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160화 (160/209)

160화

“와아아아!”

펄럭펄럭!

텍사스 레이스의 홈구장인 글로브 라이프 필드 안은 온통 태극기와 성조기의 물결로 가득했다.

메이저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기록 중 하나가 갱신되었고, 또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글로브 라이프 필드를 찾은 야구팬은 모두 신기록이 나올 것인지 이대로 끝날 것인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와아아아!”

열화와도 같은 야구팬의 함성을 들으며 대호는 타석에 들어섰다.

‘무조건 홈런을 친다.’

오늘 홈런을 치면 연속 경기 홈런 세계 기록과 동률이 된다.

아홉 경기 연속 경기 홈런 기록, 그것은 대호와 같은 한국인 선수가 가지고 있었다.

비록 KBO에서 나온 기록이지만, 어찌 되었든 세계 기록은 기록인 것이다.

팡!

“볼!”

초구는 볼이 선언되었다.

바깥쪽으로 공 두 개는 빠진 볼이었다.

‘…이거 좋지 않은데?’

그러나 대호의 결심과는 다르게 볼이 된 초구를 확인하자마자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두 번째 공도 역시나 예상한 대로 볼이었다.

팡!

“볼!”

아무래도 텍사스 레이스 코칭스태프들은 대호의 신기록 갱신을 방해하려는 것인지, 승부를 피하였다.

메이저리그에는 많은 불문율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대기록을 쓰고 있는 것을 고의로 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 텍사스의 행동처럼 그러한 불문율이라고 해서 모두 이를 지키는 것은 아니다.

팡!

“볼!”

삼 구 또한 스트라이크 존과는 한참이나 벗어난 볼이 들어왔다.

“뭐야! 승부를 피하는 거야?”

포수가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젠장! 애송이 새끼가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고의 사구 작전을 구사하고 있는 텍사스 레이스의 포수가 화를 냈다.

“들었어? 큭큭,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어.”

화를 내는 조나 하이스를 보며 다시 한번 도발하였다.

“겁쟁이 새끼들!”

결정적인 트리거가 되었는지, 겁쟁이란 소리에 조나가 발끈했다.

“어디 그럼 해 봐!”

휘익!

펑!

“볼! Walk!”

말은 승부를 볼 것처럼 했지만, 정작 들어온 공은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는 공이 아니라 대호의 머리에 가까운 곳으로 날아온 위협구였다.

“병신! 이게 너희의 결의냐!”

방망이를 뒤로 던지며, 1루로 나가기 전 포수인 조나를 보며 빈정거렸다.

그런 대호의 말에도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조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우우우우!”

대기록의 도전을 보러 왔던 야구팬들은 고의 사구로 1루로 걸어 나가는 대호를 보며 야유를 하였다.

하지만 이들의 야유가 누구를 향한 것인지는 그라운드 안에 있는 선수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고의 사구로 1루에 진루한 대호는 1루에 도착해 착용하고 있던 장갑을 주루코치에게 넘기고 장갑을 바꿔 착용했다.

‘뭐 승부하지 않겠다면, 나도 다른 것을 노리면 되지.’

상대가 자신과 정면 대결을 하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이 있었다.

야구란 종목에 도전할 과제는 많이 있으니 말이다.

저벅저벅!

1루 베이스에서 세 걸음 정도 떨어져 자세를 잡았다.

언제라도 빈틈이 보이면 2루로 도루를 하겠다는 느낌을 풀풀 풍기면서 말이다.

“뛴다! 뛰어!”

투수를 보며 대호는 그렇게 약을 올렸다.

그런 대호의 모습에 1루에 나가 있는 주루 코치는 입을 가리며 웃었다.

연속 경기 홈런이란 대기록에 도전하고 있으면서도 대호는 전혀 긴장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으며, 고의 사구로 기회가 한 번 날아갔음에도 또 다른 부분을 노리며 투수를 흔들었으니까.

* * *

3회 초, 주자 1루 상황에서 대호는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섰다.

첫 타석은 고의 사구로 진루를 하였다.

“이번에도 내 머리를 향해 던질 건가?”

타석에 들어서던 대호는 포수를 보며 도발하였다.

1회 고의 사구를 던지던 중 마지막 공을 머리 쪽으로 던진 것을 언급했다.

