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똑똑똑!
동료들과 저녁을 먹고 저녁 훈련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와 쉬려던 대호, 하지만 느닷없이 들린 노크 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세요?”
이 시간에 찾아올 사람이 없었기에 바깥을 향해 물었다.
똑똑똑!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이 다시 한번 노크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척!
하는 수없이 대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움직였다.
덜컹!
“누구신데…….”
막 누구냐 물으며 짜증을 내려던 대호는 순간 자신을 덮치는 그림자에 놀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그림자는 대호의 입술을 훔치고는 품에 뛰어들었다.
“달링!”
쪽!
대호의 품에 뛰어든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아내인 한나였다.
‘어? 여긴 어쩐 일이지?’
열렬한 아내의 키스 세례를 받으면서도 대호의 머릿속에는 그런 의문이 들었다.
며칠 후면 메이저리그 시범 경기가 치러진다.
그 말은, 리포터인 한나도 무척이나 바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소리였다.
문득 의문이 든 대호는 자신의 품에 안긴 그녀를 때어 내고는 물었다.
“한나, 잠시만. 여긴 어쩐 일이야?”
가장 바쁠 그녀가 일도 팽개치고 자신을 찾아왔을 리도 없으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응, 나 여기로 발령 났어!”
“발령이 나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아내의 말에 대호는 순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그런 대호의 반응에 한나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해 주었다.
“나 진급했거든!”
“진급?”
“응. 이번 시즌부터는 메이저리그를 담당하게 되었어. 그것도 자기가 속한 오클랜드 슬랙스 전담 리포터!”
“뭐? 그게 정말이야?”
대호는 깜짝 놀랐다.
작년 2032시즌까지만 해도 마이너리그를 담당하던 한나였다.
그 때문에 시즌 중 직접적으로 볼수 있는 날은 많지 않았다.
그마저도 자신이 시간을 내 그녀가 있는 도시로 찾아갔기에 연애를 이어 갈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진즉 깨졌을 것이다.
사실 대호가 이른 나이에 성급하게 한나와 결혼을 결정한 것도 이런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데 자주 만날 수는 없고, 또 아름다운 그녀를 이대로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결혼을 결심한 것이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기는 하지만, 인생 4회차인 대호에게 그런 나이 차이는 장애도 아니었다.
다섯 살까지 커버할 수 있다고 한 것은 농담으로, 솔직히 결혼에 목매지도 않았다.
하지만 대호가 한나와 결혼을 하려고 했던 이유는, 그녀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러한 느낌을 주는 여성은 정말 오랜만이었기에, 다른 상대를 만나기 보다는 결혼을 서두르는 쪽을 선택했다.
물론 한나가 리포터를 하면서 그녀의 인기가 날로 상승하고, 또 일전에 그녀에게 대시하는 이가 생긴 것도 한몫했다.
“그럼 시범 경기부터 우리를 따라다니는 거야?”
고개를 갸웃거린 대호는 한나가 언제부터 오클랜드를 취재하는 것인지 물어보았다.
“음… 아마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대호의 품에서 떨어진 한나는 그의 숙소 방으로 들어가며 대답했다.
“말도 없이 찾아왔다고 쫓아내는 것은 아니지?”
이야기하던 한나는 문득 떠오른 것이 있다는 듯 물었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대호는 느닷없는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혹시 숨겨 둔 우렁 각시가 있는 것은 아닌 가… 해서.”
짐짓 샐쭉한 표정을 짓고는 그렇게 대답을 하는 한나다.
“아니 우리 결혼한 지 이제 겨우 4개월 차야!”
한나의 대답을 들은 대호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하고는 대답했다.
이제 겨우 4달 차에 들어가는 신혼인데, 자신이 무슨 바람을 핀다는 것인지.
게다가 우렁 각시라는 말은 또 어디서 배운 것인지, 대호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하며 소리쳤다.
“농담이야! 나와 자기가 너무 떨어져 있는 것 같아서 혹시나 했지.”
쪽! 쪽! 쪽!
억울해하는 대호의 모습에 한나는 그에게 키스 세례를 하며 농담이라며 변명을 하였다.
