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메이저리그는 물론이고 세계에서도 유일하게 열 경기 연속 홈런 기록을 달성한 대호는 다시 한번 머릿속을 울리는 알람을 들었다.
― 띠링!
[10경기 연속 홈런 기록을 달성하셨습니다. 이는 메이저리그는 물론이고, 세계 최초 기록입니다. 보상으로 힘 3, 순발력 3, 컨택 스탯이 3 상승합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오!’
대호의 현재 상황에서는 충분히 차고 넘치는 보상이었다.
즉시 상태창을 켜 본 대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레벨 업에 필요한 경험치가 상당히 많이 올라가기까지 해, 만족의 미소가 걸렸다.
‘세계 신기록을 달성했을 때의 보상을 기대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많이 준다고?’
더군다나 힘, 순발력, 컨택이 3씩 증가하지 않았는가.
70을 돌파한 스탯은 1을 올리기 위해서 2포인트가 필요하다.
즉, 기존 레벨 업을 열여덟 번을 해야 9를 상승시킬 수 있던 것을 공짜로 얻은 셈이었다.
이로써 아직 70을 달성하지 못한 지능에 투자하는데 더더욱 거리낌이 없어진 대호였다.
‘지난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역시 기록을 세우면 경험치도 팍팍 오르는군.’
대호가 알람을 확인한 뒤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쓰리 아웃이 되면서 오클랜드의 1회 초 공격이 드디어 마무리되었다.
현재 스코어는 7:0.
오클랜드 슬랙스는 휴스턴 스트로스를 완전히 압도하고 있었다.
* * *
오클랜드 슬랙스의 1회 초 공격이 끝나고, 휴스턴 스트로스의 1회 말 공격이 시작되었다.
오클랜드의 오늘 선발투수는 작년 2032시즌 초반 2선발 레프리 그로스가 부상으로 시즌 아웃이 되었을 때, 3, 4선발을 오갔던 루브 월터였다.
이번 2033시즌에는 5선발로 밀리면서 시범 경기 중 조금 헤매기는 하였지만, 본 시즌에 들어서면서 확실하게 선발진에 합류하였다.
시애틀 마린스와 홈 3연전 중 두 번째 경기에 선발로 출전해 6이닝 1실점을 하며 1승을 챙겼다.
오늘 휴스턴과의 경기로 두 번째 선발 출장을 하고 있는데, 타자들이 1회에 무려 7점이나 벌어 주자 마음이 무척이나 편했다.
“루브! 파이팅!”
일곱 개의 연습 투구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경기가 시작되려던 때, 뒤쪽에서 대호의 파이팅이란 응원이 들려왔다.
참으로 희한한 말이 아닐 수 없었지만, 처음 이런 응원을 들었을 때는 조금 이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파이팅이라는 말은 미국에도 있지만 이것을 응원으로 사용하는 예는 분명 콩글리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응된 이후에는 대호의 외침을 듣지 않으면 뭔가 허전한 감이 생길 정도였다.
루브는 잠시 고개를 돌려 센터에 있는 대호를 지그시 쳐다보다가 다시 홈을 바라보았다.
괜히 시간을 끌었다가는 볼 하나를 손해 볼 수 있기에 그런 것이다.
빠르게 투구 동작에 들어간 루브는 자신감 있게 포심 패스트볼을 가운데 스트라이크 존에 뿌렸다.
예전이라면 감히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았겠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타자들이 벌어 준 많은 점수도 있고, 또 자신의 뒤에는 든든한 동료들이 있기에 그런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었다.
펑!
“스트라이크!”
타자의 의표를 찌르는 한가운데 95마일짜리 포심 패스트볼이다 보니, 휴스턴의 리드오프인 알렉스 레그먼은 이를 두 눈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펑!
“스트라이크!”
두 번째 투구도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다.
한가운데 포심 패스트볼에 이어 안에서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고속 슬라이더를 던져 타자의 헛스윙을 끌어냈다.
노 볼 투 스트라이크에 고무된 루브 월터는 안쪽 하이 패스트볼을 던져 헛스윙 삼진을 잡았다.
펑!
“스윙! 삼진 아웃!”
“와아아아!”
