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차 태평양대첩 (15) 제 2차 태평양대첩 ④2007년 12월 13일
새벽 2시 진해시 인근 아파트"이것이요?"
쌍칼은 눈 앞에 놓인 CD케이스를 슬그머니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순간 마주 앉은 사내가 그의 팔목을 잡았다. 엄청난 힘이었다. "약..약속
한 것은..."
사내는 초조한 지 쌍칼의 팔을 움켜진 손이 떨리고 있었다. 쌍칼은 팔이 잡
힌 채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물론 준비했소."
쌍칼은 자신의 팔을 붙잡은 사내의 손을 잡아 떼어내더니 가방에서 상자 하
나를 꺼냈다. 상자를 사내에게 건네자 사내는 상자를 찢듯이 열더니 캡슐 하
나를 꺼냈다. 그러더니 언제 손을 떨었냐는 듯이 능숙한 솜씨로 캡슐을 열어
물이 담긴 조그마한 약병에 풀어 녹였다. 그리고는 주사기를 꺼내 약물을
주입하더니 자신의 팔에 주사를 놓았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몽롱한 눈빛으
로 소파에 기대더니 가쁜 숨을 몰아쉬며 쾌락의 나락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
었다. 사내의 눈에는 더 이상 눈 앞의 쌍칼이 보이지 않는 듯 했다. 사내의
입 속에서 마치 지옥에서 흘러나오는 듯 낮은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푹 즐기시오. 박소령."
쌍칼은 CD를 품속에 넣은 후 박소령의 아파트를 빠져나갔다. 쌍칼도 뭐가 그
리 즐거운지 입 속으로 뭐라고 흥얼거리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나갔다.
그동안 박소령을 마약중독자로 만들기 위해 그동안 애쓴 보람이 드디어 나타
난 순간이었다. 아마 일본놈들은 이 CD에 대한 가격을 후하게 쳐줄 것이다.
그동안 박소령에게 들인 마약의 가격만 해도 상당한데 일본놈들은 너무나
쉽게 그 비싼 마약을 구해 다 주었으니 쌍칼이 필요한 돈을 지급하는 것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일본놈들에게 받을 돈이 생각보다 좀 적어도 아쉬
울 게 없었다. 그동안 박소령에게 사용할 것이라고 받은 마약을 벌써 상당수
빼돌려 놓았기 때문에 그것만해도 한 밑천으로 충분했다. 넉넉한 돈으로 조
직에게 돌아가면 전에처럼 푸대접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조직을 운영하는데
도 돈이 든다. 보스에게 얼마간의 돈을 바치고 자신의 지지기반을 다져서 후
일을 도모할 것이다. 자신을 배신하고 독사에게 붙은 놈들은 독사와 함께 살
을 다져 줄 것이다. 쌍칼은 아파트에서 도보로 걸어나가 한참을 걸어간 뒤에
그곳에 세워둔 자신의 자동차를 타고 일본인들이 기다리고 있는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은 불과 5개월 전만 해도 자신이 활개치던 나와바리이기도 했다
. 박소령이라고 불리었던 사내는 꿈속을 헤매고 있었다. 꿈속에서 흐느
적거리며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는 한 동안이 지나고 있었다. 그러던 어
느 한순간 갑자기 온 몸에 피가 역류하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다. 머리가 깨
질 듯이 아팠다. 온 몸이 불에 타는 듯한 느낌으로 몸부림치던 박소령이 바
닥을 데굴데굴 구르다 베란다로 이어지는 중간창에 몸을 부딪히자 꼼짝을 않
았다. 잠시 뒤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길게 내쉰 박소령은 몸을 돌려 겨우
마루바닥에 앉았다. "휴우."
한숨을 쉬는 박소령의 눈은 더 이상 마약중독자의 눈은 아니었다. 그제야 박
소령은 자신에게 해독약이라며 이상한 약을 먹인 사내를 보며 말했다. 사내
는 언제 들어왔는지 아까부터 말없이 박소령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지
켜보고 있었다. "이 사람들 사람 잡겠네. 아무 부작용 없이 해독이 된다고
하더니 너무 아파서 죽을 뻔했지 않소."
"죄송합니다."
사내가 정말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고통스러워하실
지 저도 몰랐습니다. 이걸 드십시오. 한결 머리가 맑아지실 겁니다."
