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1903년에 창단해 정확하게 130년이 되는 이번 2033시즌, 뉴욕 킹덤즈는 기필코 메이저리그 월드 시리즈 서른 번째 우승을 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그 첫 관문인 지구 우승을 해야 하는데, 아메리칸리그 동부 지구는 다른 지구에 비해서 너무도 막강한 전력이 몰려 있는 지구다.
그 때문에 메이저리그 팬들 사이에서 악의 제국이라고까지 불리는 뉴욕 킹덤즈도 130년이 되는 역사에 29회의 우승을 했다.
특히나 뉴욕 킹덤즈가 속한 동부 지구에 있는 최고의 라이벌, 보스턴 블루삭스의 존재가 큰 걸림돌이었다.
그들 때문에 몇 차례나 월드 시리즈 진출은 물론이고 챔피언십, 디비전 시리즈, 그리고 지구 우승까지 놓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눈엣가시와도 같은 보스턴 블루삭스를 떨어뜨리고 디비전 시리즈에서 챔피언십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토록 힘들게 올라왔음에도 경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챔피언십 시리즈 상대가 메이저리그 최강의 거포이면서 가장 빠른 발을 가진 2년 연속 메이저리그 MVP가 유력시되는 선수를 보유한 오클랜드 슬랙스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작년 챔피언십에서 부상만 아니었다면, 오클랜드 슬랙스가 2032시즌 월드 시리즈 우승팀인 디트로이트 라이온스를 대신해 우승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 선수의 능력은 모든 구단이 알아주는 수준이었다.
한 마디로 괴물들만 있는 메이저리그임에도 다른 선수들을 평범한 존재로 보이게 할 정도로 재능이 탁월한 괴물 중의 괴물, 야구 천재 중의 천재였다.
타자로서 모든 지표에서 선두에 있으며, 수비 측면에서도 보통 메이저리거 두 명이 해야 할 수비 범위를 맡아서 해 주다 보니, 투수들을 안정시켜 주는 효과가 톡톡히 나오고 있었다.
그 때문에 뉴욕 킹덤즈 코칭스태프는 물론이고 프런트까지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이었다.
구단주인 킹덤즈 엔터프라이즈에선 어떻게 해서든 이번 130주년을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썼으니 그 값을 하라고 압박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뉴욕 킹덤즈 코칭스태프들과 단장 브라운 캐시맨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본! 확실한가?”
캐시맨 단장은 뉴욕 킹덤즈의 감독인 애런 본을 보며 물었다.
“음, 그건 장담할 수 없어.”
의혹이 확실하냐고 물어보는 단장을 보며 애런 본은 인상을 구기며 장담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대호에 대한 불법 약물 복용 의혹은 그가 마이너에 있을 때부터 끊임없이 제기되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때도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약물 의혹을 완전히 부정했다.
3일에 한 번씩 검사하는 현 체제보다 훨씬 엄격한 오클랜드 슬랙스의 도핑 검사와 선수 관리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인정해 줄 정도로 타이트하고 철저했다.
그뿐만 아니라 한 달간 표적 조사를 하고 관찰 카메라까지 따라다니며 24시간 감시를 했다.
그러고도 그는 경기에서 어떤 흔들림도 없이 평소처럼 홈런과 도루를 기록하며 팀 승리에 이바지하였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애런 본도 혹시 그동안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약물이 개발되었고, 정대호가 그 약물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가졌다.
그가 그런 의심을 하는 것은 전적으로 올 시즌 초반 대호가 총에 맞아 부상당한 사건 때문이었다.
물론 어린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진 것은 칭찬해 마지않는 일이다.
하지만 60일 부상자 명단에 올라 부상 치료와 재활을 한다고 하기는 했지만, 일반적인 부상도 아니고 총기에 의한 부상이었다.
60일 부상이 아니라 시즌을 전부 날렸다고 해도 이해할 정도였다.
비록 큰 부상이 아니라 발표를 하였지만, 애런 본은 그러한 의사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로 60일 만에 치료와 재활을 모두 마치고 돌아왔다.
심지어 단순히 돌아온 정도가 아니라 부상당하기 전 그 실력을 그대로 회복한 채였다.
아무리 일반 사람과 다른 신체 재능을 가진 괴물들이 즐비한 메이저리그라고 해도 이는 인간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의 수준이었다.
마치 코믹스에서 나올 법한 슈퍼 히어로가 그러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놀라운 회복 능력.
그것을 바탕으로 30년 동안 깨지지 않던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갱신했다.
전반기 28홈런에 후반기 70경기에서 45개의 홈런을 몰아친 것이다.
기록 도전 중반까진 그래도 투수들이 정상적으로 대결을 해 주어 그렇다 하지만, 시즌 후반으로 들어서면서 투수들도 기록의 희생자가 되고 싶지 않아 대결을 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판 세 경기에서 홈런 네 개를 몰아치면서 시즌 마지막 경기인 165라운드에서 기어코 73개 홈런을 기록했다.
무려 30년 만에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이 갱신되었다.