선두 타자를 삼구 삼진으로 잡아내자, 휴스턴까지 따라온 원정팬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 * *
1회 7점이나 뽑아내고, 2회 초 공격에서 바뀐 투수를 상대로 또다시 2점을 뽑아낸 오클랜드 슬랙스.
그들은 휴스턴과의 원정 3연전 중 첫 게임을 17:3, 14점이란 차이로 대승을 거두었다.
이날 대호는 5타석 4타수 3안타 1홈런, 또 2루타 두 개와 볼넷 하나를 얻으며 자신의 장타력을 다시 한번 팬들에게 각인시켰다.
하지만 이 날은 너무 많은 점수 차로 인해 도루는 하지 않았다.
많은 점수 차를 보일 때는 도루를 하지 않는다는 메이저리그의 불문율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선 기록을 위해 시도하고 싶었지만, 괜한 분란을 일으켜 봐야 좋을 것이 없었기에 그냥 참기로 하였다.
솔직히 말해서 자신이 초인적인 신체 능력과 동체 시력을 가졌다고 한들, 모든 데드 볼을 피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에는 100마일을 던지는 투수도 존재했기에 괜히 모험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내가 당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 대신 우리 팀의 선수들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지.’
메이저리그 불문율이 시간이 흐르고, 또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노력으로 많이 희석되긴 했다.
하지만 일부 선수들 중에는 이런 불문율도 메이저리그의 전통 중 하나라고 고집을 부리는 이들도 있었기에 이는 어쩔 수 없는 문제다.
아무튼 원정 1차전에서 오클랜드 슬랙스는 또 한 번의 승리를 취하며 10연승을 이어 갔다.
그리고 날이 밝자 어제보다 많은 관중이 휴스턴의 홈구장인 미닛 메이드 파크를 찾았다.
대호의 열 경기 연속 홈런에 이어 열한 경기 연속 홈런이 나올지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 * *
KBC스포츠 중계석에서는 경기가 시작도 되기 전부터 아나운서인 김승주와 해설 위원인 하구연이 열띤 중계를 하고 있었다.
“텍사스 레이스와의 3연전에서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을 세우더니, 어제 휴스턴 스트로스와의 원정 1차전에서 홈런을 쳐 정대호 선수의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은 열 경기로 늘어난 상태입니다. 어제부로 세계 기록을 경신하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우리의 정대호 선수, 야구 역사에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
하구연 해설은 마치 대호의 대변인이라도 된 것처럼 야구 역사를 거론하며 경기가 시작도 되기 전부터 흥분하기 시작했다.
“워워. 위원님, 진정하시고요.”
“하하, 제가 좀 흥분했지요. 죄송합니다.”
하구연은 얼른 사과를 하고, 다시 말을 이어 갔다.
“정대호 선수를 떠올리자 저도 모르게 그만 흥분하고 말았습니다.”
“하하하. 위원님만 그런 것은 아니니 이해합니다.”
김승주는 사과를 하는 하구연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해한다는 대답을 하였다.
솔직히 대한민국 야구팬 중 조금 전 하구연과 다른 반응을 보여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제 겨우 스물두 살의 청년이 꿈의 무대라 할 수 있는 메이저리그에서 맹활약을 펼치는 중이니 한 명의 야구인으로써 당연한 일이었다.
보고만 있어도 절로 즐거운 생각만 드는 사람이 바로 정대호였다.
또 한편으로는 경외감이 느껴졌다.
역대 야구의 전설들이 써 내려간 전설적인 이야기를 데뷔 시즌부터 지금까지 고작 3년만에 이룩했으니 당연했다.
야구하면 떠올리는 이름 베이브 루스나 약쟁이 베리 본즈, 그들의 WAR(대체 수준 대비 승리 기여도)보다 대호가 더 높았다.
현대 야구의 세이버메트릭스 기록 중 WAR만큼 중요한 지표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야구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베이브 루스를 제쳤으니 더할 말이 없었다.
심지어 그 베이브 루스보다 발도 더 빠른 게 대호였다.
작년 2032시즌 66개의 도루를 성공시켰다.
사실 이는 대호가 도루를 많이 노리지 않아 그런 것이지, 작정하고 도루를 노렸더라면 한 시즌 최다 도루 기록을 뛰어넘었을지도 몰랐다.
다만 그렇게까지 할 이유도 없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기에 적당히 뛰었다.