하지만 대호의 도발에도 조나 하이스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마운드 위 투수만을 보았다.

팡!

“볼!”

이번에도 텍사스 레이스의 투수는 볼을 던졌다.

대호는 이번에도 텍사스가 자신과 정면 승부를 하지 않을 것을 짐작하고 더그아웃에 사인을 보냈다.

그런 대호의 손짓에 더그아웃도 1루에 나가 있는 주자에게 사인을 보냈다.

이미 상대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질지 알고 있는데, 이를 그냥 두고 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감독의 지시를 받은 수석 코치가 더그아웃 밖으로 나가 주자에게 작전 지시를 내렸다.

‘투수가 투구 동작에 들어가면 바로 뛰어!’

1루 주자에게 도루를 지시한 뒤 더그아웃으로 들어간 그렉 수석 코치, 그리고 마운드 위에 있는 투수가 투구 동작에 들어가자 바로 작전대로 2루로 뛰기 시작한 주자.

이러한 모습을 모두 지켜본 대호는 주자의 2루 도루를 돕기 위해 배트를 휘둘렀다.

부웅!

절대 공이 맞지 않을 궤적으로 헛스윙을 하였다.

이 때문에 주자가 뛰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도루 저지에 들어가던 조나 하이스는 제때 공을 2루로 던지지 못하였다.

“스트라이크!”

대호의 헛스윙으로 주자는 2루로 진출을 하였지만, 볼카운트는 1B 1S가 되었다.

하지만 텍사스 레이스 더그아웃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차피 볼넷이 되면 1루 주자는 2루로 진출을 하기에 도루로 2루에 가나 타자가 볼넷을 얻어 2루로 걸어가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텍사스 레이스의 코칭스태프들은 아직 오클랜드 측에서 짠 작전을 완벽히 파악하지 못했다.

‘한 번 더!’

대호에게 고의 사구를 던질 거라고 예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겨우 2루로 도루하고 말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난센스였다.

다다다다!

투수가 투구 동작에 들어가자 2루에 있던 주자는 다시 한번 3루로 도루를 시도하였다.

휙!

주자가 3루에 도루 성공을 하자 그제야 텍사스 더그아웃도 오클랜드 슬랙스의 의도를 깨달았다.

하지만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노아웃 주자 3루가 되었다.

대호를 볼넷으로 내보내도 1, 3루가 되어 안타 하나만 나와도 점수를 주게 된 상황.

“이제 어떻게 할래?”

볼카운트 1B 2S 상황에서 대호는 이래도 승부를 하지 않을 것인지 또다시 도발했다.

이에 조나 하이스가 자신의 더그아웃을 쳐다보았다.

혹시나 작전의 변화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더그아웃에선 어떤 지시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작전에 변화가 없다는 뜻.

‘젠장, 아무리 상대가 두려워도 이건 아니지.’

조나의 머릿속에는 코칭스태프의 작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싹텄다.

물론 타석에 있는 놈은 괴물이 맞았다.

그렇다고 세계 최고의 야구 리그인 메이저리그에서 특정 상대를 이렇게까지 피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다.

더욱이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불문율까지 어겨 가면서 승부를 피한다는 것은 너무도 부끄러웠다.

심지어 이렇게 했는데도 상대에게 기록을 헌납하거나 경기에 지기라도 한다면, 다른 구단은 물론이고 팬들에게도 외면을 받을 수 있었다.

또 자신들이 기록에 도전할 때, 다른 구단도 자신들처럼 승부를 피해도 어떤 불만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이 계속해서 조나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래. 계속해서 그렇게 생각하라고.’

대호가 슬쩍 눈치를 보니 자신의 의도대로 포수가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렇게 흔들다 보면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이라 생각하며 지금은 참기로 하였다.

상대가 승부를 해 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 봐야 자신만 손해란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대호였기에 조금 더 여유를 가지기 위해 흥분을 가라앉혔다.

“Walk!”

3회 두 번째 타석에서도 대호는 고의사구로 1루로 걸어나갔다.

1루에 걸어 나간 대호는 투수가 2번 타자 지미 울프를 상대할 때, 다시 한번 2루로 도루를 하였다.

