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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차는 명전이다-159화 (159/209)
  • 159화

    오클랜드 슬랙스의 투수 체프 벤은 1회 두 명의 주자를 내보내긴 했지만, 점수는 내주지 않고 1회를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텍사스 레이스의 선발 잭 그레이도 2회 오클랜드 슬랙스의 타자를 맞아 삼자범퇴로 처리했다.

    아무런 소득 없이 2:0으로 앞서가는 오클랜드 슬랙스, 체프 벤은 2회에도 한 명의 주자를 내보냈지만, 후속 타자를 삼자범퇴 시키며 막아 냈다.

    그리고 3회 초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선 대호.

    그런 대호를 맞이한 잭 그레이는 다시 한번 대호를 잡기 위해 승부를 펼쳤다.

    이미 여덟 경기 연속 홈런 기록을 내준 터라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생각에 승부를 펼친 것이다.

    펑!

    “스트라이크!”

    초구는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다.

    다만 이번 판정은 대호의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게 했다.

    대호가 판단하기에 바깥쪽으로 반 개 정도 빠진 것이었는데, 이것에 스트라이크 콜을 불렀기 때문이다.

    펑!

    “스트라이크!”

    이번에도 비슷한 코스에 반 개 빠진 볼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심판은 이를 스트라이크 판정을 하였다.

    ‘내가 정한 스트라이크 존보다 자꾸 조금씩 빠지는데, 판정은 스트라이크네.’

    대호는 잠시 주심에게 타임을 요청하고 타석에서 한 발자국 물러났다.

    붕! 붕!

    그러고 나서 허공에 스윙을 몇 번 하며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에 맞춰 자신의 계획을 수정해야 하나 고심했다.

    ‘아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지. 그냥 다음에는 비슷한 코스로 올 때 참지 말고 커트하면 돼.’

    그렇게 지켜보다가 자신이 정한 존으로 공이 온다면 그때 제대로 된 스윙을 하면 그만이었다.

    마음을 한 차례 가다듬은 대호는 다시 타석에 서서 자세를 가다듬었다.

    딱!

    이번에는 몸 안쪽으로 조금 벗어나게 들어왔지만, 가만히 기다리지 않고 커트하여 파울선 바깥으로 내보냈다.

    인코스라고 방심하고 있다간 루킹 삼진을 당할 위기였으니까.

    퍽!

    4구째 투구가 날아왔다.

    ‘설마 여기도 스트라이크를 부르진 않겠지.’

    공 하나정도 벗어난 위치였고, 이번에는 주심이 콜을 부르지 않고 볼 판정을 내렸다.

    볼카운트는 1B 2S.

    투수가 더 유리한 상황임에도 대호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여유롭게 다시금 자세를 잡았다.

    퍽!

    “볼!”

    이번에는 바깥쪽 낮은 코스로 들어온 공이었지만, 볼이 선언되었다.

    움찔.

    ‘휴! 다행이다.’

    초구와 비슷하게 보이는 코스로 날아오던 공은 다행히 패스트볼이 아닌 종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였다.

    그러다 보니 주심이 스트라이크 콜을 불렀던 위치보다 밑으로 떨어졌고, 볼카운트는 2B 2S.

    이젠 슬슬 팽팽한 카운트가 되었고, 대호도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이제 결정구가 날아오겠군.’

    대호가 느끼기에 이번 공에 투수가 승부수를 띄울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어디…….’

    승부구가 들어올 것이란 예감을 한 대호는 타격 준비를 하였다.

    온몸에 힘을 풀고 자세를 잡았다.

    언제든 한 점에 힘을 쏟아 낼 수 있게 최대한 근육에 힘을 풀었다.

    ‘온다.’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던 공이 날아왔다.

    휘익!

    잘 던지던 잭 그레이는 너무 신중한 나머지 마지막 순간, 손끝에 힘이 들어가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예상하던 코스에서 살짝 벗어나 가운데로 1인치 정도 몰리며 날아들었다.

    원래 던지려던 곳보다 1인치 더 가운데로 들어간 투구는 대호가 기다리던 실투였다.

    따아아악!

    파울 타구와는 타격음부터 달랐다.

    글로브 라이프 필드를 울리는 맑은 타격음은 타구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 주듯 경기장 안을 울렸다.

    “우와아아!”

    “홈런!”

    멀티 홈런이 나왔다.