이때부터였다, 그가 의혹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 말이다.
그래서 이야기를 꺼냈다.
오클랜드 슬랙스의 선봉이며 오클랜드 슬랙스 전력의 절반에 해당하는 선수인 정대호의 몸 상태가 의심스럽다고.
자신들 뉴욕 킹덤즈라면 좀 더 메이저리그 사무국을 압박해, 보다 심도 있는 분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캐시맨에게 이야기를 한 것이다.
하지만 뉴욕 킹덤즈의 단장인 캐시맨이라도 이젠 함부로 대호를 지목해 약물 의혹을 언급하기 버거웠다.
그도 그럴 것이, 오클랜드 슬랙스에서 그동안 철저히 약물 의혹에 대해 해명을 하였고, 또 대호 역시 구단은 물론이고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파견하는 검사를 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블A에 활약하던 당시 한 달이란 기간 동안 24시간 밀착 카메라를 붙여 리얼리티 쇼를 한 것이 주요했다.
이 때문에 기존 오클랜드 슬랙스에 씌워진 불법 약물 사용에 대한 이미지를 많이 희석시켰다.
또한 대호에 대한 재능이 24시간 관찰 카메라로 인해 미국 전역에 퍼지면서 일약 스타가 되었다.
특히 전 세계에서 단 세 명의 이름만 오른 홈런 사이클의 주인공 중 한 명이 되면서 기존 메이저리그 슈퍼스타의 이름값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같은 해 후반기 메이저리그에 콜업 되고, 후반기 70경기 만에 32개의 홈런을 치면서 그의 장타력을 다시 한번 야구팬들에게 어필했다.
또한 그 다음해 165경기 중 올림픽 기간 10경기를 뺀 156경기에 출장해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로써 그가 절대로 플루크가 아니란 것을 알렸으며, 보통 2년차에 많이 겪는다는 소포모어 징크스 또한 없었다.
그리고 올해 2033시즌, 기어코 73홈런을 치고 또 열 경기 연속 홈런 기록까지 세웠다.
도저히 한 선수가 이룩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대기록을 한 시즌에 두 개나 세워 버린 것이었다.
이 때문에 애런 본은 우승을 바라는 구단주와 팬들의 염원을 들어주기 위해선 작년에 그 랬듯이 이번 챔피언 시리즈에 대호가 오클랜드 슬랙스에 없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호가 정상적으로 챔피언십에 나온다면 이번 시즌도 우승 반지는 절대로 요원하다 생각하였다.
그래서 이야기를 한 것이다.
어떻게든 대호를 이번 챔피언십 시리즈에 나오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물론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다면 팬들이 실망할 것이고, 또 오클랜드에서는 난동이 벌어질 수도 있다.
또 어쩌면 팀 내에서도 자신에 대한 불신이 일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애런 본은 이럴 수밖에 없었다.
“확실하지 않으면 나도 어쩔 수 없어, 애런!”
캐시맨은 굳은 표정으로 대답을 하였다.
“그를 막기 힘들다면, 차라리 상대를 하지 않는 것은 어때?”
뉴욕 킹덤즈의 단장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상대하기 어려운 선수라면 굳이 정면 대결을 할 것이 아니라 피하는 것은 어떤지 물었다.
하지만 들려온 대답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런 생각을 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닌데, 그러면 그걸 팬들이 허용해 줄까?”
애런은 단장인 캐시맨의 질문을 잠시 생각하다 그리 대답을 하였다.
자신이야 우승을 위해서라면 어떤 작전도 사용할 용의가 있었다.
하지만 자신들 킹덤즈의 팬들은 어떤가?
그렇게 챔피언십에서 한 선수를 자신들이 배제하고 경기를 치른다면 그걸 이해할 팬이 몇 명이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답을 들은 캐시맨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우승을 위해선 그 선수를 경기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자신들은 메이저리그 전 구단에서 악의 제국이라며 경원시하는 뉴욕 킹덤즈였다.
그런 자신들이 라이벌인 보스턴도 아니고, 겨우 서부 지구의 작은 구단인 오클랜드 슬랙스를 상대로 그러한 작전을 사용한다는 것을 용납해 줄 뉴욕 팬은 없을 것이다.
더욱이 단순한 우승도 아니고 130주년을 기념한 서른 번째 우승을 원하고 있는 팬들이 이를 두고 볼 것이라 장담할 수 없었다.
또 다른 문제로 정대호는 단순하게 장타력만 있는 선수도 아니었다.
그라운드에 내보내면 참으로 무서운 선수였다.
단거리 육상 선수를 연상할 정도로 빠른 발을 이용해 베이스를 훔쳤다.
이로 인해 투수가 흔들리고, 흔들린 투수를 상대로 오클랜드 슬랙스 타자들이 안타를 뽑아냈다.
이것이 바로 오클랜드 슬랙스가 경기에서 점수를 뽑고 승리를 가져가는 공식이었다.
그리고 당장 내일이 시합인데, 이제와 이런 고민을 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캐시먼 단장은 진즉 대호를 데려오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다.
