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147화 (147/209)

147화

오클랜드 슬랙스와 텍사스 레이스의 2033시즌 시범 경기 첫 경기는 오클랜드의 9:7 승리로 끝났다.

대호는 4회까지 출전해 3타수 3안타 2홈런과 1도루로 100% 출루를 기록했다.

그뿐만 아니라 경기가 끝나고 이날 MVP로 인터뷰까지 하게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울프TV 메이저리거 투나잇의 새로운 리포터 한나 정입니다.”

새롭게 오클랜드 슬랙스 담당 리포터가 된 한나는 카메라를 보며 인사를 하였다.

“오늘부터 많은 메이저리그 팬이 기다리던 야구의 시즌이 시작되었습니다.”

준비된 멘트를 시작으로 한나는 팬들의 관심을 고조시키는 화법으로 이야기를 이어 갔다.

“저는 지금 캑터스 리그가 벌어지고 있는 이곳 애리조나 피닉스에 나왔습니다.”

한나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시각, 경기를 마치고 대기를 하고 있던 대호가 조용히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원래라면 리포터인 그녀가 준비된 멘트를 마치고 인터뷰를 할 선수를 찾아왔을 터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인터뷰어가 바로 자신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어? 오늘의 인터뷰이인 오클랜드 슬랙스의 빅 타이거, 정대호 선수가 먼저 와 주었습니다!”

한나는 대호의 출현에 잠시 놀랐지만, 이제는 능숙한 베테랑이 되었기에 얼른 신색을 숨기고 인터뷰에 들어갔다.

“정대호 선수, 오늘 시범 경기에서 첫 타석과 두 번째 타석에서 각각 솔로 홈런과 투런 홈런을 치셨는데, 기분은 어떠십니까?”

너무도 정석적인 질문이었지만, 대호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 주었다.

“작년 챔피언십 시리즈 첫 경기에서 부상으로 팬들이 많이 걱정을 하셨는데, 이젠 그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어 행복합니다.”

연타석 홈런을 친 것에 대한 소감이 아니라, 팬들에게 자신의 건재함을 보여 줄 수 있어 기쁘다는 말에 한나는 쓰게 웃었다.

팬들에 대한 서비스 정신이 인터뷰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나는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한나는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인터뷰를 계속했다.

“오늘 상대였던 텍사스 레이스의 투수 잭 켄트를 상대로 첫 타석에서 홈런을 쳤는데, 그때 기분은 어땠나요?”

한나는 다시 한번 홈런을 쳤을 때 기분을 물었다.

이는 오클랜드의 팬들의 궁금증을 풀어 주기 위한 것은 물론이고, 그녀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사실 한나도 작년 시즌이 끝나고 마음속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

자신과 결혼을 하고 나서 혹시라도 대호가 성적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그런 고민 말이다.

그런데 시범 경기 첫 타석에서 상대 투수의 공을 자비 없이 그대로 받아 쳐 홈런을 만들어 버렸다.

비록 남편이 아침에 나가기 전 오늘 자신을 위해 홈런을 치겠다고 약속을 하긴 했지만, 홈런이란 것이 치고 싶다고 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그가 메이저리그에서도 정점에 있는 대타자라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대호는 첫 타석에서 그녀와의 약속을 지켰다.

그래서 물어보는 것이다.

자신은 남편이 약속한 것을 지켜 주어 기분이 좋은데, 당신은 어떤 기분이냐고 말이다.

그런 아내의 질문에 대호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오늘 아침에 숙소를 나오면서 아내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느닷없는 대호의 말에 순간 한나의 얼굴이 붉어졌다.

‘여기서 그런 말을…….’

아침에 자신에게 했던 약속을 언급하자 그녀는 급 당황했다.

“2033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오늘 경기에서 아내를 위해 홈런을 치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나왔습니다.”

대호의 말이 카메라를 타고 전국에 중계가 되었다.

아니, 메이저리그와 계약한 모든 방송국을 통해 전 세계의 야구팬에게 중계가 되어 버렸다.

한편 인터뷰를 하는 대호의 뒤로 음료수 통을 들고 다가오던 브렛과 켈리는 방금 전 대호가 한 이야기를 모두 듣고는 하려던 것도 멈추고 굳어 버렸다.