    1회 초 담장을 넘기는 홈런이 나오고, 3회 초 이번에는 경기장을 벗어나는 장외 홈런이 터졌다.

    수비를 하지 않아 남아도는 힘을 이번 타석에서 쏟아 낸 것처럼 비거리 150m가 넘어가는 대형 홈런이었다.

    탁탁탁탁!

    천천히 조깅을 하듯 가볍게 그라운드를 돌았다.

    베이스를 밟으며 여유롭게 그라운드를 도는 대호와 다르게 대호에게 홈런 두 방을 맞은 잭 그레이는 진이 빠진 모습으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최선을 다해 어떻게든 잡아 보려던 타자였다.

    그리고 실제로 2B 2S까지 잘 만들었지만, 마무리가 좋지 못했다.

    승부수를 띄웠는데 상대는 이미 그런 자신의 생각을 읽고 미리 대비를 하고 있었다.

    또 꼭 잡고 말겠다는 욕심에 공을 뿌릴 때, 조금 과한 힘이 들어갔다.

    평범한 타자였다면 그 정도 실수는 무시해도 되었을 테지만, 인크레더블이란 별명을 가진 상대에게 그런 조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다.

    뒤늦게 상대가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현혹되어선 안 될 무서운 괴물이란 것을 너무도 늦게 깨달았다.

    저벅저벅.

    고개를 숙이고 있던 잭 그레이의 귀가에 누군가 마운드로 걸어오는 소리가 드렸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보니 자신에게 다가오는 투수 코치의 모습이 보였다.

    ‘아!’

    그제야 깨달았다.

    ‘이번 회가 마지막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잭 그레이는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상태로는 더 이상 공을 던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투수가 준비될 때까지 시간을 벌어줘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네, 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하였다.

    그렇게 투수 코치가 마운드에서 물러나고 잭 그레이는 멍한 표정으로 공을 던졌다.

    그나마 다행일까.

    기계적으로 아무런 생각 없이 던지는 바람에 몇 차례 더 타자에게 얻어맞았음에도 아직 경기 스코어는 4:0이었다.

    다행히 대호에게 홈런을 허용했지만 그 이후 멘탈이 무너진 상태에서 고작 1점밖에 실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 *

    선발이 3회에 무너져 버린 텍사스 레이스는 결국 경기 초반에 내준 4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오클랜드 슬랙스에게 6:3으로 졌다.

    이로써 오클랜드 슬랙스는 원정 3경기 중 먼저 2승을 챙기며 위닝 시리즈를 확보했다.

    마지막 3경기까지 가져간다면 스윕과 함께 9연승을 하는 것이 된다.

    하지만 야구팬의 관심은 그게 아니었다.

    메이저리그 연속 경기 홈런 신기록인 여덟 경기 연속 홈런 기록을 갱신한 대호가 아홉 경기 연속 홈런을 때려 낼 수 있을 것인지 그것에 있었다.

    그에 반해 텍사스 레이스 팬은 절대로 이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게임을 내주더라도 신기록만은 막아 달라는 텍사스 팬들의 요청에 텍사스 레이스 프런트는 물론이고 코칭스태프들까지 비상이 걸렸다.

    아무리 팬의 요구라도 승부를 피할 수는 없지 않은가?

    또 그렇다고 무서운 기세로 홈런을 치고 있는 대호와 정면 승부를 벌이기에는 너무도 무서웠다.

    이 때문에 텍사스 레이스 코칭스태프와 프런트는 딜레마에 빠졌다.

    승부를 하는 것도, 또 피하는 것도 어느 것 하나 텍사스 레이스 입장에서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 * *

    닭의 목은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던가, 날이 밝고 운명의 때가 다가왔다.

    오클랜드 슬랙스와 텍사스 레이스의 마지막 3연전이 치러지는 날이 밝았다.

    이날 대호가 메이저리그 신기록을 새롭게 쓸 것인지를 보기 위해 많은 야구팬이 텍사스 레이스의 홈구장인 글로브 라이프 필드를 찾았다.

    너무도 많은 사람이 경기장을 찾아오다 보니 미리 티켓을 구하지 못한 사람은 경기장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그런데 이상한 모습은 태극기를 들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인, 즉 동양인이 태극기를 든 것이야 대호를 응원하기 위해서 그렇다고 하지만, 백인과 흑인들까지 그러고 있는 건 정말 희한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심지어 그들은 이곳에서 한국어로 이야기를 나누기까지 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 한류가 세계로 퍼져 나가며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많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미국 내에서 한국어는 주류가 아니었다.