그럼에도 세계 최초로 50―50클럽과 60―60클럽을 동시에 이룩하였다.
이렇듯 뭐만 하면 세계 기록이니, 하구연 해설이나 김승주 아나운서가 대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흥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럼 오늘 경기의 관전 포인트는…….”
“당연히 정대호 선수의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이 계속 이어질 것인지 아니겠습니까?”
하구연 해설은 질문을 받고 당연하다는 듯이 대호의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을 언급했다.
“하하,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다만…….”
김승주는 조금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카메라를 보며 이야기를 하였다.
휴스턴의 투수가 어제에 이어 오늘도 대호와 정면 승부를 할 것인가에 대한 언급이었다.
사실 어제 경기도 대호가 홈런을 치긴 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휴스턴 스트로스의 선발 헥터 네스리는 정면 승부를 벌이다 홈런을 맞은 것이 아니라 제구력 난조로 인한 실투에 홈런을 얻어맞은 것이었다.
“김승주 아나운서님의 걱정도 이해하지만, 오늘 휴스턴의 선발은 에이스 랜디 맥킬러스 아니겠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랜디 존슨의 재림이라고까지 불리는 그이기에 정면 승부를 볼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요.”
랜디 맥킬러스는 최대 구속 98마일을 자랑하는 투수로, 포심 패스트볼이 특기였다.
그의 좌완에서 뿜어지는 포심 패스트볼은 오른쪽 타자가 느끼기에는 정말 마구와 같은 공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은 랜디 맥킬러스와 정대호의 정면 승부를 기대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오늘 선발 등판하는 랜디 맥킬러스는 대호와 정면 대결을 하려고 벼르고 있었다.
도망치는 피칭을 하다 제구력 난조를 겪고 실투로 홈런을 맞은 헥터 네스리를 지켜보았으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했다.
또한 코칭스태프들이 이제 겨우 메이저리그 3년차인 어린 대호를 상대로 보여 준 추태는 휴스턴의 에이스 랜디 맥킬러스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기도 했다.
팀의 에이스로써 이제 겨우 스물두 살의 어린 선수를 두려워하는 구단 관계자들을 보며 암담한 생각과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만약 시즌이 오픈한지 이제 겨우 2주가 되는 시점이 아니었다면, 팀을 떠나고 싶을 정도로 그의 자존심이 구겨진 상태다.
그러다 보니 오늘 그의 기분은 그 어느 때보다 좋지 못했다.
한없이 날카롭고 예민해진 그는 누가 보더라도 지금 화가 많이 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 *
펑!
좌완 투수가 던지는 98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이 몸쪽 깊이 꽂혔다.
“스트라이크!”
초구 스트라이크 콜이 터졌다.
대호는 자신의 몸 쪽으로 날아오는 포심 패스트볼에 처음으로 움찔했다.
3년이란 기간 동안 대호는 수많은 투수들을 상대해 보았다.
그중에는 방금 전 랜디 맥킬러스가 던진 포심보다 더 빠른 구속을 가진 투수의 공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공도 방금 전만큼 위협적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허! 휴스턴의 에이스라고 하더니 대단하네.’
몸 쪽으로 파고드는 좌완 포심 패스트볼의 위력을 확인한 대호는 잠시 타임을 요청하고 타석에서 물러나 스윙 체크를 하였다.
붕! 붕! 붕!
가볍게 스윙 체크를 하고 다시 타석에 들어선 대호는 깊게 심호흡을 하였다.
펑!
“볼!”
초구와 비슷한 코스로 날아온 공이었지만, 이번에는 스트라이크가 아닌 볼 판정을 받았다.
방금 전보다 좀 더 몸 쪽 깊이 들어오는 바람에 대호는 엉덩이를 뒤로 빼며 공을 피했다.
‘랜디 존슨의 재림이라고 불리는 것이 괜히 그런 것이 아니군.’
위협적인 구위를 본 대호는 랜디 맥킬러스가 애리조나 백스의 전설 랜디 존슨의 재림이라 불리는 이유를 알았다.
‘정면 대결을 해 준다면 이보다 좋을 수는 없지.’
다만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이 대기록에 도전을 할 때 피하기만 하던 투수들과 다르게, 공격적으로 투구를 하는 랜디 맥킬러스를 보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