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148화 (148/209)

148화

오클랜드 슬랙스의 2033시즌 시범 경기 일정은 무척이나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일곱 번의 시범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5승 2패를 거두며 스프링캠프 기간에 기획하였던 리빌딩도 성공적인 것으로 보였다.

물론 시범 경기의 결과가 어떻든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패배하는 것보다는 승리가 더 좋지 않겠는가.

다만 대호는 작년과 다르게 많이 출전하지 않았다.

이는 작년 챔피언십 시리즈의 역전패를 당한 뒤, 코칭스태프들이 원인을 파악하고 내린 고육지책 때문이었다.

오클랜드 슬랙스 코칭스태프들은 챔피언십 시리즈 역전패의 원인으로 한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도 크다는 것을 꼽았다.

그도 그럴 것이, 대호가 출전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 수비와 공격 양쪽 모두 큰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클랜드는 대호가 올림픽 출전으로 빠졌던 9월, 2주간의 성적이 매우 훌륭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생각지 못했던 빈틈을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디트로이트 라이언스에 찔리며 패배했고, 결국 리그 준우승에 그쳤다.

물론 당시 대호의 부상 정도는 그리 위중하지 않았다.

겨우 발목 염좌일 뿐이었지만, 오클랜드 슬랙스 프런트는 과감하게 대호의 출전을 포기했다.

구단 최고의 유망주… 아니, 이제는 유망주를 넘어 구단 최고의 인기 스타인 대호의 미래와 결과를 알 수 없는 챔피언십과 월드 시리즈를 노리기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 시즌을 위해 챔피언십시리즈 모든 경기에 대호를 출전시키지 않는 강수를 두었다.

결과적으로 정말 팀이 대호에게 의존하고 있었다는 문제점이 드러났으니 패배했더라도 얻을 게 있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

단장인 조엘 역시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라고 생각했다.

“올해는 정대호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가을 야구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해!”

“네. 그걸 위해서 시범 경기부터 다양한 라인업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오클랜드에 부족한 투수를 데려오고, 야수들의 현금 트레이드로 빈 곳에는 유망주를 올려 준비하는 것.

지금은 그 준비 단계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초반에는 리그 적응 문제로 인해 성적이 저조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무조건 해야 할 일이었다.

지금 하지 않는다면 나중에는 분명 더 큰 비용을 내야 할지도 몰랐으니까.

다만 성공한다면 목표인 월드 시리즈까지 무탈하게 올라갈 수 있었다.

적어도 시범 경기 기간 동안은 성공적인 것으로 보였다.

* * *

따악!

“트리플A에서 올라온 켈리 달튼 선수, 안타! 우중간 안타를 때려 냅니다!”

장내 아나운서는 켈리 달튼의 안타를 보며 열광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짝짝짝짝!

3루 더그아웃 뒤쪽 오클랜드 슬랙스 팬들은 켈리 달튼의 안타에 환호와 함께 박수를 쳐 주었다.

“좋았어, 켈리!”

오늘 시범 경기, 수비에서도 3유간으로 빠질 것 같은 어려운 타구를 잡아내며 호수비를 보여 주었던 켈리가 이번에는 타석에서 2루타를 뽑아내며 점수를 냈다.

“작년 3루수를 맡고 있던 알렉스 디아즈가 콜로라도 럭키스로 떠난 빈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장내 아나운서는 심지어 켈리의 활약을 2032시즌 오클랜드의 주전이었던 알렉스 디아즈에 견주기까지 했다.

헛소리가 아니라, 정말 시범 경기 내내 켈리 달튼은 작년 알렉스 디아즈가 보여 주던 퍼포먼스에 버금가는 경기력을 뽐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운명을 정하는 경기가 바로 오늘이었기 때문이다.

여덟 번째 경기를 치르는 오늘, 지금까지의 결과를 놓고 오클랜드 슬랙스의 프런트는 2033시즌에서 운용할 25인 로스터를 결정하게 된다.

즉, 오늘을 놓치면 9월에 있을 40인 확장 로스터 때나 메이저로 올라올 수 있었으니 그가 눈에 불을 켜고 경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만 다른 선수들 역시 모두들 힘내고 있어 켈리는 내심 불안하기도 했다.

“오늘까지 본 결과 켈리 달튼은 충분히 자격이 있는 것 같습니다.”