메이저리그의 MVP 인터뷰를 하는 선수들에게 전통처럼 하는 행동인 음료수 뿌리기를 위해 다가갔는데, 너무나 닭살스러운 대화를 듣자 그만 제자리에 멈춰 버린 것이었다.

이 모습도 전국에 송출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방송 사고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상으로 오클랜드 슬랙스와 텍사스 레이스의 시범 경기 MVP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그나마 리포터인 한나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인터뷰를 마쳤다.

브렛과 켈리 역시 그 말을 듣자마자 들고 있던 음료수를 대호에게 뒤집어씌우려 하였지만, 너무도 빠른 움직임에 실패하고 말았다.

“한나, 나 잘했지?”

대호가 인터뷰를 마치고 마이크를 스태프에게 넘기고 있는 한나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물었다.

“어머!”

누군가 자신을 뒤에서 끌어안자 한나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곧 이곳에서 자신을 이렇게 과감하게 끌어안을 사람이 대호뿐이란 것을 깨닫고 안도를 하였다.

“자기, 사람도 많은데…….”

한나는 낮은 목소리로 투정을 하기는 했지만, 대호의 품에서 빠져나오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두근두근!

아니, 오히려 흥분이 되어 더욱 그의 품에 안겼다.

스윽!

쪽!

대호는 자신의 품으로 더욱 안기는 한나를 돌려세우고는 입에 키스를 하였다.

인터뷰가 끝났으니 이제는 아내의 위치로 온 그녀에게 남편으로써 본분을 다하는 것이다.

그런 대호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부러운 시선으로 쳐다보는 이들이 있었다.

‘나도 빨리 결혼을 할까?’

‘부럽네!’

* * *

덜그럭덜그럭.

웅성웅성!

시범 경기가 끝나고 오클랜드 슬랙스 선수들은 기쁜 마음으로 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각자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떠들었다.

“브렛은 작년 결혼식에서 봤고, 이 친구는 내가 트리플A에서 사귄 켈리 달튼이야.”

대호는 아내인 한나에게 친구인 켈리를 소개해 주었다.

“켈리, 여기는 한나 정. 내 아내야. 서로 인사해!”

“아휴! 마이너리그의 여신을 채 간 도둑이 바로 네놈이구나?”

한나를 소개받은 켈리는 짐짓 인상을 찡그리며, 대호에게 으르렁거렸다.

작년 2032시즌까지 마이너리그 서부 지구를 돌며 리포터 활동을 하던 한나다.

당연히 켈리 또한 그녀를 잘 알고 있었다.

더욱이 2031시즌 대호가 트리플A에 콜업 되고 경기 MVP가 되어 인터뷰를 했을 때, 켈리는 그 자리에도 있었기에 안면도 익힌 사이였다.

사실 마이너리그를 인터뷰하는 리포터 중 한나 만큼이나 인기가 많은 리포터는 아무도 없었다.

켈리도 대호와 사귄다는 걸 알기 전에는 은근히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친구와 데이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끌리는 감정을 묻어 두었다.

‘부러운 놈. 다 가진 놈!’

켈리는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로 대호는 그가 생각하기에 모든 것을 다 가진 부러운 놈이었다.

어떤 이유로 그런 진 모르겠지만, 이 순간 신이 너무도 불공평하다 생각했다.

“와! 다시 생각해도 대호 넌 전생에 나라를 구한 영웅일 거야!”

조용히 식사를 즐기고 있던 브렛이 느닷없이 그런 말을 꺼냈다.

“하하, 당연하지! 아니, 생각해 보니까 난 나라 정도가 아니라 세상을 구했을 거야. 그러니까 이렇게 여신처럼 아름다운 사람이랑 결혼하지 않았겠어?”

대호는 더욱 과장되게 말했지만, 그게 거짓처럼 들리지 않는 게 무서운 지점이었다.

“맞아! 여신을 뺏어 간 나쁜 놈!”

“그래, 대호는 나쁜 놈이야! 우리에게 하나라도 남겨 줄 것이지 다 가졌어!”

“어?”

