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3 – HS 엔터테인먼트 (3)
“안녕하십니까!”
활기찬 인사로 문을 여는 이곳.
바로 HS 엔터매니지먼트 팀이 사용하는 사무실이다.
일주일째 출근하고 있는 터라, 거의 내 사무실처럼 자연스레 안으로 들어왔다.
“희성 씨, 오늘도 왔어?”
“네, 오늘은 김 실장님도 사무실로 출근한다고 하시던데요?”
“응, 안 그래도 왔다가 잠깐 팀장님 뵈러 올라갔어. 곧 내려올걸?”
“예, 감사합니다!”
지난주 김 실장과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눈 뒤, 바로 다음 날 프로필 촬영을 했다.
홀로 프로필을 만들기 위해 저렴하게 찍었던 사진과는 퀄리티가 달랐다.
숍에 들러 머리와 메이크업까지 풀 세팅을 한 뒤 스튜디오에 입성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펼쳐진 광경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볼 법한 스튜디오였다.
엄청난 조명과 스튜디오 규모.
특히나 놀라웠던 건, 사진작가였다.
TV 프로그램에서 화보 촬영 영상이 나올 때면 보이던 유명한 사진작가.
내게는 연예인 같은 그분이 정성스레 나를 찍어주셨다.
이후로도 나는 매일 일정이 가득했다.
언제부터 촬영이 들어갈지 모른다며 시작한 피부 관리, 몸매 관리를 위한 PT까지.
내 모든 걸 회사에서 신경 써주는 느낌이 들자, 정말 연예인이 되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연기.
나와 맞는 오디션을 보기 위해서 매일같이 이 사무실로 찾아와 대본을 보았다.
내가 아직 일이 없기에, 김 실장은 가끔 다른 연예인들의 매니저 대타로 빠지는 경우가 있었다.
그렇기는 하나, 일이 없는 경우에는 항상 나와 대본을 같이 봐주고는 했다.
그래서 매일같이 회사에 나와 대본을 보는 것이다.
사실 회사에 출근을 하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굳이 회사에 오는 이유?
대본을 보러 매일 카페를 찾아가는 것은 사치였기 때문이다.
하루 내내 앉아 있어야 하는데, 커피 한 잔을 시켜놓기는 눈치가 보이고… 그 이상은 내 지갑 사정상 무리였지.
그렇다고 김 실장을 우리 집으로 초대하기에는 아직 사이가 좀 그랬다.
게다가 좁디좁은 원룸에 둘이 앉아서 대본을 보기에는 더더욱 불편하고.
하나, 이 모든 것보다도 더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바로 구내식당이었다.
지난번 HS 사옥을 구경할 당시, 구내식당을 사용해보고 싶었다.
그러다 김 실장을 따라가 한번 맛을 본 후로는 나도 모르게 홀린 듯 회사에 출근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 끼를 먹을 때 두 번씩 떠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몸매 관리를 시작했기에 힘들게 조절을 하며 먹고 있다.
“희성이 왔어?”
그때, 내 옆으로 다가와 자리에 앉는 사람.
김 실장이다.
“어, 좀 전에 왔어, 형.”
“대본은 좀 봤고?”
“응, 이거 좀 흥미로운데, 어때?”
“뭔데?”
김 실장에게 내민 것은 미니시리즈가 아닌, 단막극 대본이었다.
보통 드라마 미니시리즈는 16부작으로 이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가 고른 단막극은 1시간짜리 1화 방송.
사실 마음 같아서는 좋은 작품의 드라마 미니시리즈 주연으로 바로 오디션을 보고 싶지만.
아무리 HS 엔터라도 나 같은 단역 배우에게는 무리고, 누구보다 내가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이거 대학교수 역할이거든?”
“대학교수? 그럼 나이가 너무 안 맞잖아.”
“아니야. 이거 시간 강사 같은 젊은 대학교수 느낌이야. 대본 봐봐.”
‘단막극 – 별을 보지 않아.’
30대 초반의 대학교수와 20살 신입생 제자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
한 분야의 전문가에게 매력을 느끼고 다가가는 학생.
그리고 그 학생에게 매료된 교수.
