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9/21)

13...

“지금 일하는 중이에요.”

“누가 뭐라고 했나?”

“...그렇게 지켜보고 있으니까.. 제가 거북해요.”

“왜?”

“...네?”

“왜 거북하냐고?”

“그거야.. 다른 직원들 시선도 있고.. 부장님도 계시는데 그렇게 앉아 계시면...”

“김부장님?”

“네! 부르셨습니까. 민우차장님.”

“제가 있는 게 거북하신가요?”

“아닙니다. 저희가 영광이죠.”

“영광이라고 하시는데!?”

“....”

권력이란 무엇일까..

돈이 전부인 세상에서 권력은 곧 돈이요,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난 삼자도 아닌 완전한 타인으로 보영과 그의 약혼자 민우란 남자를 훔쳐보고 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렇게 보영에게 전화를 받은 난 무작정 보영의 회사를 찾아왔다. 회사에 찾아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생각조차 하지 않고 부장의 따가운 눈치를 받으며 난 회사를 뛰쳐나왔었다.

그리고 저번에 만났던 그 여자의 안내로 난 또다시 회의실로 향하게 된다. 

회의실에서 약 10여분을 기다리며 창문 너머의 풍경에 집중하던 난 보인 보영의 모습에 의자에서 엉덩이를 막 때게 되었다. 내게 똑바로 걸어오던 보영의 모습에 회의실의 문고리를 먼저 잡고 돌리려던 난 갑자기 발걸음을 돌리는 보영의 모습에 손보다 먼저 시선을 돌리게 된다.

민우란 남자였다. 

보영의 회사에는 프라이드를 존중한다며 찾아오지 않던 민우란 남자가 개인 비서로 보이는 한 남자를 대동하고 당황하는 보영에게 미소 짓고 있었다.

고급스러운 양복과 그에 맞는 깔끔해 보이는 외모의 스마트한 미소였지만 내겐 얍삽한 놈의 비열한 웃음처럼 보였다.

당황하며 내가 있는 회의실로 곁눈질을 하는 보영의 모습에 난 재빨리 문을 숨겼다.

그리고 지금 회의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파티션 너머의 둘의 대화를 엿듣고 있다.

내 존재는 전혀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버린 채...

이게 현실이라는 생각에 더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그만.. 가주세요.”

“나도 바쁜 사람이야. 모르나?”

“그러니까요.. 여기 직원들도 정말 거북해하고 있어요.”

“아!.. 그런가?”

“...네.”

“부장님.”

“..예?”

“지금 진행 건이 몇 건입니까?”

“..네? 갑자기 무슨...?”

“여기 팀이.. 하나. 둘..다섯.. 일곱 명인데.. 일곱 명이 달라붙어서 하는 일이 몇 건이냐고요.”

“보자.. 지금 보영팀장이 맡은 광고 건하고.. 디자인 건이 2건이고..”

“오늘 하루는 워크숍으로 전환한다고해서 크게 지장이 생길까요?”

“우,,워크숍이요?”

“네. 최고급 프랑스 요리에 샤또 라피트-로칠드를 곁들여서 앞으로의 영업 계획을 더 창조적이고 혁신적으로 발전 시킬 수 있는 워크숍을 갖는 것도 업무능력향상에 도움이 될 거 같은데 말입니다.”

“샤또 뭐라고요?”

“하하하하~. 그냥 와인입니다.”

“네.... 그래도 갑자기 워크숍은...”

“아! 권비서님. 워크숍에 저희 영업부 직원들과 조인하는 것도 괜찮을 거 같지 않습니까? 부장님한테 배울 것도 많을 거 같은데... 상호 협력관계에도 도움이 될 거 같고..”

“협력.. 그렇다면 저희가 접대를 해야죠. 감히 세....”

“인당 110만이에요.”

“무..뭐!???? 뭐가? 뭐가 110만이라고?”

“아닙니다. 당연히 저희가 모셔야죠. 얘기 들어보니 아직 보영이가 승진턱도 내지 않은 거 같은데.”

“...”

“.....”

“..”

신난 건 여직원들이었다.

