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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차는 명전이다-162화 (162/209)

162화

2033년 4월 14일에 벌어졌던 아메리칸리그 서부 지구 오클랜드 슬랙스와 텍사스 레이스의 3연전이 끝난 뒤, 미국은 한 가지 소식으로 뒤집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경기에서 메이저리그 신기록이 달성되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의 수많은 기록 중 기존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은 단 네 명만이 간직하고 있던 여덟 경기 연속 홈런이 최다였다.

그런데 오클랜드 슬랙스 소속 선수인 대호가 불과 스물두 살의 나이로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을 아홉 경기로 한 경기 늘리자 당연히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1956년 데일 롱, 1987년 돈 매팅리, 1993년 켄 그리피 주니어, 그리고 2033년 대호가 텍사스 레이스와 2연전에서 연속해서 홈런을 치며 갱신을 했다.

이러다 보니 세간의 관심은 이제 대호가 연속 홈런을 몇 경기나 더 칠 수 있을지에 쏠리고 있었다.

또한 야구팬들이 이렇게까지 대호의 홈런에 관심을 두는 것 자체가 그의 재능을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시즌 초라고 하지만 그의 타율은 무려 8할이 넘어갔고, 장타력은 2점대에 가까웠다.

아니, 아웃이나 단타를 세는 것이 더 빠를 정도로 대호의 장타율은 다른 메이저리거 중에서도 독보적이다.

그렇기에 팬들의 생각은 다른 구단 투수들이 대호와의 대결을 회피하지 않는다면, 몇 경기 더 홈런을 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 *

원정 6연전 중 3연전 상대인 텍사스 레이스를 상대로 기분 좋게 3승 스윕을 거두고 휴스턴으로 이동한 오클랜드 슬랙스는 피곤이 체 풀리기도 전에 휴스턴 스트로스의 홈구장인 미닛 메이드 파크를 찾았다.

메이저리거는 비행기를 타고 이동을 한다고 하지만, 긴 이동 거리와 비행을 하면서 기압의 변화로 선수들의 몸은 지칠 수밖에 없다.

또 그런 육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지치기에 정상적인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은 아무리 메이저리거라 해도 쉬운 일은 아니다.

“뭐야, 너희 얼굴이 왜 그래? 어제 잠 안 잤어?”

대호는 경기장에 나온 친구들을 보며 놀라 물었다.

아무리 원정 경기가 홈경기보다 육체와 정신에 부하를 준다고 하지만, 친구들의 얼굴은 정말이지 두 눈으로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다크 서클이 짙게 내려와 있었다.

“하! 말을 말자!”

그 질문을 받은 브렛은 잠시 대호의 얼굴을 쳐다보다 고개를 돌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켈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뭐야? 무슨 일인데 그래?”

두 친구의 모습이 다른 때와 같지 않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장난기 많은 두 친구의 평소와 다른 반응에 대호는 알 수가 없다는 표정을 하였다.

하지만 두 사람이 피곤한 것은 전적으로 대호 때문이었다.

어제 신기록을 달성한 이후, 대호에게 쏟아지는 연락은 정말이지 말로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아내인 한나와 좋은 시간을 보내지도 못할 정도로 바빴다.

하지만 슬슬 날씨가 더워지는 상황이라 원정 숙소인 호텔의 창문을 열어 놓고 있었는데, 그 바람에 소음 피해를 입힌 것이었다.

물론 대호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브렛과 켈리의 오늘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그런데 막상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는 대호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묻고 있으니 그냥 외면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응? 너희 얼굴 왜 그래?”

조금 늦게 운동장에 나온 홈런 브레드 역시 브렛과 켈리의 얼굴을 보고는 깜짝 놀라 물었다.

9연승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팀의 주전 2루수와 3루수의 컨디션이 난조를 보이고 있는 모습을 보았으니, 주장으로써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경기장에 나온 오클랜드 슬랙스의 선수들 중 브렛과 켈리뿐만 아니라 몇몇 다른 이들도 무척이나 피곤해 보였다.

다들 밤에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한 듯, 다크 서클이 눈 밑으로 내려와 있었다.

‘도대체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다들 피곤해하는 거야!’

자신과 몇몇 주전 선수들을 빼고, 젊은 선수들의 얼굴이 말도 아니었기에 오늘 경기가 걱정되는 브레드였다.

