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197화 (197/209)

197화

오클랜드 슬랙스의 3회 말 공격이 끝나고 공수교대가 이루어졌다.

4회 초 뉴욕 킹덤즈의 공격이 시작되기 전, 킹덤즈의 감독인 애런 본은 스코어가 적힌 스코어보드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것이 4회 초 공격이 시작되려고 하고 있지만, 현재 점수는 2:4로 오클랜드 슬랙스가 2점 차로 앞서고 있었다.

겨우 2점 차기에 충분히 후반에 따라잡을 수 있는 점수였지만, 그의 표정은 굳은 채로 펴지지 않았다.

이 경기에 대해서 조금만 잘 알아보면 어째서 그가 이런 표정을 짓는지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인 오늘, 뉴욕 킹덤즈는 승리를 위해 팀의 1선발이자 에이스인 헤르만 킹을 마운드에 올렸다.

그에 반해 홈팀인 오클랜드 슬랙스는 팀 에이스가 아닌 4선발 라이언 헤밀턴을 마운드에 올렸다.

오클랜드 슬랙스가 1차전에서 1선발이 아닌 4선발인 라이언을 선발로 내보낸 이유는 다른 것이 없었다.

원칙대로라면 1선발 프랭크를 선발로 내보냈을 것이지만, 이곳이 홈이고 또 뉴욕 킹덤즈에 비해 마운드가 약한 오클랜드 입장에서 굳이 정면 대결을 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 4선발 라이언 헤밀턴을 내보낸 것이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라이언 헤밀턴이 3회까지 뉴욕 킹덤즈 타자들을 상대로 2점만 내주며 분투를 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뉴욕 킹덤즈의 에이스 헤르만 킹은 오클랜드 슬랙스 타자를 상대로 3회 4점이나 허용했다.

이 상태라면 라이언 헤밀턴이 이번 4회나 5회 정도까지 3점으로 막아 낸다면, 오클랜드 슬랙스가 예상 밖의 승리를 가져갈 수도 있어 보였다.

더욱이 오클랜드 슬랙스 야수들의 1~3회 수비를 보면 실책은 보이지 않았다.

2점을 내준 것도 실책이라기보다 뉴욕 킹덤즈 타자들의 타격이 좋았기 때문이지, 절대 수비수 실책은 아니었다.

“오클랜드 슬랙스 4선발 라이언 헤밀턴 선수, 오늘 챔피언십 1차전 깜짝 선발로 나와 3회까지 2실점으로 뉴욕 킹덤즈 타선을 맞아 아주 잘 던져 주고 있습니다.”

“예, 맞습니다. 상대가 뉴욕 킹덤즈의 에이스 헤르만 킹인데도 불구하고, 2:4로 앞서고 있는 현재 잘 막아 내고 있습니다.”

김승주 아나운서의 말에 하구연 해설도 고개를 끄덕이며 라이언 헤밀턴의 투구 내용이 좋다고 말하고 있었다.

“후우! 잘하고 있어!”

마운드 위에 있던 라이언은 작은 목소리로 자신을 위로했다.

그런 라이언의 귓가에 저 멀리서 응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이언! 뒤는 우리에게 맡기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자신 있게 던져!”

“그래, 라이언! 우리에게 맡겨 둬!”

2루수 수비를 하고 있던 브렛이 대호의 외침에 이어 투수를 응원했다.

“OK! 좋아! 파이팅!”

동료들의 응원에 라이언 헤밀턴은 마운드에서 뒤를 돌아 양 손을 하늘 높이 쳐들며 파이팅을 외쳤다.

미국인이 한국에서 하는 응원 멘트인 파이팅을 외치는 것이 무척이 생소하지만, 오클랜드 슬랙스 선수나 팬들은 이런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대호가 팀에 콜업 되면서 동료들이 힘이 빠질 때나 집중력이 흐트러졌을 때, 매번 외치는 구호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 전에도 이런 한국인 특유의 응원 구호를 알고 있는 선수도 더러 있었기에 파이팅이란 구호가 결코 이상하지 않았다.

“라이언! 파이팅!”

“라이언! 파이팅!”

대호의 파이팅 구호가 컸는지, 뉴 슬랙스 볼파크 관중석에서 투수인 라이언 헤밀턴을 응원하는 구호가 울렸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라이언 파이팅이란 구호가 경기장 안에 울리자, 이를 듣고 있던 라이언 헤밀턴도 감동을 했는지 어깨가 펴졌다.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 선발이라는 막중한 임무에 절로 중압감에 위축되던 몸이 동료와 팬들의 응원에 힘이 들어갔다.

그야말로 자신감 재충전이었다.

펑!

“스트라이크!”

중압감에서 벗어난 라이언은 자신감 있게 중앙에 빠른 볼을 뿌렸다.