사또 뭐시기란 와인이 한 병에 얼마인지도 모르는 나였지만 정확히 얘기해주지 않아도 민우란 놈이 넌지시 말한 최고급 프랑스 요리의 정체와 보영이가 말한 인당 110만원이라는 식사비용만으로도 충분히 어떤 곳인지, 어떤 음식인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입이 쩍 벌어지는 금액에 놀란 나와는 달리 대부분이 여자직원인 보영의 팀은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조금은 자존심이 좀 상한 듯 부장이라는 남자의 얼굴이 일순간 구겨지긴 했지만 노련한 관록을 보여주듯 이내 민우란 놈의 말을 잘 받아 넘기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나만이 회의실 문 바로 앞에서 몸을 숙인 채 이 관경에 분노와 함께 내 자신의 지금 상태에 대해 구겨진 자존심을 느끼게 된다.

“아! 보영팀장님 아까..”

“가요. 어차피 갈거라면 빨리 나가요.”

“그게 아니고 아까 그..”

“뭐해요? 준비 안해요? 남아서 일 할래요?”

“....”

날 안내한 그 싸가지 없는 여자가 보영의 말에 서둘러 핸드백을 챙기기 시작한다.

일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던 나였지만 곧 민우란 놈이 꺼낸 말에 더 납작 허리를 숙이게 된다.

“우리는 남아서 얘기 좀 하지.”

“....네?? 민우씨가 제 승진턱을 낸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낸다고 했지 누가 같이 동행한다고 했나?”

“....”

“부장님 괜찮죠?”

“....그..그럼요.”

“권비서님이 안내하는 곳으로 가시기만 하면 됩니다.”

“..네.”

권비서란 놈의 안내로 쓰나미가 밀려가듯 일순간 사무실 안이 조용해졌다.

적막감이 흐르는 사무실 안엔 보영과 민우, 그리고 회의실에 숨어 있는 나만이 존재했다.

이런 자리가 보영 역시 어색한지 침묵을 깨기는커녕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노트북만을 열심히 두드리기 시작한다.

그런 보영의 모습을 쳐다보는지 발소리조차 없던 민우가 누군가의 의자에 앉았는지 의자의 바퀴 소리가 조용한 회의실 안까지 들려왔다. 숨죽여 유리창 너머로 고개를 들어 사무실안을 살피게 된다.

파티션으로 안의 책상들 중 한 의자의 뒤쪽을 보여주며 보영을 향해 앉은 민우른 보이는 오른손에 직원의 것인 듯한 털 달린 볼펜으로 책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

“.....”

“아~.. 신경이 쓰였나?”

“...이게 무슨 짓이죠? 갑자기 낮에 전화를 걸어서 회사까지 찾아온다고 하질 않나... 와서는....”

“언제부터 내가 하는 일에 토를 달기 시작했지?”

“..네??”

“난 말이야..”

책상을 소리 내며 치던 민우가 볼펜에 달린 털들을 손으로 쥐어뜯고는 책상위에 털어버리기 시작했다. 그리곤 머니클립으로 쌓인 파란색 수표중 하나를 꺼내 볼펜이 꽂혀 있던 꽂이 함에 돌돌 말아 집어넣으며 말을 이어갔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남의 것을 탐한 적이 없었어. 왠 줄 아나?”

“....”

“남이 가지고 있는 건 난 필요가 없었으니까. 아니! 내가 손에 넣고자 하는 건 무조건 가질 수 있었고, 한 번 손에 넣은 건 실증이 나서 버릴지언정 남한테 준적도 단 한 번도 없었지.”

“..갑자기.. 무슨 말이세요?”

“내년에 어르신이 교육감에 출마하신다고 들었는데.”

“......”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실 거야. 성품이 곧고 인맥도 넓으시지만 정치엔 거의 문외한이신데 교육감이라니.. 지원만이 아니라 조력자도 필요하시겠군.”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요?”

“서울에 있는 오성급 호텔이란 곳이 얼마나 짜라시의 제공거리가 되는 곳인 줄 모르냐?”

“호텔이요?”

“후계자 구도를 굳히고 있는 나한테 애인의 동창 모임 같은 사소한 가십거리도 타격이 될 수 있다는 걸 모르냔 말이야. 물론 단순한 동창 모임일 땐 크게 상관이 없겠지만 말이야.”

“그..그건...”

“맞지!? 단순한 동창 모임이었지!”

“......”

“아닌가?”

“....맞..아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일반인과는 다르다는 걸 잘 알 텐데. 사회 모범이 되야 할 위치에 있는 우리가 잠깐의 유희에 빠져서 제정신 못 차린다고 하면 개나 소하고 다를 게 뭐 있겠냔 말이지.”

“개..라뇨. 민우씨도 똑같은 한 사람일..”