수석 코치인 그렉은 조심스럽게 보고를 올렸다.

“주전? 백업?”

그러자 마이크 케세이 감독이 곧바로 반문했다.

“당연히 주전이죠.”

그렉 헥슬러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흠, 주전이란 말이지?”

감독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까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렉은 정말로 켈리가 3루수 주전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현재 오클랜드 슬랙스의 3루는 비어 있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

기존에 백업을 보던 케빈 브라운의 실력보다 올해 트리플A에서 올라온 켈리 달튼이 한층 더 나았다.

“그럼 내야는 그렇게 하기로 하고, 외야는 어때?”

마이크 케세이 감독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오클랜드 슬랙스란 배의 선장이나 다름이 없는 자리인 감독, 그 위치에 있다 보니 골치가 무척이나 아팠다.

리빌딩이 완성된 팀이었다면 시즌 준비만 하면 되는데, 오클랜드 슬랙스는 이번 시즌에도 또다시 리빌딩을 감행했다.

작년 2032시즌 정대호라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전무후무한 괴물을 보유하고도 챔피언십도 넘지 못해 주저앉았다.

그렇기에 프런트는 물론이고 코칭스태프들도 리빌딩을 하는 것에 찬성했다.

하지만 그 여파는 작지 않았다.

25인 로스터에 있던 주전 세 명을 다른 구단으로 트레이드하고, 빈 포지션 세 자리를 채워야 하는 상황이 왔으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익수 살라가 떠난 자리는 굳이 메꿀 필요가 없다는 것 정도인가.’

누구를 넣어도 1인분은 해 줄 수 있는 게 우익수 자리였기에 걱정하지 않았다.

단지 말 그대로 누구를 넣을 것인가가 고민일 뿐.

“외야는 그냥 무한 경쟁을 시키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무한 경쟁이라니.”

느닷없는 그렉 헥슬러 수석 코치의 제안에 마이크 케세이 감독이 놀라 물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어차피 센터 중견수는 대호의 자리이니 아무도 넘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죠. 하지만…….”

그렉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마이크 감독의 표정이 점점 밝아졌다.

수석 코치인 그렉이 어떤 뜻으로 그런 제안을 했는지 확실하게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외야수 중 대호를 제외하면, 가장 우수한 자원은 시몬이었다.

그는 대호가 콜업 되기 전까지만 해도 오클랜드 슬랙스의 주전 중견수였다.

하지만 너무도 괴물 같은 실력의 대호로 인해 자리에서 밀려나 좌익수로 이동하였다.

시몬이 외야 어떤 자리에 넣어도 수비가 가능한 멀티 플레이어였기에 대호와 공존 가능했지, 그렇지 않았다면 진즉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 되었을 것이다.

다만 다른 선수들도 시몬보다는 못해도 좌익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으니, 살라가 빠진 우익수 자리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즉, 무한 경쟁을 통해 가장 뛰어난 선수를 붙박이 주전으로 쓰면 된다는 뜻이었다.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지.”

내야에 이어 외야 포지션까지 결정이 되자, 그제야 마이크 감독의 표정이 풀어졌다.

고민거리가 모두 해결이 되었기 때문이다.

‘좋군. 물론 조금 불안한 것도 있지만, 남은 건 시즌을 치르면서 조정하면 될 문제지.’

그가 라인업을 한 번 살펴보니, 생각보다 오클랜드 슬랙스에 큰 변화는 없었다.

리빌딩이라는 말을 내건 것 치고는 말이다.

세 명의 주전이 빠졌지만 마이너리그에서 올라온 켈리가 한 자리를 차지했고, 또 2032시즌에 백업을 맡던 브렛이 2루수를 차지했다.

살라의 빈자리와 시몬의 자리는 경쟁을 통해 경기력을 끌어 올리기로 결정했으니까.

마운드에 투수 한 명이 늘어난 걸 생각하면 마이크 감독이 생각하기에 꽤 괜찮았다.

‘이 정도면 작년보다 전력이 더 강화된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수비적인 전력을 두고 말하는 것이었다.

공격력 측면은 조금 더 두고 볼 필요가 있었지만, 그는 이 또한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상대보다 점수가 1점만 높으면 되는 문제였으니까 말이다.

