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딱!
“파울!”
1B 2S 상황이 되자, 대호는 스트라이크 존에 비슷하게 날아오면 모두 커트를 하였다.
그 때문에 6구가 던져진 상황에서도 아직도 볼카운트는 2S1B 상태가 이어지고 있었다.
7구째 공이 날아왔다.
‘이건…….’
라이언 홈즈의 일곱 번째 공은 처음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던, 바깥쪽 포심 패스트볼과 같은 코스로 날아오는 공이었다.
구속도 비슷하게 느껴지자 대호는 왼발을 안쪽으로 조금 이동을 하고 허리를 회전시키며 스윙을 가져갔다.
따악!
바깥쪽 빠지는 볼에 배트를 휘두른 것이기에 배트 끝부분에 맞았다.
하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냥 두었다가는 초구에 그랬던 것처럼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다다다다.
공을 때려 낸 뒤 대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1루로 뛰었다.
타구가 1, 2루 간을 뚫고 우익 선상으로 빠져나갔다.
비록 타구가 배트 히팅 포인트에 맞은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우익수 방면 구석으로 굴러가 버렸다.
이에 대호는 공의 방향을 확인하고 2루를 돌아 3루까지 뛰었다.
촤아악!
3루 베이스 앞 6m 지점에서 다이빙을 하듯 슬라이딩을 하였다.
슬라이딩을 하기에는 너무 먼 거리인 듯싶었지만, 달리던 속도가 있다 보니 이는 대호에겐 적정 거리였다.
그 이하로 거리를 좁혔다가는 자칫 베이스 오버를 할 수도 있었기에 주루 코치의 수신호를 보고 바로 슬라이딩을 한 것이다.
“세이프!”
툭!
3루심의 세이프 선언이 있고 난 직후 대호의 허리에 글러브가 닿는 느낌이 전해졌다.
“와아아아!”
짝!
대호는 3루심의 선언이 들리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앞섶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그리고 주루 코치와 기쁨의 하이파이브를 하였다.
“코치님!”
“왜?”
“오늘 주심의 바깥쪽과 높은 쪽 존이 공 반 개 정도 넓습니다.”
대호는 자신이 알아낸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을 전달했다.
안쪽과 낮은 쪽 스트라이크 존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알아낸 것은 팀에 알려야 하기에 이를 전달한 것이다.
“알았다.”
대답한 주루 코치는 바로 뒤를 돌아 방금 전 대호에게서 들었던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에 대한 정보를 전달했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는 바로 타석에 들어가는 2번 타자 지미 울프에게 전달되었다.
한편 첫 타자부터 3루타를 맞아 버린 라이언 홈즈는 기분이 좋지 못했다.
기선 제압을 위해 던졌던 위협구에 놀라지 않은 건 물론이고, 공을 일곱 개나 공을 던졌음에도 아웃을 잡지 못하고 안타, 그것도 3루타를 맞았기 때문이다.
팡!
연속 안타는 안 맞겠다는 심정인지, 라이언 홈즈의 볼 끝은 살짝 거칠었다.
“스트라이크!”
조금 낮지 않았나 싶었는데, 주심은 이번 볼에 스트라이크 판정을 내렸다,
3루에서 정확하게 보기에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스트라이크 존보다 낮은 것처럼 보였는데 주심은 이를 스트라이크라 판정하였다.
‘이거… 오늘 스트라이크 존이 대체로 넓네.’
바깥쪽과 높은 쪽, 그리고 이제는 낮은 쪽도 평소보다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자 대호는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포스트 시즌이 되면 메이저리그 심판들은 대체로 스트라이크 존이 좁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판정에 있어서 보수적인 방향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주심은 이런 심판들의 경향과 다르게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졌다.
이 말은 타자들에게 불행한 소식이고, 반대로 투수 입장에선 무척이나 환영해 마지않을 소식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오클랜드 슬랙스의 2번 타자 지미 울프는 지금 타격에 애를 먹고 있다.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 넓은 스트라이크 존으로 인해 타격 포인트가 빗나가 있기 때문이다.
부웅!
펑!
“스트라이크!”
대호에게서 정보를 전달받았지만, 그래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넓어도 너무 넓어진 스트라이크 존으로 인해 볼과 스트라이크의 경계가 무너져 버렸기 때문이다.
“지미! 침착해요!”
보다 못한 대호가 손나팔을 하여 큰 목소리로 지미 울프를 부르며 그를 진정시키려고 했다.