‘탁!!!!!!!!!!’

책상에 힘을 줘 세게 눌러대던 털 빠진 볼펜이 부러졌다.

“정도껏 하라고... 뭐든 지 적당한 선에서 멈출 줄 알아야 현명한 사람이라는 걸 모르나?”

“...”

“정말 몰라?” 

“알아요.... 죄송해요.”

보영이 고개를 숙인다.

민우 놈의 말도 안되는 말에 수긍을 하는 보영의 모습에 화까 치밀어 올랐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지 숨어있는 것뿐이었다.

영화처럼 모든 걸 내려놓고 돈과 권력에 맞서 싸우는 히로인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평범한 난 그저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바닥을 세게 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엄청나게 찌질 하게 보일 진 모르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지 분노를 키워가며 주먹 쥔 손에 피가 고일정도로 힘을 주는 이것뿐이었다.

고개 숙인 보영을 나와는 다른 시선으로 쳐다보던 민우란 놈이 다시 입을 연다.

“..내가 너무 흥분을 했군.”

“...”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지금처럼 살면 된다는 거야. 당장이라도 지금 다니는 회사를 때려치우게 하고 싶지만 그래도! 당신의 자아를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더 참아 줄 테니까. 너무 막 나가지만 말라고.”

“자아요?”

“나도 꼭두각시 같은 여자한테는 흥미가 없다고.”

“....꼭..두..각시.”

“왜 그런 표정을 짓나?”

“...아니에요.”

“아!...”

“....?”

“그리고 한 가지만 더 부탁하지. 저번에도 말했지만 옷 차림엔 좀 더 각별히 신경 좀 쓰지 그래.”

“옷차림이라뇨?”

“호텔에서 찍힌 사진엔 평소 자네답지 않은 모습이던데.. 남들 입에 올라봐야 좋을 거 없잖아?”

“칵테일 드레스였는데.. 그게 문제가 되나요?”

“....”

보영이가 마지막으로 발끈하는 모습으로 자신의 패션까지 관섭하는 민우의 말에 반박하듯 얘길 했다. 아주 짧은 침묵이 다시 이어지나 싶었는데.. 그 침묵의 주가 민우란 놈이란 걸 알 수 있었기에 보영의 이런 반박에 기분 좋을 수만은 없었다. 

“드레스라는 건 말이야. 그 장소와 어울리는 부류에 따라서 결정 되는 거라고. 옷이 날개라는 말.. 날개를 달 수 있는 신분한테나 어울린다는 거 모르나? 거기 있던 사람 중에 날개 같은 옷을 입었을지는 모르지만 전부 그곳과 어울리는 사람도 아니었고, 그 날개도 모조품이었을 텐데 굳이 당신이 그런 드레스를 입고 등장할 장소가 아니었다는 말이야. 당신까지 천박해 보인다는 걸 모르냐고.”

“....”

“그런 표정 짓지 말라고. 어디까지나 부탁.. 이니까.”

“...네.”

“그럼 난 저녁 약속이 있어서 이만 일어나지.”

“...”

“차 대기 시켜놨으니까. 당신도 회식자리에서 동료들과 즐기던가.”

“..아니에요. 전 할 일이 있어요.”

“그러던가. 그럼...”

“...”

“마중도 안 하나?”

“...”

일어나 걸어 나가던 민우가 고개를 돌려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는 보영에게 차갑게 얘길 한다.

아주 잠시 민우의 얼굴을 앉은 채 쳐다보던 보영이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민우의 뒤를 따라간다. 둘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조금 열려 있는 문의 틈에서 떨어져 벽에 등을 기대는데..

“치마가 너무 짧은 거 아닌가?”

“....”

“팀장인데 그렇게 천박한 옷을 입어도 되냐고.”

“올 해 트렌드가 미니...스커트에요.”

“유행 쫓아가는 게 얼마나 미련한 짓인지 몰라?”

계속해서 보영을 가르치려는 민우의 말투가 내내 거슬린다.

“그리고 그 스타킹은 뭐야?”

“....”

“꼭 창.....”

“,,네?”

“아니다. 그런 옷 입지 말라고. 질 떨어지는 상관 모시고 일하는 직원들 입장도 생각해야지.”

“직원들도......알겠어요.” 

“할 말이라도 있나?”

“..아니에요. 앞으론 조심할게요.”

“그러라고. 결혼도 얼마 남지 않았.....”

“...왜..왜요?”

“...치마 올려 봐.”