* * *

“볼! Walk!”

텍사스 레이스에 이어 휴스턴 스트로스의 투수도 대호를 상대로 제대로 승부하려 하지 않았다.

첫 타석에서 스트레이트 볼넷을 받아 1루에 진루한 대호는 표정의 변화 없이 1루에서 자세를 잡았다.

“우우우우!”

대호가 1루에 나가자 관중석에선 커다란 야유가 흘러나왔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대호도, 그리고 마운드에 있는 투수도 신경 쓰지 않았다.

타석에 들어서는 지미 울프의 모습을 지켜본 대호는 천천히 1루 베이스에서 거리를 넓혔다.

언제든 2루로 뛸 수 있게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런 대호의 움직임에 투수는 견제하였다.

휙!

“세이프!”

루상에 나가면 피곤한 타입인 대호였기에 휴스턴의 투수는 최대한 대호를 진루하지 못하게 견제하였다.

‘그렇다고 내가 도루를 하지 않을 줄 아냐?’

배와 벨트 부분에 묻은 흙을 털어 내며 미소를 짓는 대호는 속으로 그렇게 투수가 자신을 의식하게 만들었다.

그래야 빈틈이 생길 테고 자신은 도루를, 그리고 2번 타자인 지미는 보다 쉽게 타격을 가져갈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한편 마운드에 있는 휴스턴 스트로스의 5선발 헥터 네스리는 더그아웃의 지시로 1루에 주자를 내보냈지만 그것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젠장!’

대호의 장타력이 무섭긴 했지만, 그래도 게임을 이기기 위해선 피하기만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헥터였다.

그런데 선두 타자부터 볼넷으로 내보내고 시작하려니, 이상하게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고 있는 것 같아 투구하는 것이 불편했다.

선발투수는 예민한 동물이라고 하는 말도 있듯 평소와 같지 않은 출발을 하다 보니, 헥터 네스리의 투구는 제구가 제대로 잡히지 못하고 중구난방으로 들어갔다.

“볼! Walk!”

시작부터 볼넷이 두 번 연속 선언되면서 노아웃에 주자 1, 2루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헥터의 고난의 시작은 계속되었다.

“볼! Walk!”

세 번째 볼넷.

3번 타자까지 노아웃 볼넷이 되자 보다 못한 휴스턴의 더그아웃에서 타임 요구가 들어왔다.

“타임!”

그러고 나서 휴스턴에서는 급히 투수 코치를 마운드로 올려 보냈다.

3루에 도착한 대호는 휴스턴의 투수 코치가 마운드 위로 급히 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제구가 특기인 투수가 루틴이 틀어지면서 제구력 난조를 보이니, 1회 초부터 위기를 맞은 휴스턴이다.

반면 오클랜드는 노아웃 주자 만루, 타자는 팀의 주장인 홈런 브레드가 대기를 하고 있었다.

홈팀인 휴스턴에는 최대의 위기 상황이고, 반대로 원정 팀인 오클랜드 슬랙스 입장에선 대량 득점을 할 최고의 기회였다.

기록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 대호를 볼넷으로 내보내는 것까진 좋았지만, 휴스턴의 출발은 시작부터 좋지 못하게 흘러갔다.

‘지금 상황에서 투수 코치가 마운드에 올라간다고 해도, 뭘 뚜렷하게 해 줄 수 있겠어?’

대호의 생각대로였다.

그저 컨디션 난조로 인해 제구를 잡지 못하는 건데, 딱히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물론 투수를 격려할 수 있는 효과 정도는 있겠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짧은 시간이 흐르고 재개된 경기.

여전히 제구력 난조를 보이는 헥터는 스트라이크를 잡기 위해 구속을 줄이고 투구를 하였다.

볼카운트는 2B 노 스트라이크.

하지만 헥터는 타석에 서 있는 홈런 브레드가 타격 능력이 뛰어난 오클랜드의 중심 타선 중 하나라는 걸 깜빡하고 말았다.

비록 나이가 들어 예전만 못한 반응속도였지만, 기껏해야 92마일짜리 포심 패스트볼에 반응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따아악!

잘 맞은 타구가 우중간 깊은 곳으로 날아갔다.