다 가졌다는 켈리의 말에 농담을 던지던 브렛까지 깜짝 놀랐다.

다른 선수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서 그런 외침이 들렸기 때문이다.

사실 아무리 넓은 식당이라고 해도, 테이블 간의 간격이 생각보다 좁다 보니, 이들이 하는 이야기는 아주 잘 들렸다.

또한 정대호라는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도 유명한 사람이라서 다들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몰래 훔쳐 들었던 것도 있었다.

그 때문에 여기저기서 켈리의 넋두리에 동조하는 말이 나온 것이었다.

그러자 조금 전 대호가 하는 말에 얼굴이 달아올랐던 한나의 얼굴은 더 빨개질 것도 없이 완전히 붉게 물들었다.

‘어후! 어떡해!’

* * *

즐거운 식사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온 대호와 한나는 두 사람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보통 시범 경기 기간은 웬만해선 허락하지 않았지만, 오클랜드 프런트와 코칭스태프들은 몇몇 선수에 한해 허락해 주었다.

먼저 실제 부부여야 할 것, 그리고 코칭스태프들에게 함께 시간을 보내도 될 정도로 실력을 입증 받을 것, 두 가지를 만족한 이들 말이다.

아무리 결혼을 한 기혼자라고 하더라도, 프로로써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저 좋은 시간만 보내는 것은 용납하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 메이저리거라면 보통 적게는 백만에서 많게는 수천만 달러에 달하는 몸값을 자랑했다.

그러니 구단의 입장에서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당장 직업의 기량이 부족하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지 못하게 만든다는 뜻이었다.

어떻게 보면 비인륜적인 방침이 아닐 수 없지만, 메이저리그를 사랑하는 팬은 이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선수들 역시 불합리하다 생각되더라도 이런 방침을 따라야 했다.

하지만 대호는 이런 조건을 모두 만족시켰기에 아내인 한나와 함께 있을 수 있었다.

굳이 빡빡하게 관리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목표를 알아서 이루는 대호였기에 오클랜드 구단에서도 큰 걱정을 하지 않기도 했다.

만약 알아서 잘하고 있는 선수에게 간섭했다가 더 안 좋아지면 오히려 자신들만 손해였으니 말이다.

챙!

늦은 시각 발코니 테이블에 세팅된 와인 잔을 부딪치며 좋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사실 인터뷰 때, 자기가 거기서 그런 말을 할 줄 몰랐어.”

한나는 낮에 시범 경기 MVP 인터뷰 중 대호가 한 말을 떠올리며 이야기하였다.

“왜? 그래서 싫었어?”

대호는 와인글라스에 담긴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곤 그렇게 물었다.

“아니,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솔직히 기분 좋았어.”

남편의 물음에 한나는 당시 느꼈던 기분을 숨김없이 그대로 이야기를 하였다.

사실 한 번 화제가 된 이후로 많은 야구팬, 적어도 오클랜드의 팬들은 자신과 인터뷰이였던 대호와 어떤 관계인지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인터뷰 중 그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였으니 당연히 처음에는 부끄러웠다.

하지만 한나는 곧 터질 듯한 환희를 느낄 수 있었다.

남편이 자신과 한 개인적인 약속을 자랑이라도 하듯 공개적인 장소에서 자신을 보며 이야기를 해 주었으니 당연히 기뻤고,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만약 정말 세밀하고 숨기고 싶은 사생활을 함부로 얘기했다면 달랐겠지만, 아내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긴 약속이었기에 자기 대신 자랑해 준 대호에게 고마움을 느낄 정도였다.

“매일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어.”

와인을 마시며 말을 하던 한나는 순간 울컥해 목이 메었다.

와락!

그런 한나의 반응에 대호는 바로 그녀의 어깨를 당겨 안았다.

보통 여자들보다 키가 크고 또 나이도 자신보다 일곱 살이나 많았지만, 아내 한나는 정말 감수성이 예민했다.

자신의 작은 행동에도 감동하고 믿음을 주었다.

그러니 이번 생에서 만큼은 결혼 생활을 실패하지 않고, 그녀를 울리는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대호였다.

‘이번에는 결코 후회되는 행동은 하지 않을게.’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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