    영어와 스페인어, 그리고 프랑스어 정도만이 주로 쓰였지 한국어는 특별히 한국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만 베우는 말과 글이었다.

    그럼에도 오늘 경기장 주변에는 한국어를 쓸 줄 아는 백인과 흑인들이 상당히 많았다.

    “안녕하세요, 대호! 사인 부탁해요.”

    또박또박한 한국어로 대호에게 사인을 부탁하는 흑인의 말에 대호는 밝은 미소와 함께 흔쾌히 사인을 해 주었다.

    “사진도 찍어 드릴까요?”

    대호도 살짝 놀란 얼굴로 물어보니, 상대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지며 대답하였다.

    “물론이죠!”

    그렇게 대호는 태극기의 물결 속에서 팬들에게 사인과 사진을 찍어 주며 서비스를 하였다.

    * * *

    “와… 난 정말 이곳이 텍사스인지 한국인지 헷갈렸어!”

    로커 룸으로 들어온 브렛은 흥분한 목소리로 떠들었다.

    그가 이토록 흥분한 이유는 글로브 라이프 필드 경기장 안팎으로 태극기의 물결이 넘실거렸기 때문이다.

    태극기가 한국의 국기란 것은 친구인 대호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오늘 너무도 많은 태극기의 물결에 기가 질려 버렸다.

    “브렛, 너도 봤어?”

    먼저 경기장에 도착했던 켈리는 브렛이 흥분해 소리치면서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물었다.

    브렛과 켈리가 경기장 안과 밖에서 돌아다니는 태극기 물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어느새 모였는지 선수들이 로커에 가득했다.

    그리고 경기 전 미팅을 하기 위해 코칭스태프들도 안으로 들어왔다.

    “조용! 집중해라!”

    “넷!”

    마이크 케세이 감독의 호통에 소란스럽던 로커 룸이 조용해졌다.

    “오늘은 텍사스 레이스와 원정 마지막 경기다.”

    감독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자 모든 사람의 그의 말에 집중했다.

    “모든 일은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무리도 중요하다. 그렇지 않나?”

    “예, 그렇습니다.”

    마무리도 중요하다는 감독의 말에 모두가 그렇다고 대답을 하였다.

    그런 선수들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감독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런 의미에서 위닝 시리즈는 확보했지만, 난 텍사스를 완전히 쓸어버리고 싶다. 알겠나?”

    감독의 말은 텍사스 레이스를 상대로 스윕 승을 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저희도 같은 생각입니다.”

    조용한 가운데 대호만이 감독과 같은 생각이라며 떠들었다.

    팀의 막내 라인인 대호가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대답을 하자, 감독 마이크 케세이는 미소를 지으며 선수단을 돌아보았다.

    “설마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선수가 인크레더블 혼자만인가?”

    “아닙니다. 저희도 감독과 같은 생각입니다.”

    감독의 질문에 다른 선수들도 얼른 대답을 하였다.

    “하하하! 나도 너희가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다.”

    지저분한 원정팀 로커였지만 오클랜드 슬랙스의 선수와 코칭스태프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이미 목표한 것은 이루었다.

    원정 세 경기 중 두 경기만 이겨도 성공한 것인데, 이미 두 경기를 이기고 마지막 경기만을 남겨 두고 있었으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었다.

    심지어 어제 경기에서 시험했던 것까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으니 이 또한 기쁜 일이었다.

    “감독님! 그런데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느닷없이 대호가 감독을 보며 말을 하였다.

    “그래, 뭐지?”

    “저… 오늘 지명타자가 아니라 선발로 출전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보면 감독의 권한을 침범한 무례한 말일 수도 있는 것이지만, 대호는 그냥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였다.

    “어제 지명타자로 출전하였는데, 뭔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했습니다.”

    대호는 어제 지명타자로 나서 공격과 신기록 갱신에만 집중하였지만, 숙소에 돌아온 뒤 느꼈던 기분은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에너지가 넘치는 그였기에 수비에 나가지 않은 것이 오히려 독이 된 것이다.

    ‘흠!’

    대호의 말에 마이크 케세이 감독은 조용히 그를 쳐다보았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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