조금만 탄도각이 컸다면 홈런도 바라볼 수 있었겠지만, 살짝 아쉬움이 있었다.

그렇지만 잘 맞은 타구는 펜스 상단을 맞추고 그라운드에 떨어졌다.

홈런 브레드가 친 타구의 타격음을 들은 주자들이 빠르게 스타트를 끊고 홈까지 달렸다.

3루에 있던 대호는 가볍게 홈에 들어왔고, 2루에 있던 지미 울프도 여유 있게 홈으로 들어왔다.

1루에 있던 리키 헨슨은 홈에서 접전을 벌이긴 했지만, 공을 잡은 휴스턴의 우익수 요한 알바레즈의 송구가 우측으로 치우쳐 날아온 덕분에 홈에서 세이프가 되었다.

그사이 타자인 홈런 브레드는 2루까지 진루하였다.

싹쓸이 2루타가 나온 것이다.

“와아아아!”

노아웃 만루 상황에서 싹쓸이 2루타가 터지고, 순식간에 3점을 획득한 오클랜드는 아직까지 스트라이크 존에 대한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헥터 네스리를 상대로 안타와 볼넷을 걸러 내며 점수를 뽑아냈다.

타자가 일순되었음에도 경기는 아직도 1회였다.

투아웃 주자 2, 3루 상황에 또다시 타석에 들어선 대호, 그런 대호를 쳐다보는 헥터 네스리의 표정은 검게 죽어 있었다.

1회 초에 5실점을 하고 아웃 카운트를 하나 남겨 두고 있는 상황에서 헥터 네스리는 자신도 모르게 더그아웃을 쳐다보았다.

처음 대호를 볼넷으로 내보낸 뒤 가졌던 불만은 사라지고,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선 대호에 대한 부담감만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는 어서 빨리 투수를 바꿔 주길 기다리며 더그아웃을 쳐다본 것이다.

‘하, 젠장!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아무리 선발진 중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5선발이라고 하지만, 첫 등판 경기에선 6이닝 2실점을 하면서 잘 막았다.

그런데 두 번째 등판인 오늘은 무슨 마가 낀 것처럼 엉망이 되었다.

잘 제구가 되던 포심도, 타자의 방망이를 끌어내던 슬라이더도 제구가 되지 않았다.

‘느낌이 좋지 않아!’

헥터 네스리는 그렇게 제구가 잡히지 않는 지금, 어서 빨리 교체해 주길 기대했지만 더그아웃에서 사인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네스리의 예감은 불행하게도 틀리지 않았다.

제구가 되지 않던 포심에 이어 이번에는 바깥쪽으로 빠지는 슬라이더가 제대로 꺾이지 못하고 밋밋하게 바깥쪽으로 날아갔다.

그런 밋밋한 슬라이더는 대호의 먹잇감이 되었다.

따아아악!

“와아아아아!”

텍사스에 이어 휴스턴까지 따라온 오클랜드 슬랙스의 팬들은 대호의 타격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이는 원정팀 더그아웃에 있던 오클랜드 슬랙스의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대호가 다시 한번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을 갱신한 순간이었다.

열 경기 연속 홈런이라는 기록을 세운 대호는 가벼운 걸음으로 그라운드를 돌았다.

“우와아아아!”

턱!

가볍게 조깅을 하듯 그라운드를 돌고 홈으로 들어온 대호는 홈 플레이트를 밟고 앞서 홈으로 들어와 기다리던 주자들과 하이파이브를 하였다.

그리고 타석에 대기하던 지미 울프와도 기쁨을 나눴다.

짝짝짝!

지미 울프는 어린 나이지만, 메이저리그의 역사를 써 나가고 있는 대호를 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와, 씨. 괴물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건 뭐…….’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대호는 그 별명처럼 인크레더블했다.

더그아웃에서 동료들과 기쁨을 나눈 대호는 감독의 말을 듣고 다시 바깥으로 나왔다.

“인크레더블! 그냥 들어가지 말고, 여기까지 찾아 준 팬들에게 손이라도 흔들어 줘!”

마이크 케세이 감독의 말에 대호는 밖으로 나와 더그아웃 뒤에 있는 팬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대호가 그런 팬 서비스를 해 주는 모습을 본 팬들은 더욱더 경기장이 떠나갈 정도로 큰 소리를 지르며 환호하였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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