대호가 도루할 때, 포수인 조나 하이스는 2루로 공을 던지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라운드에는 대호만 있는 것이 아니라 3루에 주자가 더 있었기에 자칫 도루하는 대호를 견제하려고 2루로 공을 던졌다가 3루 주자가 홈으로 더블스틸을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다 보니 노아웃에 주자는 어느새 2, 3루가 되어 버렸다.

짧은 안타 하나만 나와도 자칫 2점을 내줄 수도 있었다.

더욱이 타석에 있는 타자도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타격감이 좋은 지미 울프.

OPS가 1.089이며 올 시즌 홈런도 두 개나 쳤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타자가 바로 지미 울프였다.

정말이지 산 넘어 산이 바로 이럴 때를 지칭하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따악!

조나의 걱정은 맞아떨어졌다.

잘 맞은 타구가 내야를 벗어나 외야 우중간에 떨어져 버린 것.

다다다다.

타격음이 들리자마자 대호는 뛰기 시작했다.

* * *

5회 초 2사 1루, 타석에는 오늘 세 번째 타석을 맞은 1번 타자 대호가 들어섰다.

게임 스코어는 4:0.

텍사스 레이스의 선발 하워드 스펜은 투구 수가 이미 98구로 한계 투구인 100구에 고작 2구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대호가 타석에 들어섰는데 아직까지 투수 교체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마도 대호까지 상대하고 내리든지, 아니면 이번 5회까지 마무리하고 교체를 하려는 것 같았다.

‘나까지 던진다고? 그럼 나야 좋지.’

텍사스 더그아웃에서 투수 교체를 하지 않고 이번 회까지 던지게 하려는 것 같은 분위기에 대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투구 수가 많고 지치면 타자에겐 기회가 더 생길 것이란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투수는 상당히 예민한 동물이다.

작은 신체의 변화에도 투구는 극과 극으로 변한다.

그 때문에 선발투수를 다섯 명이나 두고 로테이션으로 돌리는 것이다.

팡!

“볼!”

이번에도 이전 타석과 같이 볼이 들어왔다.

하지만 대호는 느낄 수 있었다.

이전에 던지던 공과 지금 투수가 던지고 있는 공의 성질이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기다리면 실투가 나올 거야.’

대호는 그렇게 머릿속에 실투가 나올 것이라 세뇌를 하며 투수의 투구 동작에 집중했다.

“볼!”

“볼!”

순식간에 3B 노 스트라이크가 되었다.

틱!

“파울!”

대호는 볼넷이 되려고 하자 얼른 커트를 하였다.

탁!

“파울!”

연속 세 개의 볼을 얻은 다음, 계속해서 커트를 하자 순식간에 풀카운트가 되었다.

틱! 틱!

연속해서 대호는 커트를 하며 실투가 날아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온다는 말처럼 정말로 실투가 날아왔다.

‘왔다.’

바깥쪽으로 빠지는 볼을 던지려 했지만, 손에서 빠졌는지 밋밋하게 날아오는 공은 스트라이크 존 가운데 느린 속도로 날아왔다.

이보다 좋은 배팅 볼이 없을 정도로 느리고 밋밋한 공이었다.

따아아악!

대호의 타구는 맑은 소리를 내며 대기를 갈랐다.

너무도 잘 맞은 타구다 보니 1루에 있던 주자도 타구를 보느라 뛰지 않았고, 조금 전까지 소리 지르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휘두르던 사람들도 하던 것을 멈추고 대호가 친 타구를 눈으로 쫓았다.

“홈런!”

타구를 쫓아 달리던 텍사스 레이스의 중견수는 워닝 트랙을 지나 펜스까지 달렸지만, 공을 잡진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호가 친 공은 펜스보다 3m나 더 뒤로 날아가 넘어갔기 때문이다.

“우와아아!”

심판의 홈런 선언을 듣고 직접 눈으로 펜스를 넘어간 것을 확인하자, 팬들은 그제야 환호성을 질렀다.

메이저리그가 시작되고 역사적인 기록이 나오는 날, 경기장에서 그 광경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비록 이곳에는 홈팀인 텍사스 레이스를 응원하는 팬이 더 많기는 했지만, 그들도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 있었기에 일단은 환호했다.

뒤늦게 이런 기록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상대로 라이벌 구단의 선수가 만들어 냈다는 것을 깨닫고 후회를 하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니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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