교수는 나이 차이를 떠나, 대학교라는 곳에 국한되어 있다 보니 사랑을 밀어내기에 바쁘다.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순수한 첫사랑 이야기가 깃든 시나리오.
이 단막극에서 내가 하고 싶은 역할은 바로 대학교수.
그러니까 바로 주연을 하고 싶다는 것.
단막극의 주연은 굳이 비교하자면, 드라마 미니시리즈 조연보다 조금 더 아래 있는 역할이라고 할 수도 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16화 중 3회 정도 잠깐 출연하는 느낌이랄까?
단막극은 한 화로 끝나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시청률이 굉장히 저조한 편이다.
그렇기에 대중들에게 인지도를 높이기는 어렵다.
하지만 내 연기력도 보여줄 수 있고, 필모를 쌓기에는 단막극 주연이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형, 이거 괜찮지 않아?”
“아… ‘별을 보지 않아’였어? 안 그래도 나도 그거 대본 보기는 했거든.”
“어때?”
김 실장은 대본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괜찮은 것 같더라고. 공모전 대본에, 감독은 원래 드라마 스페셜을 했던 베테랑이니 문제없을 것 같고.”
“나… 이거 오디션 보면 안 돼?”
“그럼 오디션 날짜 한번 알아볼게.”
“고마워, 형.”
“고맙긴. 대본 연습하고, 오후에는 한번 체크해보자.”
든든한 김 실장의 말에 나는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느낌이 좋았다.
***
“오늘 질문만 하나 받고, 수업 마칠게요.”
저 멀리에 앉은 여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저요!”
“그래요.”
“교수님, 대체 인간과 우주가 무슨 관계가 있는 거예요? 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데….”
오늘도 역시나 저 아이다.
항상 내 수업의 마지막 질문을 독차지하는 그녀.
똘망똘망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고, 이내 내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음… 인간과 우주라. 좋은 질문이에요. 현대 천문학에서는 우주와 인간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어요.”
학생들은 짐을 챙기다 말고, 강단을 바라보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인간을 구성하는 모든 물질은 우주에서 온 거죠. 인간을 구성하는 유기 분자 중에 가장 중요한 원소인 탄소. 그리고 질소, 인, 철, 황. 이 모든 것들이 우주 공간, 그것도 별에서 합성이 되었어요.”
모든 학생이 흥미로워하듯 고개를 끄덕였고, 질문을 했던 학생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내게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서 인간을 구성하는 모든 물질의 근원. 즉, 인간은 별에서 모두 유래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거죠.”
나는 강단에 양팔을 올리고 몸을 기댄 채 답변을 쏟아냈다.
“이해됐나요, 학생?”
질문을 던졌던 학생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다음 주는 천문학 발표가 있으니까, 시간 늦지 않게 오시면 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인사와 동시에 강의실을 우르르 떠나는 학생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질문을 했던 학생이 강단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무슨 일….”
“교수님, 그럼 우리는 모두 별의 먼지로 구성된 거네요?”
“음… 그렇죠?”
내 말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멀뚱히 눈을 바라보고 있는 학생.
“또 질문 있나요?”
“…교수님, 저 교수님 좋아해요!”
“…….”
그녀의 말에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어차피 저는 드넓은 우주의 별 먼지 같은 작은 존잰데… 제가 고백한다고 지구가 망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대찬 한마디를 던진 후 금세 수줍은 얼굴로 손에 들고 있던 분홍색 편지를 내게 건네는 그녀.
그러고는 곧장 강의실을 뛰쳐나가 버렸다.
“저기…!”
그녀가 내게 건넨 편지는 이게 처음이 아니었다.
몇 주 전 수업에서도.
그리고 이전 학기의 다른 수업에서도.
우리는 그저 선생님과 학생일 뿐인…!
띠리리리리리.
팟.
시끄러운 벨 소리에 눈이 떠졌다.
‘뭐야, 꿈이야?’
꿈인지 현실인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시끄럽게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희성아, 나 출발했으니까 곧 내려와!
“응, 10분이면 돼. 늦지 않게 내려갈게.”
***
“희성아, 왔어?”
“응, 형 금방 왔네?”
“목소리 들어보니, 내가 깨운 것 같았는데 늦지도 않고 바로 왔네?”
