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198화 (198/209)

198화

제대로 제구가 된 커브가 홈런이 되자 마운드 위에 있던 헤르만 킹은 멘탈이 나가 버렸다.

‘대체 어떻게…….’

분명 노리고 친 것이 아니라면 절대로 자신의 시그니처 커브를 칠 수 없었다.

그 말은 다시 말해 자신이 상대의 노림수에 당했다는 말이었다.

이번 대호의 투런 홈런으로 스코어는 단숨에 2:6으로 4점차가 되었다.

점수는 비록 4점차에 불과하지만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겨우 5회에 팀의 에이스가 6점을 내주며 무너진 것이다.

더욱이 상대는 겨우 4선발이 나왔음에도 겨우 2점만 내주며 잘 막아 내고 있었다.

투런 홈런을 맞고 멍하니 마운드 위에 서 있는 헤르만 킹을 보다 못한 감독이 타임을 요청하고 마운드 위로 올라갔다.

불펜이야 이미 4점을 내준 3회에 준비를 시켜 놓은 상태다.

“본 감독, 마운드 위로 올라갑니다.”

김승주는 뭐가 그리 신이 난 것인지 마운드 위로 걸어가는 애런 본 감독을 보며 소리쳤다.

“이미 교체 타이밍을 놓쳤습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하구연 해설은 미간을 찌푸리며 이야기를 하였다.

그런 하구연 해설의 말에 김승주가 물었다.

“비록 6점을 내주긴 했지만 이제 겨우 5회 아닙니까? 아직 4회나 남았는데, 뉴욕 킹덤즈의 타자들이라면 충분히 역전 가능하지 않습니까?”

뉴욕 킹덤즈는 이번 2033시즌에서 마운드뿐만 아니라 타선도 메이저리그에서 수위에 들 정도로 막강한 타선을 선보였다.

그 막강한 타선의 바탕에는 메이저리그에서도 가장 많은 돈을 쓰며 엄청난 사치세를 내는 킹덤즈의 재력이 있었다.

심지어 뉴욕 킹덤즈는 돈을 쓸 때도 헛돈을 쓰는 게 아니라, 꼭 필요한 선수를 사오는 안목까지 갖추고 있었다.

야구계는 물론이고 팬들까지도 돈으로 우승 반지를 살 수만 있다면 가장 많은 우승 반지를 가져갈 구단이 바로 뉴욕 킹덤즈라는 건 말하지 않아도 알 정도였다.

그리고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월드 시리즈 우승을 거둔 구단도 사실 뉴욕 킹덤즈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많은 메이저리그 구단과 팬들이 뉴욕 킹덤즈를 돈으로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를 산 악의 제국이라 부르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 메이저리그에서가 가장 돈을 적게 쓰는 스몰 마켓 구단인 오클랜드 슬랙스를 상대로 가장 돈을 많이 쓰는 구단인 뉴욕 킹덤즈가 맥을 못 추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오늘 이곳 뉴슬랙스 볼파크를 찾은 오클랜드 슬랙스의 팬과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을 구경하기 위해 온 다른 메이저리그 야구팬은 악의 제국 뉴욕 킹덤즈의 부진한 모습에 환호를 질렀다.

“우와아아아!”

“김승주 아나운서도 방금 전 보셨겠지만, 정대호 선수의 예고 홈런을 맞은 헤르만 킹 투수가 고개를 떨어뜨리지 않았습니까?”

“네. 3B 2S 풀카운트 상황에서 12 to 6 커브였지요.”

다년간 KBO 중계는 물론이고 메이저리그 중계를 하다 보니, 야구 상식에 대해 많이 알게 된 김승주가 조금 전 헤르만 킹이 홈런을 맞은 구종에 대해 정확하게 언급했다.

“맞습니다. 바로 그 12 to 6 커브가 헤르만 킹 투수의 시그니처 변화구입니다.”

“시그니처요?”