점수를 조금 덜 내더라도 점수를 적게 주면 되는 일이었다.

플러스마이너스 0이면 성공한 것 아니겠는가?

‘더욱이 빅 타이거의 송곳니와 발톱은 작년보다 더 날카로워졌어.’

그가 생각하기에 대호에게서 풍기는 느낌은 작년만큼 날카로운 맛은 떨어졌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연륜이 느껴졌다.

이제 겨우 스물두 살의 어린 선수에게 연륜이라는 단어까지 붙이는 건 조금 오버하는 감이 없지 않지만, 정말 그 단어 이외에는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2031과 2032시즌에도 엄청난 차이가 있었는데, 이젠 작년보다 더한 여유가 느껴진 것이었다.

‘작년에는 건드리면 큰일 난다라는 느낌이 들었지. 하지만 이번 시범 경기 동안에는 그저 편안함밖에 느껴지지 않았어.’

차라리 날을 바짝 세우고 있다면 투수가 경계할 텐데, 올해 대호에게서는 상대의 방심을 유도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이런 것이 바로 메이저리그의 베테랑이 풍기는 기운인데, 3년차의 선수가 가지게 된 것이었다.

“…올해는 작년에 못했던 월드 시리즈도 노려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그렉 헥슬러 수석 코치를 비롯한 코칭스태프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역대 오클랜드 슬랙스의 전력 중, 그 어느 때보다 공수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맞췄다고 말이다.

* * *

2033시즌 여덟 번째 시범 경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오클랜드 슬랙스 선수들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소집되어 회의실에 모였다.

웅성웅성!

무슨 일로 수석 코치가 자신들에게 이곳에 모이라고 한 것인지 알 수가 없어 장내가 조금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베테랑들은 이게 무슨 이유로 모인 것인지 알고 있지만, 조용히 기다렸다.

굳이 나서지 않아도 감독이 들어오면 조용해질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소란스러웠던 실내가 조용해졌다.

“저녁은 맛있게 먹었나?”

회의실 안으로 들어온 감독이 물었다.

“예!”

보스의 질문에 선수들은 짧게 대답을 하였다.

그런 선수들의 모습을 잠시 아무런 말없이 돌아보던 마이크 케세이 감독은 자신이 무엇 때문에 시범 경기를 치르고 나서 피곤한 이들을 불렀는지 설명을 하였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 너희를 부른 이유는… 바로 이번 시즌 주전을 알려 주기 위해서다.”

원래라면 그냥 마이너로 내려보낼 선수만 불러 간단하게 이야기를 해 줬을 테지만, 올해부터는 공식적으로 25인 로스터를 발표한 뒤, 탈락한 이들에게 따로 위로를 건네기로 결정했다.

한편 감독의 발표가 있자 이를 들은 선수들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조금 뒤면 자신의 미래가 결정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몇 선수들의 경우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았다.

2032시즌에도 주전으로 뛰었고 또 스프링캠프에서 확실히 어필을 하였으며, 시범 경기에서도 제 몫을 한 이들이었다.

반면 표정이 바뀌며 긴장한 이들은 대부분 마이너리그에서 올라온 일명 AAAA선수들이었다.

40인 확장 로스터에 포함이 되어 있으며, 시즌 도중 기존 메이저리거 사이에서 부상 선수가 나오면 이를 대체하기 위해 잠시 콜업 되던 선수들이었다.

긴장된 순간, 마이크 감독의 무심한 목소리가 회의실을 울렸다.

“일단 투수진부터 발표하겠다. 먼저 1선발에 프랭크…….”

발표의 시작은 선발투수 명단부터였다.

그리고 뒤이어 릴리프와 마무리 투수 순으로 이루어졌다.

“포수에는 랭글리, 파냐, 페레즈. 내야 1루수 리키, 2루수 브렛, 3루수 켈리, 유격수 지미 중견수 대호…….”

투수진에 이어 포수와 야수들이 호명되었다.

스물다섯 명의 주전 명단이 모두 호명되고, 선수들의 얼굴에는 희비가 교차했다.

호명이 된 선수들의 경우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올 2033시즌 메이저리거로써 경기에 나갈 것이고, 호명되지 못한 이들은 마이너로 내려가 9월에 있을 확장 로스터를 기다려야 했으니까 말이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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