대호의 목소리를 들은 것인지, 지미 울프는 심판에게 손을 들어 보이며 타임을 요청했다.
그리고 타석에서 물러나 혼자 배트를 가볍게 휘두르며 흥분을 다스렸다.
그렇게 잠시 타임으로 시간을 번 지미 울프는 페이스를 찾고 타석에 들어갔다.
펑!
“볼!”
자신의 페이스를 찾은 지미 울프는 그제야 볼과 스트라이크의 차이를 분간하고는 본격적인 타격에 들어갔다.
따악!
몸 쪽으로 빠르게 날아드는 낮은 패스트볼을 퍼 올렸다.
하지만 코스가 좋지 못했다.
중견수 정면으로 날아가는 플라이 볼이라 대호는 타격음에 스타트를 끊고, 홈으로 달리던 것에서 멈추고 다시 3루로 돌아왔다.
‘으음…….’
고개를 돌려 중견수를 쳐다보다 타구가 점점 중견수 방향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보이자, 고개를 돌려 홈을 쳐다보았다.
“고!”
주루 코치의 소리가 들렸다.
다다다다.
타구의 비거리가 많이 짧았기에 대호는 빠르게 발을 놀려 홈으로 쇄도하였다.
쎄액!
태그 업을 한 대호와 중견수가 홈으로 던진 공으로 인해 홈에서 접전이 이루어졌다.
조금 짧은 외야 플라이 볼에 뛴 것이라 보통은 수비 쪽이 유리하지만, 대호의 발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정평이 났기에 낙관할 수는 없었다.
그 때문에 뉴욕 킹덤즈 포수 벤트 로베르트는 날아오는 공과 쇄도하는 대호를 번갈아 보며 긴장했다.
촤아아!
아직 공이 포구되지 않았는데, 벌써 슬라이딩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펑!
미트에 공이 들어왔다.
휘익!
그는 빠른 동작으로 허리를 틀고 홈 플레이트로 다가온 대호의 앞을 막았다.
빙그르르!
‘어!’
분명 홈 플레이트 앞으로 다가온 대호의 손 앞에 미트를 들이밀었다.
그런데 이게 뭐란 말인가?
슬라이딩하여 미끄러진 손이 미트에 자동으로 태그가 되어야 할 텐데, 순간적으로 미트에 다가오던 손이 사라지고 반대편에서 손이 나타나 홈 플레이트를 찍고 지나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벤트 로베르트는 보았다.
마치 고속 촬영한 필름을 슬로우 모션으로 틀어 놓은 것처럼 자신의 미트를 벗어나 홈 플레이트를 짚고 지나가는 대호의 손을.
‘어떻게 이런 일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세이프!”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고 멈춰 있을 때, 심판의 날카로운 판정이 귓가에 들렸다.
그리고 그제야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깨어지고 정상적으로 흘러가는 것을 느낀 벤트는 고개를 돌려 대기석에서 다가오는 3번 타자와 하이파이브를 하는 대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오늘도 쉽지 않겠어.’
순간 대호의 뒤통수를 본 벤트 로베르트는 오늘 경기가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게 흘러갈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한 예감이 아님을 금방 알게 되었다.
지미 울프의 희생플라이에 힘입어 홈으로 들어온 대호로 인해 1점 앞서 나간 오클랜드 슬랙스는 2회에도 1득점을 하며, 2점 앞서 나갔다.
그에 반해 홈팀인 뉴욕 킹덤즈는 오클랜드 슬랙스 2선발인 레프리 그로스에게 꼼짝 못하고 1회 1, 2, 3번 타자가 삼자범퇴로 물러난 것을 시작으로, 2회에는 4번 타자가 안타를 치고 출루를 하긴 했지만 후속 타자가 터지지 않아 잔루 2루를 남기고 공수 교대를 하였다.
* * *
“오늘 디비전 시리즈 2차전 역시 오클랜드 슬랙스가 앞서 나갑니다. 어제와 다르게 큰 점수 차로 벌어지진 않았지만, 현재 2:0 상황에서 선두 타자로 다시 한번 정대호 선수가 나갑니다.”
“1회초 첫 타석에서 어제와 같은 홈런은 아니어지만, 우익수 깊은 곳으로 흘러가는 3루타가 나왔습니다.”
“3루타는 홈런보다 나오기 힘들다던데, 우리 정대호 선수는 그런 3루타를 너무도 쉽게 만들어냅니다.”