‘하긴 한나가 자꾸 불안할 만도 하지. 말 그대로 결혼한 지 4개월째인데 같이 있던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
마음 같아서야 대호 역시 매일 함께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대호는 자신의 마음을 가까스로 참아 냈다.
그러기 위해선 누구 한 사람이 직장을 그만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대호 본인이나 한나를 위해서는 그리 좋은 판단이 아니다.
이미 한 차례 이별 아닌 이별을 하지 않았는가.
두 사람이 데이트를 하기도 전, 더블A에서 트리플A로 콜업 되면서 대호는 미들랜드 락하운즈에서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로 이동을 해야 했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당시 지역 방송국 리포터인 한나와 이별을 했다.
그러다 우연히 그녀 또한 야망을 위해 지역 방송국을 퇴사하고 울프TV로 이직을 하며, 다시 한번 대호와 인연을 맺게 되었고 말이다.
대호는 이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4회차 동안 회귀를 하면서 이렇게 인연이 이어지는 경우는 처음 겪었다.
그러하였기에 한나에게 먼저 대시하여 데이트 신청을 하고, 또 연인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입성, 그것도 초회에 투표단 만장일치 입성을 노리는 대호의 입장에선 솔직히 그런 즐거운 시간도 목표와 멀어지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대호는 짬짬이 시간을 내 한나를 만나러 다녔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LA에 맨션은 괜히 산 것 아냐?”
대호는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뉴욕만큼은 아니지만, LA도 집 가격이 만만치 않게 비싸다.
그것도 시내 중심에 있는 고급 맨션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었다.
중개인이 대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라 평균 시세보다 조금 저렴하게 구매하긴 했지만, 그래도 집값이 650만 달러나 되었다.
그러니 당연하게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LA에 맨션을 구매한 것 자체가 한나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직장 생활을 할 수 있기 위해서였으니까.
그런데 한나가 오클랜드 슬랙스 전담 리포터가 되었다면 본사에 직접 가는 날도 많지 않을 테고, 맨션은 솔직히 1년에 몇 번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다시 팔까?”
한나는 잠깐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대호는 잠시 생각하다 다른 말을 하였다.
“그냥 세를 주면 되지 뭐!”
세를 주면 된다는 대호의 말에 한나도 박수치며 대답했다.
“아! 그러면 되겠다.”
“그런데 한나, 저녁은 먹었어?”
대호는 이야기하던 중 혹시나 싶어 물었다.
애매하기는 했지만, LA에서 이곳 애리조나 피닉스까지 날아왔다면 저녁을 먹을 시간이 살짝 어긋났기 때문이다.
“응, 실은 아직이야!”
아니나 다를까.
한나의 대답은 대호 자신이 예상한 것과 같았다.
이미 친구들과 식사를 했지만, 아내가 아직 저녁을 먹지 못했다는 말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우리 저녁 먹으러 가자!”
“뭐? 자기 아직까지 저녁 먹지 않은 거야?”
“아니, 나야 시간 맞춰 동료들과 먹었지. 그런데 한나를 보니 다시 배가 고파졌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대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대호의 행동에 한나는 감동을 받았다.
이미 저녁을 먹었으면서도 혼자 먹을 자신을 위해 그렇게 이야기를 해 준 것이 너무도 고마웠다.
* * *
따악!
배트에 맞은 타구는 대기를 가르며 쭉쭉 뻗어 나갔다.
“홈런!”
“와아아아!”
시범 경기 첫날, 대호는 첫 타석에 들어서 홈런을 쳤다.
작년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에서 부상으로 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출전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오클랜드 팬은 혹시나 대호가 큰 부상을 당한 것은 아닌지 많은 걱정을 했다.
그런데 스프링캠프에 이어 시범 경기 첫 타석에서 자신의 건재함을 보여 주자 일제히 환호성이 터졌다.
“정대호 선수! 시범 경기 첫 타석에서 홈런으로 자신의 건재함을 증명합니다!”
김승주는 2033년 메이저리그 시범 경기를 중계하며, 흥분해 소리쳤다.
“작년 11월 말 결혼식과, 12월 병역 문제로 기초 군사교육을 4주 동안 받았죠. 그래서 살짝 걱정되었는데, 저희의 이런 생각이 무색하게 시범 경기 첫 타석에서 홈런을 치는군요.”