“예, 어떤 투수하면 떠오르는 구종이 있지 않습니까?”

“정확히 어떤…….”

“일단 예를 들어보면 페드로 마르티네스 하면 뭐가 떠오르십니까?”

“체인지업!”

“예. 정확하게는 서클 체인지업이죠.”

“아!”

설명을 들은 김승주는 짧은 탄성을 질렀다.

너무도 예가 적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어떻다는 것이죠?”

시그니처 구종이 홈런이 된 것은 이해가 되었지만, 그게 어떻다는 것인지는 아직 이해를 하지 못했다.

“하하.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정대호 선수를 잡기 위해 숨겨 둔 비장의 무기를 꺼냈는데 그게 통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니, 아예 카운터를 맞은 격이죠.”

“아하! 준비해 두었던 비장의 수가 예고 홈런을 맞으며 멘탈이 나가 버렸다는 말이군요.”

“맞습니다. 아마도 헤르만 투수는 지금 정신이 없을 겁니다.”

모든 설명을 듣고 보니 김승주의 눈에 마운드 위로 올라가는 애런 본 감독의 모습이 다르게 보였다.

마운드에 올라간 애런 본은 이런저런 설명 없이 선발 투수인 헤르만 킹에게서 공을 넘겨받았다.

“역시 예상대로 헤르만 킹 투수에게서 공을 넘겨받는군요.”

하구연 해설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 한 마디 하였다.

“우와아아!”

오클랜드 슬랙스 팬들은 뉴욕 킹덤즈에서 먼저 선발투수를 교체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크게 환호했다.

사실 처음 경기가 시작될 때 무척이나 걱정을 했다.

원정이라고는 하지만 뉴욕 킹덤즈에선 1선발 에이스가 나오는데, 자신들은 홈에서 첫 게임을 상대에게 내주겠다는 것인지, 4선발이 나온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걱정하면서 경기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라면 4선발 라이언 헤밀턴이 5회까지 2점으로 잘 막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타자들이 대거 6점을 뽑아냈다.

물론 4점차가 크기는 하지만 안심할 수 있는 점수 차는 아니었다.

그런데 뉴욕 킹덤즈에서 먼저 투수 교체가 나온 것이다.

1선발이 마운드에서 물러나고 불펜이 가동된다는 소리였다.

* * *

뉴욕 킹덤즈의 투수 교체를 지켜보는 오클랜드 슬랙스 코칭스태프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라이언!”

“네, 보스!”

더그아웃에서 쉬고 있는데 느닷없이 마이크 케세이 감독이 자신을 부르자 라이언 헤밀턴은 급히 대답을 하였다.

“혹시 한 이닝 더 던질 수 있나?”

현재 스코어는 2:6으로 4점 차로 자신들이 이기고 있었다.

원래 계획이라면 4선발인 라이언 헤밀턴은 5회까지만 던질 예정이었다.

그리고 라이언도 그에 맞게 체력 안배를 하며 투구를 하였다.

그런데 지금 1이닝을 더 던질 수 있는지 감독이 물어 온 것이다.

“예, 던질 수는 있습니다.”

5회까지만 예정을 하고 공을 던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모든 체력을 소비한 것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집중력이 오르고 또 제구가 잘 먹히면서 평소보다 체력 소모도 덜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보다 집중력이 높아지니 제구가 잘되면서 삼진을 더 많이 잡았고, 또 내야 땅볼이 많이 나오면서 투구 수도 평소보다 적었다.

정신적으로야 조금 피로하긴 했지만, 한 회 더 던진다고 집중력이 흐트러질 정도는 아니라 느꼈다.

그래서 던질 수 있다고 대답을 한 것이다.

“좋아! 1점이라도 점수를 내줄 것 같으면 바로 교체를 할 테니 크게 부담 가질 필요는 없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 있습니다.”