“........네?”

“치마 올려보라고.”

“..왜.....왜요?”

“말 안 들려?”

“...여긴 직장이에요. 아무리 당신이라도 직장안에..서....”

“말이 안 들리냐고 물었다.”

“.....”

또 다시 시작된 침묵에 언제가 돼야 나갈지 만을 생각하던 난 민우란 놈이 내 쪽을 향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도 머리를 다시 들어 올리게 된다. 보안 유리문 바로 앞에서 보영이 문을 열어주길 기다리던 민우였는지 옆모습을 보여주며 서 있었고, 바로 앞에 보영이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민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노려본다는 표현보다는 꼭 사자 앞에 서 있는 사슴처럼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듯 노려보는 민우의 시선에 두려움을 숨기며 마지막 발악을 하듯 피하지 않는 시선을 한 모습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해 보였다.

“올려 보라고!”

“...”

보영이 치마 밑단을 잡고는 천천히 끌어올리기 시작한다.

아무리 모든 직원들이 사무실 밖으로 나간 공간이라고 해도 유리문 바로 안쪽에서 하는 행동이라고는 믿기 힘든 모습으로 보영은 민우의 말에 복종하고 있었다.

그리고 왜 보영이가 두려움을 가득 담은 눈으로 민우의 시선을 외면조차 못하고 있는 질 알게 되었다.

핑크색 원피스를 천천히 올리자 보영의 매끈한 검은색 스타킹의 끝이 드러났다.

얇은 밴드 스타킹의 검은색이 끝나는 부분과 보영의 너무도 하얀 살결을 가로지르는 끈의 모양과 드러난 팬티의 모습에 내 눈조차 휘둥그레졌다.

내가 선물했던 아주 작은 천만이 앞에 존재하는 은회색의 T팬티였다.

“......”

“...미쳤군.”

“서..선물을 받은 거라서..”

“선물? 누가 그 딴 걸 선물로 주지?”

“......직..원이요. 아까 봤던 오주임이 비싸게 산건데 사이즈가 안 맞는다고...”

“오주임?”

“네..네!! 세트로... 가터를 안 하면 스타킹이 흘러 내려서.. 어쩔 수 없이...”

“....돌아 봐.”

“...네!???”

민우가 손을 올려 검지만을 펴선 아래로 휘휘 돌린다.

그런 민우의 행동에 보영이 치마를 조금씩 잡아 내리며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다.

보영의 방어적인 행동이 왜 생겼는지.. 왜 본능에 충실할 수 없었는 질 이해하게 된다. 만약 나를 민우와 똑같은 행동으로 대하는 여자가 있다면.. 그 권력과 능력으로 날 자신의 액세서리나 부속물처럼 대한다면 나도 보영과 마찬가지로 억눌린 감정을 풀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억눌린 지조차 모를 태어날 때부터 새장 속에 갇혀 보이는 것이 전부인 줄 아는 애완동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결국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벌려진 문틈을 손으로 잡는다..

당장이라도 뛰어나가 민우란 놈의 멱살을 잡거나, 최소한 보영의 손을 잡고 이 곳을 떠날 생각과 각오를 한 내 시선에 보영의 시선이 마주하게 된다.

눈을 감으며 고개를 겨우 한 번 가로짓는 그녀의 행동이었지만.. 

무엇을 의미하는 질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돌리는 보영의 모습을 보고만 있는다.

가터벨트에 힘겹게 걸린 채 아래로 늘어진 스타킹과 몸을 돌려 곧 드러난 탱글탱글한 하얀 엉덩이..

팬티의 작은 역삼각형만이 보영의 엉덩이 골 바로 위에 존재했었고 몸을 돌릴수록 이미 한 번 봤던 옆 라인의 망사 재질 속으로 보이는 옅은 살결들이 사무실이란 특별한 공간이었기에 더 섹시하게 보여졌다. 

“죄..송해요. 당장 갈아....”

“...”

말도 없이 몸을 돌린 민우는 파티션으로 가려진 다른 책상에 앉는다.

파티션 옆으로 겨우 허벅지와 다리만이 보이는 민우의 모습에 고개를 돌려 무슨 소리를 하나 들으려 하는데..

“알지!”

“.....?”

무엇을 말하는 지 처음엔 전혀 예상도 못했다.

의자에 앉은 민우의 행동에 보영이도 나와 같이 당황했는지 처음엔 저 ‘알지’의 의미에 대해 물으려는 듯 입을 반쯤 벌리다 만다.