옆의 사내가 녹색약물이 든 병을 건넸다.
"이건 마셔도 되는 것이요? 또 속는 것 아니겠지?"
"안심하십시오. 금방 개운해지실 겁니다."
박소령은 드링크를 한 모금 조심스레 입에 넣더니 순식간에 탁 털어 넣듯 다
마셔버렸다. 사내의 말 대로였다. 머리가 맑아지면서 피로도 풀리는 것 같
았다. "이거 내다 팔면 돈 많이 벌겠는데?"
박소령이 빈 병을 쳐다보며 말하자 사내가 하하 웃으며 대답했다. "안 그
래도 그거 한국에 보급할까 했는데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성분분석이 안 된
다는 이유로 신청이 반려되었습니다."
"어쨌든 잘 된 것 같습니까?"
"예, 신나서 부산으로 달려가더군요. 내일 오전 즈음에는 일본해군에 들어가
겠지요."
"저야 상부의 명령으로 이 일에 참가하기 했지만, 조폭이랑 마주 하려니 영
기분이 안 좋더군요."
"하하 압니다. 여러모로 감사했습니다."
"아닙니다. 우리가 감사해야지요. 배달이 어디에서 왔고, 배후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한국과는 특별한 우방인 것은 분명하다는 건 잘 압니다."
"사실 배달은....."
사내가 뭔가 말하려다가 그만두고 다른 말로 대화를 맺었다. "언젠가는 아
시게 되겠죠. 그럼 전 이만."
2시간 후 해운대 달맞이 언덕 해월정쌍칼은 일본인들을 만나고 있었다.
"이건 뭡니까?"
"제 방 열쇱니다."
일본인들이 쌍칼에게 열쇠를 받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CD는
어디 있습니까?"
"가까운 곳에 있소."
일본인들이 서로 마주보며 눈빛을 교환했다. 그 중의 한 사내가 쌍칼을 쳐다
보고 말했다. "약속이 다르군요, 왜 안 가지고 오셨소.?"
"글쎄, 제가 원래 이렇지는 않았는데, 믿는 놈들한테 배신을 당하고 나니까
의심이 많아져서 말이요. 허허 참. 이거 쑥스럽구만. CD는 조선비치호텔 제
방에 있습니다. 안전금고 안에 잘 있지요. 저한테 돈을 주고 702호에 가서
기다리시면 제가 전화로 금고의 비밀번호를 알려드리지요."
쌍칼이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요즘 믿을 놈이 있어야지 말예요."
마치 딴청을 피우듯 말했다. "돈을 받으면 한 6개월 잠수 타려고요. 그 뒤
에 저도 나름대로 계획이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손님 분들이 CD를 받
고 나서 갑자기 돈이 아깝다든지 또는 제 존재가 거추장스러우면 전 어떡합
니까? 그래서 조금, 아주 쪼오금 재주를 부린 겁니다."
쌍칼의 넉살좋은 말을 일본인들은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었다. "알겠소
."
이윽고 한 사내가 가방을 쌍칼에게 건넸다. "당신이 부린 재주가 재주로
끝나길 바라겠소. 재주를 넘어 장난의 수준에 이른다면 더 이상 햇볕보고 살
생각을 말아야 할 것이요."
"아따, 의심도 많네."
"의심이 많은 건 당신이요."