펑!

“스윙! 스트라이크!”

중압감에서 벗어난 라이언의 투구는 지금까지보다 구위가 살아났다.

펑!

“아웃!”

어쩌다 타격에 성공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터업― 휘익!

퍽!

“아웃!”

오클랜드 슬랙스 내야수들도 라이언 헤밀턴이 각성을 한 것에 힘입어 그런지 빗맞아 내야를 벗어나지 못하는 땅볼에 신속히 반응해 아웃카운트를 잡았다.

오클랜드의 마운드가 이렇게 다시 살아나며 뉴욕 킹덤즈 타선을 막아 내는데 반해, 뉴욕 킹덤즈의 에이스 헤르만 킹은 야수들의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안타를 허용했다.

다행이라면 메이저리그 에이스라는 위치가 카드 게임을 해서 딴 것이 아니란 것을 보여 주듯 아슬아슬하게 점수를 허용하진 않았다.

펑!

“아웃! 공수 교대!”

5회 초를 무실점으로 막아 내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던 라이언 헤밀턴을 마이크 케세이 감독이 불렀다.

“라이언! 오늘 수고했다.”

수고했다는 감독의 말에 라이언은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듣고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네, 보스!”

탁탁!

감독에 이어 코치들, 그리고 고참급 선수들도 라이언의 어깨를 두드리며 수고했다고 덕담을 해 주었다.

“라이언! 수고했어요. 뒤는 우리에게 맡겨요.”

뒤늦게 더그아웃으로 들어온 대호도 덕담을 듣고 있는 라이언에게 다가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였다.

조금 전 그라운드에서는 안타를 맞더라도 뒤에 자신들의 수비를 믿으라는 이야기였다면, 지금 이 말은 오늘 경기의 승리를 자신들이 가져다주겠다는 말이었다.

그런 대호의 말에 라이언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왠지 그대로 이루어질 것 같은 믿음 때문이었다.

실제로 시즌을 치르는 와중에도 대호가 이렇게 장담하는 말은 언제나 이루어졌었다.

홈런을 치겠다고 이야기를 하면 그는 꼭 홈런을 쳤고, 어떤 타구가 날아와도 막아 주겠다고 했을 때는 도저히 잡을 수 없는 대형 홈런이 아닌 이상 철벽처럼 뒤를 든든히 받쳐 주었다.

그러니 방금 전 자신의 승리를 챙겨 주겠다는 대호의 말에 라이언은 더 이상 경기의 부담감에서 벗어나 가벼운 마음으로 지켜보기만 하면 되었다.

“고맙다.”

“고맙긴요. 아직 4회나 남기는 했지만, 저희만 믿으세요.”

대호는 자신들만 믿으라는 말을 하며 더그아웃 안으로 들어갔다.

“와아아아!”

대호가 더그아웃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이지 뉴슬랙스 볼파크를 찾은 야구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 두 번째 타석에서 안타 하나를 치기는 했지만, 팬들은 아직도 배고팠다.

팀의 승리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모이긴 했지만, 그 외에도 호쾌한 대호의 홈런을 기대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랬기에 첫 타석에서의 볼넷과 두 번째 타석에서 친 안타는 왠지 약간 아쉬웠다.

팬들의 눈빛은 세 번째로 타석에 들어서는 대호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 * *

“오클랜드 슬랙스의 선두 타자 에스테반 루이스, 3B 2S에서 볼넷을 골라 1루로 나갑니다.”

2회 내야 안타로 1루에 진출을 했다가 대호의 우중간 안타에 홈으로 들어왔던 루이스는 두 번째 타석에서 뉴욕 킹덤즈의 에이스 헤르만 킹과 쓰리 볼 투 스트라이크의 접전을 펼치던 중, 풀카운트에서 몸 쪽으로 찔러 들어오는 투심에 곧바로 스윙을 가져갔다.

그러나 초인적인 의지로 끝까지 휘두르지 않고 참아 내는 데에 성공했다.

다행히 배트 헤드가 돌지 않았는지 볼이 선언되면서 볼넷으로 1루에 걸어 나갔다.

조금 애매할 수 있었고 이에 포수가 1루심에게 스윙 체크를 해 봤지만, 1루심도 양손을 양옆으로 펼쳐 보이며 세이프라고 판정을 하였다.

“와아아아아!”

오클랜드 팬들의 안심과 기대에 찬 함성이 울려 퍼졌다.

“다음으로 타석에 들어선 선수는 오늘 볼넷과 안타를 하나씩 얻어 내며 3득점을 한 정대호입니다.”

“네. 상대의 실책이 덧붙여지긴 했지만, 루상에 나가 있던 주자를 모두 불러들이는데 성공했죠?”

“맞습니다. 과연 이번 타석에서는 어떨까요?”