“하하, 그럼.”
“출발하게 안전벨트 매.”
김 실장의 이야기에 나는 안전벨트를 채우며 말했다.
“숍으로 먼저 가는 거지?”
“응, 그래도 오디션인데, 헤어랑 메이크업 풀 세팅하고 가야지.”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까 꾼 꿈은 대체 뭐지?
나는 천문학, 심지어 어릴 때 지구 과학도 잘 몰랐던 것 같은데….
꿈에서는 무슨 분야든 똑똑해질 수도 있나?
아니, 그걸 떠나서 이렇게 생생하게 꿈을 꾸다니.
실제로 겪었던 일처럼 말이야….
“희성아.”
“응?”
“무슨 일 있었어?”
“아니, 왜?”
김 실장은 내가 걱정된다는 듯 눈썹을 내려뜨리며 물었다.
“아까 통화할 때 목소리가 좀 안 좋은 것 같아서. 컨디션이 안 좋은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냥 꿈이 좀 오묘해서.”
“꿈? 무슨 꿈이었는데 오묘하다니.”
나는 꿈을 회상하며 김 실장에게 답했다.
“생각해 보니까 오늘 드라마 오디션 볼 내용이랑 조금 비슷하기도 해.”
내 말에 김 실장이 웃음을 터트렸다.
“얼마나 대본 연습을 많이 했으면 꿈까지 꾸는 거야? 너 오늘 오디션 잘 보겠다. 벌써 대박 예감인데? 하하.”
“그랬으면 좋겠는데….”
“가까워서 십 분밖에 안 걸리니까, 조금이라도 쉬어.”
“응.”
늘 그렇듯 휴대 전화를 열어 인터넷에 들어갔다.
인터넷 메인에 걸려 있는 기사.
‘천문학. 상대성 이론에 관한 새로운 정의?’
평소라면 문과인 내게 전혀 흥미롭지 않은 주제의 기사 제목.
하지만 나도 모르게 홀린 듯 기사를 클릭했다.
-티티우스-보데의 법칙에서 나온 정의가….
기사에 나오는 티티우스-보데의 법칙.
난생처음 들어보는 법칙 이름이다.
아니, 글씨조차 생소한 느낌이다.
하지만 이 법칙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 건 왜지?
수금지화목토천해.
태양과의 거리 사이마다 규칙이 있다.
그리고 그 거리 규칙에는 수열이 존재하고….
이상하다?
내가 이걸 어떻게 알고 있고, 기사 내용이 왜 낯설지 않은 거지?
순간 알 수 없는 기분에 머리를 세게 잡았다.
끼익.
“희성아, 도착했다. 얼른 내려.”
“아… 응.”
***
오디션장에 도착하자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
단막극 오디션은 처음이었는데, 여느 드라마 미니시리즈 만큼이나 사람이 북적거렸다.
짧은 단막극이기에 대부분 주연을 노리고 온 듯한 느낌.
오디션 연습을 하며 내뱉는 대사를 들어보니, 나와 같은 대사를 읊고 있는 배우들이 넘쳐났다.
얼굴은 말할 것도 없이 잘생긴 사람들이 수두룩했고.
오디션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긴장감은 점차 심해졌다.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HS 엔터라는 이름을 뒤에 달고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그 누구도 내가 HS 엔터 소속이라는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내 연기를 믿고 계약해준 회사에 첫 오디션을 따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서 더욱 떨림이 가득했다.
“어? 뭐야.”
“저기!”
“어디야, 헐! 진짜네?”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오디션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연습에 몰두했지만, 점점 더 커지는 소리에 집중이 깨지고 말았다.
‘뭐야, 좀 유명한 사람이라도 온 건가?’
고개를 돌려 시끄러운 쪽을 바라보았다.
뭐야…?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박민준.
황꽃 촬영장에서도 만난 그 얄미운 동기 놈이었다.
저 자식이 여기에는 왜 온 거지?
박민준은 자신을 반기는 오디션 참가자들을 바라보고 옅은 미소를 보내더니, 자연스레 오디션 대기 줄에 착석했다.
미친….
박민준도 이 단막극 오디션을 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