2030년 세계 청소년 야구 대회에서 MVP를 차지한 그의 재능을 하찮게 생각해 흘린 것이 지금에 와선 너무도 아쉬웠다.
당시 마음만 먹으면 그깟 700만 달러는 문제도 아니었다.
유망주 계약금을 다른 선수를 사오는 데 사용하긴 했지만, 마음만 있었다면 다른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럼에도 중도에 포기한 것은 대호가 아시아인이라는 것이었다.
재능은 충분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내구력이 문제였다.
* * *
“와아아아!”
2033시즌 챔피언십 시리즈가 시작되었다.
뉴욕 킹덤즈와 오클랜드 슬랙스, 오클랜드 슬랙스와 뉴욕 킹덤즈의 7전 4선승제의 승부가 오클랜드 슬랙스의 홈인 뉴슬랙스 볼파크에서 펼쳐졌다.
따아악!
잘 맞은 타구가 우중간을 가르며 펜스까지 굴러갔다.
다다다다!
대호는 첫 타석에서 볼넷으로 1루에 걸어 나가 도루를 성공시켜 2루로 진루를 하였고, 후속 타자인 달튼의 2루수를 통과해 우익수 앞으로 굴러가는 안타에 홈으로 들어왔다.
보통 주자였다면 3루로 진루하는 것에 그쳤겠지만, 메이저리그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발이 빠르고 야구 센스가 뛰어난 대호이다 보니 아웃될 타이밍임에도 허슬 플레이를 성공시키며 득점에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달튼은 2루까지 진루했다.
그리고 3회 두 번째 타석에 나와 우중간 안타를 쳤다.
“정대호, 안타! 우중간을 가르는 안타가 나옵니다. 그 사이…….”
김승주는 두 번째 타석에 나와 우중간 안타를 치고 그라운드를 달리는 대호를 보며 목에 핏대를 세워 가며 고함을 질렀다.
“정대호 선수의 우중간 안타로 3루에 있던 브렛 선수, 홈으로 안정적으로 들어옵니다. 뒤이어 루이스 선수 3루를 돌아 홈으로…….”
2사 1, 3루 상황에서 대호가 친 우중간 안타로 인해 3루에 있던 브렛이 홈으로 들어오고, 1루에 있던 루이스가 3루를 돌아 홈으로 뛰었다.
투아웃 상황이다 보니 대호의 스윙이 투수의 공을 타격하기 무섭게 루이스는 스타트를 끊었다.
그러고 나서 막 3루 베이스를 밟을 때, 우익수가 대호가 친 공을 펜스 앞에서 잡았다.
타이밍이 맞아 홈 송구가 성공했다면, 접전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뉴욕 킹덤즈에게는 안타깝게도 정확한 송구가 되지 못했다.
살짝 우측으로 송구가 쏠리다 보니 이를 잡기 위해 홈이 열려 버린 것이다.
그 결과 3루를 돌아 홈으로 들어오던 루이스는 오른쪽으로 빠지면서 손끝으로만 홈 플레이트를 터치하고 미끄러졌다.
“세이프!”
주심은 급히 루이스의 오른손이 홈 플레이트를 쓸고 가기 무섭게 세이프 판정을 내렸다.
“3루! 3루로 던져!”
주심의 판정에 인상을 구기며 천천히 일어나던 포수의 귓가에 고함 소리가 들렸다
이에 급히 일어나 미트에서 공을 꺼내며 3루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3루로 뛰고 있는 대호를 보았다.
이를 확인한 포수는 바로 3루로 송구했다.
퍽!
“런!”
급히 3루 베이스를 향해 슬라이딩을 하는 대호의 귀에 주루 코치의 고함이 들렸다.
타닥!
포수가 송구한 공을 받아 태그를 하려던 3루수가 그만 실수를 하여 공을 뒤로 빠뜨렸다.
너무도 급한 타이밍이다 보니 조급하게 태그를 하려다 나온 실책이었다.
다다다다!
대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홈을 향해 뛰었다.
그러면서 홈 플레이트 앞에 있는 포수의 행동을 깊게 관찰했다.
‘아직이다.’
포수가 자신을 속이기 위해 모션을 가져가지만, 그 동작에서 전혀 여유가 묻어 있지 않았다.
촤아아악!
포수가 공을 받기 위해 미트를 앞으로 내미는 동작이 눈에 들어오자 대호는 바로 포수를 살짝 빗겨 나면서 슬라이딩을 하였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틀며 포수의 미트와 가장 먼 거리로 돌아 홈 플레이트에 손을 가져갔다.
촤아아!
퍽!
“세이프!”
탁! 탁!
주심의 선언이 있고, 대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3회 투아웃 상황에서 순식간에 안타 하나와 송구 실책 하나로 타자 주자까지 홈으로 들어오며 3점이 들어왔다.
“와아아아!”
“타자 주자인 정대호 선수까지 홈으로 들어왔습니다.”
“네. 3회 투아웃 상황에서 오클랜드가 4:2로 다시 한번 2점차 앞서 나갑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