“하하, 제가 그랬지 않습니까? 정대호 선수라면 전혀 걱정할 것 없다고요.”
“그랬습니까? 언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김승주는 중계를 하다 말고 하구연 해설 위원을 보며 물었다.
“역대급 야구 천재인 정대호 선수. 부상과 결혼, 병역 문제로 이번 2033시즌은 작년과 같은 활약이 힘들 것이란 예상을 깨고, 시범 경기 첫 타석부터 홈런으로 팬들의 우려를 불식시킵니다.”
“와아아아아!”
대호의 첫 타석 홈런에 중계하는 아나운서와 해설은 물론이고 팬들을 흥분시켰다.
한편 경기장 한쪽에서 남편의 활약을 지켜보는 한나의 표정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언제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목표 의식이 투철한 그였다.
오늘 아침 나가기 전 자신에게 약속했다.
경기 중 자신을 위해 홈런을 쳐 주겠다고 말이다.
보통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그냥 그러려니 했을 것이지만, 남편의 그런 말을 들었을 때 한나는 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정말로 그런 일이 이루어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픽션인 영화나 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이지만, 한나는 정말로 남편이 그렇게 하겠다면 그렇게 될 것이란 믿음이 들었다.
그리고 방금 확인했다.
정말로 남편이 한 말이 그냥 허풍이 아닌 진실이라는 것을 말이다.
― 한나! 오늘 인터뷰를 하게 된다면 이렇게 말할게. 이번 시즌에 최소 하나 이상의 기록 갱신을 하겠다고 말이야.
‘정말로 그게 가능할까?’
방금 전 남편의 홈런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녀는 왠지 남편 대호라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오늘 자신을 위해 홈런을 치겠다는 약속을 첫 타석에서 지켰는데, MVP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하고 정말 이룰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말이다.
이제는 결혼하여 남편의 성을 따르기로 한 한나 정이 그렇게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경기는 오클랜드 슬랙스의 우세로 계속되었다.
따악!
“트리플A에서 올라온 켈리 달튼, 레이스의 잭 켄트 투수의 3구 바깥으로 빠지는 89마일짜리 슬라이더를 잘 밀어 쳐 1루에 안정적으로 안착합니다.”
오늘 6번 타자로 나온 켈리 달튼은 텍사스 레이스의 선발 잭 켄트의 공을 받아쳐 우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만들었다.
그 사이 1, 2루에 있던 주자는 한 베이스씩 진루를 하여 2사 만루가 되었다.
오클랜드 슬랙스의 다음 7번 타자는 2루수인 브렛이었다.
작년 2032시즌 메이저리그에 올라와 백업으로 활약을 하면서, 0.328의 타율과 출루율 0.88, OPS 1.89을 기록했다.
물론 이런 기록은 그가 경기 출전 이닝이 적었기에 정확한 통계라 볼 수는 없지만, 어찌 되었든 기록만 보면 결코 공격력이 약한 투수는 아니란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타석에 들어선 브렛은 신중하게 투수가 던진 공을 컨택하고, 자신이 노리던 코스로 공이 들어오자 곧바로 스윙을 가져갔다.
따아악!
공은 배트 중심에 맞은 듯 맑은 타격음을 뿜어내고 대기를 갈랐다.
“와아아아!”
예상하지 못한 타자에게서 장타가 터져 나왔다.
오클랜드 슬랙스 더그아웃에 앉아 있던 선수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호, 홈런! 브렛 선수, 시범 경기 첫 타석에서 우리의 정대호 선수에 이어 만루 홈런을 쳐 냅니다!”
“방금 전 만루 홈런을 친 브렛 선수는 우리 정대호 선수와는 하이 싱글A부터 함께했던 무척이나 친한 사이라 합니다.”
브렛이 홈런을 치자 김승주에 이어 하구연 해설도 대호와의 친분을 언급하며 만루 홈런을 축하해 주었다.
투아웃이긴 하지만 대호에 이어 브렛이 만루 홈런을 치면서 오클랜드 슬랙스는 1회에 5점이나 뽑아내며 경기를 이끌어 나갔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