쌍칼은 가방을 들고 어둠 속으로 씩씩하게 사라져 버렸다. 일본인들은 쌍
칼이 사라지자 조선비치호텔로 향했다. 그들은 한 시간이나 지나서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다. 2007년 12월 18일 오전 10시 독도 앞 바다
11월은 대게의 금어기가 풀리는 달이다. 산란기와 수량유지를 위해 한국과
일본은 6월에서 10월말까지 대게잡이가 금지되고 있다. 11월부터 5월까지
본격적으로 잡기 시작하는 대게는 주로 동해에 폭넓게 분포되어 있는데, 이
게가 한국사람들에게 잡히면 영덕대게가 되고 일본사람들에게 잡히면 북해
도 게가 된다. 김소령은 지금 독도 동남쪽 바다에서 게잡이를 하고 있는
어부들에게 확성기로 열심히 철수를 종용하고 있었다. 지난 11월 대통령의
일본과의 모든 조약을 파기하는 바람에 한일간의 EEZ 분쟁은 위험수위에 다
다르고 있었다. 특히 파기된 협정에 어업협정이 포함되어 있다보니 독도의
동쪽을 중심으로 한 완충지에서 대게잡이에 나선 한국어민들과 일본해경의
충돌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었다. 특히 일본의 경우 배달과의 전쟁중인 상
태인데다 배달 유전에서의 충돌과 해경순시정의 격침사건도 있어 분위기는
험악한 정도를 넘어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고 있는 중이었다. 해경순시정의
공격을 한 것은 일본해군의 잠수함이라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알고
있다고 해도 일본 해경의 반감은 배달과 한국을 향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
던 와중에 일본의 EEZ 내에서 조업을 하던 한국어선 두 척이 나포되어 일본
으로 끌려가는 사건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이 제대로 된 재판도 받지
못하고 수감되어 버렸다. 거기에 나포된 어부들이 고문을 받았다는 소문까
지 더해져 동해상의 긴장은 한층 높아진 상태였다.
어민들은 이왕 어업협정을 파기했으면 끝까지 책임을 지고 조업 중인 어선을
보호해 달라고 정부와 해군에게 요청을 하는 한 편 해류방향이 북해도쪽에
서 서남쪽으로 흐르는 내년 2월까지는 대게잡이가 잘되는 독도 동남쪽의 어
장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해군은 민감한 시기에 일본과
의 마찰이 좋을 것 없다는 판단아래 해당 해역에서의 조업을 자제할 것을 어
선들에게 당부하고 있는 실정이었고, 해당 해역에 들어온 어선들을 볼 때마
다 군사작전지역이라는 이유를 들면서 강제로 철수시키기고 있는 실정이었다
. 그러면서 일본측의 반응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며 비상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마음에 안 든다 이겁니다. 제 말씀은."
유상사가 어민들의 조업을 지켜보면서 말했다. "이왕 시작한 거 동해에서
도 본격적으로 한 번 붙어 보자고요. 쪽바리놈들 양쪽에서 배달해군하고 우
리 해군하고 협공을 하는 겁니다. 여기 독도도 확실하게 우리꺼로 만들어불
고요"
"한국과 일본은 공식적으로 전쟁중이 아니잖습니까?"
김소령이 자신보다 몇 살 많은 유상사에게 존대를 하며 대답했다. "아따
공식적으로 전쟁을 하믄 되는기고, 그라고 그 배달이라는 기 강민우 대통령
이 만든 특공대라 안캅니꺼. 그라믄 배달도 한국이지예, 어차피 한국하고 일
본하고 싸우고 있는 거 아입니꺼."
한국 내에서는 배달이 정부의 주도아래 전문가집단으로 만든 위장국가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지금까지 나온 여러 가지 가정 중에 가장 설득력이 있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일본은 이미 한국과 배달과의 관계를 밝힐
것을 국제사회의 채널을 통해 요구하고 있는 중이었고, 자연스레 한국도 배
달과 일본의 전쟁에 휩쓸려들고 있었다. 동해상의 긴장감은 배달과 일본의
전쟁이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일본의 제3함대의 배치가 전혀 느슨해지지
않고 오히려 함대의 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 포착되고 있어 동해는 일촉즉
발의 상태였다. 이런데도 어선들은 해경과 해군 선박과 숨바꼭질을 하면서
계속 게잡이에 나서고 있었다. 그동안 어업협정으로 손을 놓고 있던 어민들
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으나 너무나 위험한 일이었다. 1월부
터는 명태잡이가 시작될 예정이라서 안 그래도 노심초사인 해군을 더욱 곤혹
스럽게 하고 있었다. "함장님 본부로부터 연락입니다. 빨리 어선들을 철
수시키고 우리도 철수하랍니다. 아무래도 일본측의 조짐이 심상치않다는 내
용입니다."
"무슨 일이야?"
"여길 보십시오. 1-3-2지점에 대규모 함대가 잡혔습니다."
레이더 콘솔이 규칙적인 간격의 붉은 점들이 점멸하고 있었다. 대략 40개가
넘었다. 점들은 곧바로 독도를 향하고 있었다. "이런, 이놈들이 미쳤구
만."
김소령이 고함을 질렀다. "빨리 어선들 철수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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