 잡았다.

"공습이라고 하는 것이다."

꾸르르륵!

하늘에서 슬라임의 비가 쏟아져내렸다.

* * *

으적, 으적!

슬라임들이 사냥꾼들의 몸을 짓눌렀다. 최대한 몸을 넓게 펼쳐서 움직이지 못하게끔 눌렀고, 기습을 당한 사냥꾼들은 아둥바둥하며 슬라임의 구속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큭, 너무 커!"

빅슬라임에 깔린 남자 사냥꾼 한 명은 하반신이 전부 먹힌 채 발악을 했다. 그의 손에는 날카롭게 벼려진 단검이 있었다.

"죽어, 죽으라고!"

푹, 푹푹.

하지만 빅슬라임은 단검에 맞아가면서도 꾸역꾸역 사냥꾼의 몸을 목 아래까지 전부 먹어치웠다.

"꺄아악!! 미친, 이 새끼들 뭐야!!"

일반 슬라임에게 덮쳐진 여자 사냥꾼은 손으로 슬라임의 피부를 쥐어뜯으려 안간힘을 썼다. 빅슬라임보다는 상대적으로 힘이 모자란 슬라임은 사냥꾼들과의 드잡이질에서 밀렸다.

크르륵!

그 때, 구울들이 움직였다. 륜의 뒤에서 달려온 다섯 마리의 구울들은 밀리고 있는 슬라임들에게 합세하여 둘이서 협공을 했다.

캬아악!!

구울들은 사냥꾼들의 손을 꽉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막았다. 하반신은 슬라임에, 상반신은 구울에게 잡힌 사냥꾼들도 옴짝달싹을 못했다.

"이, 이 놈들 우리를 제압하려 하는 거야!!"

"으아악!!"

몇몇 사냥꾼들이 공포에 질려 몸을 돌렸다.

슬라임과 구울, 그리고 빅슬라임들의 습격에 의해 제압당한 사냥꾼들은 무려 10명.

이미 전력의 절반이 제압당했고, 구조대의 우두머리인 촌장은 왠 덩치 큰 괴물에게 붙잡혀 살해당하기 일보직전이었다.

"큭, 크으윽!"

"......"

괴물은 아무 말 없이 촌장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촌장은 괴물이 자신을 어떻게 먹을까 고민하는 것 같은 기색을 느꼈고, 살아남기 위해 품속에서 작은 무언가를 꺼냈다.

"윽, 크으윽...!"

"......!!"

촌장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목숨같이 아끼던 마도구의 버튼을 눌렀다.

파------앗!

하얀 빛이 터져나옴과 동시에 괴물은 촌장의 멱살을 잡았던 손을 놓았다. 괴물의 앞에서 터뜨린 마도 섬광탄 덕분에 촌장은 괴물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으아악!!"

촌장은 시야가 회복되지 않았음에도, 일단 괴물에게서 반대편으로 달렸다. 멀찍이 원진을 그리고 도망을 치려던 사냥꾼들은 소리를 지르며 촌장을 유도했다.

"여기!"

사냥꾼 한 명이 촌장의 손목을 잡고 이끌었다. 도망치는 사냥꾼들을 추격하는 마물들의 행동은 굼떴고, 사냥꾼들은 급히 도망쳤다.

"아악!"

"살려줘!"

"니들끼리 도망치지 마---!!"

마물들에게 잡힌 이들은 배신감에 절규했으나, 사냥꾼들은 눈물을 머금고 몸을 돌렸다.

"일단 도망쳐! 도망쳐서 살아남은 다음에 생각하자!"

"...꼭 구하러 올게! 기다려!"

사냥꾼들은 도망쳤다. 던전의 통로는 도주하기 너무나도 쉬운 일직선이었고, 괴물들은 더이상 추격하지 않았다.

"아으, 아으으...."

사냥꾼 한 명에게 업힌 메이는 이 괴물같은 던전에서 도망칠 수 있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렸다. 던전 내에서 있었던 일은 절대 남들에게 이야기하지 못할, 너무나도 충격적인 상황이 계속 될 뿐이었다.

"이제 도망만 치면-"

쿠웅.

갑자기, 통로가 무너졌다.

그들이 들어온 입구는 천장부터 무너져내렸고, 그들은 졸지에 막다른 길에 몰렸다.

".....갇혔어?"

사냥꾼들의 눈에 절망감이 내려앉았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여유가 되니 한 편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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