“좋아! 그럼 6회까지만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라이언 헤밀턴은 그렇게 감독으로부터 한 회만 더 맡아 달라는 부탁에 흔쾌히 대답을 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 순간, 다시 한 번 뉴슬랙스 볼파크가 팬들의 환호성으로 뒤흔들렸다.

“우와아아!”

2번 타자 켈리 달튼이 솔로 홈런을 친 것이었다.

오늘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에서 대호의 다음 타선인 2번 타자로 자리를 옮긴 달튼은 대호의 투런 홈런에 자극을 받은 것인지 뉴욕 킹덤즈의 바뀐 투수의 초구를 노려 백투백 홈런을 쳤다.

이로써 스코어는 5점 차로 더 벌어졌다.

하지만 뉴욕 킹덤즈의 악몽은 이제 시작이었다.

3번 타자로 타석에 들어선 지미 울프가 2B 2S 상황에서 짧게 끊어 친 타구가 2루수 키를 넘기며 우익수 앞으로 떨어지는 안타가 되었다.

안타를 친 지미 울프는 굳이 무리하지 않고 4번 타자인 홈런 브레드에게 역할을 넘겼는데, 경기 전 대호에게 보약을 얻어먹은 홈런 브레드가 그 값을 하려는지 투수가 던진 몸 쪽 무릎 밑으로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그대로 받아쳐 투런 홈런을 만들었다.

“우와아아!”

주장이자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홈런 브레드의 투런 홈런으로 스코어는 또다시 2점이 추가되면서 2:9, 7점차로 벌어졌다.

정규 시즌에는 간간히 홈런을 치던 홈런 브레드가 포스트 시즌이 되면서 아직까지 홈런을 한 개도 기록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팬들이 나이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낙담을 하고 있을 때 터진 홈런이다 보니, 뉴슬랙스 볼파크를 찾은 오클랜드 슬랙스 팬들은 대호가 예고 홈런을 쳤을 때보다 더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대호야 누구나 인정하는 홈런 타자지만, 주장인 홈런 브레드는 이제 나이가 마흔을 바라보는 서른아홉 살이었다.

그 때문에 선수로써 올해가 마지막이라 말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홈런을 치니 팬들이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장! 한 건 했네요.”

“그래 네가 준 보약 값은 했네.”

“하하하하!”

투런 홈런을 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 홈런 브레드를 보며 브렛이 농담을 건네자, 시합 전 함께 보약 한 포씩 했던 처지라 홈런 브레드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자신을 보며 약값을 했다는 주장의 말에 대호는 그저 웃었다.

“뭐야? 너희 뭐 몰래 먹었어?”

언제 다가왔는지 애디 프랭크가 다가와 물었다.

“먹는 건 항상 조심하라고.”

애디는 조심스럽게 말을 하였다.

그는 한때 몸이 좋지 못해 에이전트를 통해 약을 처방 받아 먹었는데, 하필 거기에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금지하는 성분이 포함되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다행이 의사 처방을 받은 뒤에 치료에 필요한 약이었다는 것이 증명되면서 제제를 받지는 않았지만, 당시만 해도 구단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문제였다.

오클랜드 슬랙스의 불법 약물 파동은 그만큼 여파가 큰일이었기에 당시 프런트는 정말이지 폭탄을 맞은 것만큼이나 어수선했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정식 검사를 받은 것이니.”

자신을 걱정해 주는 애디 프랭크의 말에 대호가 대답했다.

“그래? 그런 거라면 나도 좀 줄 수 있어?”

내일 선발로 예정이 되어 있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호에게 물어본 것이다.

그런 애디의 말에 대호는 슬쩍 주변을 살폈다.

괜히 누군 주고, 누군 주지 않는 것처럼 되다 보니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것은 전적으로 대호가 한국인이기에 나오는 특성이었다.

서양인들은, 아니 한국인 외의 다른 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는 것에 대해 눈치를 보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 또한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에 굳이 관여를 하지 않기도 했다.