“정대호 선수, 여기서 승리의 쐐기를 박아야 합니다.”

하구연 해설도 뭔가 느꼈는지 이번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을 가져가기 위해선 여기서 뭔가를 보여 주어야 한다는 말을 하였다.

그리고 그런 하구연 해설의 이야기를 들은 것인지, 대호는 타석에 들어서기 무섭게 왼손에 배트를 잡고 센터 방면을 가리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승주는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정대호 선수! 예고 홈런 퍼포먼스가 나왔습니다!”

1주일 전, 디비전 시리즈 3차전에서 승리의 쐐기를 박았던 대호의 예고 홈런 사인이 나온 것이다.

이에 이를 지켜보던 관중석에서 커다란 함성이 울려 퍼졌다.

“인크레더블! 인크레더블!”

“빅 타이거! 빅 타이거!”

별명인 인크레더블과 빅 타이거란 영어식 이름이 뉴슬랙스 볼파크 안을 울렸다.

팬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대호는 천천히 타격 자세를 잡았다.

그런 대호의 모습에 마운드 위에 있는 헤르만 킹은 물론이고,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던 뉴욕 킹덤즈의 포수 벤 로베르트까지 어깨를 무거운 것으로 짓누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윽!’

‘큭! 이게 뭐야!’

지금까지 헤르만 킹은 메이저리그에 콜업 된 이후로 마운드 위에서 어떤 선수를 만나던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같은 팀의 3번에 있는 에스턴 저지나 카를로스 스텐튼에게도 이런 중압감을 느끼지 않았다.

심지어는 월드 시리즈에서 붙어 본 타이탄즈의 간판타자 에스틴 슬로터에게서도 말이다.

다른 팀을 예를 들어 보자면, 킹덤즈의 영원한 라이벌인 보스턴의 강타자 버듀고 듀란, 또 한때 정대호와 비교되던 천재 타자 히데오 소이치로에게서도 이런 느낌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겨우 메이저 3년 차인 대호에게서 그 누구에도 받아본 적이 없는 중압감을 느낀 것이다.

‘내가 언제 이런 중압감을 느꼈지?’

아무리 떠올려 보려고 해도 잘 생각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10년 차에 이르기까지 그가 상대한 타자만 해도 수백 수천을 넘겼다.

수많은 야구 선수들 중 처음으로 상대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때문인지 그의 투구는 신중했다.

퍽!

“볼!”

신중하게 던진 초구는 볼이 선언되었다.

스트라이크 존에서 공 반 개 정도 벗어난 것이었지만, 4회까지만 해도 스트라이크를 잡아 주었던 주심은 이번 회에는 스트라이크가 아닌 볼을 선언했다.

하지만 그것에 불만을 토할 수가 없었다.

10년 차라면 충분히 자신의 공에 대한 프라이드로 심판에게 어필을 할 수도 있었지만, 헤르만 킹은 그러지 않았다.

괜히 그런 것에 집중력이 흐려졌다가는 결과가 어떻게 될지 예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판이 왜 지금에 와서 방금 전 공을 볼 판정을 했는지 이해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호가 비록 이제 겨우 3년 차에 들어간 타자라 하지만, 이미 메이저리그 역사를 쓰고 있는 타자다.

그런 타자가 다른 것도 아니고 타석에 들어서며 예고 홈런 사인을 내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처럼 적당히 볼 판정을 할 수 없어져 조금 더 타이트하게 판단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기에 헤르만 킹도 판정에 불만을 내비치지 않고 공을 던지는 것에만 더욱 집중하였다.

펑!

“스트라이크!”

대호는 방금 전 몸 쪽 무릎에 살짝 걸치는 투심 패스트볼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좋네.’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지만, 대호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고 공이 무척이나 좋다고 생각했다.

펑!

“스트라이크!”

3구째 공도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다.

이번에는 바깥쪽으로 흘러가는 슬라이더였다.

바깥쪽 꽉 찬 코스를 걸치며 흘러가는 볼이었기에 치더라도 홈런이 나올 것 같지 않아 그냥 공을 지켜보았다.

운이 좋으며 볼 판정이 나올 수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판정은 스트라이크였다.

팡!

“볼!”

팡!

“볼!”

연속해서 볼이 들어왔다.

포심 패스트볼이었지만, 대호는 굳이 이를 치지 않았다.

홈런을 예고하는 사인을 보냈는데 굳이 힘들게 스윙을 가져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슈웅!

기다리던 공이 들어왔다.

헤르만 킹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는 12―6로 떨어지는 폭포수 커브가 날아왔다.

그동안 투심과 슬라이더, 그리고 포심을 던진 것에서 벗어나 자신의 결정구인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느린 커브를 던진 것이다.

휘이익!

따아아악!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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