뒤늦게 저 알지란 말을 이해한 듯 보였다.

“누가 옷을 내리라고 했지?”

치마를 내리며 걸어가던 보영에게 민우가 또 다시 지시를 하자. 잠시 날 향해 곁눈질을 하곤 내리던 치마 그대로 민우의 바로 앞에 서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곤..

천천히 무릎을 꿇고 그 자리에 앉는다.

말려 올라간 치마에 훤히 보이는 T팬티, 드러난 골반과 엉덩이의 흰 살결과는 대비되는 검은색의 더 투명해진 스타킹과 자세로 인해 한쪽 뒤가 벗겨진 하이힐로 더 훤하게 드러난 뒷꿈치의 모습으로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뒤꿈치를 엉덩이에 붙이고 보영이가 천천히 허리를 숙인다.

“쩝~..쩝쩝~~..쫍흡~~씁씁~”

허벅지와 종아리 부위의 양복만이 보이는 민우의 모습과 조금씩 어깨를 들썩이는 보영의 모습으로도 둘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분명 이곳에선 내가 불청객이었다.

처음부터 불청객은 나였을지 모르지만.. 보영이를 만나면 만날수록 충동처럼 느껴지는 소유욕이란 감정으로 지금 순간엔 내가 꼭 피해자처럼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착각일지도 모른다.

“음~~.. 지금..”

“....훕~.”

민우의 말에 일어선 보영은 그녀의 오피스텔에서 봤던 그대로를 다시 시작한다.

오럴을 해주다가 남자의 지시에 그대로 몸을 돌려 의자를 짚고는 엉덩이를 내려 삽입을 하는...

“.......”

“말을.. 해야지,”

“.......아~.......”

보영의 작은 탄성이 회의실까지 들려온다.

엉덩이를 스스로 흔들며 민우란 놈의 자지를 집어 삼키며 뱉어내는 보영의 신음소리였지만.. 분명 거짓이었다.

이미 보영의 자극 포인트까지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내 귀에 들려오는 보영의 신음소리가 거짓인지 진짜인지쯤은 확실히 구분 지을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스스로 허리를 흔들고 있는 보영의 탁한 호흡은 움직임에 의한 자연스러운 숨결이었고 뱉어내는 신음소리는 완전히 역극 과도 같은... 민우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마네킹과도 같아 보였다.

“아~....아~......”

“헉..헉헉.. 날 사랑하나?..”

“...아~..”

“대답 안 하나?”

“.......사..랑해요.”

“헉헉~~..헉~~~헉~~ 뭐라고.”

“사랑해요... 민..우씨를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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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보영에게선 전화조차 없었다.

내 전화도 당연하다는 듯 받질 않는다.

사무실 안에서 보기에도 안타까운 섹스를 한 보영의 모습에 민우가 돌아가기만을 기다렸던 나였지만.. 보영은 민우의 저녁 약속장소로 끌려가다시피 같이 거의 강제적으로 동행을 하게 됐다. 당연히 옷을 갈아입으라는 민우의 말에 아주 잠깐의 틈이 났던 그녀였지만. 

보영은 내게 다가오지도, 그렇다고 말을 걸지도 않은 채 옷이 없다고 한 다음 민우와 동행해 나가버렸다.

이것이 현실이었다.

보영과 민우는 약혼자였고, 곧 결혼할 사이였다.

나와 보영이 나눈 건 섹스 위주의 불륜과도 같은 것이었고, 사무실 안에서의 스릴 있는 섹스가 용서되는 것이 저 둘의 관계였다.

분명 아무것도 느끼질 못한 보영이었지만..

보영의 숙인 고개로 늘어트려진 머리카락사이에 뱉어낸 무미건조한 신음소리가 그녀가 평소 해왔던 행동이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었고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민우란 놈이 자리를 뜬 후 진정한 남자의 물건을 느끼게 해 줄 생각이었고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단번에 날려 완벽한 민우란 놈에게도 부족한 것이 있음을 확실히 굳히려던 나였었다.

그래서 난 일주일이 지난 지금 다시 한 번 보영의 오피스텔 앞 골목에서 숨어 그녀를 기다린다. 벌써 삼일째다.

미희에게 느꼈던 설렘이랑은 다른 감정으로 보영의 얼굴이 정말로 보고 싶어진 나였다. 

‘부르르릉~..끽~~~’

은색 스포츠카가 보영의 오피스텔 앞에서 정차했다.