김승주는 하구연 해설위원과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하며 중계를 하였다.
“오클랜드 슬랙스의 3회 초 공격, 선두 타자는 1번 정대호 선수부터 시작 됩니다.”
* * *
척!
가벼운 걸음으로 타석에 들어선 대호는 첫 타석과는 다르게 타격 자세를 잡기 전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고 고개를 빙그르르 한 바퀴 돌려 긴장을 푸는 동작을 하였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라이언 홈즈나 벤트 로베르트는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겨우 스무 살의 어린 선수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란 말인가?’
눈에 보이진 않지만, 벤트는 느낄 수 있었다.
홈 플레이트 주변을 찍어 누르는 기세와 대호의 몸에서 퍼져 나오는 아지랑이와 같은 오라를 말이다.
그리고 그건 비단 포수인 벤트만이 아니라, 마운드 위에 있던 라이언 또한 비슷했다.
포수인 벤트가 자신의 정면 홈 플레이트 앞의 공기를 지배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면, 투수인 라이언의 경우 직접적으로 자신을 한없이 짓누르는 듯한 느낌에 숨을 쉬기가 답답해졌다.
‘제길, 이게 무슨 일이야!’
라이언 홈즈는 좀처럼 지금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어떻게 이제 겨우 2년 차인 애송이에게서 메이저리그에서 구르고 구른 베테랑에게서나 느껴지는 압박감이 드는 것인지.
그렇다고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첫 타석에서 느꼈던 것 이상으로 강한 압박감이었지만, 자신은 투수였기에 공을 던져야 했다.
‘에잇!’
가만히 있다가는 기세에 눌릴 것이라 판단한 라이언 홈즈는 억지로 힘을 짜내 투구를 하였다.
따아아악!
차라리 타임을 요청하고 잠시 쉬어 가는 편이 좋았을 텐데, 억지로 무언가를 하려다 그만 공이 가운데로 몰려 버렸다.
맑은 타격음과 함께 그가 던진 공은 하늘 높이 대기를 가르며 외야로 날아갔다.
탁탁탁탁!
맞는 순간 대호는 느꼈다.
자신이 친 타구가 홈런이란 사실을 말이다.
배트에서 가장 반발력이 좋은 히팅 포인트에 공의 중심이 맞으며 날아가는 것.
그로 인해 아무런 반발력도 느껴지지 않고 마치 허공에 스윙한 것과 같은 가벼움을 느꼈다.
* * *
“정대호! 정대호! 쳤습니다.”
3회 초 두 번째 타석에서 대호가 마치 타석에 뿌리를 박은 것처럼 두 발을 움직이지 않고 허리의 회전과 무게 중심의 이동만으로 스윙을 가져가는 모습을 지켜본 김승주는 그 타구가 정확하게 중견수 방면으로 쭉쭉 뻗어 나가자 흥분해서 소리쳤다.
“정대호 선수, 초구 그대로 받아쳤습니다. 중견수 방면으로 쭉쭉 뻗어 나갑니다.”
하구연 해설도 김승주와 마찬가지고 흥분해 소리쳤다.
2032년 디비전 시리즈 2차전에 또다시 대호의 홈런이 나왔다.
1차전 세 개의 홈런에 이어 2차전에 솔로 홈런포가 가동된 것이다.
“첫 타석에서 3루타, 3회 초 두 번째 타석에서 솔로 홈런을 터뜨린 정대호 선수. 2루를 돌아 홈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김승주는 흥분이 주체가 되지 않는 것인지, 대호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설명하고 있었다.
“이거 설레발일지도 모르겠지만, 정대호 선수 오늘 사이클링 히트 가나요?”
“사이클링 히트요?”
“네. 가장 어려운 3루타와 홈런을 쳤으니, 사이클링 히트까지는 이제 2루타와 안타 하나만 남은 상황 아니겠습니까?”
김승주는 뭐가 그리 어렵냐는 듯 보통 선수는 평생 한 번 기록할까 말까 한 힛 포더 사이클, 즉 사이클링 히트를 언급했다.
정규 시즌 중도 아니고 가을 야구 중 기록하는 사이클링 히트의 가치를 모를 리가 없는 그인데도 김승주의 말을 듣고 나니 너무나 쉽게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허허허!”
그렇다 보니 하구연 역시 웃어 버렸다.
또한 이들의 중계를 보고 있던 한국의 야구팬들도 모두 묘한 느낌을 받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4회차는 명전이다