다른 동료들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가방에서 약봉지를 꺼내 애디에게 주었다.

“내일 경기 전 30분 전에 드세요.”

보약을 받자마자 먹으려는 애디를 보며 조언을 했다.

“내일 경기 30분 전?”

“네, 그때가 가장 약발이 좋아요.”

“맞아! 그건 내가 보증하지.”

홈런 브레드가 자리에 앉으며 자신이 보증을 하겠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그런 주장의 모습에 애디는 손에 들린 약봉지를 자신의 가방에 챙겼다.

야구와 관련된 문제에선 절대로 농담을 하지 않는 주장의 성격을 알기에 애디 프랭크도 조용히 이를 따른 것이다.

5회 말 노아웃에 4점이 추가 되었다.

사실상 경기는 오클랜드 슬랙스 쪽으로 기울었다.

조금 전 4점차 때까지만 해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안타와 홈런이 터지면서 점수는 7점차로 벌어져 버렸다.

하지만 뉴욕 킹덤즈의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홈런 브레드의 투런 홈런에 이어 5번 타자로 나온 리키 헨슨이 또다시 백투백 홈런을 친 것이다.

참으로 진기한 장면이 나왔다.

대호가 두 번째 타자로 나와 예고 투런 홈런을 치고 달튼이 백투백 홈런을 쳤다.

또 지미 울프가 안타를 치고 나가니 4번 타자인 주장 홈런 브레드가 투런 홈런을 치고, 5번 타자 리키 헨슨이 백투백 홈런을 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기가 막힌 우연이 아닐 수 없었다.

한편 안타와 투런 홈런으로 점수를 8점차까지 벌려 축제 분위기인 오클랜드 슬랙스 더그아웃과 다르게, 선발 투수에 이어 릴리프로 올라온 불펜 투수마저 아웃 카운트 하나 잡지 못하고 내리 홈런과 안타를 맞으며 4점을 내주자 뉴욕 킹덤즈 더그아웃은 난리가 났다.

어떻게든 이번 이닝을 최소한의 점수로 막아 내고 추격을 하려 했는데, 그게 불발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애런 본은 급히 불펜에 연락을 하였다.

다음 투수를 준비시키려는 것이다.

그 사이 연속해서 안타와 홈런을 맞아 4점이나 헌납한 릴리프 투수를 진정시키기 위해 타임을 요청하고 투수 코치가 마운드로 올라갔다.

한 차례 숨고르기 위한 방편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도 통하지 않았다.

6번 타자 시몬 몬데스가 안타를 치고 진루를 하였다.

그렇게 아무런 아웃 카운트 하나 잡지 못하고 뉴욕 킹덤즈는 다시 한번 투수를 교체하였다.

뉴욕 킹덤즈의 세 번째 투수는 패트 크록으로 이번 시즌 불펜 투수로 나와 승패 없이 12홀드와 ERA(평균 자책점) 2.44를 기록하며 훌륭한 성적을 냈다.

그렇기에 애런 본 감독은 더 이상 점수를 내주면 가망이 없다고 판단해 그를 내보낸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은 이미 의미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5회에만 무려 6점이 났다.

2:4로 앞서고 있는 상태에서 무려 6점이 더 들어온 것이다.

이로 인해 스코어는 2:10으로 벌어졌고, 사실상 오클랜드 슬랙스 투수들이 불을 지른다 해도 8점차를 따라잡기에는 너무도 컸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노아웃 상황에서 주자가 2루에 나가 있고, 타석에는 오클랜드 슬랙스의 영건 트리오 중 한 명인 브렛이 들어섰다는 점이다.

메이저리그 2년차임에도 불구하고 브렛은 대호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소포모어 징크스 없이 이번 시즌에도 맹타를 휘두르며 30홈런 119타점 타율 0.346을 기록하고 있었다.

홈런은 물론이고 타율과 타점을 보면 그가 얼마나 찬스에 강한지 알 수 있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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