이상하게 열린 조수석 문으로 보영이가 내린다.

뭐라고 대화를 나누는 보영의 얼굴엔 피곤함이 잔뜩 묻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보영씨!!”

“...?”

차가 출발하기 무섭게 집으로 들어가려던 보영의 이름을 불렀다. 

“필..민씨??”

보영이 황급히 차가 나간 도로를 향해 고개를 돌려 차가 사라졌는 질 확인한다.

“왜..왔어요?”

“왜 왔냐고요!?”

“...제가.. 말했잖아요. 당분간.. 연락하면 안 된다고..”

“그렇다고 전화도 안 받아요?”

“...우..우선 들어가요.”

“..네?”

“..”

보영이가 내 손을 잡고 타인의 시선이 두려운지 자신의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는 많이 다른 보영의 집의 내부에 조금은 씁쓸해진다.

내부를 훔쳐봤을 때 꼭 사무적인 느낌을 그리고 있는 듯 보인 보영의 집은 내 생각보다도 더 삭막해 보였다.

커튼까지 친 보영은 그제야 안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게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지 모르세요? 지금 민우씨가 의심하고 있다는 걸 그때.... 다 들었잖아요.”

“그렇다고...”

“한 번 당했으니.. 민우씨란 남자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 줄 알잖아요. 만약에 한 번 더 걸리면...”

“그땐 보영씨가 말해서 그런거잖아요. 보영씨가 또 말을 할리도 없는데..”

“....지금은 눈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한동안 잠수를 타라고요?”

“.....죄송.”

“항상 사과만 하는군요.”

“...”

“일에 진취적이고 누구보다 능동적이시면서 민우란 남자 앞에선 항상 순종적이고, 복종적이기까지 하시네요.”

“......원래 그런 사이에요. 남편이 될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아시잖아요. 그리고......”

“그리고?”

“.....아니에요.”

“뭔데요?”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에요.”

“보영씨..”

“...네?”

“제가 그렇게 바보 같아요? 보영씨한테 무슨 일이 생겼는다는 걸 표정만 봐도 알겠는데..”

“민..우씨가.. 이상해졌어요.”

“이상해..지다뇨?”

“정확히는.. 그때.. 호텔 레스토랑에서 만남 이후부터 이상해졌어요. 무섭...다고..”

“왜요? 때려요? 혹시 제 존재를 눈치 챈 거라면 제가 가서 무릎이라도 꿇고..”

“그게 아니에요.”

“그게 아니면요?”

“....그날. 모임이라고 절 데리고 나간 곳이...”

보영이가 말을 하다 말곤 입을 꽉 다문다.

날 향하던 시선이 이내 여자의 방과는 어울리지 않는 회색 벽으로 옮겨갔고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딘데요? 모임이면 고급 레스토랑이나... 그런 곳 아니었어요?”

“고급.. 주점이었어요. 여자..들 불러서 술 마시는...”

“네!?”

“...거기에 사강씨도”

“사강이 새끼가 왜요?”

“호텔 레스토랑에서 찍힌 사진 중에.. 바로 제 옆에 앉은 사람이 사강씨였나봐요.”

“그래서? 보영씨가 만난 남자가 그 남자인 줄 알았다!???”

“...”

“그 민우란 새끼가 사강이 귀싸대기라도 날렸다는 말인가요?”

“......그게.”

보영의 얼굴이 그때를 다시 머릿속에 떠올리는 지 사색이 되어 하얘진다.

사강이 새끼가 비록 빌어먹을 놈처럼 싸가지도 없고 지 잘난 채에 흠뻑 빠진 놈이긴 했지만 그건 동창 중에 자기보다 잘 난 놈이 없을 때에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연찮게 같이 있을 때 걸려온 변호사의 전화에 허리까지 숙이며 받는 놈의 태도에 확신을 갖고 있던 난 대기업의 후계자인 구민우란 놈 앞에서 납작 기었을지언정 대들 놈이 아님을 알기에 혹시나 반병신이 된 건 아닌지 걱정까지 하게 된다.

“그게 뭔데요!? 말을 해야 알죠! 연락도 안 되고! 집에도 안 들어오더니 갑자기 사강이라뇨!”

“민우씨가 사강씨랑 어떤 사이냐고... 그날 한 짓 다해보라고...”

“네?? 그래서요? 사강이 그 새끼가 그날 화장실 앞에서 한 짓을 다시 했어요?”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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